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기름 부음 받은 나 》
시 2:1~6
〈 세상 사는 지혜 〉
어제 오전 11시쯤이었습니다.
목양실에서 오늘 설교 본문 붙들고 씨름하다가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유튜브를 봤습니다.
뻘쭘하게 열려있는 목양실 문을 슬며시 열고 유채가 들어와 ‘서프라이즈’를 합니다.
본능적으로 유튜브 화면을 닫고 설교 준비중인 ‘한글’화면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유채가 비스켓 하나를 내밀면서 “할아버지 뭐 보고 있었어요?”합니다.
제가 조금 전에 사택으로 들어갔더니 그때 유채는 넷플릭스를 보고 있다가 얼른 껐습니다.
“이잉~ 유채, 나쁜 것 본 것은 아니제?”
“나쁜 거 안 봐요!” 유채가 억울하다는 듯이 대답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판세가 역전되었습니다. 애나 어른이나 변명을 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집니다.
“할아버지가 설교 준비하다가 잠시 머리 식힐겸 유튜브 봤어!”
“아, 아이디어 얻으려고요?” “그렇지!”
문답을 주고 받으면서 유채가 설교 준비 화면을 봅니다.
“아니, 이렇게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어제도 안 했어요?”
설교 원고 화면에는 오늘 설교 제목만이 덜렁 적혀 있었습니다. 《 기름 부음 받은 나 》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고 살아가는 저의 어제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나옵니다.
(2절)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기름 부음 받은 자~”
오늘 설교 제목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자”를 “나”로 바꿨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기름 부음 받은 자입니다. 나는 기름 부음 받은 자입니다!” 이 고백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이므로,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삶을 살기 위하여 그 삶을 알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 ① 기름 부음 받은 양 〉
《 기름 부음을 받은 나 》 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름 부음 받은 양”입니다.
고대 시대 양을 키우는 목적은 첫째는 젖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양의 젖이 고대인들의 중요한 양식이었습니다.
둘째는 털입니다. 양털, 양털은 추운 겨울 보온을 위한 최고의 재료입니다.
양으로부터 젖과 털을 얻어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양을 건강하게 키워야 합니다.
잘 키워서 1년에 한번 양의 털을 깎습니다. 양털을 깎는 날은 잔칫날입니다.
양털을 깎기 전에 꼭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기름”입니다.
털을 깎아낸 다음 양의 온몸에 발라줘야 하는 기름입니다.
맨살이 드러났을 때, 피부보호를 위해서 기름을 발라줍니다.
양 털을 깎은 다음, 양의 머리에 기름을 듬뿍 묻혀줍니다.
머리에 줄줄 흐르는 기름이 눈을 가리고 코를 막아요, 양이 어떻게 합니까?
머리를 온몸에 대고 비벼댑니다. 기름이 온몸에 골고루 퍼집니다.
이렇게 기름부음을 받은 양, 이제 다음 털을 깎을 때까지 건강한 양이 됩니다.
기름을 빠뜨리면 나중에 털이 자라서 온 몸을 뒤덮었을 때 피부병이 생기면 속수무책입니다.
이내 죽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지 못한 양은 살아있으나 죽은 양”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아야 진짜 양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고 건강하게 자라면서 젖과 털을 우리에게 줍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라면서 비실비실합니다. 제 구실을 못합니다.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저 기름 부음을 받지 못한 칠뜨기”라고 폄하했습니다.
한국인들은 “배꼽이 덜 떨어진 녀석”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어른이 되었어도 어른 구실을 못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또 “사모관대 족두리를 써야 어른이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혼례에서 신랑은 사모관대, 신부는 족두리를 씁니다.
이렇게 사모관대 족두리를 쓰고 혼례를 치러야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혼례를 치르지 않고 그냥 사는 사람들, “어쩐지 저들은 어른 티가 안 난다!” 했습니다.
지금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기름 부음 받은 나 》
기름 부음 받은 양을 기억해야 합니다.
☞ 우리는 기름 부음을 받은 양입니다. 양으로 구실을 제대로 하는 양입니다.
〈 ② 기름 부음 받은 방패 〉
우리가 《 기름 부음 받은 나 》로서 하나님 앞에 설 때 두 번째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방패”입니다.
고대 시대 전쟁에 나갈 때 병사들이 창이나 활과 함께 필수 지참 무기가 방패입니다.
고대의 방패는 대부분 동물의 가죽으로 제작했습니다. 뭘로 제작했다고요? “가죽”
방패는 한번 제작하면 수년간 사용합니다. 무기고에 보관했다가 전쟁 때 가지고 나갑니다.
방패가 제 구실을 해야 전장에서 목숨을 지킬 수 있습니다.
방패가 한 방에 뚫려 버리면 그냥 ‘깨꼴락’입니다.
방패가 제 구실하게 하려면, 반드시 방패에 기름을 부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가죽제 방패, 창고에 수개월 두면, 기름기가 다 빠지고 건조해집니다.
가죽에서 기름기가 빠지면, ‘퍼석퍼석’ 부스러집니다.
가죽이 제 기능하도록 보관할 때 반드시 기름을 쳐 두어야 합니다.
전장에 나갈 때도 다시 기름을 부어야 합니다. 그래야 화살이 방패를 뚫지 못합니다.
기름 부음이 없는 방패는 방패가 아닙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방패가 생명을 살리는 방패인 줄 믿습니다!
사 21:5 “그들이 식탁을 베풀고 파수꾼을 세우고 먹고 마시도다 너희 고관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방패에 기름을 바를지어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지금 전쟁에 나아가자!”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선포입니다.
무기고에 쌓아둔 방패, “방패에 기름을 발라라, 그리고 적군을 물리치자!” 이 뜻입니다.
삼하 1:21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 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길보아 전투, 그 전쟁에서 사울 왕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전사했습니다.
그 소식에 다윗이 탄식하는 시(詩)입니다. 다윗의 비유를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 ~ 사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아니함 같이 됨이로다”
사울의 죽음을 비유한 다윗의 빼어난 레토릭입니다.
사울왕이 전쟁에서 전사했습니다. 이는, “그의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지 못했음이다!”
“기름 부음 받지 못한 방패는 방패가 아니다!” &“기름 부음 받지 못한 양은 양이 아니다!”
〈 ③ 기름 부음 받은 자 – 선지자, 제사장, 왕 〉
“기름 부음 받지 못한 방패는 방패가 아니다!”
“기름 부음 받지 못한 양은 양이 아니다!”
“방패” 그리고 “양” 여기에 반드시 대입해야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기름 부음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인간이면 다 인간이냐, 기름 부음을 받아야 인간이지!” 이렇게 되는 겁니다.
양, 방패가 기름 부음을 받아야 진정한 양이고, 진짜배기 방패입니다.
고대시대에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였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기름, 이 기름을 그래서 취임식에서 썼습니다.
왕으로 취임하는 자에게 아주 귀한 향기름을 취임식에서 머리 위에 부었습니다.
취임식 절차에서 필수가 되었습니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133: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기름 부음을 받아야 진정한 양, 진짜무기 방패가 됩니다.
기름 부음을 받아야 사람다운 사람, 제 구실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연고로 구약시대, 반드시 기름 부음으로 세워지는 직책이 셋 있습니다.
선지자, 제사장, 왕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선지자, 제사장, 왕! 이 3중직이 예수님 한 분에게로 수렴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신약시대를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할렐루야!
히브리어 ‘메시아’ 헬라어 ‘그리스도’ 바로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이때부터 물리적 기름이 아닌 “영적 기름”이 부어지기 시작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 믿는 사람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백성들!
☞ 기름 부음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 기름 부음 받은 나 》입니다.
〈 기름 부음 받은 나 〉
신약 시대의 기름부음은 구약시대처럼 진짜 기름을 머리에 붓지 않습니다.
‘메시아’ ‘그리스도’ ‘기름 부음’ ‘어노인팅’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구약 시대의 기름 부음이 물리적 기름 부음이었다면, 신약 시대는 영적인 기름 부음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았는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지금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인 줄 믿습니다!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찬양하며 예배합니다.
☞ “기름 부음을 받음” 이 사건으로 3가지가 회복 됩니다.
_ 첫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합니다.
_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_ 셋째,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회복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합니다.
아담 하와의 선악과 사건으로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었습니다.
순종, 거룩, 사랑, 용서, 화목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 되었습니다.
이때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 “기름 부음 받음”으로써 회복됩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합니다.
기름 부음을 받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복된 자녀가 됩니다. 할렐루야~
셋째,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회복합니다.
사람들의 근원적 질문,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이 질문의 대답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나를 보내시면서 나에게 주신 사명,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우리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압니다.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 형상, 관계, 사명, <형·관·사> 세 가지가 회복되었습니다.
〈 기름 부음 받은 나의 삶, 나의 인생 〉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나,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한 가지 욕구가 있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 되었으니, 세상은 나를 이렇게 대접함이 마땅하다!”라는 욕구입니다.
내가 남편(아내)이 되었으니, 아내는 나에게…
내가 아빠(엄마)가 되었으니, 자녀들은 나에게…
내가 이런 직위에 올랐으니, 사람들은 나에게… 이 욕구가 아주 강합니다.
이 욕구가 충족 안 되면, 화를 냅니다. 관계가 깨어지고, 분쟁이 일어납니다.
☞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되었을 때도 이 욕구는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 믿고, 기름 부음 받았다. <형·관·사>가 회복되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우리는 이렇게 ‘욕구’에 깊이 길들여져 있습니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 잘하다가, 중도에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이 문제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 믿었는데, 왜 이 모양 이 꼴이란 말인가? 하면서 세상으로 되돌아갑니다.
세상으로 되돌가면, 세상이 자신을 대접해 줍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2절)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세상은 똑같습니다.
그러면 왜 기름 부음을 받아야 합니까?
세상은 똑같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 멸시 천대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내 아들아!” “내 딸아!” 하시면서 품에 꼬옥 안아주십니다.
기름 부음 받은 우리, 세상에서, 가정에서, 예배당에 나와서 대접받으려 하면 안 됩니다.
나를 알고, 나를 합당하게 대우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가장 중요합니다. 세상은 나를 몰라줘도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시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 삶이 《 기름 부음을 받은 나 》 의 인생, 나의 삶입니다.
세상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대접받으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 기름 부음을 받은 나 》로 대접을 받으면 됩니다.
하나님이 알아주는 내 삶, 내 인생, 《 기름 부음을 받은 나 》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