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제지(支提誌) 서문(序文)과 보관논쟁(譜觀論爭)
"장흥 위씨 족보사는 보의(譜疑)와 관련된 논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족보를 발행한 영이재공(詠而齋公)까지도 의문이 없지 않음을 자술했다. 아들 존재공(存齋公)도 세계(世系)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관북의 만암공(萬庵公)은 기묘초보 전체를 대상으로 보의론을 제기했다. 이후 합문판사공의 유시와 3세간의 세계 등을 놓고 간헐적인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보의논쟁은 천관공(天冠公)과 계사공(桂沙公)의 논쟁이다. 두 분의 논쟁은 사감 등 부정적인 면이 있으나 우리 족보사에 길이 기록될 학술논쟁이란 점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보의론연구위원회의 연구기록에 앞서 두 분의 논쟁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필자 주)
1. 논쟁(論爭)의 발단(發端)
첫 번째, 논쟁은 천관(天冠) 위민환(魏民煥)씨와 문중과의 논쟁 즉 지제지(支堤誌) 서문으로 인해 비롯됐다. 지제지에 평생을 매달린 덕운(德雲) 위황량(魏滉良)씨는 1975년 완도에 살던 묵헌(黙軒) 송희석(宋希錫)옹이 어느 날 관산을 방문하자 함께 천관산 탑산사(塔山寺)를 들렸다. 절에서 존재공이 썼다는 지제지 필사본을 박원혁주지가 보여주자 출판하기로 했다.
덕운은 평소 지제지를 찾으려고 애를 써왔다. 그러나 위씨 등 누구도 소장자가 없었다. 그런 지제지를 보기에 이른 것이다. 朴스님은 이 필사본이 원래 와룡 위용량(魏龍良)씨가 소장한 것을 천관사 장한택 주지가 필사한 것을 입수해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덕운(德雲)은 묵헌이 번역한 지제지를 장흥문화원과 장흥군의 지원으로 국역초간본(國譯初刊本)을 1976년 12월에 1500부를 출판 배포했다.
그런데 1989년 9월 서울 강남대학 홍순석(洪順錫) 교수가 판서공(判書公)종가인 위성렬(魏聖烈)씨 댁에서 지제지원본을 찾아냈다. 덕운(德雲)은 이미 출판된 지제지와 비교해보니 너무도 다른 점을 발견하고 다시 진본(眞本) 지제지 국역 중간본(國譯重刊本)을 장흥문화원 이름으로 출판하기로 했다. 번역은 道谷 위계방씨에게 의뢰했다. 얼마 후 번역본의 감수(監修)를 천관(天冠) 위민환씨에게 의뢰한 것이 분쟁의 단초가 됐다.
두 번째, 논쟁(사실상은 이것이 필자와의 최초논쟁‘最初論爭’이다)은 1987년 5월 하산사(霞山祠)앞뜰에 세운 시조공(始祖公) 사적비문과 진도(珍島) 남산등 판사공 묘소? 와 귀양(流配)문제 등 역사사실을 놓고 필자와 천관(天冠)과의 논쟁이다. 이 논쟁사를 기록한 이유는 위씨 문중의 거짓 없는 위선(爲先)과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이다. 정의(正義)를 쟁취한 논쟁은 육신의 고향인 흙속에서도 살아남는다니 역사적 사실(歷史的事實)에 근거한 문헌(족보)을 가진 문중은 그만큼 정의롭고 진정으로 위선(爲先)한 훌륭한 집안이다.
다시 말해서 不義(歷史歪曲)로 爲先함은 爲先 아닌 허상의 조상(祖上)일 뿐이다. 우리 위씨도 230여년의 족보 역사를 가진 집안이지만 여기까지 오도록 영이재(詠而齋公). 존재공(存齋公)․만암공(萬庵公)․죽오공(竹塢公) 등 문중의 선각자 여러분이 그 기초를 닦아놓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미화(美化)하기 위해 족보에 거짓 벼슬을 올리고 비석에도 황당무계한 역사사실을 날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거짓으로 조상을 미화하면 성씨가 빛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보이는 것이다.
혹자는 나를 가리켜 고집불통이라고 한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자가 확인고증한 부동불변의 소신에서의 직언이지 억지 고집은 아니다. 훌륭한 조상을 갖고 싶고, 벼슬 높은 선조가 있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결코 아니다. 나는 단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벼슬 등의 기록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문중과 특정 종인과 그리고 나와 그 종인간의 논쟁 내용을 사실 그대로 여기에 공개한 것이다. 많은 비정(批正)을 바라는 바이다.
맨마지막 단락...^^
비정(批正) : 비판하여 정정
맞나?
위문중 조상님들의 고증된 옛발자취를 더듬어 찾으시느라 애쓰시고 수고들 많이 하셨고 하시네요.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옳바른 문중사를 위한 위대한 논쟁이라 여깁니다. 건전한 논쟁으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위두량/대종회사무국장 님
뜻이 맞는 듯합니다. 필자께서도 오류가 있으면 얼마든지 지적해달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대 어른들의 치열한 논쟁을 저 또한 높게 평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