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86호
칠성이
박수찬
칠성이가 참치잡이 원양어선 유니코리아에 처녀승선을 한 날이었습니다. 호기심 많은 선원들이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왜 칠성이냐고 물어보면요. 칠성각에 빌고 빌어 얻은 귀한 아들이라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했습니다.
열여덟 살 그 여린 손으로 투승(投繩)과 양승(量繩)을 처음 한 날, 양 손바닥에 안티푸라민을 두텁게 바른 뒤 면장갑을 끼고 잠을 잤는데요. 얼마나 아렸으면 잠결에도 “아야! 아야!” 소리가 아리랑 고개를 넘었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고 칠성이 손바닥에 굳은살이 생겨 일할 맛이 났는데요. 아 글쎄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두꺼워진 굳은살은 갈수기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바닷물이 닿을 때마다 아렸는데요. 그때 참치를 처리하는 식칼로 굳은살을 베어 낸 뒤에 손바닥을 숫돌에 문지르는 법을 선임 선원에게 배우면서 진짜 바다 사나이가 되어 갔습니다.
갑판에서 양승을 할 때면 ‘에다’라는 낚시 달린 와이어 줄을 동그랗게 사리면서 걸어 다녀야 했는데요. 칠성이는 그 틈새에서 부족한 잠을 잠깐잠깐 자는 묘기도 선보였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오랜 조업으로 부식이 떨어져 가면 참치 미끼를 반찬으로 먹어야 했는데요. 그런 날이면 칠성이는 참치가 되어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꿈을 꿨다는 이야기 오늘도 전설처럼 전해져 옵니다.
- 『91의 4해구 편지』(달아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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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 시인은 평생을 바다에서 배 위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진짜 뱃사람, 진짜 바닷사람이지요.
그런 그가 첫 시집을 냈습니다.
진짜 바닷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이고 진짜 뱃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읽어보시면 알 겁니다.
그중 한 편을 띄웁니다.
- 칠성이
시집의 해설을 쓴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는 이 시를 이렇게 읽습니다.
이 시집에서 그야말로 바다의 언어로, 몸의 언어로 쓴 가장 아름다운 시를 고르라면 이 시를 빼놓을 수 없다. 마치 한 편의 짧은 성장 소설을 보는 느낌을 주는 이 시는, 오로지 몸의 감각으로, 몸의 고통과, 몸의 문법으로 어른이 되어 가는 한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먼바다에서 거대한 물고기와 온몸으로 사투를 벌이며 불굴의 인간 승리를 보여준 『노인과 바다』(E. 헤밍웨이)의 산티아고처럼, 우리의 “칠성이”는 굳은살을 식칼로 베어 내고 손바닥을 숫돌에 문지르며 “진짜 바다 사나이”가 되어 간다. 이 시집의 전체 문법처럼 칠성이라는 강력한 스토이시즘(stoicism)의 주체도 바다라는 거대한 자궁 안에서 그것의 문법을 따르며 성장한다. “참치가 되어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꿈을 꿨다”는 “전설”이야말로 바다와 온전히 하나가 된 주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독특한 이야기는 오로지 수십 년에 걸쳐 바다-자궁에서 바다의 언어를 수련한 자만이 들려줄 수 있다. 박수찬은 그런 경험과 상상력을 가진 매우 예외적이고 독특한 개성의 시인이다.(오민석)
뱃사람으로 바닷사람으로 뼈가 굵은 사내이긴 하지만, 시인으로서는 이번 시집을 통해 첫 항해를 시작하는 셈일 텐데요, 시라는 바다 또한 특유의 배짱으로 멋지게 항해를 해나갈 것이라 믿고, 응원합니다.
추신. 어제 시의 길에서 오랜 세월 함께했던 박기동 시인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갔지만 그의 시는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2025. 5. 26.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