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생광
이만익
박생관 회화를 만나다
2000년에 졸업 전시회를 가진 후에 나의 작품세계를 어떻게 꾸려갈까를 두고 고심했습니다. 전통서예로서는 나의 작품세계를 펼쳐내기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기라성같은 작가들이 있는 서예계에서 전통 작품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회의가 찾아왔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림으로, 색을 이용하여, 형상을 단순화하여,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동양화 화가 박생관의 작품을 만났습니다. 박생관은 중앙 화단을 벗어나서 지방 도시 ‘진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화단의 중앙 권력에는 끼어들지 못한 화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역시 지방 도시인 대구에서 활동함으로 서예계의 중앙세력과는 멀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과는 동류 의식도 느껴졌습니다.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그의 작품 세계를 슬쩍 살펴 보겠습니다. 전통적인 동양화에서는 기피하였던 강렬하고, 자극적인 원색을 사용하였습니다. 민화 기법을 도입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미’라는 것이 유행하였을 때 화가들이 민화 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민화에서도 무속화는 잘 다루지 않았습니다. 박생관은 그 무속화를 자기의 작품에 가져 왔습니다. 서예를 전공하고, 서예를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는 내가 주저하였던 이유라면, 서예의 벽을 깰 수 있을까 였습니다. 박생관의 화화는 나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나의 두려움을 어느 정도 씻어 주었습니다.
그때 나는 민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석채를 사용하여 화려하기 이를데 없고, 극도로 양식화되어 있는 전통 민화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던 나는, 무속화를 도입한 박생관에게 매력을 느꼈습니다.
이때 나는 ‘이만익’이라는 서양화 화가의 작품도 만났습니다. 아무래도 그림 그리기는 평소에 내가 공부하는 분야가 아니었으므로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 바른 말일 것입니다. 형태의 단순화는, 그림이 전공이지 않은 나로서는 관심이 끌렸습니다. 단순하게 그린 이만익의 회화가 나의 약점을 보완해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은 조금 답답해 보였습니다.
이제는 내가 나아가고 싶었던 작품세계가 개략적이나마 떠올랐습니다. 색을 도입한 민화 형식의 그림, 형태를 단순화하여 움직임이 없는 형태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어깨를 잡고 뒤로 끌어가는 것은, 나는 전공이 서예이고, 내 작품은 어디까지나 서예을 틀 안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어딘가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었어도, 아직까지 이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은 내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와서 내가 경험하였던, 또 실제로 만들어보기도 했던 분야는 서각과 민화였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서각의 바탕은 글씨입니다. 그리고 민화도 먹과 붓이라는 공통성이 있고, 우리의 정신세계라는 서예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 장르를 하나로 아우러서 작품을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서각은 글자의 형태를 마음껏 비틀어서 조형의 미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림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의미가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한문의 어려운 글씨를 현대인이 읽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형미는 서각에서 구하고, 한문의 내용을 민화 형식의 그림을 통해서 뜻을 담으면 어떨까?
지금 내가 풀어내고 있는 작품세계는 바로 서각, 민화, 서예글씨를 조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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