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에서 문창재 형을 그리며 …
–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1편>
구대열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의 ‘유리창1’입니다.
밤에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늘...
더 무슨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아들을 폐병으로 먼져 보내면서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라고 오열하는
아버지의 속 마음이 겉으로 드러난 게 바로 이것일 겁니다.
밤에 밖이 보이지도 않는데 유리창을 닦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멍청히 하염없이 닦으면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아들과의 추억은 정신이 있을 때나 가능할 겁니다.
유리창을 닦는 시늉만 하는 것은 바로 외롭고도 황홀한 마음 그 자체겠지요.
제주도를 사랑하고 정지용의 <백록담>을 좋아한 창재형에게 이 시를 드립니다.
나는 문상을 별로 가지 않습니다. 잔영이 지워지지 않으니까요.
장례식을 한 장소조차 잊히지 않아 장례를 치른 대학병원을 보면 고개를 돌립니다.
수축한 얼굴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환하게 웃는 젊은 모습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문상을 가면 발인까지 보면서 마지막 전송을 합니다.
창재형은 그랬어야 할 친구였습니다. 문상을 하지 못하니
이 조문으로나마 죄스러운 마음을 조금 달래봅니다.
문창재의 영혼이 있다면, 세속의 먼지를 훨훨 떨치고
만리장공을 등실등실 유산무(遊山舞) 추며 날아올라
나의 비행기로 들어오세요. 여기 좋은 술이 많으니.
문형은 지난 3월 8일 나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이젠 치료도 어렵고
숨이 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틀 뒤 10일 금요일에 방장님에게 일주일 뒤
17일엔 입원할 거라 했답니다. '사별입원'이겠네 했지만 어려워도
몇 달은 더 가겠거니 했는데 한 달을 버티지 못하네요.
나는 한국일보 22기, 창재형은 27기, 상당한 후배 같지만,
입사 연도로 치면 3년 6개월 앞섭니다. 당시 6개월 한 번씩 견습기자를 뽑은 해도
있었으니까요. 나이로는 내가 1개월 2일 형. 1946년 1월생이면 해방둥이라 해도
된다고 우기다가 나한테 혼났지요. 5년 4개월이란 짧은 신문사 경력에서
편집국 문을 들어설 때 드물게 눈에 띈 미남 견습이었지요.
그러나 사회부에서 잠깐 보았을 뿐 별다른 접촉없이 헤어졌습니다.
그리곤 말코글방에서 다시 만났지요. 말그대로 부절여루(不絶如縷)라,
실같이 끊어질듯 말듯 우리의 인연은 이어졌습니다. 자석에 끌린 듯 자주 만났지요.
그러던 어느날, 아마도 2017년 11월 말 나의 책 <삼국통일의 정치학>을 가지고
제주대학에서 북 페어인가 뭘 하자는 겁니다.
자기가 명예도민인 제주도의 대학에서 세미나를 한번 하고 놀자는 것이었지요.
우리는 12월 1일 세미나를 마치고 그가 안내하는 대로 이곳저곳 구경하고
때가 되면 회 먹고... 다음날 오후 서울로 돌아왔지요. 사진을 찾아보니 물줄기가
두갈래로 흐르는 것이 정방폭포인가요? 내가 인물 없이 폭포만 찍은 듯 합니다.
이게 운명의 날이 될 줄은 한참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김포공항에 내려 서로 다른 지하철 방향으로 헤어졌지요.
바로 그 순간, 문형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고 합니다,
원래 내색하지 않는 강원도 산촌 출신이지요.
서울대 병원 복도에서 한번 만났는데 그냥 검진 왔다고 하더군요.
몇 년이 지나서야 병세가 심각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탑골공원 앞 고기집에서 유쾌하게 막걸리를 마시면서 폐암 3기라 하네요.
아, 이젠 괜찮다고 하면서.
임파선 전이는?
전이됐고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하고는 또 한잔 들이켜데요.
나는 집사람이 수술한 경험이 있어 암이라면 반식자가 되었는데,
술 마시는 걸 보면서 마음은 약간 놓이면서도 이건 아닌데 했지요.
동시에 '애구, 또다시 나에게 술 먹이러 들겠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이때는 이미 4기가 지나 어려운 상태였는데,
이미 생사를 초탈한 모습이었지요.
<징용 조선인은 소모품이었다>가 출간되자 따끈따끈한 책을 들고
불광동 저녁모임에 나온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이때도 씩씩했지요,
그리곤 이 문제에 관한 논문 하나를 찾는데 국회 도서관에도 없다면서
나에게 부탁하더군요. 재판 찍을 때 쓸려나? 했지요.
집 딸애에게 서울대 도서관에 찾아보라고 한 게 마지막이 되었네요. (2023.4.10.)
<이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국제정치학 박사(런던정치경제大/LSE)/한국일보 사회~외신부 기자(견습22기)
역임/近著: "Korea 1905~1945"(From Japanese Colonialism To Liberation And Independence),
"삼국통일의 정치학", "제국주의와 언론"/부산고~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 졸/고성 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