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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산 강화(6)-달란트 비유-
마태복음 25:14~30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베푸신 가르침을 여섯 번째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번에는 우리가 몇 번 들은 바 있는 달란트 비유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 달란트 비유 역시 종말론을 가르치는 맥락 가운데 주신 말씀이기에, 신자들이 주님 오실 날을 준비하면서 어떤 자세로 신앙 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베푸신 이 달란트 비유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살펴보면서 그 영적 교훈을 배우도록 합시다.
먼저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에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이 이야기 속에 많은 종을 데리고 있는 큰 부자 주인이 나옵니다. 이 큰 부자 주인은 우리 구주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주인은 타국 곧 먼 나라에 여행을 가는 일정이 생깁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지상 교회를 떠나서 승천하시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주인은 먼 타국에 떠나면서 자기의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소유를 맡겨두어 관리하라고 명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주님의 제자들과 주님의 모든 성도들에게 자기의 집인 교회를 맡기고, 이 세상을 맡기면서 주님 뜻대로 잘 관리하라고 명하고 떠나십니다. 이는 예수님은 자기 종인 성도들에게 교회를 맡기고, 세상을 복음화하라는 사명을 맡기고,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라는 사명을 맡기고,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자원들 곧 다양한 재능과 건강과 시간과 물질과 영적인 은사들을 맡기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이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길 때 재능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눠주는 점이 특이합니다.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재능’이라는 단어는 ‘뒤나미스’로서 능력을 가리킵니다. 주인은 자기의 종들이 어떤 능력, 어떤 재능이 있는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 걸맞게 자기의 소유들을 각기 달리 나눠줍니다. 능력이 많은 종은 금 다섯 달란트를, 능력이 중간 정도 있는 종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능력이 좀 적은 종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차별하여 나눠 주었습니다. 그리고 각기 맡겨진 소유의 분량을 가지고 잘 맡아서 관리하라고 명하고 떠났습니다.
이처럼 우리 구주 예수님은 자기의 종들은 성도들에게 그 능력에 맞게 자원들을 각기 다르게 분배하여 맡겨주셨습니다.사실은 만왕의 왕이요 온 세상의 임금이신 예수님은 성도들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각기 능력에 따라 그의 자원들을 맡겨주셨습니다. 각각 지식이나 재능이나 세상의 지위와 재물을 관리하는 은사나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 등을 사람마다 다르게 분배하여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은 장차 주님이 오실 그 때에 만유의 심판장이신 주님 앞에 서서 주님이 맡겨주신 것들을 어떻게 잘 관리하였는가에 대하여 셈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님이 베푸신 이야기 속에 주인이 종들에게 나눠준 금들의 액수에 대하여 잠시 살펴봅시다. ‘달란트’는 무게 단위입니다. 그래서 한 달란트는 오늘날 무게로 치면 34kg 정도라고 합니다. 혹은 성경의 다른 구절 계시록 16장 21절 난하주에서는 한 달란트를 60kg으로 기록하기도 합니다(계시록 16:21,대접 심판 중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내리매, 난하주 약 60킬로그램).
그렇다면 금 한 달란트의 값어치는 어느 정도일까요? 당시나 지금이나 금은 은보다 많이 비싼데, 그 때에 금은 은보다 15배나 가격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 때에 은 한 달란트는 노동자의 6000일 동안 번 6000데나리온이었으니 지금 돈으로 치면 은 한 달란트는 6억입니다. 그렇다면 금 한 달란트는 은의 15배니까 금 한 달란트는 약 90억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이야기 속에 나오는 주인은 한 종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 지금 시세로 450억의 돈을 맡겼고, 다른 한 종에게는 금 두 달란트, 180억을 맡겼고, 한 종에게는 금 한 달란트, 90억을 맡긴 것입니다.
참으로 이 주인은 통이 큰 주인입니다. 주인은 그 종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액수의 재물을 맡기면서 그것들 잘 관리하라고 하면서 먼 길을 훌훌 떠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생각하면, 우리 주님께서 그의 종들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겨주신 것들도 엄청나게 비싸고 귀한 것들을 많이 맡겨주셨다는 점을 생각해 볼 일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값주고 사신 영혼을 주셨고 건강을 주셨고 재물을 주셨고 지식과 재능을 주셨고 자기 생명을 바쳐 세우신 거룩한 교회도 선뜻 잘 관리하라고 우리에게 맡겨주셨고 성령의 각양 은사들과 직분들도 각기 다 맡겨주셨고, 가정과 우리나라와 온 세상을 잘 관리하라고 우리에게 선뜻 다 맡겨주셨습니다. 그런 만큼 우리들은 주인의 엄청난 신로를 받은 종들로서 많은 것들을 맡겨주신 주인 되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황송한 마음 가지고 최선 다하여 잘 관리하며 가꾸어가야 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이 이야기 속에 종들은 주인이 통 크게 맡겨주신 바 자기의 맡은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반응했을까를 살펴봅시다. 16절로부터 18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이 자기에게 그렇게 많은 재물을 맡겨주시고 믿어주신 것에 감격하여 주인이 떠나자마자 곧장 달려가서 장사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인님이 자기를 믿어준 것에 감사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주인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할 수 있는 한 많은 이익을 남겨 주인님을 이롭게 하려는 생각으로 가장 이익이 많이 남는 장사를 시작합니다. 장사라는 것이 손해가 생길 위험부담이 따르지만, 이 종은 어떻게 해서든지 위험 부담을 최소로 줄이고 더 많은 이득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밤낮으로 주인님을 위하여 열심히 장사를 하였습니다. 언제 주인님이 돌아오실지 모르지만 오시기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많은 이익을 남기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인이 맡겨준 금 다섯 달란트가 열 달란트의 자산으로 불어났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감사함과 감격함을 가지고 열심을 다하여 이익을 남기고자 일했습니다. 그 결과 금 두 달란트가 네 달란트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종들 중에 한 사람은 삐딱했습니다. 그는 몰래 자기만 아는 은밀한 장소로 가서 땅을 팠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주인이 없으니 잔소리하거나 감시하는 사람도 없으니 편하고 좋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집 일이나 사드락 사드락 하면서 지냈을 것입니다. 그는 다른 종들이 장사하느라 땀 흘리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 손해라도 생기면 장차 주인에게 혼이나 날텐데 왜 그렇게 어리석은 모험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비웃었을 것입니다. 자기처럼 이렇게 지혜롭게 해놓으면 설령 주인님이 오시더라도 손해를 안 보았으니 그것으로 자기 책임을 면할 줄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앞선 금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사람들은 많은 이득을 남긴 마당이니까 어서 주인님이 돌아왔으면 하고 바랐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주인님이 늦게 오시는가 기다림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돈을 땅에 감추어 둔 종은 주인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차라리 안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은근히 갖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혹 주인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 때 땅에 파묻어둔 금 한 달란트를 파내어 자기 것으로 차지하면 되지 않겠나 하는 흉악망측한 생각도 슬그머니 하면서 지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갔습니다. 그러면 주인이 과연 돌아올까요 안 돌아올까요? 주님의 다른 많은 비유 이야기처럼 이 달란트 비유 속에서도 주인은 반드시 돌아고야 말았습니다.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비록 ‘오랜 후’이긴 하지만 주인은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면 주인은 그 종들을 불러 반드시 결산을 합니다. 이처럼 승천하신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신 지가 이미 이천년이 다 될 만큼 오래 되고 있지만 또 앞으로 더 늦게 오실 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반드시 돌아오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주님의 이야기 속에는 돌아온 주인과 종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결산하는 가운데 나누는 대화를 살펴봅시다. 20절로부터 23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여기서 주인 앞에서 그의 종들이 자기의 행한 일을 사실대로 보고하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장차 주님의 심판대에 서게 되는 그 날에 우리들은 각자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요 그 때 우리의 행위와 말에 대하여 주님께 직접 고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4:11,12 말씀에 이르기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4:5에서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기를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심판장이신 주님 앞에서 자기 입으로 직접 변명도 하고 고백도 하게 되는 기회가 반드시 주어질 것입니다. 그 날에 주님은 그 앞에 서는 모든 이들에게 나와 이제 결산하자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 주님이 맡겨주신 것들이 무엇이며,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가가 하나 하나 계산이 될 것입니다. 맡겨주신 것들이 얼마인데, 그 맡겨진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관리하며 사용했는지를 하나씩 계산하실 것입니다. 그 때 결산을 위하여 모든 사람들의 이름과 그 행위들을 기록한 행위 책들이 주님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계시록 20:12 말씀에,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판날에 각 사람은 아무 것도 주님 앞에서 속일 수 없고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비유 속에서 결산 때에 다섯 달란트 맡은 종이나 두 달란트 맡은 종은 주인으로부터 칭찬과 보상을 받고 있습니다. 그 종들은 장사를 잘해서 많은 돈을 벌어서 주인에게 이득을 많이 남겼다고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기보다는 그 종들이 주인을 신뢰하고 맡겨진 임무를 착한 마음으로 충성스럽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당했기 때문에 칭찬받고 있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사실 비유 속의 주인은 엄청난 부자이기 때문입니다. 한 종에게는 450억을 맡기고, 다른 한 종에게는 180억을 맡기고, 또 다른 종에게는 90억을 맡길 정도의 부자라면 얼마나 큰 부자입니까? 이 이야기 속에 나오지 않지만, 이 주인은 이 외에도 수많은 다른 종들도 있어서 그들에게도 다들 일정한 금액을 맡겨서 관리하라고 하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여튼 이 부자는 재물에 관한 한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종들에게 돈 받아 벌어 가져왔기에 결산 때에 칭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달아보는 것은 종들의 마음 속의 주인에 대한 충성스러움입니다. 주인의 명령, 주인이 맡겨준 임무에 대하여 착한 마음으로 순종하는가 여부를 달아보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장차 주님 앞에 서게 될 때에도 우리가 주님께 많은 일들 해드리고 많은 성과를 내고 큰 공적을 이루어서 칭찬과 상을 주시는 것이라기보다는, 주님께서 나 같은 죄 많은 자를 구원해주시고 주님의 백성 삼아주시고, 그의 종으로 믿어주셔서 이렇게 주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게 직분을 주시고 재물과 은사와 시간과 재능과 은사를 주신 것에 감사하여 기쁨과 자원함으로 일하는 마음 자세를 보시고 칭찬하고 상을 주시는 것인 줄 믿습니다.
이것은 헌금 원리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일러준 원리와 동일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서 사도는 헌금에 대하여 가르치기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사도는 여기서 헌금의 양을 보는 것이 아니라, 헌금을 드리는 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드리고자 하는 마음의 자발성, 즐거움이 중요하지, 헌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각각 마음에 정하고 즐겁게 미리 준비하여 드리는 것이 헌금의 정신이요 그 헌금은 곧 그 사람의 사랑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주님께서 그 헌금을 기뻐받으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헌금은 상대적으로 많이 드린다 해도, 그 마음에 인색하거나 억지로 드리거나 감사치 아니한 마음으로 드린다면, 그 헌금을 인하여 하나님은 마음이 편치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결산할 때에도 우리의 마음 자세가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 것임을 기억하면서, 이 땅에서 주님이 허락하신 생애 동안에 감사함과 즐거움과 자원함으로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바 각종 자원들, 넘치는 달란트를 활용하여 믿음의 장사를 곧 즉시 즐겁게 땀흘려 해서 할 수 있는 한 많이 이득을 얻어서 주님께 직접 보고하는 결산의 날을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비유 속에 주인이 베푸시는 보상에 대하여 잠깐 살펴봅시다. 21절을 읽어봅시다.
“m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아까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주인이 맡겨주신 재물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큰 돈이었습니다. 오늘날 시세로 금 다섯 달란트는 450억, 금 둘 달란트는 180억에 해당하는 큰 액수입니다. 그런데도 주인님은 그것들을 맡아 관리한 것을 ‘적은 일’로 말씀해주십니다. 그렇게 적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이제 ‘많은 것’을 맡기는 보상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렇다면 수고한 종이 결산 날에 더 받게 되는 ‘많은 것’은 얼마나 크고 영광스럽고 복된 것일까요? 이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4:16~18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으로 인하여 당하는 핍박과 고난은 잠시뿐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수고하는 땀과 고생도 잠시일 뿐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드리는 우리의 몸과 시간과 물질과 수고는 지극히 적은 것일 뿐입니다. 아무리 주님께 많이 드린다 해도, 우리의 시간도 제한 되어 있고, 우리의 가진 물질도 제한되어 있고, 우리의 재능과 은사도 지극히 적은 것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잠시 주님을 위하여 수고하고 드리고 고난을 받은 일들은 장차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에 지극히 큰 것으로 보상받고 영원한 것으로 보상받고 말로 표현하지 못할 영광의 중한 것으로 보상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지극히 크고 영광스러운 상급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 더욱 주님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일합시다.
이제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주인 앞에 결산하는 때를 봅시다.
24절로부터 27절까지 읽읍시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은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여기 주인으로부터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던 종이 돌아온 주인에게 자기가 그렇게 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을 봅니다. 그 종은 주인을 혹독하고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고합니다. 만약 맡겨둔 한 달란트를 조금이라도 잃어버리거나 손해가 생기게 되면, 그 일로 인하여 종은 엄청난 책망을 받게 되고 몇 배의 손해배상을 주인에게 자기가 해주게 될 것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돈을 땅에 묻어두었노라고 해명합니다. 그러면서 맡겨주신 것 고스란히 이렇게 돌려드리니 주인님의 돈 다시 챙기셨으니 다 되었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주인은 그 종에 대하여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선언하면서, 만약 자기를 그렇게 무섭게 여기고 혹독한 자로 여겼다면 최소한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주인을 위하여 가장 안전하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취리하는 자에게라도 맡겨야 했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그곳 팔레스타인 지역은 국제 무역과 장사가 발전했기 때문에 은행 같은 역할을 하는 ‘취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금 한 달란트를 맡기면 원금과 더불어 이자라도 돌려 받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금 한 달란트 90억원의 이자를 2퍼센트라고만 계산해도, 일년에 이자만 1억 8천만원입니다. 그렇게 그 종이 혹시라도 장사라도 해서 망하면 큰 일 날 것이 겁이 나면, 적어도 은행에 맡겨서 주인에게 원금에 이자라도 더해서 돌려주는 최소한의 조치를 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니, 이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비판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종 본인이 주인에 대하여 그렇게 혹독하고 엄한 분이라고 말해놓고도 최선을 다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섭다고 손해가 날까봐 묻어둬버린 것은 주인에 대한 항명이요 불순종이 분명한 것입니다. 분명히 주인은 떠날 때 이 돈 가지고 나름대로 재랑껏 관리해보라고 명했던 것입니다. 가만히 갖고만 있다가 내가 돌아오면 그대로 내놓으라고 한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종은 주인의 뜻을 거슬러서 자기 생각대로 불순종의 길을 택하고 주인의 이름과 이익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그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왜 이렇게 행동했는가를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혹시 그는 다른 종들과 달리 자기에게는 한 달란트만 맡긴 것이 불만이었을 수 있습니다. 왜 다른 종들에게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맡겨주고 자기는 한 달란트만 주었는가 생각하면서, 주인이 자기를 차별대우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인에게 불만을 품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자기 종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각기 능력이 다른 것을 압니다. 그래서 각 사람의 재능, 능력에 따라서 알맞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달란트의 양을 맡겨준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맡겨도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그 한 달란트 맡은 종의 분량은 그 한 달란트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공연히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달란트를 받은 것을 비교하면서 시기 질투를 하면서 주인에게 불만을 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종처럼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남과 비교하면서 우리보다 더 유능하고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을 보고 비교 의식, 열등 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공연히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유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그의 뜻대로 달란트를 각기 나눠 맡길 주권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토기장이가 그의 뜻을 따라 귀히 쓰일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천하게 쓰일 그릇을 만들기도 할 수 있습니다. 토기장이 맘대로입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왜 나는 천히 쓰이는 질그릇으로 만들었느냐, 왜 나를 지극히 작은 종발 그릇으로 만들었느냐고 따질 수 없습니다. 주인님이신 주께서 그의 주권대로 우리를 빚으셨고 우리에게 그 기쁘신 뜻대로 달란트를 각기 알맞게 달리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 12:3 말씀에 이르기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성경은 “여러분은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정도에 따라 분수에 맞는 생각을 하십시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양한 은사를 하나님께서 맡겨주기도 합니다. 남다른 손재주, 남다른 총명고 지혜, 남다른 말솜씨, 남다른 지도력, 남다른 은사와 능력 등을 한꺼번에 몰아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여러 일을 다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잘 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적은 능력만 받았더라도 그 적은 능력 하나만이라도 주님을 위해서나 이웃과 가정과 이 사회를 위하여 잘 사용함으로써 주인 되신 주님 앞에서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 두 자매의 집에 들른 예수님의 말씀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르다가 부엌에서 주님과 그 일행을 위하여 식사 준비하느라 분주한데 동생 마리아가 언니를 돕지 않고 방안에 들어와 예수님의 제자들 틈에 끼어 말씀만 집중해서 듣자, 여러 준비하는 일로 분주한 언니 마르다가 참다 못해 방문을 열고 예수님께 말씀합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그 때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으로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누가복음 10:41,42)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은 달란트가 적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적을 수 있지만, 그 할 수 있는 한 가지만으로도 감사하며 그 한 가지를 꼭 붙들고 주님이 맡겨주신 거룩한 장사를 계속한다면 주님은 그것으로 족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사회와 이 나라를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비록 적고 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안 되어도, 그 한 가지만이라도 신실하게 기쁨으로 행한다면, 주님은 기뻐하시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인정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인 선입관 때문에 스스로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종은 그 부족한 종에게도 금 한 달란트나 맡겼습니다. 금 한 달란트는 그 가치가 무려 90억원입니다. 90억원을 주인이 맡겨주었는데, 감격이 없고 주인에 대하여 무서운 분이라고 하는 두려움만 가진 것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평소에도 주인은 그 종에게 늘 자상하게 살펴주고 도와주고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을 알고 더 챙겨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종은 스스로 주인은 무서운 분이고 자기에게 엄하게 대하는 분으로만 생각하였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돌아온 탕자 이야기 속에 큰 아들과 같습니다. 큰 아들은 늘 아버지 곁에서 모든 것을 아버지가 다 맡겨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속으로는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동생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에게 뭐라고 항의합니까?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버지는 말하기를 “내 것은 다 네 것 아니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든지 큰 아들은 아버지 허락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친구 초청해서 염소 잡아서 즐겁게 작은 잔치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본인 자신이 그 아버지를 오해하고 스스로 두려워서 아버지는 인색한 분이라고 혼날까봐 자기 생각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생각할 때 이 큰 아들이나 오늘 본문 이야기 속에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스스로 하나님을 무섭고 인색하고 혹독하게 보복하시고 우리의 흠과 잘못만을 따지고 벌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움츠러 들지 않는가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드러난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인 되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엘리야 선지자가 잘 하다가 악한 왕비 이세벨의 위협 한 마디에 두려워 떨고 도망치다가 로뎀 나무 아래 죽기를 자청했을 때 못난 놈이라고 책망하셨습니까? 믿음이 그것밖에 안되다니 실망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주님께서 물과 구운 떡을 직접 내려오셔서 먹이시기를 두 번이나 하시고 호렙산 동굴에 숨어 있는 엘리야를 다시 찾아오셔서 용기를 주시고 제 2의 사명을 주시어 남은 사역을 힘있게 감당하게 해주셨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인할 줄을 미리 알면서도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으며, 베드로가 예견하신 대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을 때에도 주님은 그를 품어주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그를 따로 만나주시고 다른 제자들 앞에서도 그의 위신을 세워주시고 사명을 다시 공개적으로 맡겨주심으로써 다시 일어서게 해주셨습니다.
그처럼 우리들도 한없이 실패하더라도 책망 대신에 격려해주시고 믿어주시고 기다려주시고 다시 밀어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우리 주님을 오해하여 스스로 실패를 자초하지 맙시다. 주님은 여러분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한없이 믿어주시고 기다려주시는 주인이십니다. 베드로에게 그러하신 것처럼 우리가 설령 받은 달란트 가지고 장사하여 왕창 실패하여 파산할지라도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품어주시고 격려하고 일으켜 다시 세워주시고 힘을 주신다는 점을 믿고 땅에 달란트 파 묻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고 인생 장사를 다시 일어나 열심을 내는 성도가 됩시다.
마지막으로 28절로부터 30절까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결산을 마친 주인은 그 악한 종을 집에서 쫓아내 버립니다. 이처럼 마지막 심판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충성되고 착한 종이 주인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며 영광 중에 천국에 들어가는 그 때에, 무익한 종은 바깥 어두운 데 곧 지옥으로 내쫓기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무익한 종은 그에게 맡겨졌던 한 달란트마저 빼앗기고 그것을 열 달란트 가진 종에게 넘겨집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29절)
마지막 심판 날에 모든 불신자나 모든 신자들이 주인 되신 주님 앞에 서서 행한 일에 계산을 하게 되는 종들인데, 그 날에 있는 자는 더 많은 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삶을 드리고 땀 흘려 봉사하고 헌신한 자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풍족한 것으로 갚아질 것입니다. 천국의 영광과 상급으로 더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것을 받았으나 그 모든 것들을 주인의 뜻대로 장사하지 아니하고 땅에 묻어두었던 자들은 그 불충함, 그 완악함, 그 불신앙, 그 게으름과 인색함 때문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다 빼앗긴 채 아무 것도 없는 황폐하고 어둡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뜨겁고 외로운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주인 되신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주님은 앞으로도 더 오랜 후에 오실 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 날은 모든 사람이 주님 앞에서 결산하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종말을 생각해본다면, 지금 여기 모인 우리들은 앞으로 이십년, 삼십년, 사십년, 오십년 후면 주님 앞에 예외없이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결산하는 날을 기억하면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들을 가지고 감사함과 자원함으로 기쁨으로 장사하여 이익을 남깁시다. 주님께 받은 것이 많은 사람은 더 많은 이익을 남기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주님께 받은 것이 적은 사람도 한 가지만으로 족합니다. 그 한 가지만으로도 주님을 위하여, 보냄받은 우리의 인생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위하여 일합시다. 그리할 때 누구나 상관없이 주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인정하시고 많은 것으로 맡기실 것이요 주님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