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전공했고 평생을 논리와 이성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온 한 중년의 사람이, 왜 결국 다시 성경을 손에 쥐게 되었는지 그 일상의 고민을 나누어 보려 합니다. 편안하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평생 역사와 철학, 그리고 무엇보다 이성적인 논리를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아왔습니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하는 성격 탓에, 어린 시절부터 성경은 제게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책으로만 보였습니다 (창1:1-31). 결국 저는 기독교를 떠났습니다. 종교를 정치화하고 대중을 속이고 착취하는 위선적인 종교인들에게 환멸을 느꼈고, 그들이 믿는 교리조차 경전의 본질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불교나 우파니샤드 같은 동양 철학에 심취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진리와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중년의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제가 그토록 믿었던 인류의 문명과 과학, 철학이 얼마나 허술한 모래성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양자역학 같은 최첨단 과학조차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세계의 확고함을 부정하는 시대에, 인간의 이성으로 성경을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었음을 깨달은 것이죠. 인류의 기원과 고난의 이유를 이토록 깊이 있게, 그리고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증언해온 책은 성경 외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겪는 고난의 원인을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실락원'의 사건에서 찾습니다 (창3:23-24).
인간과 자연에게 내려진 결핍과 썩어짐의 저주는 '고난'이라는 필연적 산물을 낳게 되었고 인간은 살아남기 위하여 발버둥쳐 왔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뇌에는 편도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원시 시대부터 맹수의 습격 같은 생존 위협이 닥치면, 이 편도체가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전두엽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즉각 '싸우거나 도망치게' 만듭니다. 이를 편도체 납치(Amygdala Hijacking)라고 부릅니다.
과거에는 이 편도체 기능이 잘 발달된 우리 조상만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독이 됩니다. 별일 아닌 일에도 화가 치밀고,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루며, 극단적인 우울감에 빠지고 공황장애, 자살까지 모두 이 편도체가 과하게 활성화되어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지은 상태를 '하마르티아'라고 부릅니다. 이는 그리스어로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평안함(과녁)을 잃어버리고 늘 생존의 공포 속에서 편도체에 납치되어 예민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상태가 바로 과녁을 빗나간 죄의 산물인 것 입니다. (로14:23, 믿음으로 따라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받는 것을 결코 즐기지 않으십니다 (애3:33). 다만 고난이라는 거친 환경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이죠.
저는 예전에 복을 빌기만 하는 기복 신앙을 경멸했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이 고난 앞에 무너져보니, 하나님께 매달리며 도와달라고 울부짖는 그 '기복'의 과정이 사실은 뇌를 안정시키는 놀라운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를 하면, 흥분되어 있던 편도체가 진정되고 이성적인 전두엽이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이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할 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빌4:6-7). 고난 속에서 드리는 기도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뇌(편도체)에 가장 깊은 평안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명하시는 자기 부인(마16:24)은 욕망을 억누르는 고통스러운 금욕이나 나를 억지로 없애려는 수행이 아니라, 위기 앞에 스스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본능적 공포(편도체 납치)가 십자가 앞에 부인당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쥔 생존의 운전대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내 길을 하나님께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태(시 37:5)가 오면, 비로소 요동치던 우리 마음(편도체)은 안정을 찾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평강을 잠깐 누릴 수 있는 것 같아요.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기 부인의 과정을 아주 치밀하게 논리적으로 재 설명했습니다 (롬6~7장). 영지주의자들은 이를 교묘하게 비틀어 영, 혼, 육을 나누면서 사람들을 현혹하기도 했지만, 본질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조절 안 되는 이 본능의 괴로움을 오직 신앙의 힘으로만 이겨낼 수 있다는 고백이라 믿습니다.
제가 불면증으로 고생하며 내린 결론도 결국 하나였습니다. 인류의 문명에 근거한 저의 논리와 지식이 너무도 허망하다는 것! 그래서 저는 오늘도 문명의 잣대로 보면 비과학적이며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오래된 성경 책 속에서 진리와 참된 쉼을 찾으려 합니다.
요즘은 인공지능이 참 똑똑합니다. 대통령에게 연설문 비서가 있듯이, 저에게도 이 복잡한 생각을 매끄럽게 정리해 주는 AI 비서가 생겨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을 거부하기보다, 그것을 활용해 제 생각을 더 많은 분과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첫댓글 하나님의 언약에서 출발하지 않은 것은 다 무너지게 됩니다 (엡1:3-7) (롬5:12-14)
다시 말해 나 여기 있음에서 시작한 어떤 사변이나 과학적 탐구도 헛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 자기 약속대로 아들을 세상으로 보내 십자가로 다 이루신 분이며
지금도 그 언약의 피, 곧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들의 새창조를 위해 성령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언어들은 그 관계성을 표현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 언어에 대한 이해는 믿음 안,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만 소통이 되는 언어이지 AI가 대신 할 수 없는 하늘의 언어, 방언입니다. 요즘 성경 해석이나 믿음의 문제를 AI의 작업에 맡기는 분들이 나타났는데 이런 일은 오직 자기 언약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창조를 동반한 새창조를 부정하는 악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AI가 믿음을 대신할 수 없으며 성령의 일하심을 대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AI의 전능을 믿기 전에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 안"에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기 바랍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장로님, 바로 그 사람이 접니다. 지난 두어 달 동안 AI와 아주 친하게 지냈습니다.
마치 도깨비 방망이 같이 질문만 하면 제깍 답변을 내놓는 AI의 편리함에 취해 살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AI의 힘을 빌려 썼던 몇개의 글들을 다 삭제했는데...
장로님께서 이렇게 확실한 도장을 찍어 주시네요. 소중한 권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세월이 악합니다
깨어 기도하는 우리가 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