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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상 17장 17-18절. 삶이 타인에 의해 움직여질 때, 그래도 구하라
살다보면 때때로 삶의 주도권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나라가 전쟁에 졌을 때 주도권을 빼앗깁니다. 그러면 그 나라 사람들의 노예가 됩니다. 또 빚을 져서 갚지 못했을 때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그의 집의 종이 되어 시키는 일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때부터 소망이 다 사라지고 오직 자유만을 갈망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경우를 보면 어느 기업이나 일터에 취직했을 때 고용주의 뜻때로 움직여야 합니다. 물론 정해진 시간만큼만 그렇게 일을 합니다. 그댓가로 급료를 받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래도 나름대로 목표를 세울 수도 있고 원치 않으면 사표를 내고 다른 곳으로 일터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일을 선택할 주도권이 있는 것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삶의 주도권을 누군가에게 빼앗기면 불행을 느낍니다. 그래서 강압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많은 자녀들이 탈선을 하는 이유가 자신의 의견과 인격이 존중받지 못한 채 부모의 강압에 의해서 자신의 삶을 살다가 지쳐서 집을 뛰쳐나가 방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가정 바깥에서 그들이 만나는 세상은 굉장한 위험이 따릅니다. 그런데도 초기에는 부모에 대한 반발심이 너무나 강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여기가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몸도 마음도 다 무너지고 망가집니다. 부모의 때보다 더 자기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을 알게 됩니다. 부모는 강압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 사랑이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뛰쳐나가 들어간 세상은 조금의 사랑도 없고, 긍휼도 없습니다. 냉혹하리만큼 계산적이며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강아지보다 못한 이용물로 전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강압적인 부모 밑에 있을 지라도 참고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준비되어 세상에 나갔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참고 인내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타인에 의해 삶이 움직여진다고 해서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타인에 의해 움직여질 때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며 그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큰 그림을 보고 깨닫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다윗 역시 타인에 의해 움직여지는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선 오늘 읽으신 본문 사무엘상 17장 17-18절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양을 치고 있는 다윗을 불렀습니다. 다른 세 아들들이 전쟁터에 가 있기 때문에 안부가 궁급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13절입니다. “그 장성한 세 아들은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으니 싸움에 나간 세 아들의 이름은 장자 엘리압이요 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 셋째는 삼마며”
이새는 여덞 명의 아들들 가운데 막내인 다윗으로 하여금 형들의 안부를 알아오라고 시킨 것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이럴 경우 “다른 형들도 있는데 왜 나한테 그런 심부름을 시켜요?”하면서 않하겠다고 거부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아버지께 순종했습니다.
블레셋의 군대가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사울왕은 나팔을 불어 군사를 모집했습니다. 그 나팔소리를 들은 집마다 젊은 청년들을 일손을 놓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터로 갔습니다. 이스라엘의 특징은 일하다가 전쟁이 나면 자기들 손에 있는 농기구를 들고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일군들이 군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형들도 역시 일하다말고 전쟁터로 나갔기에 이새는 아들들 소식을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장의 블레셋 군대에는 블레셋 군사들의 사기를 올려주려고 날마나 앞으로 나와서 쩌렁 쩌렁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모욕하면서 일대일로 싸우자고 외치며 이스라엘 군대의 기를 죽이는 골리앗이라는 용사가 있었습니다. 무려 40일 동안 아침 저녁으로 그 짓을 했는데도 아무도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서는 용사가 없었습니다. 나서기는커녕 모두가 겁을 집어먹고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15-1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그의 아버지의 양을 칠 때에 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그런 전쟁터로 막내 아들을 보내는 이새는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전쟁의 소식이 궁금해졌습니다. 왜 이 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고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그리고 이 긴 싸움에서 전쟁터로 나간 아들들의 안위가 어떤지 걱정도 되고 궁금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전쟁의 상황을 알아보고 형들이 건강히 잘 있는지를 알아보고 오라고 하면서 세 아들이 먹을 음식과 지휘관에게 줄 치즈 열덩어리를 보낸 것입니다.
어쩌면 상황이 위태한 것을 알았다면 이새는 아들인 다윗을 전쟁터에 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황을 몰랐던 이새는 막내 아들 다윗에게 심부름을 시키면서 마지막으로 당부하기를 형들과 형들의 지휘관들에게 음식을 제대로 전달한 증표를 가져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형들과 그들의 상관들에게 전해주라고 한 것을 전해주지도 않았으면서 전해준 것처럼 자신을 속일까봐 치즈 열덩이를 주면서 증표를 받아오라고 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런 아버지의 말에 시험들지 않습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아버지를 미워하지도 않고 야속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듯이 아버지의 말에도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게 된 다윗은 자기가 치던 양떼를 양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전쟁터로 갔는데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20절입니다.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을 억지로, 또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순종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들을 믿지 못하는 아버지와 그래도 순종하는 아들의 모습을 여러분들은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다윗의 나이만큼 먹은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무슨 심부름을 시키면 대부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특히나 핸드폰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들은 더욱더 심부름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부모에게 자신의 요구는 당당히 요구하면서도 부모의 요구는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을 갔다가 거기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믿음으로 뛰어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봄은 물론이고 전쟁의 승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갔다가 뜻밖의 일을 만나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 여러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찾아갔다가 인생이 완전히 바뀐 사람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대하여 생각한 것과 다르게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으로 자기들을 찾아온 요셉을 만나자마자 깊은 웅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 거기서부터 요셉은 고달픈 인생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요셉은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자유를 잃었습니다. 인생의 주도권을 잃었습니다.
그의 형들이 미디안 상인들에게 그를 판 후부터는 이제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미디안의 상인들이 이끄는대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노예 시장의 경매장에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산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보디발의 아내의 거짓말에 의해 감옥에 들어가 간수장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애굽왕 바로의 총리가 되어 바로 왕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는 말합니다.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보좌 뿐이다. 그러니 네 마음대로 이 나라를 다스려라”
타인에 의해 움직일 수 밖에 없었던 요셉이지만 하나님은 미디안 상인들에게서나, 보디발의 집에서나, 감옥에서나, 그리고 바로의 총리가 되었을 때도 진정한 요셉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주셨고 요셉은 그 모든 곳에서 빛이 났습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면서 자신 안에서나, 자신이 하는 일에서나 빛을 비춰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아버지의 심부름을 갔다가 뜻밖의 일을 만나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 두 번째 사람은 사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선지자에게 왕을 요구할 때쯤 사울의 아버지인 기스는 나귀를 잃어버렸습니다. 찾아도 찾지 못하자 사울의 아버지 기스는 사울에게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오라고 심부름을 시킵니다.
사울은 사환 하나와 잃어버린 나귀를 찾기 위해 가볼 수 있는 곳은 다 가고, 찾을 수 있는 곳은 다찾아봅니다. 하지만 사울은 찾지 못하고 자기 때문에 걱정할 아버지가 걱정되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그때 함께 갔던 사환이 그곳에 선견자가 있으니 그를 찾아가서 물어보자고 합니다. 바로 그 일로 인해 사울의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선견자 사무엘을 만나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역시도 타인에 의해 움직였던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바벨론 왕인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유다에서부터 바벨론으로 잡혀가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자기가 원하는 교육이 아니라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배우라고 하는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미리 읽었고, 또 읽고 있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느브갓네살이 정한 대로 교육을 받았지만 다니엘은 성경의 기초 위에 바벨론의 교육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공부는 해도 성경을 읽지는 않습니다. 그냥 교회에 다니면서 선생님들이나 전도사님들, 목사님들이 가르쳐주는 것만을 듣고 알 뿐입니다. 그 외에는 스스로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성경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교육생중 그 누구보다도 더 뛰어나게 됩니다. 거기에 하나님은 꿈과 환상을 받기도 하고 해석하기도 하는 하나님의 은사를 선물로 받아서 바벨론 나라의 최고의 지혜자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또 다른 타인에 의해 움직임을 받았던 사람은 신약 성경의 에바브로디도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회의 성도입니다. 그런 그가 빌립보교회가 헌금한 돈을 가지고 바울을 찾아갑니다. 빌립보교회가 그를 선택하여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도착한 에바브로디도는 사도 바울의 형편을 보고 선교헌금을 전달해준 것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그곳에 머물러 사도 바울의 사역을 돕기로 결정합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던 에바브로디도가 큰 병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일을 하다가 병이 들면 큰 시험이 듭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시험에 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주님이 맡기신 사도 바울을 돕는 일을 계속합니다. 그것을 본 사도 바울과 동역자들, 그리고 빌립보교회도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에바브로디도를 고쳐 달라고 간절히 구하게 됩니다.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에바브로디도를 고쳐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소개해드린 다윗, 요셉, 사울, 다니엘, 에바브로디도는 누군가 타인에 의해 움직여지는 삶의 순간을 갖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이 짧지만 어떤 사람은 몇 년이 걸리는 가운데 타인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는 삶을 삵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도하셔서 그들의 생애를 밝게 비춰주십니다.
그들은 자기가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일을 하게 되는 수동적인 모습이 보여집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구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왕이나 아버지나 자신의 상관 위에 계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삶이 누군가의 밑에 있어서 누군가에 의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다면 여러분들의 삶을 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야망을 갖거나 여러분의 꿈을 갖고 움직이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삶의 열매가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타인에 의해 움직이는 위치에 지금 있다면 명심할 내용이 있습니다.
첫째로, 여러분이 타인에 의해 움직일 수 밖에 없을 지라도 그것에 매여 절망하지 마십시오. 설사 그것이 억지로 행하게 되는 일일지라도 악한 일이 아니라면 여러분들은 그것을 당연히 여러분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믿고 그 일에서 소망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소망을 주시는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 15장 13절을 보면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러분들이 타인에 의해 움직이는 삶을 살아도 하나님은 영원히 그런 삶을 살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 그러면서도 온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타인에 의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여러분들의 그 위치를 높이 들어 이제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자리에 올리실 계획을 가지고 계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도의 근거가 되는 말씀은 바로 앞절인 12절입니다.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이새의 뿌리로 이 세상에 오시게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방을 다스리시기 위해 일어나실 때에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어서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그 날을 소망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방의 소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도 타인에 의해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까지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마음에 일어나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거나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여러분 이 세대의 정함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마시고 항상 여러분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소망을 품고 기도하며 간구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을 보면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하고 계십니다. 이 세대의 문제점은 자기의 마음을 높은 자리에 두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둡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소망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분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가 자기 집에 와서 자기의 형들을 다 제치고 자기에게 왕이 되는 기름을 부었어도 자기 스스로 왕이 될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무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빨리 왕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때와 시기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권을 따랐습니다. 그의 소망은 언제나 하나님께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악기의 연주를 통하여 궁궐로 인도하셨고, 골리앗과의 싸움터로 인도하셨고,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왕을 피하여 광야에 머물게 하셨고, 모압과 블레셋으로도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렀을 때 왕의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주권이 없다고 해서 절망하지 마십시오,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높이 세움을 받아 일하는 여러분 자신을 확인하시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다른 사람에 의해 맡겨진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여러분 자신에게 맡기신 일이라고 믿고 그 일에 충실하십시오. 이것이 성경에 나왔던 타인에 의해 움직였다가 하나님 나라 열매를 맺은 사람들의 공통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종의 자리에 앉히실 수도 있지만 주인의 자리에 앉히실 때도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신하였지만 후에 왕이 되어 신하들을 다스렸고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요셉도 보디발의 종이었지만 후에는 바로왕 다음이 되어 보디발보다 놓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낮추셔서 사람의 몸을 입으셨고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셨지만 결국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으셔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얻으셨습니다. 지금 맡겨진 일이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끼? 그래도 하나님 아버지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존귀한 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셋째로, 항상 하나님이 자신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골로새서 3장 22절을 보면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을 하는 자세는 일을 시키는 사람의 눈치만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마음 속 깊은 곳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마음으로 하나님과 여러분들의 고용주에게 성실하게 섬기면서 일하는 것입니다.
냇째로, 누가 맡긴 일이든지 간에 불의한 일이 아니라면 그 일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간에 심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을 보면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옵니다. 그때 하나님의 공정하신 재판이 열립니다. 그때 여러분들이 마음으로 행했고, 또 마음이 시켜서 행했던 모든 것들이 다 그러납니다. 심지어 여러분들이 사람들로부터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던 것까지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는 책망을 받을 이유도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마음을 가졌고 그 마음을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백성들을 섬겼습니다. 여러분 역시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과연 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는 행동은 하나님께 합한 것이었다.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돌아보십시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까요?
우리는 타의에 의해 일을 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도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셨고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순종하는 아들을 위해 부활로 응답하셨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손에 넘겨져 그들에 의해 움직여질 때 마지못해 억지로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하며 하나님 나라의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충실하게 일을 합니다. 배후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창의력이 생기고 지혜가 솟아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며 찾으시면 그들의 길을 펼쳐 보이십니다. 그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를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뻐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 역시 지켜보며 인도하시다가 때가 이르렀을 때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축복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