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영화 ‘기적’ - 2021년 감독 이장훈
마음의 상처, 감추지 마세요!
육체의 상처는 쉽게 드러나고, 또 빨리 드러냅니다. 고통을 호소하고, 눈에 잘 보이니 도움의 손길도 빠릅니다. 그와 달리 마음의 상처는 잘 드러나지도 않고, 쉽사리 드러내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 상처를 들여다보고 치유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깊숙이 숨겨두거나, 상처에 갇혀 살거나, 스스로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곤 합니다.
영화 <기적>의 주인공인 경북 봉화 오지에 사는 고교생 준경(박정민 분)도 두 개의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숨기고 있습니다. 그 상처는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이 남긴 것입니다. 어머니는 산고 끝에 그를 낳고는 세상을 떠났고, 누나 보경(이수경 분)은 그가 도내 수학 경시대회 우승으로 받은 트로피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 철교에서 강물로 떨어져 목숨을 잃습니다.
준경은 그들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한 상처와 죄책감을 아버지에게조차 드러내지 않습니다. “내가 도전할 때마다 안 좋은 일만 생겨. 항상 그랬어.”라면서 수학 천재로 우주과학자가 되는 꿈과 기회도 포기합니다. 마음과 시간을 가두어 버린 채 “아직도 누나는 나한테 있다.”면서 한 가지에만 매달립니다. 오갈 수 있는 길이라고는 철로뿐, 철교와 터널을 세 번씩 지나야 하는 마을에 간이역을 세워달라고 대통령에게 54번이나 편지를 씁니다.
자책하고 포기한다고 상처가 치유되고 죄책감이 씻어질까요. 간이역을 세우고, 살던 집을 떠나지 않는다고 누나가 살아 돌아올까요. 그것이 자신을 너무나 아끼고 사랑한 누나가 바라는 일일까요. 아버지(이성민 분)가 “그래, 고생 많았다.”라고 칭찬을 해줄까요. 아닙니다. 환상속의 누나는 그에게 “네가 먼저 ‘내 갔다 올게’ 그래야 나도 웃으며 떠날 것 같아. 그날만 기다려.”라고 말합니다. 정부의 지원을 기다릴 수 없어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 지은 간이역을 기관사인 아버지는 규정을 내세우면서 열차를 세우지 않고 지나쳐 버립니다.
아버지는 왜 그럴까요. 그도 같은 상처를 안고 있으며, 그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근무 규정에 집착해 아내와 딸을 죽게 만들었다고 자책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되는 것을 보면서 아들까지 그렇게 될까 무서워,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들킬까 봐 준경을 외면합니다. 그렇게 서로 숨겨왔던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의 상처가 준경의 천재물리학협회 미국 유학생 선발시험 도전을 계기로 확인되고 드러남으로써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준경의 시험을 위해 간이역에 열차를 과감히 세우고, 준경은 “내 갔다 올게.”라면서 누나를 기쁘게 떠나보냅니다. <기적>은 마음의 상처야말로 그 어떤 것도 아닌 마음으로 치유할 수 있으며, 그 마음이란 바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가 있습니다. 크건 작건 그때마다 감추지 말고 ‘아프다.’고 소리쳐야 합니다. 진정으로 그 말에 귀 기울이고, 상처를 쓰다듬고 씻어줄 손길이 가까이에 없다면 크게 신음하면서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넋이 짓밟힌 이들을 구원해 주신다.”’(시편 34,19)고 했습니다.
[2022년 2월 6일 연중 제5주일 서울주보 4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