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빙하의 움직임처럼, 커다란 사건은 고요한 변화에서 돌출한다
변화란 끊임없는 생성이며 고요하게 인간사와 세상을 움직인다
<고요한 변화>는 동서문화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이 2009년 출간한 책이다.
'고요한 변화'라는 제목은 명말청초의 거유 왕부지의 문장인 '은밀한 이동과 고요한 변화'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책에서 줄리앙은 동서양의 사유를 능란하게 오가며 늙음, 사랑, 역사, 시간, 정치, 전략, 미디어, 철학의 위상 등의 다양한 주제를 변화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통해 논한다.
서양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존재, 신, 이상, 정신, 물질, 자유, 목적, 주체, 객체, 본질, 현존 등의 철학소와 그 부분을 무심코 비껴가는 중국 사유와 같은 체계를 만날 때 사유에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렇다고 서양 철학을 구성하는 이런 개념들의 부재가 중국 사유의 미성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사유는 고도의 상징체계에 기초한 텍스트를 통해 고대부터 다양한 학파들이 견고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온 온전한 사유이다.
이 책에서 줄리앙은 그리스 철학에 뿌리를 둔 서양 철학이 인도 유럽어에 종속된 채, 중국 사유와 달리 '변화' 또는 '이행과정'을 제대로 사유하지 못한다는 점을 분석한다. 서양 철학은 변화 아래에 존재, 주체 등 항존하는 본질 또는 고정된 정체성을 전제함으로써 세계, 삶, 역사, 정치 등 모든 분야를 존재와 생성, 이상과 현실, 실체와 속성, 필연과 우연 등의 이원성, 주체의 결단, 단절, 사건을 통해 바라보거나, 유동성을 별도로 사유하기 위해 추상화된 '사건' 개념을 가공해 내는 반면, 중국 사유는 천지만물을 변화 자체로 보기 때문에 서양 철학이 세계와 삶의 연속성을 사유하기 위해 겪는 장애를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