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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인애성이라 부르는 인화리 48국도끝자락이 이제 이렇게 교동으로 가는 화살표를~ 교동 연륙교는 공식명칭 ㅡ 교동대교 ㅡ 로 명명 표기되고.
갑오년인 2014.5.21일 임시개통이란 물밑소식은 5.19일 오후 늦게 임시개통 잠정연기란 소식을 보내와 시간이 늦은터라 다음날인 5.20일 참석하신다는 길벗님들께 개별전화넣어 연기라는 소식을 알렸고 그래도 참석하신다해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고
한가로이 모내기 마친 인화리 그 끝자락은 이렇듯 평화의 바다였었다.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강화만 너머 산은 상주해안길이 있는 석모도 상주산 조력댐 건설로 온 산을 몽땅 파 댐을 쌓는 흙으로 쓰겠다는 바로 그 작지만 힘차고도 수려한 명산으로 한때는 교동도 소속이기도 했던 산이다. 송가도
아직 길공사도 다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어찌그리 일찌감치 임시개통을 하려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돌려 생각해보면 그만큼 하루라도 빨리 건너다니고픈 열망이었으리라고... 기실 교동대교는 민통선안으로 난 대교라서 검문과 시간제한문제도 있을것이라 한다.
아침 햇님이 중천에 떠 올랐을 때 바위솔샘 전화 아드님테 갑자기 일이 생겨 불참하게 되었다고 전화를 주셔서 편안히 일 보시라하고 일정대로 8인의 길벗님들 두대의 차로 교동연륙교는 못 건너가도 가 보기는 하자하고 48국도를 달려 닿은 여기는 인애성 ㅡ 마을 주민한분 한참 모내기 바쁘다시며 이양기 손보시다가 기계를 묻는 길벗님들께 이것저것 자상하게 설명중이시다.
그러나 여인들은 꽃옆에서 사진들 찍느라 보이지도 않고 ㅎㅎ 관심사의 차이라고나 할까?
이곳은 97세의 할머니가 살고계신 오래된 민가 장독대가 있는 뜰 안에 터줏가리 둘 양쪽에 가지런히 모셔져 있는데 1년중 첫 정월초하루면 지금도 정한수에 고사떡 올리고 예를 모신다고 68세된 며늘님 인자한 웃음으로 설명해 주시던 집 아무래도 교동에서 시집와 교동대교 개통되면 74세 아드님이 차로 모시고 다녀올것이라 기둘고 있는 사연은 따로 담아 올리기로 하고
햇살은 맑고 시골정경은 참 한가롭기만 ㅡ 그나저나 교동이 인천의 쓰레기를 받는일은 안생기길 ㅡ 내지역은 절대로 안돼라는 이기심이어서가 아니라 뭍에 쓰레기를 버리면 어머니 대지가 오랜시간이 걸리더라도 끝내 다시 건강한 흙으로 되돌려 놓지만 바다근처는 바로 오폐수가 정화되기도 전 바다로 흘러들어 바로 우리들 삶의 터전으로 되돌아올까봐 글구 이북으로 가는 다리가 언제던지 놓이게될 경우의 교동도가 건강하게 있어주길 바라는까닭
필승 ㅡ 흑룡 한마리 .. 어느 님의 작품일까? 길섶에서 만나는 동양의 문화가 참 넉넉하게 다가온다. 다만 필승이란 저 단어가 남북이 아닌 중국이나 일본의 국경을 향한 말이길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옴은 비단 나만의 간절한 바람은 아닐터 ㅡ 가슴이 아릿 저며온다. 내조국 내 형제들이기에
6.25로 분단 전 남북의 배가 수시로 드나들던 강화만 ㅡ 삼남의 조운선이 세곡을 싣고 마포나루로 가기 위해. 국제항이었던 벽란도며 중국으로 가는 사신을 싣고 얼마나 숱하게 많은 배들이 이 곳을 오갔을것이건만 지금은 이렇게 바다는 비어 철조망이 분단의 서러움으로 서있다. 일없는 갈매기들 몇 마리만 쌍으로 나는 오리들이며 백로들.가마우지등등은 무경계로 나는데~~
이곳은 아직 모내기 전 ㅡ 여중 다닐적에 서울사람들 북문에 와서 하는 말이 참 평화롭다더니 문득 그 말이 생각난다. ㅡ 참 평화롭다 평 화 롭 다 ㅡ
철조망 저 멀리 보이는건 교동 고구리 오른쪽 희미하게 보이는 섬은 이북 연백이다.
본시는 비포장길이었는데 4~5년전만해도 심도기행하며 느긋 걷곤 했었는데 연평도사건이후 외려 경계가 더 심해져 이젠 예전처럼 다닐 수 없는 민통선안 아직 풀도 안난걸보니 채 일주일도 안된듯도 싶고 흙길을 한번 더 가야기하고 맘 먹고 있었댔는데 아이구 철조망이며 에구 무시라 하긴 그래서 공사핑계하여 민간인들이 작업을 하는 통에 우덜도 이렇게 .. 이런 희안한 상황이
길은 포장되어 아~ 또 하나의 옛길이 문명을 입었구나 탄식이 절로나는 가운데 마침 병사들이며 철조망외에 경계준비로 작업중이어서 뜻밖에 통과되어 서게 된 여기는 광암돈대와 구등곶돈대 사이
나들길벗님들 모시고는 첫 발자국이 되었으니 인샬라 ㅡ 신의 뜻에 따라서 !!!!!!!!! 바다는 만조 ㅡ 희미하게 보이는 저곳은 연백평야가 자리한 황해도 .. 마치 꿈을 꾸는것만같아
바위솔샘 함께셨더면 참으로 그림같이 담아 기록으로 나들사에 남길텐데.. 참 아쉽아쉽 !!!
군인들이 빙긋 웃으며 봐줘서 넘넘 고마운 가운데 이렇게 첫 발자국 기념사진 인증샷 !!!
송샘 든 과자봉지 이번엔 내가 들고 ... ㅎㅎ 어머나 어머나 연속인 시간 시간들 ㅡ 아찌샘과 솔개님께 특히나 이자리를 빌어 감사올려요.
그것참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히야~~ 그것참 꿈도 꾸지않았댔는데 어찌 이런일이 ...
자네 덕분인가보네그려. 늘 고맙고 이쁜 나들벗 솔개님여 !!!!!!!!
눈으로는 마음으로는 벌써벌써 가 닿은 연백을 바라보고 계시는 길벗님들 ㅡ 별일이다 참으로 별일이로고.
대지에 발 디디고 이곳에 이렇게 나란이 서게 되다니~
온 강화도를 다 돌아쳐도 이렇게 버들잎의 춤을 마주할 수 있는곳은 그리 흔치않다. 더구나 아름드리 나무가 들려주는 연주는 얼마나 황홀한지~
저 곳 이북에서도 이곳 남한땅을 날마다 바라보며 언제나 가나 학수고대할텐데... 국가가 잘 살고 힘이 많아야해 ㅡ 큰 나라들 틈새에 끼여 그렇게도 하나의 조국을 꿈꾼 독립운동지사들의 의견이 물거품되고 나라가 허리다 뎅겅 잘리웠으니~ ~~ 다른나라 탓할게 아니라 우리힘을 길러나가야지. 스스로 지켜내야 할테니까.
계절이 아직 5월중이라 여기저기 찔레꽃향 흐드러져있는데
바다건너 연백에도 지금 이렇게 한국의 야생화들 지천이겠지 ㅡ 보고파라 꽃색이 다른 변이종도 있고 이곳엔 없는 식물들도 얼마나 많을까???
길섶 안 작은 습지엔 이렇게
고기들 떼지어 행복하고 ㅡ 자연의 비경은 먼곳에만 있지않아 우리들 발치 발치에 !!!
한 발자국 비껴 서서 바라만 보아도 역시 멋진 교동대교 언제쯤이면 건널 수 있으려나?
강화도 참 수려하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눈물나게 아름답잖은가. 살아서 이렇게 내 발로 다니고 보고 듣고 말하고 웃고 넘 넘 신기하고 신기하다.
같은 강화도이지만 동막에도 예전엔 이와같이 깊고 그윽했더랬는데 이제는 낯선땅이 되고 인적끊긴 북방한계선이자 남방한계선의 수역이어선가 늘 보아도 늘 깊고 깊고 깊은 고요가 마치 명상에 든 수행자같아 더욱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울 강화도 사랑스런 강화도여 넘 멀지않은 날 연백으로 다리놓여지는 영광있으라 남북하나되어 통한의 세월딛고 역동하는 세계속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길 ㅡ 먼 조상님들 홍익인간 말씀하신 그 성스러운 자리로 우리 다같이 돌아가는 영광있기를 ~~~
그리하여 울 심도기행이며 강화나들길 이곳 민통선안에 병사들의 철조망길 옛 이야기하며 길벗님들 까르르 까르르륵 웃음소리 철조망을 너머 바다로 바다로 철벙 뛰어들길~
이리 보아도 내사랑 ~ 저리 보아도 내사랑~~ 얼쑤 !!!!!!!!
버들잎은 바람타고 연신 길벗님들 반기고
일부 뒤덮이지 않은 자연의 길 신작로에
심도기행 나들배낭도 잠시 길식구 시켜주고 ㅡ 곰돌아 너두 첫발자국이지? ㅎㅎ
지금도 귓가에 팔랑팔랑 버들잎 부딪는 바람의 노래 ㅡ 신을 신고 대문밖 나섬은 언제나 찬란 !!!!!!!!!!
그러나 끝까지 가는일은 허락되지않아 다시 뒤로 빽 대장군인 아저씨 웃으며
"공사중이니 더 가실 수 없습니다. 다시 되돌아 나가시죠." " 옙 " 그누므 빨간글씨 민통선 안을 서성이거나 하다가 월북하려는줄 알수도 있고 간첩으로 오인 사격을 받게되어 생명을 잃을수도 있으니 근접하지 마라는 내고향이 못내 서럽기만.
여전히 지금도 군인들이 상주하며 나라를 철통같이 지키는 중인 이곳은 광암돈대 인화보소속이었던 53개 돈대중 하나 ㅡ 복원된것은 아니지만 아직 원형이 잘 남아있는 상태다. 마을주민조차 지나갈 수 없다는 군인들의 경계구간을 마침 공사중이어서 이렇게 갈 수 있었던 행운
다음부터는 안된다는 이야기에 고갤 숙여 감사하며
다시 한번 ㅡ 오른쪽으로 보이는 돈대가 이경수샘 공부시켜주셨던 구등곶돈대다.
그리고 그 구등곶돈대 밖 바다는 다리목 150여년 교산교회가 있게 된 선상세계가 있었던 바다 아들 이승훈이 어머니를 업고 모셔 선상에서 세례를 받게했다는 교회사에도 의미깊은 바다인데 철조망으로 에궁 무시라.
3년전인지 4년전인지 까리까리한데 저 구등곶돈대 가는 길은 아주 넓은 철조망안쪽으로 신작로가 나 있어 군인들한테 쫓겨날때 나더라도 한번 가보자하고 갔다가 100m터도 못가고 쫓겨났던 기억 나들길 사단법인 나무님이 봄 어린쑥이 너무 좋다시며 쑥을 뜯는 바람에 200m는 더 갈 수도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남북관계가 더 비상인가보다. 경계가 더욱 심해진걸보면 ㅡ 언젠가는 공식 공지내고 갈 수 있는 날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기원하며 다시 뒤로 뒤로 온길을 되돌아
읍내로 다시
교동대교 푯말을 뒤로하고
모두의 의견에 따라 두부 OKK~~ 친정나들이가서 버섯전골에 모두부 노릿노릿 부쳐 먹는것으로 모자라 양푼에 열무 비빔까지 뚝딱 맛나게 먹고 다시 이렇게... 2부는 저녁에
한국의 아름다운 섬 강화도 심도기행 화남길위에서 단기 4347 갑오년 오월 스므여드레 춤추는 꽃길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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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날..........
꿈만 같아~~~
민통선안에서 바라보는 이북과 천년넘은 은행나무.........!
자네 덕분 .. 그 자리 그 순간에 설 수 있었음은
게다가 사전에 임시개통 무산이라 알렸음에도 괘념치않고 찾아와준 맘 감사해 자네 !!!
참,
은행나무 밑 쑥과
민통선 쑥.....
친구들과 쑥개떡만들어 진짜 맛있게 냠냠...........^^
잘하셨네 참 잘하셨구먼
강화도산 쑥 참 향기롭지?
한번 시간 내서 천천 느긋걸음 걷기로 하세나. 자네시간 편안할 때 ~ ^ㅎ^~~
연 초록에 흠뻑 빠져 있는 모습이 예쁩니다. 야춤님
사랑스러버요. 천지간 가득 ~ 한 오월의 바람도 ㅡ 그나저나
바람이 나는것보다 더 좋은 일 무어있을라나?
바람 바람 바람.... 바람 엊저녁 조산평에도 얼마나 신선하게 불던지~
참 할머니 배밭 한번 놀러 오시라니더 할매가 자꾸 물어요 잘들 지내냐구~ ㅎㅎ
@야생의춤 6월4일 야춤님 스케줄이 어떤가요.
준호, 선호 덕정산 보여주고 싶은데.....,
@토순이 OK ~~~ 싱아속 뛰는 선호.준호 나두 보고싶으니..
참 아이들테 보여주고픈 곳 한군데가 더 있다요. 시간 넉넉 넣어오시길~
바위솔님 저희 이렇게 다녀왔어요.
샘 안계셔서 많이 아쉬웠댔는데.. 하도
시절이 별라 무사무탈 별일없으시다니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다음길엔 같이하는 행운이 제게 있기를 ~~~ *^ㅡ^*
아, 습지는 어디쯤일까 인화리 돌아 창후리로 넘어가면서도 못보았네요
님의 거침없는 나들길 사랑에 숨어 지내던 곳곳이 "나 여기있어요"라며 드러내는 것 같구려
앞서간 이들이 한걸음 한걸음 나들길 만들며 고단함 그러나 행복했을 그 마음을
길손들 느끼며 그 걸음마다에도 기쁨의 길 이어지기를
그리하여 강화섬 나뭇잎마다 통통 튀며 노니는 햇살을 만날 수 있기를
햇살 따라 맑은 웃음 주고 받을 수 있기를 바람이지요
이즈음엔 감나무 연한 이파리위로
어찌나 맑은햇살 맘부시게 뛰노는지
덩달아 뛰기도한다는... 마자여 " 나 여기있어요" 어젠 나루재너머길 감사했니더 ^ㅎ^~~
잘 보고 머물러 갑니다
그렇게 멀리 가까이 서로를 바라만 보네요..
오월의 찬란함을 느껴 보면서...
수고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고운시선으로 바라보아 주시니...
귀엽네 꽃을 든 소녀 ㅡ 별아님이시겠지요? !!!
교동대교 때문에 추억 하나 늘었습니다. 지금은 그리 큰 포플라 나무도 흔치 않은데 그곳에는 버티고 있네요
급해도 덜 굳은 아스팔트에 차를 굴릴 수 없어 주변에서 좋은 구경하셨으니 섭섭함 쓸어내리세요.........
섭섭은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땀으로 건설되고
교동주민들의 숙원인 대교를 보는 것만으로고 감사한 일이지요. 이 날도 아주많은 우리이웃들의 아버지들께서
안전모자 쓰시고 땀흘려 분주하게 길을 정리하고 다듬고 대단했더랍니다. 그나저나 강화도엔 언제 들어오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