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無主權國世界中-세계 나라 중에 주권 없는 나라였다 因爲日本殖民國-일본의 식민지 국가였기 때문이다. 不知時代因治者-시대를 읽지 못한 통치자 때문에 閉鎖國門世界絶-국가의 문을 잠그고 세계와 단절 賣國逆賊足私欲-나라 팔아 사욕 채운 매국노들 其罪千秋永續存-그 죄 천추에 영원히 남고 있다 其中流血愛國者-그중에 피 흘린 민족 애국자 있어 爲國殺身投貴体-나라위해 죽음으로 몸 던지시니 啊啊吐血撕肉身-아 아 오늘 피를 토하고 살을 찢어 三一祭壇是献身-3월1일 민족 제단에 몸 바친 날이다 南山靑松流漢江-남산의 저 푸른 소나무 흐르는 한강 餘恨先烈的靈魂-한(恨)으로 남아있는 선열(先烈)들의 영혼이다 농월(弄月)
탑골공원의 천지를 진동한 3.1 만세소리를 눈감고 들으면서--
역사유적지를 답사한 자료를 읽으면서 106년전 만세소리를 느낀다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서가 선포되었다 탑골공원 팔각정 앞에 구름 같은 인파가 모였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모여 있던 “태화관에서 300m 떨어진 “원각사지 10층석탑”이 있는 탑골공원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민족대표들이 보이지 않아 웅성거리는 군중 속에서 학생 대표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목이 터지게 낭독했다.
그 소리에 응답하여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그마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가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듯이 쏟아졌다 모여 섰던 사람들은 모자를 벗어 허공에 던지며 뛸 듯이 기뻐했다.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독살설이 퍼진 것이 계기가 되어 “3.1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시위 군중은 종로1가 보신각을 지나 대한문을 향하면서 “일본군과 일본인은 일본으로 돌아가라”, “조선 독립 만세”, “조선 독립정부를 수립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온 서울 시내가 흥분된 군중과 만세 소리로 들끓었다. 시위 행렬은 대한문에 이르러 고종 황제의 빈전(殯殿)을 향해 절을 3회 올렸다. ※빈전(殯殿)-인산(因山) 때까지 왕이나 왕비(王妃)의 관을 모시던 전각(殿閣). ※인산(因山)-태상황(太上皇) 및 그 비(妃), 임금과 그의 비(妃), 황태자(皇太子) 부부(夫婦), 황태손 부부(夫婦)등의 장례(葬禮).
시위대는 대열을 나누어 한 대열은 정동의 미국영사관으로 향하고, 다른 대열은 남대문을 지나 왜성대(倭城臺)의 총독부로 향했다. ※왜성대(倭城臺)-조선시대의 지명 현재 서울특별시중구예장동·회현동1가 지역이다.
만세 행진은 해 질 무렵부터는 교외(郊外)로 번져 나갔다 일본 군대와 기마경찰의 무력 저지로 인해 강제 해산될 때까지 3.1독립선언문 공약(公約)3장에서 밝힌 대로 질서를 유지했기 때문에 단 한 건의 폭력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보신각 타종의식 지금 종로1가 “보신각(普信閣)” 현판 글씨는 이승만 대통령 글씨다. 전국적으로 신분을 불문하고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비폭력적으로 저항한 만세 소리는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켜 조선인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렸다.
3.1운동 후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일제는 군인 경찰에 의한 무단통치(武斷統治)를 문화통치(文化統治)통치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입춘(立春)이 지났지만 아직은 춥다 오리털 외투를 입고 3.1절 아침을 걷는다. 그날의 만세소리가 진동한다 탑골공원과 보신각을 마음속으로 떠올려 본다
종로 4거리에 교보문고 앞에는 관악산에서 몰려오는 화기(火氣)를 잠재우며 거북선을 앞에 두고 긴 칼을 찬 이순신 장군이 광화문을 지키고 있다 숭례문도 광화문앞 해태상도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광화문 위치가 살짝 삐뚤어져 있다는 평가다.
광화문 사거리 한 모퉁이 교보빌딩 앞에 작지만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념비전(紀念碑殿)”가 있다. 안타깝게도 이 건물이 무슨 뜻의 건물인지 교보문고에 오는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이 없었다. 역사공부를 제대로 안했기 때문이다.
이 기념비전은 일제의 침탈이 극심하던 때인 1903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 황제의 제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건축한 기념비를 모시는 전각이다. 이 기념비는 6.25한국전쟁 때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54년 비각을 보수하면서 일본인에게 팔렸던 만세문(萬歲門)과 담장을 찾아다가 복원하여 1979년에 옛 모습을 갖추었다 1969년 사적 제171호로 지정되었다. 박정희 대통령때의 일이다.
1945년 반민족주의자들을 대상으로 “부민관(府民館) 폭탄의거”가 발생했던 현 서울시의회 건물이 있다. “촛불 혁명”이라는 미명(美名)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세종로 위치다 이야기가 길어지지만 3.1절이기 때문에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 하고 싶은 말이 길어진다.
※부민관(府民館)뜻은 府(부)-관청, 정부, 행정 기관 등을 의미한다다. 民(민)-민중, 국민, 백성을 의미한다. 館(관)-건물, 특히 공공 건물시설을 의미한다(그래서 미국백악관도 이 글자를 쓴다) 부민관(府民館)은 글자만 보면 정부 기관 건물이지만 일제가 한국국민을 통제하는 기관의 건물이다.
지금은 서울시의 의회의사당이지만 1935년 신축 시 일제가 그 당시로는 최고의 건축 기술과 자금을 들여 지은 ‘부민관’이라 칭한 다목적 건물이었다.
3.1운동 당시 시위 군중들이 부복(俯伏)했던 덕수궁에서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되고 있다. ※부복(俯伏)-고개를 숙이고 엎드림
부민관에서는 1945년 7월 24일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친일 반민족주의자들”이 조선인을 선동하여 전쟁터로 몰아넣기 위해 “아시아 민족 분격대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이때 독립결사체인 ‘대한애국청년당원’들이 제조한 사제 시한폭탄을 들고 잠입해 연설 도중 터뜨려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어 대회를 무산시킨 것이 그 유명한 “부민관 폭탄의거” 장소다.
1919년 3월 1일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던 군중들이 돌아가신 고종 황제에게 부복하여 절을 했던 덕수궁 정문에는 옛 의식을 재현한 수문장 교대식이 한창이다.
요즘 들어 휴일의 도심에 나오면 외국인이 많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특히 고궁에는 더욱 실감이 난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이 사진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조선호텔 옆에는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환구단(圜丘壇)이 있다. 환구단(圜丘壇)은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임금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壇)이다.
예로부터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여 하늘에 제사지내는 단(壇)은 둥글게하였다 땅에 제사지내는 단은 모나게 쌓았기 때문이다. 창덕궁 후원의 연못인 부용지(芙蓉池)가 네모난 것도 그런 이유다
이제 그 자리에 윤석열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헌법재판소를 질타하는 소리가 서울을 진동시키고 있다. 역사속 세종로 거리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위의 글 3.1절내용은 필자의 역사유적지 답사 내용에 따라 생각나는 대로 썼기 때문에 글내용이 앞뒤가 없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 2025년 3.1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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