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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묵주기도의 비밀’ 중에서...
글 :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잠깐이라도 안정되기 어려운 우리의 상상이 더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를 분심들게 하고 묵주기도를 멀리 하도록 애쓰는 ‘마귀의 악의’입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물리치고 묵주기도를 한결같이 바칠 때 악마는 끝없이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것입니다.
인간인 우리는 쉽게 피곤해지며 부주의하게 됩니다. 악마는 이 어려움을 더 증가시켜 버립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도 하기 전에 악마는 우리가 따분함을 느끼게 하며 분심 들거나 지쳐버리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이런 악마에게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묵주기도를 바치는 동안 온갖 분심과 싸워야 할지라도 손에 무기(묵주)를 들었을 때 더 잘 싸울 수 있는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하기가 어렵고,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없더라도 묵주기도를 중단하지 마십시오.
내가 알기로는 이것은 무서운 전쟁이지만 그것은 충실한 영혼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먼저 한 단을 바치기 전에 잠깐 멈추어 여유를 가지고 이 단에서 찬양하려는 신비를 생각하고 복되신 어머니의 전달을 통하여 이 신비에서 가장 빛나는 덕행 중에 한 가지, 또는 여러분이 당장 특별히 필요로 하는 덕행을 전능하신 하느님께 꼭 청원하십시오.
또한 묵주기도를 바치는 동안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잘못을 피하기 위해 아주 조심하십시오.
첫 번째 위험은, 어떠한 은혜도 전혀 청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왜 묵주기도를 드리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묵주기도를 바칠 때는 언제나 몇 가지 은총을 꼭 청하도록 하십시오.
그리스도교의 큰 덕행 중에 하나를 키우기 위해, 혹은 여러분의 죄악중의 하나를 억누르기 위해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십시오.
두 번째 큰 잘못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묵주기도를 바칠 때 너무 빨리 끝내려고 하는 것 외에 그 이상의 아무런 뜻도 안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묵주기도를 할 때 무거운 짐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성스런 묵주기도를 어떻게 바치는지를 보면 실제로 민망스럽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빨리, 그리고 우물우물 중얼거리며 바치기 때문에 말마디가 충분히 전혀 발음되지도 않게 합니다.
최하위의 사람에게도 그런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인사말을 하지 않을 터인데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께서 그러한 방식의 묵주기도로 공경을 받으신다고 생각하다니요!
그러니 우리의 거룩한 신앙 중에서도 가장 성스러운 기도들이 아무런 효과도 없고 묵주기도를 천 번 만 번 드린 뒤에도 그 전보다 더 나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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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둘씩 짝지어 보내셨다...
글 : 윤 클레멘트(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다... <마르 6.6-7>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어 함께 머무르시고, 그들을 당신의 구원사업을 위한 사람들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향한 교육, 양성, 가르침을 주신 길, 방법은 다양하다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들과 함께 살고 머무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묵고 생활하며 공부하고 기도하시면서, 함께 생활하셨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시자, 당신의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할 때가 되시자, 그들을 파견하십니다.
오늘의 복음은 실로 당신의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장면에서의 ‘파견말씀’ 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지팡이와 샌들 이외에는, 빵, 여행 보따리, 돈, 옷 등을 여벌로 지니지 말라’, 그리고 ‘어디 어떤 집에서나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환영하지 않거든 먼지도 털어내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제자들을 향하여 환영하지 않는 곳에서는 초라하게 머물러 있지 말고, 복음선포자의 여유와 당당함을 말씀하시기도 함을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뜻을 어떻게 묵상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복음말씀을 통하여... 그 뜻은 다음의 두 가지로 묵상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섭리와 이끄심에 의탁하라.
둘째는 사람들의 호의와 친절 그리고 사랑을 받아들여라.
그렇답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전하는 복음의 사람들은 온전히 하느님만을 의탁하고, 또한 만나고 함께하는 사람들의 사랑과 배려에 감사하며 함께하라는 말씀이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세상을 향해 파견하십니다.
제자들을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스승이 보내신 성령과 함께, 스승이 함께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의탁하면서 세상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고 선포하셨으며,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는 고쳐주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희생, 영이신 성령의 함께하심과 이끄심으로 언제 어디서나 기쁨과 사랑, 평화와 은총, 생명과 평화, 소망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사랑의 따스함, 아드님 예수님의 구원, 성령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 신부님의 ‘순례자의 노래’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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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의 겨자씨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
- 루카 복음 7장 50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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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7주일 / 군인 주일
2019. 10. 6
루카 17, 5~10
♠ 복음 공부 :
* 5~6절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공동체생활에 대한 가르침으로 믿음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믿음의 위력을 발휘한다는 말씀은 예수어록(마태17.20=루카17.6)과 마태 11.22-23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곳에 편집한 목적은 맨 먼저 남을 죄짓게 말라(1-2절)고 당부하시며, 그중에서도 믿음이 약한 이에게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하고 보살필 것을 권고하시며(3-4절), 다음으로 형제가 죄를 지으면 회개하도록 이끌고, 그가 용서를 청하면 무한정 용서하라고 말씀하시자, 용서하는 일은 자기들의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니 예수님께 믿음을 더 해달라고 청한다.
예수님은 겨자씨의 비유를 들어 믿음은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인 개념으로 보잘 것 없는 겨자씨 한 알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그 믿음이 비록 적다할지라도 엄청난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하신다.
* 7~10절 : 루카복음에 만 수록된 특수자료로, 봉사자의 자세에 대해 다루고 있다. 품꾼은 일을 하고 보수를 요구할 수 있지만 종은 주인의 분부대로 일을 마쳤다 하더라도 “하여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여긴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이 율법을 잘 지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겠다는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채무자의 관계로 보는 사고방식과는 달리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로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적용하여 제자들이 맡은 책임을 다 완수한 다음 그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 복음 요약 : ‘믿음이 부족해서...’ 란 말을 하지 말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으로 하느님을 신뢰하고 기도하는 믿음이라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봉사활동 할 때 대인관계에서 중요한 자세는 ‘겸손’임을 가르치신다. 오늘날 위험한 요소는 박수갈채, 칭찬 맛들이기,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실적지상주의’에 빠질 위험으로부터 탈피하여 ‘어떤 자세로 봉사할 것인가’ 의 정답을 주신다.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대화 방향 : ① 사도들은 예수님께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청합니다.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나누어 보세요.
②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 마음자세는 어떠했는지요?
③ 쓸모없는 종이라고 느낀 적이 있다면 어느 때였는지요?
♠ 참고 문헌 : ▪ 루카복음 맛들이기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 루카복음 주해 (바오로딸 출판사, 한남성서연구소 공동기획 / 유충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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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8주일
2019. 10. 13
루카 17, 11~19
♠ 복음 공부
☞ 길잡이 : 나병환자 열 명의 치유와 사마리아인 한 명의 감사
* 11절 : 루카는 예루살렘 상경기를 엮으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이라고 강조하며 사마리아를 언급하시는데 하느님의 말씀이 갈릴레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에서 이방인들에게 뻗어가는 교량의 협력지로 부각시키고 있다.
* 12~16절 : 나병환자 열 명을 만났는데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이 함께 있어 이례적이다. 그 당시 나병은 하느님께 저주받은 사람으로 불결할 뿐만 아니라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그들은 율법에 따라 멀찍이 서서 (13.45-46:민수 5.2-3:루카 5.12) ‘예수님, 스승님’이라 부르며 자비를 청한다. 이에 예수님은 어떤 치유의 행위나 사죄선언을 하시지 않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신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사제들에게 몸을 보여 병이 나았음을 공식적으로 확인받아야 했기 때문이다(레위13.49). 나환자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 온 몸이 깨끗해졌음을 느낀다. 그런데 병이 나은 열 사람 중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사마리아 한 사람만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께 돌아와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드린다.
* 17~18절 : 예수님의 세 가지 질문이 언급된다. 이 질문은 전체내용의 요약으로 첫째 질문은 12절과 14절을, 셋째 질문은 15-16절의 내용을 반복한다. 열 사람 모두 나았지만 아홉 사람은 감사할 줄 몰랐고, 10장의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한 사람만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다. 유다인은 이방인보다 못하다.
* 19절 : ‘외국인’은 그리스어 알로게네스의 번역이며, 신약성경에서는 여기서만 나온다. 그 의미는 이스라엘의 집에 속하지 않는 종교적으로 다른 족속에 속하는 이방인을 뜻한다. 단 한 사람 사마리아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표현은 7.50;8.48;18.42에서도 나오는데 나병이 나았다는 것은 구원의 삶으로 초대하는 의미인 동시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의 권한과 능력임을 지니신 분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며 그가 구원의 길에 들어섰음을 확인시켜 준다.
♠ 복음 요약 : 이 부분은 루카복음에만 수록된 이적사화로 기적적 치유보다는 이 이야기의 핵심은 감사를 드리지 않은 유다인 아홉 사람과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인 한 사람의 대조적인 처신이다. 열 사람 모두가 치유의 은혜를 받았지만 치유은혜의 의미와 베풀어주신 분이 누구신지에는 아홉 사람은 관심이 없다. 그러나 구원받을 자격조차 없던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사마리아인만이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또 치유해주신 분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드린다. 나머지 아홉 명은 설사 예수님의 치유 능력에 대한 믿음은 있었으나 낫게 해주면 그만이지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말로는 매일 하느님 은혜 안에서 그분의 은총 안에 살아간다고 하면서 아홉 명처럼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왜 우리 주님이 생명이시라고 고백하는지 생각 없이 지낼 때가 많다.
♠ 대화 방향 : ① 열 명의 환자가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태도를 보인 사람은 이방인 한 사람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시는 분,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느님이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깨닫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계신지요? 아니면 어떤 때 왜 하지 못한지요...?
② 아홉 명은 자신의 일에 급급하여 감사드려야 할 분을 잊고 맙니다. 감사드려야할 분이 누구인지 떠올려보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 참고 문헌 : ▪ 신약성경 주해 루카복음 (바오로의딸, 한남성서연구소 공동계획 / 유충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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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 전교 주일
2019. 10. 20
마태오 28, 16~20
♠ 복음묵상 준비하기
* 오슬로 포럼 기조강연-2019.06.12. 문 대통령은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에 따라 설치된 ‘접경위원회’는 협력의 좋은 사례이다. 동독과 서독은 접경지역에서 화재, 홍수, 산사태나 전염병, 병충해, 수자원 오염문제가 발생했을 때 ‘접경위원회’를 통해 신속하게 공동 대처했다”며 “이러한 선례가 한반도에도 적용되어, 국민들 사이에서 평화에 대한 구체적인 희망이 자라길 바란다.
평화가 내 삶을 나아지게 하는 좋은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모일 때, 국민들 사이에 이념과 사상으로 나뉜 마음의 분단도 치유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서 당신이 수난을 받을 것을 예고하셨지만, 그들은 거의 건성으로 들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공동체들이 어려움을 겪는데 왜 그러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 같이 마태오복음서는 다른 공관목음과는 달리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 이들을 하라고 명령하셨다 공관복음은 이들의 중요성을 알아차린 듯 끝부분에 이를 수록하였다.
* 성경을 읽노라면 예수님을 뒤따르는 제자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그분이 계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 해 보이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스승이신 예수님이 3년 동안 그들을 하나하나씩 챙기면서 돌보았을 때에 그들의 반응은 오히려 이방인여인들과 비교되는 모습이었지만,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지만 정작 예수님이 잡히셨던 날 흩어졌던 모습과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통해 희망을 보았을까...?
♠ 복음묵상 들어가기 : 한국은 1990년 아시아주교회의에서 강우일 현 제주교구장이 아프리카의 소공동체 ‘룸코’ 방식을 도입했고, 1992년 김수환 추기경에 의해 소공동체 확산의 첫발을 내디뎠다. 소공동체가 지향하는 미래의 교회상은 ‘교회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피라미드식 교회 구조에서 수평 교회 구조로’ ‘교회 건설을 본당 중심에서 삶의 현장과 가정 중심으로’ 등을 이야기해 왔다.
앞으로 올 평화의 시대를 맞으면서 ‘흩어져가는 작은 공동체를 원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우리는 교회 내에 안주하기보다는 세상에 파견되어야 한다는 “복음의 기쁨”이 바로 스승님이시기도 한 예수님이 원하신 모습이었다,
♠ 대화 방향 : 하느님과 인간 사이, 사랑의 씨실에서 벌어진 틈을 수선하는 실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두려움의 반대는 용기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두 개념은 서로 반비례합니다. 내가 공동체생활에서 비겁한 때를 만났다면 어떤 상황이고, 지금이라면 이를 어떤 식으로 복구하기를 바랐을까?
♠ 참고 문헌 : ▪ 인터넷자료(기사) ▪ 복음이 나에게 물었다 ( 에르메스 론키 / 마리아의종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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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30주일
2019. 10. 27
루카 18, 9~14
♠ 복음 공부 :
☞ 길잡이 :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는 겸손이다.
* 9절 :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설명하신다.
* 10~12절 :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하느님께 자기가 의롭다고 알리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기가 잘났다고 하느님께 말한다. 바리사이와 같은 사람들은 늘 자기보다는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 그리고 험담을 잘한다.
* 13절 : 하지만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죄인을 용서해주시라고, 그저 불쌍히 여겨 주시라고 하느님께 하소연한다.
* 14절 :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 간 사람은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였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 질것이다”
♠ 복음 요약 : 오늘 복음말씀은 지난 2016년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카푸친 성인 오상의 비오, 레오폴드 두 분 유해를 바티칸에 모셨다. 카푸친 수도회는 고해성사가 주 활동이다. 교황님께서 그 날 하신 강론은 오늘의 복음과 내용이 맞아서 소개한다.
성 베드로 대성전에 11일까지 안치되는 카푸친회의 성인 고해사제, 성 피엘트레치나의 비오 사제(오상의 성 비오 신부)와 성 만딕의 레오폴드 사제의 유해와 함께 미사가 봉헌되었다. 오늘 말씀의 전례에서 우리는 두 가지 태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위대함 앞에서 보여지는 태도로 솔로몬 왕의 겸손으로 표현됩니다.
또 다른 태도는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이 소소한 전통까지도 율법에 매달려 지키려 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인색함’ 입니다.
카푸친회 여러분들의 전통은 용서와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좋으신 고해사제들이 많이 계십니다. 크리스토포로 수사님처럼 자신이 죄인임을 느끼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위대하신 주님 앞에서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주님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열왕기 상권 8.30 참조). 그리고 기도할 줄 알기에 용서할 줄 압니다. 이와 반대로, 용서의 필요성을 잊어버릴 때 점차 하느님을 잊게 되고, 용서를 청하는 것을 잊게 되며 용서할 줄 모르게 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 느끼는 겸손한 이는 고해실에서 잘 용서해줄 수 있습니다. 율법학자와 같은 이들은 자신들이 ‘깨끗하며’ ‘스승들’이라고 느끼며 단죄만 할 줄 압니다. 저는 여러분의 형제로서 여러분들과 모든 고해 사제들에게 말합니다. 특별히 자비의 희년을 맞아 고해실은 용서를 위한 곳 입니다. 죄를 사해줄 수 없는 경우를 상상해 보더라도, 제발 그들을 아프게 하지 마십시오. 고해실에 오는 이들은 자신의 영혼에 용기와 용서,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을 포용하고 ‘하느님께서 당신을 무척 사랑하십니다.’라고 이야기해 줄 사제를 만나고자 합니다. 그러니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긴 미안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는 더이상 고해성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제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하셨거든요. 제게 …이렇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지요. 부탁드립니다!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그렇게 느끼리라 믿습니다. 카푸친회 여러분들은 용서라는 주님의 특별한 은총을 가지셨습니다. 용서하기를 멈추지 말아주시길 청합니다. 어떤 교구에서 한 분의 사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최고 책임자의 자리에 계셨다가 은퇴를 하고 70살에 성지의 고해실로 보내졌습니다. 그분이 계신 고해소 앞에 용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섰습니다. 사제들, 평신도들, 부자들, 가난한 이들, 모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용서를 해주시는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언제나 용서해 주시거나 마음에 평화를 주셨습니다. 제가 그분을 뵈러 갔고 그분은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들어 주십시오. 당신은 주교님이시고 제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나치게 용서하는 죄를 저질렀다고 믿습니다. 그런 양심의 가책이 듭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용서를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분에게 그런 느낌이 들 때 어떻게 하시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제대의 감실 앞에서 ‘주님 용서해 주소서. 오늘 지나치게 많이 용서해 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제게 이런 나쁜 모범을 먼저 보여주셨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오랜 시간 앉아서 기도하였던 비오 성인과 레오폴도 성인처럼 기도하여, 용서를 통해 삶을 주시는 예수님처럼 하십시오. 아니라면 악마가 하는 것처럼 단죄하고 벌하게 됩니다. 어떻게 달리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모든 고해사제들에게 말합니다. 잘 하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겸손해지고 다음과 같이 말하십시오.
“저는 미사를 집전하고, 바닥 청소를 하고 모든 것을 하지만 고해성사는 잘 할 줄 몰라서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은총을 청하십시오. 저도 여러분과 모든 고해사제들을 위해, 그리고 저를 위해 주님께 청하겠습니다.“
♠ 대화 방향 : 성서형제회 주변에서 겸손한 형제·자매님을 향해 칭찬 릴레이를 해 봅시다. 그리고 그분에게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길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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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께서 교회 안에 당신 숨결을 불어넣으시어 교회가 새로운 ‘선교의 봄’을 맞이하도록 기도합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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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교회의 목자이신 교종 프란치스코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연약해보이시는 외모와 달리,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자를 돌보면서도 주님의 교회를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교회 안팎의 더러운 악의 세력과 목숨 걸고 단호한 싸움을 하고 계십니다...
교회개혁을 반대하는 엄청난 악의 세력으로부터 우리의 목자이신 교종 프란치스코를 보호해주시도록 열절한 기도를 해주십시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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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순례자들이 오기에 성당 입구에 호텔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려서 조금 떨어진 곳에 카푸친 수도회의 성 레오폴드 성당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지난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두 분 성인 유해를 바티칸에 모셨습니다. 이 장면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HgIpBXZ7Gig )
“죄인이라 느끼는 겸손한 사제는 자비로 용서합니다.” 기사를 소개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오늘 말씀의 전례에서 우리는 두 가지 태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위대함 앞에서 보여지는 태도로 솔로몬 왕의 겸손으로 표현됩니다.
또 다른 태도는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이 소소한 전통까지도 율법에 매달려 지키려 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인색함입니다.
어떤 교구에서 한 분의 사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최고 책임자의 자리에 계셨다가 은퇴를 하고 70살에 성지의 고해실로 보내졌습니다.
오랜 시간 앉아서 기도하였던 비오 성인과 레오폴도 성인처럼 기도하여, 용서를 통해 삶을 주시는 예수님처럼 하십시오. 아니라면 악마가 하는 것처럼 단죄하고 벌하게 됩니다.
어떻게 달리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모든 고해사제들에게 말합니다. 잘 하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겸손해지고 다음과 같이 말하십시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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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제 순교자 김대건 신부님을 찾아간 나바위성지에서의 연수회
그 덕분에 김대건 신부님은 일 년 간 사목생활을 하신 후에 순교하셨다.
충남 논산시 강경에서 불과 2km 남짓 떨어졌지만 전북지역이기에 전주교구 관할지역으로서, 한국복자수녀회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2시에 성당에 모인 우리들은 그곳 회장님의 안내를 받아서 성당과 성지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광주, 저 멀리서 우리를 위해 강의하러 오신 평신도 의사이신 장 도미니코사비오 형제님을 따라간(?) 유럽성지순례가 있었다.
여러 번 듣다 보니 마치 우리 모두가 그곳에 가있는 인상을 남겼다.
지난 연수회 때 이 빈체시오(병호) 주교님이 희생하신 분들도 소중하지만, 이를 알린 이들 역시 소중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도미니코사비오 형제님처럼 유럽 출장 중에서도 개인적인 노력으로 비록 주위 성지를 찾아
기도할 수는 없지만, ‘우리도 국내의 순교자들을 찾아서 기도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을 느끼고 이를 습관화한 이냐시오 성인을 언급하셨다.
파우스티나 콜베가 살았던 수도원, 그리고 에페소의 성모님의 집, 리지외 데레사 생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기적의 패 성당 등 여러 곳을 말씀하셨다.
도미니코사비오 형제님의 말씀을 따라서 성인들의 기운을 받을 수 있는 성지순례를 한 셈이다.
‘코이노니아의 사명 – 예수님 안에 머무는 삶’ 에 대해서 강연하셨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바라보아야 한다.
‘성경공부’를 한다는 것은 ‘하느님과 함께 걷기’ 라고 하셨다
하느님과 함께 걷듯이 우리도 ‘함께 걸어야 하는 동지’ 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가족’과 ‘이웃’의 차이는 아마도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그 밖에 소중한 말씀을 많이 하셨고, 우리 모두는 이를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저녁기도와 정지풍 신부님의 강복으로 하루일과를 마쳤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퀼레오 신부님의 도움으로 많은 내용을 알차게 나누었다.
둘째 날이 밝았고, 아침기도, 아침식사 이후에 신부님의 강의가 있었다.
사람이 다니는 길가에 둥지를 튼 새의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사랑의 둥지’ 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쌍둥이 중에서 건강한 아이의 손이 병든 아이의 심장으로 연결, 그를 치유했다는 말씀도 하셨다.
교우들이 새 성전을 짓기 위해서 했던 헌신적인 일들을 회상하셨다.
여러 가지 진솔한 사목체험에 대한 말씀과 공동체에 대한 많은 말씀들을 비록 하나하나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귀 기울여 우리 맘에 담았다.
열린 공간에서 생소한 고백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음에도 우리는 적지 않은 고백을 쏟아내었다.
미사 후 마당에서 간단히 파견식을 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자신의 생활터전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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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주년을 준비하면서-교구.본당의 사목방향을 이해하자 >
우리는 통상 천주교회를 말할 때에 사도로 이어오는 교회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파견한 제자들은 사도들로서 그 지역의 ‘주교’를 말합니다.
우리가 지난날에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출했을 때에 그분의 직책을 ‘로마주교’ 라고 불렀지요.
‘교황’ 역시 예수님에 의해서 ‘파견된 사도’ 라는 것입니다.
로마교황이 교회의 수장이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그리스도교가 로마로 부터 승인을 받은 이후에 동서 로마로 분열된 이후에 먼저 서로마가 멸망하였다.
서로마 지역에 있는 교회의 수장은 로마에 있는 교황일 수밖에 없었고, 그 대신 아직 멸망치 않는 동로마는 그 지역 주교가 아니라 황제였던 것입니다.
외형적으로는 성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실제적으로 서로마 교황권에 대한 문제제기였던 것입니다.
이런 영향으로 전 세계에 파견된 사도의 후계자들은 ‘주교’라는 이름으로 그 지역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주교회의를 통해서 전국적으로 조율해나갈지는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교구 단위로 그 방향을 정하기에 ‘교구 사목교서’ 라는 것을 해마다 반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 교구에서나 본당에서나 지향하는 바를 올바르게 알아차려야만 우리가 활동하는 성서형제회를 본당 안에서 잘 운영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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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봉사자 월례회> 및 <50주년 준비위 기획분과> 모임 안내
- <FB 전국 봉사자 월례회>와 <50주년 준비위원회 기획분과> 모임을 아래와 같이 공지합니다...
※ 일 시 : 2019년 10월 12일 (토) 오전 11시
※ 교통편 : 영등포역 하차 ---> 지하철 2호선 승차 및 영등포구청역 하차하여 5번 출구로 이동
※ 안 건 : FB 동계묵상회 기초안 검토 및 FB 설립 50주년 준비 협의
※ 문의 사항 : 전국조정 말씀선포자 : 방 레오(인석) ☎ 010-5477-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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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많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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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두과자 (정지풍 신부님) / 복숭아 (장철호 사비오) / 복숭아 (황예봉 아델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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