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숨을 쉬어요. 나는 이 모든 것을 사과하고
싶어요. 나는, 나는, 나는 무엇이에요? 나는 도대체
아무것도 몰라서, 나 미안해요.
길 끝까지 걸어가면서 속으로 숫자를 셌어요. 하
나둘셋넷나나나. 다시 다섯여섯일곱여덟나나나. 여
기부터 시작된 것이 있어요. 출처를 모르니 확인할
수 없지만. 용서해줄래요? 미안해요.
나무가 많고 나무가 흔들리고 나무 아래서 나,
나, 아프고 기뻐요. 이상하죠. 나는.
줄곧 사랑받는 것을 생각하며 지냈어요.
운명을 기다렸어요.
있어요? 그런 것?
나는요.
자포자기라는 말 알아요? 자기를 스스로 해치고
버리는 거예요. 되는 대로 사는 거예요. 내가 그래
요. 내가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기 싫어요. 뻔하고 저열하
니까. 그런 건 쓰고 싶지 않아. 그런데도 나는 없는
너를 만들고 너를 미워하고 기다리고 너를 죽이고
다시 만들고. 나는 참 그래요. 그런 일은 아무것도
아닌 거고 나는 그건 마치 커다란 숲속에 작은 구멍
을 파고 나는 그 안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떠들고 떠
들다가 나 울고 소리 지르고 잠들고 깨면 나는 어둠
뿐이고. 반복이에요. 사랑 없는 사랑이 미쳐버려요.
그걸 겪고 겪고 쓰고 쓰고 울고 나는. 나는요.
나는 왜 나예요? 나는 언제부터 내가 됐어요?
이미 죽은 것을 이미 죽은 사람의 얼굴을 수차례
내리치는 거죠. 그 얼굴은 내 얼굴이에요. 나는 죽
은 나를 두들겨 패고 있어요.
하지만 죽었으니까 안 아파요.
나는 가졌어요? 나는 병원에 갔어요. 웃는 의사
선생님은 안경 너머로 나를 보며 손톱을 물어뜯어
요. 선생님도 아픈가요. 내가 울면 가만히 쳐다봐
요. 그칠 때까지 기다려요.
어떤 아침은 밤의 끝이 아니지요. 지금부터 나는
숨을 멈춰요. 빛이 생겨나요. 아침은 환하고 선명하
고 만질 수 없어요. 집이에요. 작은 소리예요. 빨갛
게 달아오른 뺨이에요. 그래요? 나는 나는 가장 멀
리 있는 동시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 그것이 돌아
눕는 기척을 들어요. 모른 척해요. 시작할 수 없고
사랑해요. 나는 사랑해요. 나는 사랑을 해요. 나
는 검은 나는 숲 나는 나나나나나나는 결계를 옷
을 나는 색색의 절망을 나는 사랑 나는 나 없이 나
는 / 모자를 뒤집어쓰고 / 졸린 눈을 비비고 / 나는 나
뿐인 나의 안에서 나로 둘러싸인 나에게 나를 건에
며 나로부터 나로 침투하면서 나를 갖고 나를 잃
고 / 나는.
내 머리가 시를 써요. 나는 그걸 봐요. 내 손이 시
를 써요. 나는 차가움을 만져요. 나는 끝도 없이 나
라는 말만 잔뜩 늘어놓고 웃으면서 쾅쾅 벽을 얼굴
을 지나가는 사람을 잠긴 문을 내리치고 싶은데. 이
제 네가 거기 있어요. 내가 거기 있으라고 하면 네
가 거기 생겨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있지요.
그건 내가 아니라서 내가 부를 수 없는 ○○. 이럴
때 기억은 나는! 나는! 외치면서 튀어 오르고 그럼
어때요? 나는요.
포도를 그려놓고 포도를 먹는 시늉 해요. 선생님
웃으면서 나를 봐요. 그랬어요? 슬펐군요. 나를 짐
작해요. 아니요. 나는 처음부터 슬픔이었는데. 선생
님 나는 왜 슬픔이에요? 물으면 선생님이 입을 가
리고 웃어요. 나로 시작해서 나에게 멀어지는 멀어
질수록 다시 나에게 당도하는 그런 이상한 릴레이
경주 같은 것을 나는 끝도 없이 하고 있는데 이 트
랙에서 내려오는 방법 없어요. 네가 나를 불러주면
내가 네게로 가서 내가 될 텐데, 자 불러봐. 나를 불
러. 고장 난 두 손이 바닥을 뒹굴고 그 손은 작은 돌
을 꼭 쥐고 있어요. 내 손일까? 더 이상 두들길 것
이 없어요. 이제 알겠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나밖에 없어요.
나는요.
사과할 수밖에 없지만 사과하기 싫어졌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현대문학, 2019.
첫댓글 나는요,
이곳에서 숨을 쉽니다.
아침을 맞이하며,
저녁이면 조용히 휘리릭 산책을 떠납니다.
거의 매일,
가장 먼저 마주하는
플로우님이 올려주신 시 한 줄—
그 안에서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습니다.
작은 시 한 편이,
내 하루를 열어줍니다.
오랜 시간 한결같은 열정에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