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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솔과 크레졸
오 종 락
도래솔은 예부터 조상님의 묘소를 수호하는 소나무이며, 크레졸은 내가 근년에 새롭게 임명한 든든한 묘소 지킴이다. 나는 조상님 묘소를 방문할 때마다 도래솔과 크레졸에게 늘 고마움을 표한다.
도래솔은 매서운 찬바람이 부는 겨울철에는 바람을 막아 주고, 무더운 여름철에는 적절히 햇볕을 조절하여 조상님의 묘소를 오롯이 지켜주고 있다. 초가을 벌초 날에는 우리들에게 시원한 그늘과 청량한 솔바람을 제공해 준다. 우린 그 푸근한 도래솔 그늘에서 벌초 중간에 휴식도 취하고 점심밥도 나누어 먹었다. 그럴 땐 도래솔은 생전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품안처럼 포근했다.
해마다 추석명절 두 주전 주말이면 고향 선산 조상님의 묘소를 찾는다. 묘소에 벌초하는 날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묘소에 도착하면 도래솔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푸근하게 맞이 해준다. 이 도래솔은 고향집을 지키고 계시는 든든한 형님의 모습과도 닮았으며, 부대 정문 위병소의 초병처럼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묘소를 지키고 서 있다. 그 모습을 보면 고향 선산 조상님 묘소에 벌초도 소홀히 하는 불효자 보다도 낫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신화시대에 문자를 발명했다는 창힐(蒼頡)이 만들었다고 전하는 송(松)자는 오른편에 공(公)이 붙는데 이는 소나무가 모든 나무의 윗자리에 있는 어른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도래솔은 소나무중에서도 가장 어른 소나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비록 나무이기는 해도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옛 속담에 “도래솔을 함부로 베어내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령스러운 소나무임에 틀림없다.
지난주 일요일이었다. 맑은 가을 날씨에 도래솔의 솔바람까지 솔솔 불어 주었다. 근래 몇 년 중 벌초하기에는 가장 좋은 날씨였다. 우리 부자와 조카 다섯이 아침 일찍 조부모님 묘소 앞에 모였다. 후손으로서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인 벌초를 하기 위해서였다. 벌초 전 첫 번째로 하는 일은, 상석에 술을 한잔 올린 후 조상님께 벌초 허락을 득하는 일이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여 송구하며 금일 좋은 날을 택하여 후손들이 모여 정성껏 벌초를 하겠사오니 아무런 탈 없이 마칠 수 있도록 두루 보살펴 달라며 인사를 올렸다.” 곁들여 “예초기로 묘소에 소음을 일으키게 되어 죄송하니 놀라시지 마시길 바란다.”는 말씀도 올렸다. 예전에는 벌초를 모두 낫으로 한 움큼씩 정성껏 잡초를 베곤 하였는데 지금은 편의상 예초기로 벌초를 하는 것이 못내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묘소 주변을 살펴본 후 벌초를 시작했다. 벌초는 1,2,3단계로 나누어 실시했다. 1단계는 모두가 함께 큰 산소에 벌초를 하고 2,3단계는 팀을 나누어 여기저기에 산재된 묘소에 벌초를 했다.
우리 집 벌초 행사는 다른 집과는 다른 점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멧돼지를 쫒기 위해 “크레졸 병”을 다는 일이다. 멧돼지가 묘소 봉분을 훼손해 놓으면 복원하는데 여러모로 힘들기 때문이다. 예전에 몇 차례 멧돼지에게 피해를 입은 터라 무척 신경을 쓰면서 이 일을 십여 년째 계속해오고 있다.
크레졸 병을 묘소 둘레 가느다란 나뭇가지와 묘소 측면 망두석에 여남은 개를 매달아 놓는다. 매달기 전 노끈으로 크레졸 병목에 노끈을 묶고 굵은 송곳으로 병 윗부분에 네댓 개의 구멍을 뚫어 크레졸 냄새가 바람을 타고 솔솔 흘러나오도록 만든다. 나뭇가지에 묶인 크레졸 병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 때면 계속 흔들리면서 냄새를 풍겨 준다. 크레졸 냄새는 후각이 예민한 멧돼지가 가장 싫어하는 냄새라고 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것 때문인지 크레졸을 단 이후로는 멧돼지가 묘소 근처에 잘 접근하지 않아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래서 벌초도 중요하지만 크레졸 병 다는 일에 많이 신경을 쓰게 되었다. 묘소 보존과 벌초는 제사 지내는 일보다 오히려 더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힘든 노동에다 더 많은 관심과 정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옛날 제주 속담에는 “식게 안 한건 몰라도, 소분 안 한건 놈이 안다.(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은 남이 몰라도, 벌초를 하지 않은 것은 남이 안다.)” 는 말이 있듯이 조상의 묘소를 단정하고 깨끗이 하여 조상을 기리기 위한 후손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세시풍속인 벌초의 중요성을 말해 주고 있다.
크레졸 달기 작업은 일 년에 두 차례 한다. 벌초 때 한번 달아 둔 크레졸의 약효는 가을, 겨울 두 철이 지나면서 거의 사라진다.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새봄이 오면 묘소를 둘러본 후 크레졸을 새것으로 교체해 달면서 새해에도 묘소가 아무런 탈 없이 잘 보존되길 기원한다. 올해도 벌초와 크레졸 다는 일을 모두 마치고 먼발치에서 묘소 주위를 한번 둘러봤다. 가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크레졸 병은 바람결에 흔들거리며 크레졸 냄새 화살을 바람결에 실어 멧돼지를 쏘아 주는 것만 같았다. 크레졸은 도래솔과 함께 묘소를 보호하는 든든한 수호신 역할을 해준다. 나는 그동안 이 크레졸 묘소 지킴이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누가 이토록 든든하게 묘소를 잘 지켜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멧돼지는 천적도 없고 개체수가 자꾸만 늘어가니 걱정이다. 사람과 서로 공존하며 묘소를 지키는 해법은 없을까? 하고 늘 고민한다. 그런데다 일부의 “인간멧돼지(약초꾼)”가 남의 묘소 봉분에 약초(할미꽃뿌리)를 캐가며 봉분을 파헤쳐 놓았다. 멧돼지의 습성을 닮았어 그런지! 원상복원도 해놓지 않은 얄미운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조상님 묘소를 관리하는 데는 방해꾼도 참 많은 것 같다. 첫 번째는 산에 사는 멧돼지요. 두 번째는 약초꾼이요. 세 번째는 벌과 뱀 등이 위협한다. 거기다 두더지는 묘소 주변의 땅속까지 파헤쳐 놓는다. 어느 집안의 묘소 할 것 없이 오늘날 산속에 있는 묘소의 공통적으로 처한 환경으로 후손들의 발길을 더 필요로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후손들의 발길은 갈수록 뜸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큰 산소의 벌초가 끝나고 나면 두 팀으로 나누어 여기 저기에 산재된 묘소로 조카들을 보내어 벌초를 실시했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산에 모셔진 윗대 묘소로 벌초를 떠난 작은 조카의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왱왱…. 하며 바람결을 타고 들려온다. 이제 그 소리도 제법 귀에 익어 낯설지가 않고 정겹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온 산천을 울리는 굉장한 소음으로 들렸는데…. 조상님도 이젠 이 소음에 좀 익숙해지셨는지 모르겠다. 편히 쉬시는 조상님께 결례가 되는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봉분은 최소한 낫으로 벌초를 하려고 하지만 어떤 때는 그 것 마저도 여의찮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더욱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밭 가장자리에 있는 할아버지 묘소에서 예초기로 벌초를 하던 조카가 말벌이 따라 온다며 황급히 도망을 쳤다. 말벌 한 마리가 조카를 따라오다 머리 위로 휭하며 날아갔다. 몹시 위협적인 순간이었다. 뉴스에서만 들었던 말벌을 오늘 우리가 벌초를 하다가 만나다니!…. 몹시 두려웠다. 의논 끝에 스마트폰 GPS를 켜고 119에 연락을 했다. 한참 후 119 구급요원 2명이 출동을 했다. 우리 일행에게 멀리 피하라고 말한 뒤 말벌집을 따서 담은 비닐봉지를 보여주며 남아 있는 말벌에 주의하라고 일러주고 떠났다. 벌집 밖으로 날아 나온 말벌 여남은 마리가 벌집이 있던 주위를 맴돌았다. 비록 미물이지만 사는 집과 생명을 빼앗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공격을 받으니 어쩔 수 없노라고 말하며, 다음 세상에는 해충으로 태어나지 말라고 당부하고 기도해 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힘을 잃은 초가을 매미 우는 소리를 들으며 금년 조상님 묘소 벌초 작업을 모두 마무리했다.
벌초 후 잘 다듬어진 묘소를 보니 아름다운 공원처럼 느껴지며 마음이 뿌듯해졌다. 생전에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으셨던 아버님은 나에게 묘소를 너무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가르쳐 주셨고 소박하고 정성껏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거창하게 장식한 묘소가 후손에게 그렇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하신 말뜻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하지만 다른 집의 잘 단장된 묘소를 보면 훌륭한 그 집 후손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아 부럽기도 했다. 나는 거기에 한참 미치지 못하여 조상님께 늘 송구한 마음이다.
벌초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스마트폰 메모란에 금년 벌초 후기를 간단히 작성해 본다. “시작시간 및 종료시간, 날씨와 기온, 참석자, 역할분담, 느낀 점” 등을 기록하니 큰 공사라도 마친 것처럼 마음이 후련했다.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여 팔다리는 조금 뻐근해도 마음은 뿌듯한 하루였다. 다가오는 추석에는 조상님의 음덕을 많이 입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았다. 도래솔과 크레졸에게 조상님의 묘소를 잘 지켜 달라고 부탁하고 산을 내려오니 마음이 든든하고 기분이 홀가분했다. 이런 모든 기분은 조상님의 묘소에 정성껏 벌초한 사람만이 누리게 되는 특별한 만족감일 것이다.
(2015.09.19)
첫댓글 모두 모여 함께 하는 벌초가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 옵니다. 잘읽었습니다.
이선생님, 공감의 의견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묘소에 크레졸 효과는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을 합니다. 효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네, 단장님! 크레졸 원액을 사용해 본 바, 효과가 괜찮은 것 같습니다. 공감의 말씀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묘소에 크레졸 정보 고맙습니다.많은 피해를 입고 정비한 일이있어 공감이 갑니다.효심이 녹아있는 묘소관리로 많은 음덕이 있을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크레졸 원액을 달아 본 결과, 매우 효과가 좋은 것 같습니다. 공감의 말씀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오랜 연륜인 고향문중산의
도래솔이 그리워집니다.
감사합니다. 불로거사님, 도래솔은 늘 푸근하고 정신적으로 위안을 주는 공간인 것 같습니다.
도래솔과 크레졸. 외국 얘기인 줄 알고읽어 봤더니 벌초 얘기네요, 제목을 잘 정해야 독자가 많다는 얘기가 떠 오릅니다. 내용이 그럴듯 합니다. 제주출신인 내가 타도출신인 오교수께 제주 속담을 배울줄 몰랐습니다. 잘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공감의 의견으로 격려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주속담은 벌초에 관한 특집방송을 듣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 서귀포에서는 예전에 음력8.1일에 '벌초 방학'도 실시한 전통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벌초는 매우 소중한 우리의 전통 문화유산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