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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피혁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皮革事) 상권
의정(義淨) 한역
박홍배 번역
주호찬 개역
어느 때 박가범(薄伽梵)께서는 실라벌성(室羅筏城)의 서다림(逝多林)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이때 바색가(婆索迦) 마을에는 역군(力軍)이라는 한 장자가 있었다. 재산은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과도 같았으나, 처를 얻은 지 오래되었어도 자식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늘 근심하며 ‘나는 지금 큰 부자로서 진귀한 재물은 많이 가졌다. 그러나 자식이 없으니 하루아침에 내가 죽으면 뒤를 이을 사람이 없으니, 나의 재물은 관(官)에 몰수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친척들이 이 걱정을 듣고 다 함께 와서 위문하였다.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이 걱정을 하면서 사는가?”
장자가 대답하였다.
“나는 자식이 없으니 죽은 뒤 재물이 나라에 몰수될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소.”
여러 친척들이 대답하였다.
“신에게 기도하면 마땅히 자식을 얻을 것이오.”
그는 곧 대답하였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마땅히 아들을 얻기 위하여 기도를 하겠소.”
그는 곧 대자재천(大自在天)과 4대해신(大海神)과 비사문천(毘沙門天)과 제석범왕(帝釋梵王) 등 여러 천신에게 자식 얻기를 기도하였으며, 모든 원림신(園林神)과 광야신(曠野神)과 4구도신(.衢道神)과 수제신(受祭神)과 동생신(同生神)과 동법신(同法神)과 상수신(常隨神) 등에게 자식 얻기를 기도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여러 신들에게 기도하고도 아직 자식이 없는 것을 보고, 다 함께 말하였다.
“만일 천신에게 기도하여 자식을 얻을 수 있다면 세간의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하여 자식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아이들이 온 세상에 가득 찰 것이니, 마치 전륜왕(轉輪王)과도 하등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 가지의 연이 이루어져야 자식을 얻을 수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이른바 부모의 간절한 애욕심이 한 곳에 모아져야 하고, 또 어머니는 매월마다 오는 생리 때에 적합해야 하고, 중유(中有)가 태(胎)에 현전해야 합니다. 즉 이러한 여러 가지 연이 갖추어져야만 바야흐로 자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장자는 자식을 얻기 위한 기도를 쉬지 않고 계속하였다. 뒷날 어느 때에 한 중생[薩埵]이 다른 곳에서의 명(命)이 끝나고 드디어 장자 처의 뱃속에 임신되었다.
지혜 있는 여인이라면 다섯 가지의 일을 잘 알아야 하니,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남자에게 더러운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것이다. 둘째는 시(時)와 절(節)을 아는 일이다. 셋째는 임신을 한 것을 아는 일이다. 넷째는 어느 남자로부터 임신하였는가를 아는 것이다. 다섯째는 태속의 아이가 여자 아이인지 남자 아이인지를 아는 것인데, 만일 남자 아이일 때는 태가 오른쪽에 있고 여자 아이일 때는 태가 왼쪽에 있다.
그 장자의 처는 임신을 하고 나서 매우 기뻐하여 남편에게 말하였다.
“그대여,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나에게 자식이 생겼습니다. 지금 오른쪽에 있으니, 이는 반드시 아들일 것입니다.”
장자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오른손을 들고 위를 쳐다보며 미소를 띠고 이런 말을 하였다.
“나는 많은 시간을 천신에게 기도하여 자식을 얻으려고 노력하였소. 이 아이가 태어나거든 나의 가사를 돕고, 나를 대신하여 힘쓰고, 내가 미치지 못하는 바는 마땅히 나를 위하여 자손이 오래 번창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내가 만일 죽게 되면 나를 위해 추모하며 복을 빌어주게 하되,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의 아버지가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하여주소서’라고 기원하도록 하여주시오.”
장자는 자식이 있음을 알고 나서는 아내를 높은 집에 머무르게 하고 마음대로 노닐게 하였으며, 추울 때는 따뜻하게 하고 더울 때는 서늘하게 하였으며, 음식을 먹을 때가 되면 마땅히 음식을 공급했으며, 6시(時)로 돌봐 줄 사람을 때에 따라 배치하기를 모두 법에 따라 하였다. 몸을 장엄한 영락들은 하나같이 환희원(歡喜園)에서 노니는 천녀들의 것과 같았고, 침상을 크게 마련하여 그 넓은 침상 위에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하였으며, 발로는 땅을 밟지 않게 준비하였고, 또한 나쁜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였다.
열 달이 꽉 차 태어날 때에 이르러, 문성(聞星) 아래에 있을 때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생김새가 단정하여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였다. 귀에는 보배로 된 귀걸이가 달려있었는데, 구슬은 자연히 생겨난 것이었다.
그 아버지는 아랫사람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보배를 식별하는 사람을 불러오라.”
보배를 식별하는 사람이 도착하자, 아버지는 말하였다.
“이 보배의 가치가 얼마나 되겠소?”
그가 대답하였다
“능히 가치를 따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가치를 따질 수가 없는 보배로서, 모두 1구지(俱胝:1억 정도)의 돈에 해당합니다.”
이때 그 아들이 태어난 지 이미 삼칠일이 지나자, 여러 친척들을 모아놓고 이름을 지었다.
이때 친척들이 서로 의논하여 말하였다.
“어떤 이름을 지어주면 좋을까?”
이 아이는 문성(聞星) 중에서 태어났으며, 또 보배 같은 귀에는 보배 구슬이 귀를 장엄하였으며, 그 보배의 가치는 구지(俱胝)에 해당한다. 이런 일이 있으니, 아이의 이름을 문구지이(聞俱胝耳)라고 짓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아이가 태어나던 날 장자의 집에서는 하인이 두 아이를 낳았다. 그 첫째 아이는 이름이 노(奴)였고, 둘째 아이는 옹호(擁護)였다.
장자는 곧 자신의 아들을 젖으로 양육하도록 하여 여덟 명의 유모를 두어 보살피게 하였다. 유모 중에 둘은 늘 아이를 안고 있었으며, 둘은 늘 우유를 먹였고, 둘은 목욕을 시키고, 둘은 늘 함께 즐겁게 놀았다.
이 여덟 명의 유모는 밤낮으로 장자의 아들을 받들면서 늘 우유와 소락(酥酪)과 제호(醍醐)와 가장 맛좋은 음식을 먹였으니, 연꽃이 물에 있는 것과 같이 속히 장대해졌다.
아이가 장성하자 학예를 가르쳤는데 먼저 문자를 배우고, 산수를 가르치며, 물가(物價)를 알게 하고, 의복을 구별하고, 나무를 구별하며, 보배를 구별하고, 코끼리를 구별하며,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등 이런 여덟 종류를 가르쳤는데 모두 분명하게 알았다.
그 아버지는 또 세 종류의 집을 지었는데, 이른바 겨울ㆍ여름ㆍ 가을에 살 집이었다. 또 세 종류의 동산과 세 종류의 궁전을 상ㆍ중ㆍ하로 구분하여 지었다. 문구지이는 여러 여자들과 함께 가서 누각 위에서 놀곤 하였다.
역군(力軍) 장자는 집안일도 손수 경영하였고, 농사를 다 자기 스스로 경작하였다. 아들은 아버지가 손수 농업을 경작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손수 경작을 하십니까?”
장자는 말하였다.
“나도 지난날 너처럼 누각 위에서 즐겁게 노닐 때가 있었다만, 그 즐거움이 오래가지 않고 곧 다 없어지더라.”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만일 그렇다면 마땅히 재산을 처분하여 나누어주십시오. 제가 응당 바다에 들어가서 보배를 캐오겠습니다.”
아버지가 말하였다.
“사람들이 먹는 마미오곡(麻米五穀)과 네가 먹는 보배로운 음식을 내가 능히 다 조달하더라도 나의 재물은 끝내 줄어들지 않을 것인데, 너는 무엇 때문에 바다에 들어가려고 하느냐?”
아들은 다시 세 번 청하여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원컨대 재물을 처분하여 나누어 주시고, 제가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아버지는 아들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들이 다시 말하였다.
“제가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아버지는 아들이 반드시 뜻을 굽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곧 놓아 떠나게 했다.
이때 장자는 마을에 나가 종을 흔들면서 말하였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이여, 나의 아들이 지금 바다에 들어가 보배를 캐고자 한다는 것을 들었는가? 만일 함께 떠나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육지의 관세와 수로세(水路稅) 등을 부과하지 않아도 되니, 마땅히 자기가 스스로 재물을 준비하라.”
이때 5백 명의 상인이 각자 쌀과 식량을 준비하였다.
이때 바라선(婆羅仙) 장자는 5백 명의 상인을 청하여 집에다 음식을 차려놓고 여러 상인에게 말하였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은 또한 그대들의 아들과도 같으니, 만일 좋지 않고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한다면 마땅히 권하고 간(諫)하여 아들로 하여금 악한 짓을 하지 말도록 해주시오.”
이때 여러 상인은 모두 공경히 승낙하였다. 그리고 또 아들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의 말을 잘 받들어 지킬 것이며, 만일 상인의 가르침이 있거든 또한 나의 말처럼 여기도록 하여라. 또한 앞서 가지도 말고 뒤에 따라가지도 말아라. 어째서 그런가? 혹은 힘이 센 도적도 있고 힘이 약한 도적도 있는데 힘이 센 도적은 상인의 앞에서 오고, 힘이 약한 도적은 뒤에서 오기 때문이다. 만일 상주(商主)가 파산하면 모든 상인이 손해를 보게 된다.”
아들이 아버지가 하시는 말을 다 듣자, 아버지는 또 그 집에서 태어난 두 종을 불러서 말하였다.
“너희들은 나의 말을 잘 들어라. 너희 두 사람은 한 사람이라도 아들의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
두 종이 말하였다.
“진실로 성인의 말씀과 같이 하겠습니다. 참으로 성인의 말씀과 같이 하겠습니다.”
그 장자는 다시 생각하였다.
‘내 아들을 무엇에 태워 보낼까? 만일 코끼리나 말에 태워 보내면 코끼리와 말의 먹이가 많이 들 것이니 마땅히 나귀에 태워 보내야겠다. 그렇게 하면 먹이가 줄어들 것이다.’
생각을 마치고 그는 나귀를 준비하여 거기에 태워 떠나게 하였는데, 필요한 것은 모두 구비하였다.
그 장자의 아들은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가서 말하였다.
“어머니, 저는 지금 바다에 들어가서 보배를 캐오겠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연민의 정으로 슬피 울며 떠나지 못하게 권하면서 말하였다.
“너를 어느 때 다시 볼 수 있겠느냐?”
아들은 성이 난 까닭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악취(惡趣) 중에서 서로 만나겠지요.”
어머니가 아들의 말에 대답하였다.
“네가 지금 한 그 말은 매우 거칠고 선하지 않으니, 마땅히 잘못을 뉘우쳐 죄를 감소시켜라.”
그러자 아들은 곧 어머니 앞에서 잘못을 뉘우쳤고, 잘못을 뉘우치고 난 뒤에 나귀를 타고 그곳을 떠났다.
이때 여러 바라문들은 길상(吉祥)을 지어 주원(呪願)을 하였고, 필요한 물건을 싣고 기다리던 사람도 모두 가지고 떠났다. 그들은 점점 유행하여 수많은 마을과 성과 읍을 지나서 바야흐로 큰 바다에 이르렀다.
곧 5백 명의 상인도 함께 5백의 금전을 가지고 배와 다섯 사람의 뱃사람을 고용하였다. 그 중에 한 사람은 키를 잡고, 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맡고, 한 사람은 뒤로 물러나는 일을 맡았으며, 한 사람은 배를 수리하는 것을 맡았으며, 한 사람은 물의 깊이를 재는 일을 맡았는데, 이미 의복을 갖추어 입고 난 뒤에 두 번 세 번 기원하였다.
이때 상주(商主)인 장자의 아들은 북을 치면서 바다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선포하였다.
배는 이미 떠나 곧 보배가 있는 곳에 이르렀고 보물을 많이 채취하여 무사히 돌아와 해안에 도착하였다.
그때 상주인 장자의 아들은 따로 한쪽 여울 가에 있으면서, 두 종과 함께 가지고 온 물건들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 장자의 아들이 종에게 말했다.
“타색가(馱索迦)야, 너는 가서 여러 상인들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아라.”
종이 급히 가서 보니 상인들이 전부 잠을 자고 있었기에, 종도 곧 잠을 잤다. 그 장자의 아들은 나중에 옹호(擁護)에게 상인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서 살펴보라고 명령하였다.
그때 파락가(波洛迦)는 모든 상인들이 다 짐을 챙겨서 떠나려 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타색가가 말하기를 “파락가여, 보고하라”고 하였다.
파락가가 다시 말하기를 “타색가여, 저 상주에게 보고하라”고 하였다. 이때 두 종은 마침내 상인을 따라 떠났다.
날이 밝아 두 종이 이미 보이지 않자, 장자의 아들은 동서로 뛰어다니면서 찾았다.
여러 상인들이 말하기를 “장자의 아들은 지금 어느 곳에 있느냐?”고 하니, 혹은 앞에 갔다고 하고 혹은 뒤에 올 것이라는 등 여러 가지로 대답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으니 여러 상인들이 각기 서로 말하였다.
“우리들이 상주를 버리는 것은 참으로 도리가 아니니 급히 가서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때 여러 상인들이 말하였다.
“이 길은 매우 험하다. 이 길에서 상주를 찾다가는 우리들도 다 죽고 말 것이며 결국 상주도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니, 우리들은 다 함께 방편을 써야 한다. 만일 집에 도작하여 상주의 아버지가 상주를 묻기를 앞에 있는 자에게 물으면 상주는 뒤에 있다고 대답하고, 만일 뒤에 있는 자에게 물으면 상주는 앞에 있다고 말하자. 그리하여 상주를 잃어버렸다고 말하지 말자.”
이런 말을 하고서는 드디어 본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 장자는 여러 상인들이 도착하였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앞으로 가서 여러 상인들에게 물었다.
“나의 아들은 어디에 있는가?”
앞에 있던 자들은 “뒤에 있다”고 대답하였고, 뒤에 있던 사람들은 “앞에 먼저 갔다”고 대답하였다.
그 바라선 장자는 다시 생각하였다.
‘이 사람들은 지금 나를 속이고 있다. 나의 아들은 응당 죽었거나 잃어버린 것이리라.’
이때 장자는 희망의 마음이 없어지고 큰 고뇌가 생겼고, 친척들도 모두 모여 함께 슬피 울었으며, 여러 사람들도 장자의 집으로 가서 소리 높여 울었다. 그 장자와 부인은 너무 많이 울어 둘 다 눈이 멀었으며, 사방 먼 곳의 여러 사람들도 다 장자의 아들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알게 되었다.
그 바라선 장자는 상복을 입고서 아들이 살아 있을 때 사용했던 신발과 의복과 문서 및 모든 도구를 모두 마을의 성스런 사당에 주고서 곧 서원하였다.
‘만일 나의 아들이 살아 있으면 그가 있는 곳에 편안하게 속히 전달하여 주시고, 만일 이미 죽었다면 원컨대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하옵소서.’
그 장자의 아들은 잠을 자다가 햇살이 몸에 비치자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바람에 모래가 날려 길이 보이지 않고 상인들이 어느 곳으로 갔는지도 알 수 없게 되자 곧 나귀를 타고 떠났다. 나귀는 이 길이 옛길이 아님을 알고 천천히 갔다. 그 장자의 아들은 나귀가 천천히 걸어가자 회초리로 때렸고 나귀는 회초리를 맞아 지쳐서 곧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장자의 아들은 다시 생각하였다.
‘누가 차마 이 괴로운 일을 당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없이 이 나귀를 때리겠는가?’ 하고는 곧 그 자신은 걸어갔다.
장자의 아들은 나귀를 몰고 가다가 쇠로 된 한 성(城)을 보았다.
그 성은 매우 넓고 담벼락도 매우 높으며 그 안도 매우 넓었다. 성문이 있는 곳에 다다라 한 장부를 보았다. 그는 몸이 장대하고 피부색은 검고 눈은 붉은색이며 온몸에는 털이 나 있었고 배가 많이 나와 있었다. 그 생김새가 매우 무서웠으며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이때 장자의 아들이 그 사람에게 물었다.
“장부시여, 이 성 안에 물이 있습니까?”
그는 묵묵히 있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장자의 아들은 이렇게 묻고 나서 갈증이 심하여 곧 성 안으로 들어가 동서로 헤매면서 물을 찾았다. 그러나 마실 물을 끝내 찾지 못하였다. 물을 얻지 못하자 드디어 큰 소리로 ‘물, 물’ 하고 외쳐댔다.
그때 5백 명의 아귀(餓鬼)들이 일시에 왔는데 불타는 나무 기둥과 같았고 머리가 온몸을 덮고 있었다. 목구멍은 바늘구멍과 같았고 배는 큰 산과 같았고, 온몸 마디마디에서 불이 나와 활활 타올랐다.
그 아귀는 상주(商主)에게 말하였다.
“그대여, 대자비심으로 우리에게 마실 물을 주시오. 우리들은 갈증이 심합니다.”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나도 갈증이 심해서 물을 구하기 위하여 이 성 안으로 들어왔소.”
아귀가 대답하였다.
“이곳은 아귀의 성인데, 어느 곳에서 물을 구하겠소? 12년 동안 우리들은 물이라는 이름도 듣지 못하였소.”
장자의 아들이 물었다.
“무슨 죄업을 지었기에 이 성 안에 태어났는가?”
아귀가 대답하였다.
“섬부주(贍部洲) 사람들은 흔히 믿으려 하지 않으니,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을 하여도 그대 역시 믿지 않을 것이오.”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내가 지금 증거를 대하여 마주 보고 있는데, 어찌 믿지 않겠소?”
이때 아귀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일찍이 욕설을 하고 성을 내며
재물을 아껴 남에게 주지도 않았다오.
또한 보시도 한 적이 없으니
이런 업을 인연하여 아귀로 태어났다오.
이때 장자의 아들은 번뇌를 떠날 마음이 생겨, 곧 성을 나와서 성문에 있던 그 장부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나에게 이곳을 아귀의 성이라고 말하였으면 나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오.”
장부가 대답하였다.
“상주여, 그대는 아귀의 성에 들어가서 보고 듣고 다시 성을 나올 수 있지 않았소? 그대에게는 대복(大福)과 위덕(威德)이 있기 때문에 지금 성을 다시 나온 것이니 잘 가시오, 잘 가시오.”
이때 장자의 아들은 곧 걸어서 날이 저물 무렵 화천궁(化天宮)이 보이는 곳까지 왔다. 그곳에서는 한 사람의 천자(天子)와 네 명의 천녀(天女)가 환락을 즐기며 천궁에서 놀고 있었다.
그 천자는 멀리서 장자의 아들을 보고 말하였다.
“상주여, 안녕하시오? 그대는 목이 마르지 아니한가?”
그가 대답하였다.
“갈증이 매우 심합니다.”
이때 천자는 상주로 하여금 목욕을 하게하고 맛좋은 음식을 주었으며 하룻밤을 편히 쉬게 하였다.
날이 밝아 해가 뜰 무렵이 되자, 그 궁은 변하였다. 전의 네 명의 천녀는 검은 개로 변하여 천자를 잡아 얼굴을 가리고 뜨거운 철상(鐵床)위에 엎드려 놓고 사나운 불꽃이 별이 흐르듯 빨리 지나가며 개들은 그 등의 살을 먹었다.
다시 날이 저물고 해가 질 무렵이 되자, 그곳은 천궁으로 변하였으며 개는 천녀로 변하였다. 장자의 아들은 이 일을 눈으로 보고 괴이하게 생각하여 곧 그 천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업을 지었기에 지금 이곳에 태어났습니까?”
이때 천자가 대답하였다.
“상주여, 남섬부주(南贍部洲)의 사람들은 흔히 믿으려고 하지 않소.”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내가 지금 증거를 보았는데,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그때 천자는 지난날 업의 인연을 게송으로 답하였다.
전생의 나는 낮에는 다른 생명을 죽이고
밤이면 계율을 지키며 수행에 힘썼다오.
이러한 인연으로 여기에 태어나
이 같은 선악의 과보를 받는다오.
이때 장자의 아들은 이 게송을 듣고 말하였다.
“게송에는 무슨 뜻이 있습니까?”
천자가 대답하였다.
“상주여, 나는 지나날 바색촌(婆索村)에 있으면서 백정이 되어 늘 양을 죽였고, 그 고기를 팔아 내 몸을 양육하였소. 그때 성자인 가다연나(迦多演那)라는 필추가 있어서 그는 나에게 참회를 권유하면서 이 업을 짓지 말라고 하였소. 그러나 나는 그 직업을 끝낼 기약이 없어 그런 권유를 받고 나서도 직업을 그만둘 수 없었소. 이때 성자가 다시 나에게 권하기를 밤으로는 계율을 지키라고 하기에 나는 그의 가르침을 따랐소. 이 업으로 인하며 지금 낮에는 고통을 받고, 밤에는 계율을 지켰기 때문에 밤에 이러한 쾌락의 과보를 받는 것이오.
상주여, 만일 그 마을에 가서 나의 자식을 보거든 나를 위하여 말하기를, ‘나는 너의 아버지가 매우 고통스런 과보를 받는 것을 보았으니, 너희들은 지금 참회하여 그 직업을 그만 두어라’라고 말해주시오.”
이때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당신은 지금 남섬부주의 사람들은 교화하기 어렵고 믿게 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천자가 대답하였다.
“한 번 믿도록 하기 위하여 내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시오. ‘양을 죽이는 곳의 지하에 금이 든 병 하나가 있으니, 파내어 쓴다면 자연히 쾌락을 누릴 것이다. 또한 마땅히 때때로 성자인 가다연나께 공양을 하라. 이 사람은 인천(人天)의 복밭[福田]으로서 공양할 사람이니라. 보시를 할 때에는 내 이름을 부르면서 ≺원컨대 죄를 소멸하여 주소서≻하고 말해 달라’고 일러주시오.”
이때 상주는 이 말을 듣고 나서 점차 앞으로 나아가다가 다시 천궁을 보았다. 그곳에는 한 천자가 여러 천녀들과 함께 즐겁게 놀고 있었다.
천자가 멀리서 장자의 아들을 보고 말하였다.
“상주여, 안녕하시오? 그대는 목이 마르지 않은가?”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나에게는 굶주림과 갈증이 있습니다.”
천자는 곧 목욕을 시키고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 주고서 편안히 쉬게 하였다.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천궁이 다시 변하더니, 천녀는 큰 뱀이 되어 천자의 몸을 동여감고 빙빙 돌면서 천자의 뇌수(腦髓)를 먹었다.
해가 뜰 무렵이 되자 다시 천궁이 복원되고 천자와 천녀의 모습이 되었다.
그 상주는 괴이하여 천자에게 물었다.
“일찍이 무슨 업을 지었기에 여기에 태어났습니까?”
천자가 대답하였다.
“남섬부주의 사람들은 교화하기도 어렵고 믿게 하기도 어려우니, 나는 말할 수가 없소.”
이때 장자의 아들이 대답하였다.
“내 눈으로 직접 보았는데,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이때 천자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밤이면 여자와 함께 잠을 자고
낮에는 계율[尸羅]을 지켰네.
이 업과를 인연으로
이 선과 악의 과보를 받네.
이때 장자의 아들이 물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천자가 대답하였다.
“나는 전생에 바색바(婆索婆)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항상 음욕을 행하여 다른 부녀자들과 간통을 하였소. 뒷날 성자인 가다연나를 만났는데, 그는 나에게 그릇된 법으로 악업을 짓는 것을 뉘우칠 것을 권유하였는데도 나는 그 일을 그만두지 못하였소. 그러자 성자가 다시 말하기를 ‘그대가 정 그만두지 못하겠다면, 낮에는 계율을 지키고 밤에는 다시 그릇된 행을 하시오’라고 하였소. 이로 인하여 낮에는 하늘의 쾌락을 받고, 밤이면 고통의 과보를 받고 있소.
착한 장자의 아들이여 마을에 가게 되면 나의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니 원컨대 이렇게 말하여 주오. ‘내가 너의 아버지를 만났는데 이런 말을 하더라. ≺나는 전생에 일찍이 다른 여자들과 간통한 업을 지어 지옥고를 받고 있다≻’고 말이오.”
이때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남섬부주의 사람들은 교화도 어렵고 믿게 하기도 어렵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천자가 대답하였다.
“만일 믿지 않거든 말하기를, ‘내가 살아있을 때 하늘에 제사하던 화로의 땅 밑에 금이 든 병이 두 개 있을 터이니, 그것을 파내면 쾌락을 받을 것이다. 또한 때때로 인천(人天)이 받드는 대가다연나 존자에게 공양을 하되, 큰 서원을 발하여 내 이름을 부르면서 죄가 소멸되어 선취(善趣)에 태어나도록 기도하라’고 일러 주시오.”
이때 장자의 아들은 이 말을 듣고, 그곳을 떠나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다시 동산이 보였다. 그 가운데에는 사자좌(師子座)가 있었으며 그 의자 위에는 한 부인이 앉아 있었는데, 용모가 수려하여 사람들이 기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의자의 네 다리 밑에는 각각 아귀가 하나씩 의자에 매어 있었다.
이때 이 부인은 멀리서 장자의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상주여, 안녕하시오? 그대는 목이 마르지 아니한가?”
그가 대답하였다.
“나는 갈증이 매우 심합니다.”
이때 부인은 장자의 아들에게 말하였다.
“그대에게 마실 것을 줄 것이니, 그대는 지금 받은 마실 것을 이 네 아귀에게는 주지 않겠다고 맹세하시오.”
장자가 대답하였다.
“공경히 말한 대로 따르겠습니다.”
마실 것과 맛좋은 음식을 베풀고 나서 그 부인은 아귀의 업보에 내한 일을 나타내 보이고자 곧 어느 방으로 들어가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여러 아귀들이 곧 장자의 아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큰 자비심으로 바라건대 음식을 조금만 주십시오.”
그 장자의 아들이 가련한 생각이 나서 곧 먹을 것을 던져주었다. 그런데 첫째 아귀가 음식을 먹으려 하자 그 음식은 뜨겁게 타는 쇠뭉치로 변하였고, 둘째 아귀가 음식을 먹으려 하자 밀기울로 변하였으며, 셋째 아귀가 음식을 먹으려 하자 더러운 피고름으로 변하였고, 넷째 아귀가 음식을 먹으려 하자 오히려 자신의 고기와 피를 먹는 것이었다.
이때 뜨거운 쇠뭉치를 삼킨 아귀의 몸이 활활 타서 더러운 냄새가 났다. 부인이 냄새를 맡고 큰 소리로 장자의 아들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한 일은 매우 도리에 어긋납니다. 그들에게 음식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장자의 아들이 대답하였다.
“부인이시여, 그들이 나에게 먹을 것을 요구할 때 자비심이 일어났습니다. 어찌 주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때 부인이 말하였다.
“(그들에게 음식을 주지 않는) 나의 자비심이 오히려 그대보다 클 것입니다. 첫째 아귀는 나의 남편이고, 둘째 아귀는 나의 아들이고, 셋째 아귀는 며느리이고, 넷째 아귀는 우리 집 종입니다.”
이때 장자의 아들이 물었다.
“일찍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곳에 태어났습니까?”
부인이 말하였다.
“남섬부주의 사람들은 교화하기도 어렵고 믿게 하기도 어려우니 말을 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소?”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내가 눈으로 직접 보았는데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이때 부인이 말하였다.
“나는 전생에 바색바 마을에 살았는데, 일찍이 바라문의 딸이었습니다. 세성절일(歲星節日)에 집에서 음식을 차려놓았는데, 이때 인천(人天)이 받드는 성자 가다연나가 와서 밥을 빌었습니다. 나는 기뻐서 발우에 가득 음식을 주고 생각하기를, ‘나는 남편에게 이 일을 말하여 음식을 베푼 이 인연을 그도 따라 기뻐하게 해야겠다’라고 하고서 그 일을 말하였더니 남편은 성을 내면서 나에게 말하였소.
‘아직 바라문들에게도 공양하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대머리 스님에게 먼저 밥을 주었는가? 어찌하여 뜨거운 쇠뭉치를 주지 아니하였는가?’
나는 이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 다시 아들에게 권하였더니 아들이 대답하기를, ‘어찌 밀기울을 먹이지 아니하였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뒷날 내가 종을 시켜서 여러 친지에게 밥을 보내게 했더니, 그 종은 길바닥에서 맛있는 밥과 음식을 제가 먹고는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물었더니 그 종은 곧 그 일을 감추면서 말하기를, ‘내가 만일 길바닥에서 그 음식을 먹었다면, 나는 마땅히 내 몸의 피고름을 먹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뒷날 또 여러 친지가 음식을 보내온 것을 며느리가 훔쳐 먹었습니다. 내가 또 그 일을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만일 내가 그 음식을 먹었다면 스스로 내 살을 먹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부인은 다시 말하였다.
“상주여, 이 남편과 아들과 며느리와 종이 이 아귀들이니, 자기 스스로 지은 업으로 인하여 아귀가 된 것입니다. 나는 성자 가다연나에게 한 번 밥을 보시한 것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만일 과보를 받는다면, 저는 마땅히 지켜보겠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우선 인천이 받드는 가나연나에게 보시를 하였기 때문에 마땅히 제석천궁(帝釋天宮)에 태어났으나, 악한 발원으로 인하여 지금 아귀도에 떨어져 있습니다.
상주여, 그대가 만일 바색바 촌락에 가게 되면, 나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그 촌락에서 음녀(淫女)가 되어 있으니, 원컨대 이 말을 좀 전해주십시오. 즉 ‘너의 부모와 오빠 및 올케와 종이 아귀도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다. 이는 전생에 악을 지었기 때문에 지금 그 고통을 받는 것이다. 너는 지금 마땅히 잘못을 참회하여 이 같은 죄업으로 고통의 업보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라고 말입니다.”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남섬부주의 사람들은 흔히 믿게 하기 어려우니,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부인이 상주에게 말하였다.
“그 아이가 만약 믿지 않거든 이렇게 말하여 주시오. ‘내가 지난날 잠자던 침상 밑에는 금병이 네 개가 있고 아울러 금 지팡이와 금 주전자가 있으니, 너는 그 금병을 찾아내어 마음대로 써라. 또한 때때로 인천(人天)이 공경하고 있는 가다연나 존자에게 맛좋은 음식을 공양하고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나로 하여금 복을 얻게 하여, 어머니의 죄가 가벼워지도록 하여 주십시오≻라고 하라’고 전하여 주시오.”
그때 장자의 아들은 이 말을 듣고 난 뒤에 곧 작별의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이때 여러 귀신들이 서로 말하였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이 장자의 아들이 정말로 잠이 들면 바색바 마을에서 보내 온 물건을 가지고 와서 이 영상(靈床) 위에 놓아두자.”
이때 여러 아귀들은 말대로 보내온 물건들을 침상 위에 놓았다.
이때 상주는 날이 밝고 해가 뜰 무렵에 곧 잠에서 깨어 여러 상과 작은 상과 신발 등의 물건을 보았고, 모든 물건 위에 이름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을 차례로 읽어 보니 ‘내가 지금 베푸는 이 물건으로 원컨대 아들이 하루 빨리 돌아오게 하소서. 만일 죽었다면 그 태어나는 곳에 따라 이 모든 물건들도 다 함께 따라가게 하소서’라고 쓰여 있었다.
장자의 아들이 이것을 보고 곧 생각하기를, ‘나의 부모는 내가 이미 죽은 줄 알고 있으니 어찌 다시 가겠는가? 마땅히 성자 가다연나가 있는 곳으로 가서 출가하여 범행을 닦아야겠다’ 하고서 곧 가다연나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때 구수 가다연나는 멀리서 장자의 아들이 오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잘 왔습니다. 상주여, 그대는 지금 이러한 생사(生死)의 잘못을 보았는가?”
성자에게 말했다.
“성자여, 저는 지금 이미 보았습니다.”
다시 말했다.
“원컨대 출가하여 성자를 받들어 모시며 탐욕의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끊고 청정한 범행을 닦는 것을 허락하여 주소서.”
이때 구수 가다연나가 말하였다.
“그대는 먼저 저들의 말을 전한 연후에 와서 출가를 하여라.”
상주가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성자의 말을 듣고 곧 저 마을의 양을 죽인 곳으로 가서 그 사람을 만나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모를 것이오. 나는 악취(惡趣) 속에서 일찍이 그대의 아버지를 보았소. 그가 말하기를, ‘너는 이 양을 죽이는 악업과 그릇된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였소.”
그가 곧 대답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이미 죽은 지 12년이 지났는데, 어찌 다른 생의 일을 전하여 믿으라고 하는가? 그대는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서 스스로 보았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상주가 대답하였다.
“나는 악취 중에서 왔소. 만일 믿지 않는다면 그대의 아버지가 말하기를, ‘네가 양을 죽이는 곳의 지하에 금 병이 하나 있으니 그 금을 파내어 장차 쓸 것이며, 아울러 때때로 성자 가다연나에게 먹을 것을 공양하고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원컨대 죄업이 소멸되게 하여 주소서≻라고 말하라’고 하였소.”
그리하여 이 백정의 자식이 곧 땅 밑을 파고 드디어 금병을 캐내고는 이에 증험을 알게 되었다.
이때 장자의 아들은 또, 음욕을 행하며 게으르게 산다는 그 아들을 찾아가서 말하였다.
“나는 그대의 아버지를 보았소. 그대의 아버지는 말하기를, ‘내가 지은 업의 과보가 성숙하여 현재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였소.”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죽은 지 12년이 지났는데, 어찌 다른 생으로부터 다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서 스스로 보았다고 하는가?”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나는 아귀의 세상으로부터 왔으며 이 일을 모두 보았소. 만일 믿지 않는다면 그대의 아버지가 말하기를, ‘네가 일하는 데 가면 화로 밑에 금 병이 두 개가 있으니 너는 이것을 파내어 쓰도록 하고, 그 일부분은 때때로 성자 가다연나에게 한 덩이의 음식을 공양하고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원컨대 죄업이 소멸되게 하여 주소서≻라고 말하라’고 하였소.”
아들이 곧 땅을 팠고 거기에서 나온 금 병을 보고는 비로소 증거가 나타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장자의 아들은 다시 음녀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말하였다.
“그대는 마땅히 아시오. 내가 악취(惡趣)에서 그대의 부모와 오빠와 올케와 종을 보았는데, 그대에게 알리게 하기를 ‘속히 지난날의 악업을 참회하라고 전해 달라’고 하였소.”
여인이 상주에게 대답하였다.
“그들이 함께 죽은 지 지금 12년이 지났는데, 누가 다시 그들을 보았단 말입니까, 그대는 어디에서 온 사람인가?”
상주가 대답하였다.
“나는 지옥에서 왔소. 만일 믿지 못하겠다면 그대의 부모가 말하기를, ‘내가 잠자던 침상의 네 다리 밑에 각각 하나씩의 금 병이 있으며 그 속에 아울러 금 지팡이와 금 주전자도 있으니 너는 이것을 파내어 기쁘게 갖고, 때때로 인천이 받드는 성자 가다연나에게 공양하며 마땅히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나의 죄가 소멸되도록 발원하라’는 말을 전하라고 하였소.”
그래서 그녀가 곧 땅을 파보니 전하는 말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이때 장자의 아들이 웃으면서 “사람들은 다 금은 믿고 나의 말은 믿지 않는구나”라고 말하며 이를 드러내며 웃으니, 여인이 금니를 보고서야 이 사람이 장자의 아들임을 알고 물었다.
“성자여, 그대는 바라선 장자의 아들이 아닌가?”
상주가 대답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알고 있소.”
그러자 그녀가 곧 달려가서 그 장자의 집에 이르러 급히 부모에게 알리니 부모는 듣고 나서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장자의 아들이 스스로 집으로 와서 기침소리를 내니 처음에는 의심을 하였으나, 곧 아들임을 알고 아들의 머리를 안고 큰 소리로 울었다.
부모는 앞서 눈이 멀었었으나 울음으로 인하여 안막(眼膜)이 제거되어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때 장자의 아들이 부모에게 말하였다.
“저는 출가하고자 하오니, 원컨대 허락하여 주소서.”
부모가 말하였다.
“요즈음 너 때문에 두 눈이 멀었었으니 우리 두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출가하지 못한다. 차라리 우리가 죽고 난 뒤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
이때 장자의 아들은 비록 다시 집에 있기는 하였으나 늘 배우고 독송하여 드디어 예류과(預流果) 얻었으며, 다시 부모를 위하여 4진제법(眞諦法)을 설하여 부모가 듣고서 지혜의 금강저(金剛杵)로 스무 가지의 살가야견(薩迦耶見:五取蘊)의 큰 산을 부수고 예류과를 증득하였다. 그 후 부모는 함께 죽었다.
그때 장자의 아들은 이별의 슬픔과 부모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인하여 보시를 널리 행하여 복업을 닦았다. 그런 뒤에 성자 가다연나가 있는 곳으로 가서 이마를 발에 대어 예를 올리고 말하였다.
“성자여, 훌륭한 법에 출가하여 범행을 닦고 아울러 구족계도 받기를 원합니다.”
이때 성자는 이미 관찰하고는 곧 억이(億耳:聞俱胝耳)를 출가시켜서 사미로 삼고 일래과(一來果)를 증득하게 하였다.
이때 그가 거처하는 곳이 변두리가 되어 필추의 수가 적었으므로 구족계를 받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사미[求寂]가 되었고, 사미가 가져야 할 행법(行法)을 전부 가르치니 불환과(不還果)를 증득하였다.
제불(諸佛)의 상법(常法)에는 1년에 대회(大會)가 두 번 있는데, 이때는 모든 필추가 빠짐없이 모이게 된다.
2시(時)라고 하는 것은 늦봄과 늦여름으로서, 이때는 대소의 성문들이 함께 운집하게 된다.
구수 가다연나의 제자와 모든 필추들이 다른 곳에서 석 달 동안의 안거를 마치고 의복들을 손질하고 나서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점점 유행하면서 바색바 마을에 도착하였다. 바야흐로 10중(衆)도 모두 모였다.
이때 성자 가다연나는 곧 억이에게 구족계를 주었다. 구족계를 받고는 모든 율행(律行)을 다 배워 번뇌를 끊고 무학과(無學果:阿羅漢果)를 증득하였다. 이미 무학과를 증득하고서는 인천(人天)의 미묘한 공양을 받았으니 그 상세한 기록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때 여러 필추들은 성자 가다연나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우리들은 근래 여기에 있으면서 성자께 공양하고 모든 사법(事法)을 전부 이루었습니다. 지금 대사 세존을 예로써 뵙고자 합니다.”
성자가 대답하였다.
“훌륭하다,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이미 허락을 받은 필추들은 의복과 발우를 엄숙히 지니고 실라벌성으로 떠났다.
이때 성자 억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단정히 하고 합장 공경하여 가다연나에게 말하였다.
“스승이시여, 저는 의견(意見)을 드리고자 하오니 원컨대 허락하여 주십시오. 저는 단지 스승만 뵈었지 세존은 뵙지 못하였으며, 비록 법신(法身)은 뵈었으나 색신(色身)은 뵙지를 못하였습니다. 만일 제가 여래의 색신 상호(相好)를 뵐 수 있도록 친히 허락하여 주신다면, 지금 떠나고자 합니다.”
“제불여래는 가히 뵙기가 어려워서 시간이 오래되어야만 뵐 수가 있으니, 마치 우담발화가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그대는 지금 떠나기를 원하니 마땅히 때를 알 것이다.”
다시 가다연나가 말하였다.
“그대가 세존이 계시는 곳에 이르거든 나를 대신하여 이마를 발에 대어 예를 올리고 세존께 여쭙기를, ‘병도 적으시고 번뇌도 적으시며 기거가 가볍고 편안하게 계십니까?’라고 하여라.
아울러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일을 세존께 아뢰기를, ‘바색바 마을은 변두리에 있어서 구족계를 받고자 하여도 10중(衆)을 모시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그 나라 사람들은 늘 깨끗하게 목욕을 하며, 땅이 단단하게 굳어 있어서 만일 소가 지나가면 발자국을 남기게 되어 다른 나라의 부드럽고 연한 땅과는 다릅니다. 또한 동쪽나라 사람들은 암양가죽이나 사슴가죽, 소가죽으로 된 와구들을 사용합니다. 또한 어떤 필추가 다른 필추에게 옷을 보냈는데 옷이 왔다는 소문은 있어도 아직 받지 못하여 10일이 지나 옷을 버린 죄를 범할까 두려우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여 이 모든 사연을 세존께 하나하나 말씀드려라. 그리하여 세존께서 가르침을 주시면 나는 공경히 봉행할 것이다.”
이때 억이는 오롯한 마음으로 스승의 말씀을 새기고 스승과 작별을 한 뒤에, 그날 밤은 바색바 마을에서 잤다. 날이 밝고 청명한 아침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점차로 유행하였다. 걸식을 마치고 밥을 먹은 뒤에 공양을 베푼 주인과 작별하고 와구도 돌려주고 의복과 발우를 가지고 실라벌성으로 떠났다. 길을 따라가면서 여러 마을을 지나 바야흐로 그 성에 도달하여 서다림에 이르러서는 의복과 발우를 안치하고 손발을 씻고 곧 가서 세존께 정례(頂禮)하였다.
이때 세존께서는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 및 여러 천룡(天龍)과 귀신과 국왕과 대신과 사문과 바라문 등에게 설법을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억이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방 안에 억이의 잠자리를 준비해 두어라.”
아난이 가르침을 받들어 곧 가서 침상 위에 와구를 깔고는 세존께 아뢰었다.
“원컨대 성자시여, 때가 되었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발을 씻고 방으로 들어가셔서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누우시고, 양쪽 발을 서로 포개어 광명상(光明相)을 짓고, 마땅히 빨리 일어날 것을 정념(正念)하고 이와 같이 마음을 먹었다.
이때 억이도 절 문 밖에서 발을 씻고 방에 들어가 안치하고는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누워 광명상을 짓고 마땅히 빨리 일어날 것을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마음먹으니 밤중에 마침내 말이 없어지고 잠자코 머물렀다. 밤이 지나려고 하자 억이는 곧 다시 결가부좌를 하고 곧은 자세의 마음을 일정하게 하여 정념에 들었다.
부처님께서 억이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내가 설한 경률(經律)을 독송할 수 있는가? 내가 성도(成道)했을 때 설했던 경들을 곧 송경하여 보아라.”
억이가 송경을 마치니 부처님께서는 곧 칭찬을 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그대의 송경은 매우 청정미묘하구나.”
이때 억이는 곧 생각하였다.
‘스승께서 나에게 부탁하신 것을 말씀드려야겠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마땅히 스승께서 묻고자 하신 일들에 대해 부처님께 청하여 말씀드려야겠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는 말씀드렸다.
“대덕이시여, 제가 살고 있던 아습바란(阿濕婆蘭)의 덕가국(德迦國) 바색바 마을은 변방입니다. 거기에는 성자 가다연나가 살고 있는데, 그는 저의 친교사(親敎師)입니다.
그 스승은 제게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숙여 정례하고 세존께 여쭙기를 ‘병도 적으시고 번뇌도 적으시며 기거가 가볍고 편리하시며 편안히 계시는지’를 여쭈라고 하셨습니다.
아울러 다섯 가지의 일을 부처님께 여쭈라고 하셨습니다. ‘그 나라는 변방이라서 구족계를 설할 때 열 분의 스승을 모시기가 어렵고, 또 그 나라 사람들은 늘 목욕을 하여 청정하며, 그 나라의 토지는 매우 굳고 단단하며 소가 밟으면 발자국이 나타나고 햇볕이 쪼이면 건조하여 사람이 다닐 수 없으니 다른 나라와 같지 않습니다. 또 그 나라는 항상 순모 이불과 양가죽ㆍ사슴가죽ㆍ암양가죽 등으로 된 와구를 사용하게 되어 있으며, 또 어떤 필추가 다른 필추에게 옷을 보냈는데 옷이 온다는 소문은 있어도 아직 그 의복은 도착하지 않아 10일이 경과되어 옷을 버린 죄를 범할까 두렵습니다.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여쭈라 하였습니다.”
이때 세존께서는 이것을 인연하여 여러 필추에게 말씀하였다.
“모든 필추들은 잘 들으라. 지금부터 변방의 나라에서는 계율을 수지하는 필추가 다섯 명이면 구족계를 받을 수 있다. 변방의 땅이 나쁜 곳은 한 겹으로 된 가죽신을 신도록 하는데, 두 겹이나 세 겹으로 된 신은 안 되며, 밑바닥이 뚫어지면 꿰매 신어야 한다. 만일 필추가 다른 필추에게 옷을 보냈는데, 그가 아직 옷을 받지 못하였으면 옷을 버린 죄를 범한 것은 아니다.”
이때 구수 오바리가 대중과 함께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리하고 합장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 대덕이시여, 변방은 계율을 수지하는 필추가 다섯 명이 있으면 구족계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희는 어느 곳부터 변방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동방으로 가다 보면 분다림(奔茶林)이 있으며 거기에는 분다(奔茶)라는 물이 있으니, 이 밖으로부터 변방이 된다.
남방에는 섭벌라불저(攝伐羅佛底)라는 나라가 있는데 여기에도 섭벌라불저라는 강이 있다. 이로부터 그 밖이 변방이 된다.
서방에도 솔토노(率吐奴)라는 나라가 있는데 오바솔토노(鄔波率吐奴)라는 바라문 마을이 있다. 이 밖이 변방이 된다.
북방에는 올시라(嗢尸羅)라는 산이 있는데 이 산의 밖이 변방이 된다.”
여러 필추들은 이 말을 듣고 의문이 생겨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억이 필추는 일찍이 무슨 업을 지었기에 큰 부잣집에 태어나 재물과 보배가 한량없었으며,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는 귀에 자연히 묘하고 보배로운 귀걸이가 생겨서 가치가 한량없었으며, 또 출가하여서는 구족계를 받고 세존을 뵙지 않고도 무학과(無學果)를 증득하여 번뇌를 끊었습니까?”
부처님께서 여러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억이 필추가 전생에 지은 업은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은 것이다. 인연을 만나게 되면 사나운 물이 흐르듯이 그 업을 받는 것이 결정되나니, 지금 그 인연을 만나서 그 업보를 함께 모아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이 능히 무너뜨릴 수 있는 과보가 아니므로 몸에 반드시 저절로 받는다. 게송에서도 말하였다.”
가령 백 겁(劫)을 지난다 해도
지은 업(業)은 없어지지 않아
인연(因緣)을 만나는 때에
과보(果報)를 저절로 받네
이어 부처님께서 여러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현겁(賢劫) 중에 사람의 수명이 2만 세였을 때 부처님이 세상에 오셨으니, 이름이 가섭파여래(迦攝波如來)이셨다. 가섭파여래께서는 열 가지의 명호(名號)를 구족하셨고, 바라니사국(波羅痆斯國)의 선인(仙人)이 내려오신 곳인 시록림(施鹿林)에 계셨다.
그 나라에는 흘리가(訖里伽)라는 임금이 있었다. 그는 교화를 잘 하여 백성들이 활기왕성하고 음식은 풍부하여 아무런 근심 없이 모두 안락하였으며, 도적이 없어서 두려움도 없었고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고 모자람이 없었으며, 법으로 세상을 다스렸다.
그 왕에게는 선생(善生)이라는 아들이 있어서, 그 아들을 태자(太子)로 책봉하였다.
이때 가섭파여래께서는 화연(化緣)이 이미 다하여, 마치 땔나무가 다 타서 불이 꺼지는 것과 같이 열반에 드셨다.
이때 홀리가 왕은 곧 향나무를 구하여 다비(茶毘)를 하고, 우유로 불을 껐다. 그리고는 사리를 수습하여 네 종류의 보물을 사용하여 병을 만들고 사거리에 칠보탑(七寶塔)을 세우고 사리(舍利)를 안치하였다.
탑의 높이는 1구로사(俱盧舍:약 8km)로서 그 나라의 동쪽 경계에서 들어오는 모든 공물(貢物)은 모두 이 탑에 시주하였다.
뒷날 그 임금은 명이 다하여 세상을 떠났고, 태자가 임금이 되었다. 그는 곧 여러 대신과 함께 창고에 저장된 물건의 많고 적고를 검사하였으며, 아울러 이 나라의 동쪽 경계에서 나오는 공물이 다 이 탑에 보시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대신들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선왕께서 탑에 시주하라고 하신 공물들을 도로 찾아오면 안 되겠습니까?’
새 임금이 대답하였다.
‘나의 아버지이신 선왕께서 하신 일은 마치 석범천왕(釋梵天王)이 하신 일과 같다. 그런데 내가 지금 어찌 감히 그 공물을 도로 찾겠는가?’
그러나 모든 대신들은 즐거이 불법을 믿지 않아 다 함께 생각하기를 ‘우리들이 지금 방편을 써서 탑에 시주한 공물을 거두어들이자’ 하고는 곧 성의 동문을 폐지하여 모든 재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니, 그 탑은 채색이 초라해졌고 아울러 파괴되었다.
북방에 한 상주(商主)가 있었는데, 여러 상인을 데리고 이 나라에 와서 탑의 근방에 머물렀다.
이때 상주는 탑이 있는 곳에 공경히 절을 하고 탑이 파괴된 것을 보았고, 또 자식이 없는 어느 여인이 탑을 쓸며 공양하는 것을 보았다. 그 여인은 이미 가섭파 여래ㆍ응ㆍ정등각을 뵙고서, 부처님의 처소에서 발심하여 수학을 한 여인이었다.
상주가 여인에게 물었다.
‘이 탑은 누구의 탑인가?’
여인은 그 인연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이 탑은 가섭파부처님의 탑이라고 하였다.
상주가 이 말을 듣고는 마음이 즐거워서 곧 귀에 달린 보배 귀걸이를 빼서 그 여인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그것을 팔아 그 값으로 탑을 수리하는 데에 쓰라”고 하고, 자신이 만일 돌아오면 마땅히 보시하겠다고 하였다. 여인은 보배 귀걸이를 받아 그 탑을 곧 장엄하였다.
상주가 돌아와 그 탑의 주변에 도착하여 그 탑을 우러러 보며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곧 발심하여 다시 보개(寶蓋)와 당번(幢幡)을 만들어 공양하면서 이와 같이 발원하였다.
‘내가 지금 가섭파여래의 탑에 공양을 하오니, 원컨대 내생의 태어나는 곳에서는 모든 선근을 받게 하여 늘 부귀와 존귀함을 얻고, 마땅히 부처님께서 계시는 곳에 출가하여 번뇌를 끊고 무학과(無學果)를 증득하게 하여 주소서’라고 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 여러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그 상주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바로 억이 필추이니라. 가섭파부처님의 탑에 공양을 한 까닭에 세세생생에 늘 부귀한 집에 태어났으며, 어머니의 태속에 있을 때에 귀에는 보배로운 귀걸이가 자연히 생겼으며, 또 미래에 출가하기를 원하며 번뇌를 끊고 아라한과를 얻었으며, 다시 어머니가 계신 곳에 대하여 악한 말을 한 까닭에 이 업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지옥을 본 것이다.”
부처님께서 여러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백업(白業:善業)을 지으면 백업의 과보를 받는 것이고, 흑업(黑業:惡業)을 지으면 흑업의 과보를 받는 것이며, 잡업(雜業)을 지으면 잡업의 과보를 받는 것이니, 너희 필추들은 마땅히 잡업과 흑업은 멀리 여의고 백업을 닦으라. 여러 필추에게 고하나니 이것은 나의 가르침이니라.”
모든 필추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피혁사 하권
의정 한역
박홍배 번역
어느 때 박가범께서는 실라벌성의 서다림 급고독원에 계셨다.
구수 오파난타(鄔波難陀)가 출가하여 침상 하나를 받았다. 그 침상은 심하게 부서져서 몸을 움직이면 상에서 곧 소리가 났으며, 침상 위에 누워 있으면 소리가 날까 두려워 감히 옆으로 돌아눕지를 못하였다.
오파난타는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만일 좋은 침상을 얻지 못하면, 나는 나를 오파난타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날이 밝아 아침이 되자 곧 승광왕(勝光王)이 있는 곳으로 갔다.
임금이 말하였다.
“어서 오시오. 성자 오파난타여,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그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제가 비록 누워 잠을 자긴 하나 마음속으로 늘 두렵습니다. 대왕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제가 출가 전에는 여덟 겹으로 된 침상을 깔고 잠을 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출가한 후로는, 이 소하(小夏)에 깨진 침상 하나를 얻어 조금만 부딪쳐도 심하게 소리가 나니 깨질까봐 감히 돌아눕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심히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있겠습니까?”
임금이 오파난타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가히 여덟 겹으로 된 침상을 써도 부처님 법에 합당한가?”
그는 곧 임금에게 말하였다.
“그것은 도리에 합당합니다. (계율의) 어느 곳에 부처님께서 여덟 겹으로 된 침상을 깔지 말라고 정한 것이 있습니까?”
임금이 말하였다.
“만일 법에 합당한 것이라면, 내가 지금 줄 것이니 마음대로 가지고 가시오.”
그는 다시 임금을 향하여 아뢰었다.
“저는 국왕이 아닌데 어찌 왕가의 물건을 함부로 가지고 가겠습니까? 임금께서 사람을 시켜 절로 보내주시면 제가 받겠습니다.”
임금은 여덟 사람을 시켜 네 사람은 와구를 마주 들고 네 사람은 침상을 마주 들고 가게 하였다. 오파난타는 기쁘게 미소를 지으면서 뒤를 따랐다.
도중에 여러 속인과 바라문 등이 이 잠자리에 필요한 도구들을 보고 물었다.
“이것은 누구의 것인가?”
여덟 사람이 대답하였다.
“임금께서 주신 것이오.”
사람들이 다시 물었다.
“이 침상을 가지고 가버리면 임금은 어디에서 잠을 자는가?”
오파난타가 대답하였다.
“자기 집에서 자겠지요. 이 잠자리는 나에게 준 것이오.”
이 말을 듣고 모든 속인들이 비웃으며 비난하였다.
“대머리 사문이 이런 와구를 탐내어 가지다니.”
오파난타는 곧 절에 도착하여 땅을 깨끗이 쓸고 소똥을 바르고는 그 침상과 잠자리를 문 옆에 깔아 놓았다.
부처님께서 문에 이르자 오파난타는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의 침상을 보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보시고 곧 말없이 여리 필추들을 모으시고는, 자리에 앉아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큰 침상에 누워 자는 사람은 모든 과실이 이로부터 일어나게 될 것이니, 지금부터 필추가 만일 높고 큰 침상에 누워 자면 월법죄(越法罪)를 받게 될 것이다.”
어느 장자가 부처님과 필추 승가(僧伽)를 집에 청하여 공양을 베풀었는데, 높은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그때 아난다(阿難陀)가 먼저 그 집에 도착하여 그 높은 자리를 보고 장자에게 말하였다.
“이 높은 자리는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마땅히 거두어 주십시오.”
그 장자가 바로 거두고자 하였는데, 부처님께서 곧 그 집에 도착하여 아시고는 일부러 이렇게 물으셨다.
“아난다야, 네가 이 자리를 거두라고 시켰느냐?”
아난다가 아뢰었다.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은 부처님 법에 어긋나기에 거두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곳에서 높은 자리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만일 속인의 집에서 설법을 할 때나, 승방[毘訶羅] 안에 있으면서 높고 큰 침상에 앉거나 눕는 자는 월법죄를 받는다.”
이때 남방에 한 필추가 있었다. 몸에는 단지 3의(衣)만 걸치고서 그 필추는 실라벌성으로 와서 세존께 정례하였는데, 가죽으로 된 와구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오파난타가 이것을 보고 곧 그 뒤를 따라가 찬탄하면서 그가 잠시 쉬기만을 기다렸다가 곧 그에게 구걸을 하였다.
“그대는 걸식하는 필추이니, 이 가죽을 나에게 줄 수 없겠소? 나는 여러 절을 유행하면서 그때마다 이 가죽을 몸에 두르고 탑이 있는 곳을 다니고 성적(聖迹)들을 순례하고자 하오.”
그가 곧 대답하였다.
“오파난타여, 내가 지금 그대에게 이 가죽을 주면, 그대는 지금 당장 떠날 수 있겠는가?”
오파난타가 대답하였다.
“나는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대가 주지 않아도 이런 가죽을 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소.”
그가 오파난타에게 말하였다.
“만일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가죽을 그대에게 주지 않겠소.”
그가 이 말을 듣고 성이 나서 가만히 있다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승광대왕에게는 바탁(婆吒)이라는 소를 돌보는 사람이 있다. 그는 곧 나의 옛 친구로서 그에게는 가죽이 있을 것이니, 내가 달라고 부탁하면 줄 것이다.’
이런 생각을 마치고는 곧 그곳으로 갔다.
그때는 초봄에 가까웠고 어미 소는 얼룩송아지를 낳았는데 매우 사랑스러웠다. 오파난타가 손으로 송아지를 어루만지니 곧 송아지 가죽에 대해 욕심이 생겼다.
바탁이 이것을 보고 오파난타에게 말하였다.
“성자여, 우유가 필요합니까?”
오파난타가 대답하였다.
“우유는 필요가 없네. 이 송아지 가죽을 보니 매우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기네. 만일 이 가죽을 얻어 와구로 사용한다면 만족스럽게 몸에 두르고 편안히 길을 갈 수가 있겠네.”
바탁이 대답하였다.
“성자여, 그럼 돌아가 계십시오.”
오파난타가 생각하기를, ‘이미 나의 뜻을 알았구나’하고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바탁은 곧 사람을 시켜 그 송아지를 잡아 가죽을 벗겨 오파난타에게 보냈다.
그 사람은 보내주겠다는 말에 의하여 어미 소 앞에서 송아지를 잡아 가죽을 벗겨 오파난타에게 보내려고 하였는데, 어미 소가 어린 송아지의 가죽을 가져가는 것을 보고 새끼에 대한 애절한 마음으로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가죽 심부름을 맡은 사람이 가죽을 가지고 서다림에 도착하여 그 절 안으로 들어가니, 어미 소는 절 문 밖에 서 있었다.
세존께서 이 소를 보시고 그 까닭을 이미 아시고는 일부러 아난에게 물으셨다.
“이 소는 무엇 때문에 저렇듯 오랫동안 문밖에 서서 울고 있는 것이냐?”
그때 아난다가 말씀드렸다.
“대덕이시여, 오파난타가 송아지를 죽여 그 가죽으로 와구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송아지는 저 소가 낳았는데 새끼에 대한 애절한 마음 때문에 새끼의 가죽을 따라와서 저렇게 문밖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셨다.
‘잘못은 그 가죽 때문이다.’
그리고는 곧 필추 승가들이 모인 곳으로 가 자리에 앉으셔서 여러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오파난타는 어리석고 무지하여 가죽을 썼기 때문에 사문의 법이 아닌 짓을 하였다.
이런 까닭에 여러 필추들은 이제부터 다시는 가죽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니, 만일 가죽을 사용하는 사람은 월법죄를 받는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필추들은 마땅히 가죽을 사용하지 않았다.
다시 다른 어떤 장자가 부처님과 필추 승가를 초청하여 자기 집에서 공양을 베푸는데, 가죽을 사용하여 앉는 자리를 준비하였다.
이것에 대해서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모든 곳에서 가죽은 절대로 쓰지 말라. 이것을 인연으로 하여 나는, 속가에서는 좌구[坐]를 사용하는 것은 허락하되, 와구[臥]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
승방에 있을 때는 가죽으로 된 좌구와 와구를 사용하지 말라. 만일 가죽으로 된 와구를 사용하면 월법죄를 받는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구수 필린다바차(畢隣陀婆蹉)는 출가한 이래 늘 몸에 병이 있었다. 권속들이 와서 그 필추의 설법을 듣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어떤 장자가 자신의 처에게 말하였다.
“지금 성자 필린다바차가 우리를 위하여 설법을 하였는데, 달기가 순 꿀과 같아서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소.”
그의 처가 대답하였다.
“당신은 과보가 성숙하였으니,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면 묘법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남편은 말하였다.
“당신은 왜 설법을 들으러 가지 않는 것이오?”
부인이 대답하였다.
“저는 부끄러워서 가서 그의 설법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만일 성자께서 여기에 오셔서 설법을 해 주신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때 남편은 곧 필린다바차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말하였다.
“성자여, 저는 성자의 설법을 듣고 이익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저의 아내는 부인이라서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까닭에 여기에 와서 설법을 들을 수 없으나, 성자의 설법을 매우 듣고자 합니다. 만일 성자께서 덕을 내리셔서 자비를 베푸셔서 저의 집에 오셔서 설법을 하시면, 저의 아내가 바야흐로 법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구수 필린다바차가 말하였다.
“나는 출가한 이래로 늘 몸에 병이 있다네. 그래서 가지 못할 것 같네.”
그 사람이 말하였다.
“성자여 저희들이 가마와 가마를 들 시자를 보내겠습니다.”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하락하지 않으실 것이네.”
이 사연을 어느 필추에게 말하니, 그 필추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셨다.
‘나는 여러 필추들이 늙고 병이 들었을 경우에는 가마를 타는 것을 허락해야겠다.’
생각을 마치고 곧 여러 필추를 모으시고 대증 가운데에 자리를 펴고 앉으시고는 여러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는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서라면, 마땅히 가마를 타도 된다.”
이때 6중 필추가 대중 가운데 있었는데,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구수 필린다바차가 가마를 타고 많은 시자들이 에워싼 가운데 범지(梵志) 장자의 집으로 갔다는 말을 들었다.
6중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곧 여러 가지 화려한 채색의 그림을 그린 보배 수레를 타고 네거리를 다니며 속가에 드나들었다. 아울러 그렇게 다니면서 모든 사람들을 업신여김이 마치 초목이 앞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과 같았다.
그리하여 바라문 장자가 물었다.
“성자여, 왜 그렇게 화려한 수레를 타고 다니는가?”
필린다바차가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타는 것을 허락하셨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다 이 일을 꾸짖으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너희 사문들은 욕심대로 하여도 되는가?”
이때 여러 필추들이 그 사연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필추들이여, 이미 과실이 있으니 마땅히 수레를 타지 말라. 다만 두 종류의 사연이 있는 사람은 타는 것을 허락하니 무엇이 둘인가? 첫째는 병이 들어 약한 사람이거나, 둘째는 늙고 병든 사람이다. 이러한 사연이 있는 사람은 내가 마땅히 허락한다. 만일 아무런 사연도 없이 수레를 타는 자는 월법죄를 받는다.”
이때 어떤 필추가 인간 세상에 유행을 하며 길을 기다가 강을 만났는데, 손에는 의발을 쥐고 있어서 마음대로 헤엄쳐 물을 건너갈 수 없었다.
이때 여러 필추들이 이 사연을 부처님께 하나하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필추들은 마땅히 헤엄치는 것을 배우라.”
그때 여러 필추들은 부처님께서 헤엄쳐서 물 건너는 법을 배우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그때 6중 필추는 아시다(阿市多) 강을 자주 헤엄쳐 왕래하였는데, 어느 날 어떤 거사녀(居士女)가 강변에 이르러 배가 없어 건너가지 못하고 오랫동안 번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때 6중 필추들은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내가 마땅히 건네주리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이들이 출가한 사람임을 보고 믿고서 함께 강을 건넜다. 그런데 6중 필추는 물 가운데에서 여자의 몸을 이리저리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저쪽 언덕에 이르러서 다시 여자에게 말했다.
“돌아갈 때도 우리가 또 건네주리다.”
그때 그 여인이 말하였다.
“너희 대머리 중이여, 매우 음흉하고 악독한 성질을 가지고 있구나. 나의 지아비도 함부로 나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지 않는데, 하물며 너희들이 그런단 말이냐?”
그녀는 이렇게 꾸짖고 욕을 하였다.
이때 여러 필추들이 이 사연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이런 생각을 하셨다.
‘이런 과오가 일어난 것은 여자의 몸을 어루만진 데서 생긴 것이니, 나는 지금 여러 필추에게 법을 만들어 여자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여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시고 여러 필추를 모아 말씀하셨다.
“6중 필추는 어리석은 사람들인지라 세간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 사문의 법이 아닌 짓들을 하여 순리를 따르지 않고 비리와 부정으로 여인의 몸을 만졌다.
너희들은 지금 이후로는 여인의 몸을 만지지 말 것이며, 만일 몸을 만지는 자는 월법죄를 받는다.”
세존께서 필추들은 여인을 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제정하셨다.
그때 어떤 성주(城主)가 늘 경치가 좋은 동산과 연못을 사랑하여 처자와 권속을 거느리고 의복을 치장하고는 동산에 나갔는데, 무리 중에 한 여인이 병을 들고 강가에 나가 병에 물을 담으려고 하였다.
그때 또 어느 필추가 강가에서 벌레를 관찰하며 물을 거르고 있었다. 여인은 필추가 물을 담고 있는 강변을 보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곧 멀리 떠나가서 비좁고 험한 곳에서 물을 길었다. 그런데 물병에 물이 차서 들어 올리려고 하다가 여인은 그만 발을 잘못 디뎌 물에 빠져 표류하게 되었다.
이때 그 필추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세존께서 가르침을 정하시기를 여자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고, 만일 몸에 손을 대는 사람은 월법죄를 받는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그 필추는 여인을 구하지 않고 그대로 버리고 떠나버렸다.
여인의 가족들은 물 길어 오는 시간이 늦어지자 이상히 여겨 서로 그 여인을 본 사람이 있는지 묻고 찾다가 그 필추에게 물었다.
“혹시 한 여인이 물병에 물을 긷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소?”
필추가 대답하였다.
“물에 빠져 표류하고 있는 것을 보았소.”
그들이 말하였다.
“성자들은 유정(有情)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물을 거를 때에도 작은 벌레라도 있는지 보는데, 지금 여인이 물에 빠진 것을 보고도 어찌 버리고 구해주지 않았단 말인가?”
필추가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여자의 몸에 손을 내지 말라고 하셨네.”
이 말을 들고 그들은 필추를 비난하였다.
이때 여러 필추들이 이 사연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죽을 재난이 있으면 그를 구해주도록 하고, 만일 스스로 구제할 수 있어서 놓으라고 말하면 곧 놓으라.”
이때 여러 필추들이 여인의 몸을 붙잡을 때에 곧 염심(染心)이 생겼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여자를 잡을 때 마땅히 그대들의 어머니와 같이 생각하고 자매와 같이 생각하여 구해주라.”
구출된 사람이 있었는데 곤고(困苦)하여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래 언덕 위에 얼굴을 엎드려 눕혀 놓아라.”
이때 필추들이 단지 엎드려 눕혀 두기만 하고 버리고 떠나서, 드디어 까마귀와 독수리 및 야간(野干)에게 씹어 먹혔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버리고 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 마땅히 옆에서 지켜야 한다.”
필추가 몸 가까이에서 수호하다가 곧 염심(染心)이 일어났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까이에 있는 것은 옳지 못하다. 때에 따라서는 마음으로 지켜주어라.”
필추가 지켜주고 있다가 공양 때를 놓쳐 밥을 못 먹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필추가 지켜주다가 밥을 먹을 때가 되면 소나 양치는 사람에게 지켜달라고 부탁을 하고 떠나고, 밥을 먹고 돌아와서는 다시 지켜서 그 사람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아야 한다.”
이때 6중 필추가 아시다(阿市多) 강변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평소처럼 어떤 장자의 집에서 기르는 소가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이때 6중 필추는 각기 젖소의 꼬리를 잡고 강을 건너갔는데, 이로 인하여 그 소는 드디어 우유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장자가 소치는 사람을 꾸짖으니 소치는 사람은 앞의 사실을 모두 장자에게 말하였고, 드디어 장자는 필추들을 비방하였다.
이때 여러 필추들이 이 사연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이로 인하여 여러 필추들을 모으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소꼬리를 잡고 물을 건너가는 것은 옳지 않다. 만일 이것을 범하는 사람은 월법죄를 받는다.”
세존께서 법을 정하시되 소꼬리를 잡고 강을 건너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셨다.
어느 때에 많은 필추들이 강물을 건너가려고 하였으나, 강에 배와 뗏목이 없어서 건너갈 수 없었다. 이 일을 인연으로 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여러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붙잡고 의지하여 강을 건너갈 수 있는 것에 다섯 가지가 있다. 이른바 코끼리와 말과 송아지와 묘우(貓牛)와 부낭(浮囊)이 그것이다.”
이때 6중 필추는 곧 여러 가지로 치장을 한 장부와 부인의 모습을 그린 부낭으로 강을 건너갔다.
바라문[梵志] 거사들이 서로 말하였다.
“이게 무슨 도리인가?”
6중 필추가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그때 범지 거사들이 모두 이 일을 비방하였다.
“대머리 사문이 염욕(染欲)으로 저런 짓을 하다니….”
이때 여러 필추들이 이 사연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여러 필추들은 여러 가지 종류로 채색하여 장부와 여인의 그림을 그린 부낭으로 강을 건너가지 말라. 마땅히 두 가지 부낭만 허용할 것이니 하나는 갈색이며, 하나는 작은 부낭이다.”
세존께서 설법을 하신 바로 그때 어떤 필추가 오는 길에 검은 뱀을 보고는 “장자를 보았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필추는 마땅히 나무 신을 신어야 한다.”
부처님께서 실라벌성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급고독(給孤獨) 장자는 훌륭한 새 집을 지어서 그 집을 여러 가지 그림으로 장식하고, 필추들을 초청하여 여기에서 설법과 아울러 경전도 독송하게 하였다. 식후에 편히 쉴 때는 의복을 수선하기를 청하고 또한 가지가지의 사자좌도 마련하였다.
그때 그 설법하는 곳에 한 필추가 나무 신을 신고 와서 그 땅을 밟아 땅에 자국을 내어 구덩이가 생겼다. 급고독 장자는 날이 밝아 아침이 되자 세존께 예배드리러 갔다가, 곧 그 땅을 보니 나무 신을 신어 땅을 밟아 구덩이가 생겨 있었다.
그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성자시여, 임금과 4병(兵)이 여기에 와서 머물렀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렇지 않소. 어떤 필추가 나무 신을 신고 땅을 밟아 훼손시킨 것이오.”
장자가 이 일을 비방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나무 신을 신으면 절 땅을 훼손시키게 되니 지금부터 이후로는 나무 신을 비축하지 말라. 만일 비축하는 자는 월법죄를 받는다.”
필추가 석 달 동안 속가에서 안거를 하면서 가죽신이 다 떨어져 신을 수가 없었다. 이때 여러 필추들이 이 사연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속가에 있을 때에는 나무 신을 신어도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이때 신심이 많은 장자와 바라문이 나무 신을 여러 필추들에게 보시하였으나, 필추들은 기쁘게 받지 않았다.
장자는 필추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기 전에는 외도(外道)가 복밭[福田]이 되었으나,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신 후부터는 그대들이 복밭이 되었습니다. 저를 불쌍히 생각하시고 받아주십시오.”
이때 여러 필추가 부처님께 이 사연을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받으라. 받아서 뒷간 옆에 두고 사용하여라.”
그리고는 게송으로 거두어 말씀하셨다.
대나무 잎과 부들 잎과 새끼줄로 만든 신발
구지(俱胝:億耳)를 보호하기 위하여 허락하노라.
일찍이 남의 가죽신을 빼앗아 신고 가죽을 빼앗아
몸에 장식하며 착용하고 두르고 하는구나.
부처님께서 여러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필추들은 나무 신을 신을 수 없으니, 마땅히 대나무 잎을 따서 신을 만들어라.”
여러 필추가 대나무 잎으로 만든 신을 신자, 곧 걱정이 생겼다.
부처님께서 여러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이후부터 대나무 잎으로 엮은 신을 비축하지 말고, 마땅히 부들 잎으로 역은 신을 신어라.”
부들 잎으로 엮은 신을 신으니, 도리어 걱정이 생겼다.
부처님께서 여러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부들 잎으로 엮은 신을 비축하지 말고, 너희 필추들은 새끼줄로 엮은 신을 신어라.”
새끼줄로 엮은 신을 신으니, 도리어 걱정이 생겼다.
부처님께서 여러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새끼줄로 엮은 신을 비축해서는 안 된다.”
이때 여러 필추들이 풍종(風腫)으로 양쪽 넓적다리가 병이 들어 고통이 심하였으며, 그 염증 때문에 고름이 흘러 가죽신이 온통 썩어 들어갔다.
이때 여러 필추들이 이 사연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필추들이여, 만일 양쪽 넓적다리에 풍종을 앓고 있을 때는, 마땅히 새끼줄로 엮은 신을 신도록 하고 의심을 내지 말라.”
이때 구지이(俱胝耳) 동자의 몸은 부드럽고 윤택하였으니, 전생의 업보가 성숙한 까닭이었다. 발밑에 금색 털이 있었는데, 길이가 손가락으로 네 뼘 길이였다.
이때 6중 필추가 이것을 보고 서로 말하였다.
“이 동자는 마치 생소(生酥)가 병에 가득 찬 것과 같은데, 지금 불가에 출가하여 무슨 물건이 될 수 있을까?”
동자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즐겁지 않아, 곧 아난다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의 발에 예배하고 말했다.
“존자여, 어떻게 하면 부지런히 삼마지(三摩地:三昧)를 닦을 수 있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구수여, 부처님의 말씀대로 경행(經行)을 하는 것이 좋겠네.”
그는 곧 심마사나(深摩舍那)의 경행하는 곳으로 가서 경행을 하였다. 그런데 경행을 너무 많이 한 까닭에 발밑의 네 뼘 되는 털이 다 벗어졌고, 두 발은 찢겨져 피가 땅에 흘러내렸다. 그 모습이 마치 양을 죽인 것 같았으며, 그가 이로부터 저기로 가면 까마귀가 뒤에서 먹을 것을 찾을 지경이었다.
제불(諸佛)의 상법(常法)에, 아직 열반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는 때때로 강가에 가서 유행을 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런 까닭에 세존께서도 이곳에 유행하셨고, 더 나아가 억이(億耳)도 이곳에 머물면서 유행하는 것이었다.
세존께서 억이가 유행하는 곳을 보시고 그가 피를 흘린 것도 아시면서 일부러 아난다에게 물었다.
“이곳은 어느 필추가 부지런히 삼마지를 수행하던 곳인가?”
이때 구수 아난다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곳은 억이가 경행하던 곳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나는 지금 억이에게 한 겹으로 된 가죽신을 신을 것을 허락한다. 두 겹, 세 겹으로 된 것은 신지 말며, 만일 밑바닥이 떨어지면 꿰매어 신으라.”
그때 구수 아난다는 곧 억이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말하였다.
“구수여, 부처님께서 한 겹으로 된 가죽신을 신으라고 하셨네. 두 겹, 세 겹으로 된 것은 신지 말며, 밑바닥이 만일 떨어지면 마땅히 기워서 편안하게 신고서 복덕을 수행하라고 하셨네.”
억이가 아난다에게 말했다.
“성자여, 세존께서 모든 필추들이 다 신도록 허락하셨습니까, 아니면 저만 신도록 하셨습니까?”
이때 아난다가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그대가 경행을 할 때 발에서 피가 흘러내린 것을 보시고, 그대에게만 신으라고 하셨네.”
억이가 말했다.
“구수여, 누가 감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겠습니까? 그러나 저 혼자만 신게 하면 범행을 닦는 다른 필추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부모와 모든 권속을 버리고 많은 보배와 재물과 궁전 등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출가하였는데, 어찌 억이 혼자에게만 가죽신을 신게 하는가?’라고 할 것이니, 만일 세존께서 모든 필추 승가도 다 신게 하시면 저도 가르치신 대로 신을 것이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 혼자는 감히 신지 않겠습니다.”
아난다가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가서 이 사실을 모두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모든 필추 승가에게 한 겹의 가죽신을 신을 것을 허락한다. 두 겹, 세 겹의 것은 신지 말며 만일 떨어지거든 기워서 신으라.”
이때 구수 아난다는 모든 필추 승가를 모아놓고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모든 필추에게 한 겹의 가죽신을 신을 것을 허락하셨소. 두 겹, 세 겹은 신지 말며, 만일 떨어지면 기워서 신도록 하라고 하셨소.”
대중 가운데서 한 마하라(摩訶羅) 출가인이 가죽신을 신고 경행하는 곳으로 향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면전을 떠나라.”
이 말을 마치고는 곧 모든 필추 승가를 모으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만일 세속에 있을 때는 가죽신을 신고 와서 나를 만나보아도 되지만, 만일 내가 홀로 다른 곳에서 필추 성문과 대중 가운데 있을 때는 가죽신을 신고 와서 나를 만날 수 없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였다.
어떤 필추가 발을 씻는데 물병이 깨졌다. 그래서 그는 깨끗한 물을 담아놓는 단지의 물을 퍼서 발을 씻고는, 다시 입에 가득 물을 머금고 마치 전갈과 같이 걸어갔다.
그때 6중 필추가 보고서 이런 말을 하였다.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춤을 추는가?”
6중 필추가 곧 입으로 음악 소리를 내니, 다른 필추들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희롱을 하는가?”
6중 필추가 대답하였다.
“너희들은 어찌 이 필추가 음악 소리도 없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이때 여러 필추들이 이 사연을 가지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아시면서 일부러 물으시고는 더 나아가 마하라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하였느냐?”
필추가 아뢰었다.
“와구(臥具)가 더러워질까봐 그랬습니다.”
이때 세존께서 모든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와구를 깨끗하게 쓰기 위해 이와 같이 하였다면 허물이 없느니라. 나는 지금 모든 필추들에게 와구를 청결히 하기 위하여 응당 한 겹의 가죽신을 신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두 겹, 세 겹은 안 되며 뚫어져 구멍이 나면 마땅히 기워서 신으라.”
부처님께서 실라벌성에 계실 때였다.
이때 한 걸식 필추가 있었는데, 어떤 장자가 이 필추를 깊이 공경하며 따랐다. 그 필추는 맨발로 새벽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지니고 실라벌성에 들어가 걸식하였는데, 가죽신을 신지 않아 발이 찢어지고 갈라진 것을 장자가 보고 말했다.
“성자여, 가죽신이 없어서 신지 않으신 것입니까?”
필추가 대답하였다.
“어진이여, 나는 가죽신이 없습니다.”
장자가 다시 말했다.
“저와 같이 가죽신을 만드는 집에 가서 발의 크기를 재고 가죽신을 만들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이 필추는 곧 함께 가죽신을 만드는 집으로 갔다.
장자가 신발 만드는 사람에게 말하였다.
“현수여, 이 출가인의 발을 재어 한 겹의 가죽신을 만들어 드리십시오.”
가죽신을 만드는 사람은 즉시 발을 재고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사문 석자는 말로써 값을 치르니, 나는 신을 만드는 기간을 멀리 잡아야겠다. 신 값을 받을 수가 없으니까.’
이때 여러 필추들은 모두 한 겹의 가죽신을 신었는데, 그 걸식 필추는 여러 번 가죽신 집에 갔으나 신을 찾지 못하여서 다시는 가지 않았다.
그 후 그 신심 있는 장자가 걸식 필추를 보니 아직도 가죽신을 신지 않았기에 그에게 물었다.
“왜 가죽신을 신지 않으셨습니까?”
필추가 대답하였다.
“아직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때 장자는 그 필추와 함께 곧 가죽신 집으로 가서 가죽신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한 겹으로 된 가죽신은 없고 여러 겹으로 된 가죽신은 많이 있으니 마음대로 골라 가져가십시오.”
그 걸식 필추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여러 겹으로 된 가죽신을 신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장자가 말하였다.
“일단 이 신을 가지고 머물고 계시는 곳으로 가셔서 갈라서 한 겹만 남기십시오.”
그 필추는 그 신발을 가지고 머무는 곳으로 와서 잠시 앉아 신발을 가르고자 하였다.
이때 세존께서 오셔서 보시고, 제불의 상법을 아시면서도 일부러 물으셨다.
“너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그가 곧 모든 것을 대답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같은 일은 하지 말라.”
세존께서는 다시 이런 생각을 하셨다.
‘이 신심 있는 바라문 장자나 거사 등은 나의 성문 제자에게 여러 겹으로 된 가죽신을 시주하니, 나는 마땅히 신을 것을 허락하여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시고 여러 필추 승가를 모아 말씀하셨다.
“지금 어떤 장자가 필추에게 여러 겹으로 만든 가죽신을 시주하였는데, 그 필추는 이것을 갈라서 한 겹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나는 이 일로 인하여 지금 필추들에게 허락하나니, 만일 어떤 장자가 여러 겹으로 된 가죽신을 이미 신고 와서 필추에게 시주하면 받아서 신으라.”
이때 구수 우파리(優波離)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대덕이시여, 부처님께서는 거사가 일찍이 신었던 여러 겹의 가죽신을 받는 것을 허락하신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을 거사가 일찍이 신었던 것이라고 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거사가 일찍이 신고 다니되 일곱 걸음이나 여덟 걸음쯤 걸어 다닌 것이라면, 이것을 일찍이 신었던 신발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광엄성(廣嚴城)에 계신 때의 일이다.
이때 이 성 안에서는 여러 가지의 가죽신을 만들었다. 이때 걸을 때에 혹은 기기이이(棄棄爾爾)의 소리가 나기도 하고, 혹은 시시이이(是是爾爾) 소리가 나기도 하며, 그 가죽신의 모양도 혹은 양의 뿔처럼 된 것도 있고, 혹은 보리수(菩堤樹) 모양처럼 된 것도 있었으며, 여러 가지로 채색하고 장엄하여 값은 금전 다섯 닢이나 되었다.
이때 6중 필추가 사람들이 신고 있는 신을 보고 곧 자기의 가죽신을 버리고서 다른 사람의 신을 밟고 그 사람을 넘어뜨리고서 강제로 빼앗으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시주한 이 가죽신의 인연으로 원컨대 그대는 내세에 늘 보배로 된 신발을 신으며 천당에 태어나 쾌락을 얻으시라.”
이때 바라문 거사들이 모두 혐오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 함께 비난하고 비웃었으며, 사방의 먼 곳까지 사문 석자가 강제로 다른 사람의 신을 빼앗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이때 어떤 바라문이 비싼 값을 주고 가죽신 하나를 사고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의 사위가 오면 마땅히 신도록 주어야겠다.’
얼마 되지 않아 사위가 왔다. 그는 먼 길을 오느라 피곤했기 때문에 좀 쉬었다가 먼저 목욕을 하고 몸에 향을 바르고 여러 가지 보배를 달고서 밥을 먹었다. 장자는 사위에게 가죽신을 주면서 말하였다.
“내가 큰맘 먹고 이 신을 산 것이니 자네는 마땅히 잘 간직할 것이며, 사문 석자에게 빼앗기지 말도록 하게.”
날이 밝아오자 그 사위는 가죽신을 신고 거리에 나갔다가, 곧 걸식 필추가 아침 일찍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차례로 걸식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필추를 보고서 마음속으로 의심을 품고 다른 집으로 피하여 들어갔으나 필추는 또 걸식을 하기 위하여 그 집으로 들어오니, 그 사람이 그곳에서 나와 다른 집으로 가고자 하다가 말하였다.
“성자시여, 무슨 인연으로 내 뒤를 따라 오는 것입니까? 나는 절대로 가죽신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필추는 대답하였다.
“현수여, 나는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지, 그대의 가죽신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오.”
이때 여러 필추가 이 사연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셨다.
‘지금의 이 잘못은 장식을 한 가죽신 때문이다.’
세손께서는 여러 필추를 모으시고 말씀하셨다.
“6중 필추가 다른 사람이 신고 있는 좋은 가죽신을 보고 강제로 빼앗아 여러 바라문 거사들이 다 같이 혐오하고 비난한다. 이런 까닭으로 필추는 비단으로 치장한 가죽신을 신지 말라. 만일 신는 사람이 있으면 월법죄를 받는다.”
부처님께서 실라벌성에 계실 때의 일이다.
부처님께서 가죽신을 신는 것을 허락하시자, 이때 여러 필추들은 가죽신에 발이 마찰되어 발에 상처가 나 곪기도 하였다.
필추들이 걸식을 할 때 바라문 거사가 이것을 보고서는 이런 말을 하였다.
“성자의 발은 못된 까마귀가 상처를 내서 그렇습니까?”
필추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소. 이것은 가죽신에 자꾸 마찰이 되어 상처가 난 것이오.”
“왜 가죽 끈이 달린 신을 신지 않습니까?”
필추들이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소.”
이때 여러 필추들이 이 사연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필추에게 말씀하셨다.
“가죽 끈이 달린 신을 신는 것을 허락한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여러 필추들은 취봉산(鷲峯山)에 올라갔는데 어떤 필추가 엄지발가락에 상처가 난 채로 성 안에 들어가 걸식을 하였다.
바라문 거사들이 앞과 같이 문답하였고, 부처님께서는 겹으로 된 가죽신을 신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하산을 할 때 또 발꿈치가 탈이 나니 이에 부처님께서는 양쪽 신발 속에 못 쓰는 헝겊을 대서 신으라고 말씀하시고는 게송으로 거두어 말씀하셨다.
암혜(菴鞋)와 가죽신[靴鞋]을 신으라.
부라(富羅)는 한설(寒雪)이 있는 곳에서는 신도록 하고
사냥꾼이 주는 곰의 가죽은 받아라.
신을 꿰매는 송곳과 칼은 가져도 좋다.
부처님께서 실라벌성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장맛비가 와서 여러 필추들이 풀로 엮은 신발을 신고 걸식을 하러 갔다. 그러자 그 필추들의 발에 모두 땀띠가 나기 시작했는데 그 모양이 마치 겨자씨와 같았다.
그때 바라문 거사들이 물었다.
“성자여 무엇 때문에 발에 이런 땀띠가 났습니까?”
필추들이 대답하였다.
“풀로 만든 신을 신었더니 이렇게 되었소.”
이때 바라문 등이 물었다.
“성자여, 무엇 때문에 옹두혜(%(糸*邕)頭鞋)를 신지 않으십니까?”
필추들이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아직 허락하지 않으셨소.”
세존께서 필추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모든 필추들에게 옹두혜 신는 것을 허락한다.”
어느 때 실라벌성의 큰 길에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필추들이 그 길을 가노라면 복사뼈에 상처가 나곤 하였다.
바라문 거사들이 ……(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죽신 신는 것을 허락한다.”
악생(惡生) 태자가 어리석음 때문에 겁비라성(劫比羅城)의 여러 석가의 종족들을 죽였다. 이때 성 안에서는 서쪽으로 달아나는 사람도 있었고 혹은 니파라(泥婆羅:지금의 네팔)로 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니파라로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구수 아난다의 권속이었다.
뒷날 실라벌성의 상인이 여러 화물을 가지고 니파라로 갔더니, 석가의 종족들이 상인을 보고 말하였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고통과 핍박을 받고 있는데, 아난다 성자는 왜 여기에 와서 우리를 돌보지 않는가?”
그때 여러 상인들은 한마음으로 생각하였다가, 장사가 다 끝나고 실라벌성으로 돌아가서 아난다에게 갖추어 말했다.
“성자의 권속들이 니파라에 있는데, 이와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성자 아난다는 여러 상인들로부터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슬퍼하며 곧 니파라국으로 떠났다. 그 나라는 눈보라와 추위가 극심하여 아난다는 손과 발이 얼어터진 채 실라벌성으로 되돌아왔다.
여러 필추들이 이것을 보고 물었다.
“아난다여, 그대의 손발이 옛날에는 부드럽고 곱기가 마치 혀와 같았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갈라졌습니까?”
아난다가 대답하였다.
“니파라국 가까이에 설산(雪山)이 있는데, 그곳에서 불어온 눈보라와 강추위 때문에 지금 나의 손발이 이렇게 된 것이오.”
또다시 물었다.
“그대의 권속들은 그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아난다가 대답하였다.
“그들은 부라(富羅)를 신고 있습니다.”
또다시 물었다.
“그대는 왜 부라를 신지 않았습니까?”
아난다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아직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때 여러 필추들이 이 사연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눈보라와 강추위가 있는 곳에서는 마땅히 부라를 신으라.”
이때 구수 오바리가 세존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눈보라와 강추위가 있는 곳에서는 부라를 신으라고 하셨는데, 어느 곳이 눈보라와 강추위가 있는 곳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발우에 물을 가득 담아 놓았을 때 그것이 얼면, 그곳은 눈보라나 강추위가 있는 곳이니라.”
또 어떤 한 사냥꾼이 필추가 있는 곳에서 매우 깨끗한 신심을 내었다. 그때 사냥꾼은 곰 가죽을 하나 얻고는 곧 가지고 가서 시주하니 필추가 받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이곳에 오셔서 이미 알고 계시면서 일부러 아난다에게 물으셨다.
“사냥꾼이 무엇 때문에 필추를 따라다니는가?”
아난다가 다시 그 필추에게 묻고 나서, 그 사연을 알고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드문 사냥꾼이로다. 그러나 청정한 신심을 내기는 했지만, 천 가지 종류로 교화를 하더라도 끝내 살생하는 업을 그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곰의 가죽을 갖도록 허락한다.”
필추는 그것을 불당(佛堂)의 문짝 밑에 두고서 그 위에 편안히 앉기도 하고, 혹은 다리 곁에 두어 눈을 밝게 하기도 하며, 아울러 치질도 고쳤다.
그때 어느 한 필추가 가죽신의 밑바닥이 뚫어져 가죽신 집으로 고치고자 갔더니 주인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필추는 마침내 그를 찾기로 하였다.
어떤 필추가 말하였다.
“그대는 왜 스스로 꿰매어 신지 않는가?”
대답하였다.
“나는 잘 꿰맬 줄 알지만, 세존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때 여러 필추들이 이 사연들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꿰맬 줄 알거든 외진 곳으로 가서 스스로 가죽신을 꿰매 신도록 하여라.”
허락을 받고는 곧 그 필추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말하였다.
“구수여, 세존께서 스스로 꿰매 신으라고 허락하셨네.”
필추가 대답하였다.
“송곳과 칼, 그리고 가죽으로 된 노끈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 여러 필추들이 이 사연을 가지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필추들에게 송곳과 칼과 가죽으로 된 노끈과 실을 갖는 것을 허락한다. 아울러 이것은 법을 어긴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