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회중시계의 유행을 알린 사건은 영국의 찰스 2세가 주머니가 달린 패션 의류인 조끼를 선보인 후에 이곳에 시계를 넣기 시작한 후라고 한다. 그 전후의 무렵에 영국의 튜더 왕가의 헨리 8세는 시계에 줄을 달아 목에 걸었고 그의 딸 엘리자베스 1세는 팔뚝에 시계를 차는 유행을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엘리자베스 1세가 최초의 손목시계란 셈이 되는데 기록만 남아 있지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 시계에는 당연히 모두 보석이 박힌 사치스러운 것으로 추측이 된다.
영국의 높으신 분들에 자극을 받은 프랑스의 여왕인 마리앙투와네트도 시계 장치가 달린 다이아몬드 팔찌를 주문했다.
이런 상류층의 유행이 이어진 가운데 회중시계와 더불어 “ 반지시계 ”도 같이 등장하여 꽤 인기를 오랜 기간 끌었다. 다들 초창기이어서 실용보다도 보여주기 용이었다. 사실 다이아몬드 같은 것으로 박힌 왕관 등도 머리 모양을 유지하려고 쓰는 것은 아니지 아니한가.
이 사치품은 원래부터 보석의 세공기술도 세련된 기술을 필요하지만 덧붙어 과학적이고 공학적인 기술을 덧붙어야 한다. 최소 19세기까지는 이런 부를 과시를 위한 결정체가 선풍적인 인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 글의 초반기에 소개된 “ 파테크 차페크 주식회사 ”는 이런 휴대용 시계의 시장이 성장하면서 나타난 여러 시계 제작 회사 가운데 하나이었다. 그 시계 제작 회사 중에 고급지고 화려한 장식품을 제작하는데 특화된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이 파테크 회사는 설립된 후에 “ 손으로 태엽을 감는stem-winding ” 신기술을 발명한 시계공인 장 필리프와 만나 첫 동업자인 차페크는 해고가 되고 1851년 파테크 필리프로 바뀌게 된다.
20세기가 막 시작될 무렵에 영국의 런던에서는 최초의 “ 만국박람회 ”가 열렸는데 당시 여왕인 빅토리아는 전시된 물건 중에 파테크 필리프의 신식 기계 시계에 홀딱 반하여 담청색 에나멜에 소형 다이아몬드가 꽃처럼 흩뿌려진 여성용 회중 시계를 구입하여 많은 인물들의 주목을 이끌었다.
이후에 손목시계가 등장하는데 그때 역사적인 사건은 역시 그 유명한 리슬릿wristlet이었다.
아마 회중시계보다 손목시계가 좀더 내보이기 좋았을런지도 모른다.
당연히 장신구로서의 리슬릿은 작을수록 비쌌고 더 인기가 많았다. 이 리슬릿 종류는 최신식 제품으로 자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요즘의 “ 스마트폰 ”과 비슷하다면 할 수 있다. 다른 점은 이 작고 최첨단의 예쁜 리슬릿은 어느 정도 오랜 시간이 장식품으로 가치를 유지했고 실용성에 대해서는 극히 회의적이었지만 요즘의 스마트폰은 사이클이 너무 짧고 또한 실용성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또 하나 더 틀린 점은 손목시계란 자체가 코스코비츠 백작 부인같이 유한마담에 속하는 여성의 장식품이지 남성이 차고 다닌다는 것에는 거부감을 보였다는 점이다.
witpo
1500년경에 독일의 뉘른베르크를 중심으로 시계 제조와 연구가 더욱 진전되어 헨라인(Peter Henlein; 1485-1542)이라는 기술자가 태엽을 이용한 회중시계를 처음으로 만들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