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에 ‘곡예사의 첫사랑’이 발표되었는데, 당시 기준으로도 이미 곡마단은 거의 쇠퇴기에 이르렀습니다. 서울의 장충체육관이나 세종문화회관 등 유명장소에서 국내 유명 곡마단이 공연을 했다는 소식도 당시에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박경애가 이 노래를 부를 시점에서도 ‘곡예사’는 그 이전 세대에서 활약한 곡예사의 사랑을 그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얄궂은 사랑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러나 박경애의 ‘곡예사의 첫사랑’은 당시 라디오에서 엄청나게 많이 들렸던 노래입니다. 대중가요는 기승전결의 구조 속에서 클라이막스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특히 이 ‘곡예사의 첫사랑’은 감정의 폭발이 두드러진 곡이라 무척이나 인상이 깊은 노래입니다. 지금 들어도 박경애가 곡에 실린 곡예사의 사랑의 감정을 잘 실어서 멋지게 불렀습니다. 같은 노래라도 가수의 역량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박경애가 불러서 ‘곡예사의 첫사랑’의 맛이 더욱 강렬합니다.
박경애(1954~2004)는 1970∼1980년대 한국의 포크음악을 주도한 여성 통기타 가수이며, 대표 곡으로는 '이사 가던 날', '밤비야', '곡예사의 첫사랑' 이 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특징이며 1973년 주정이와 함께 듀엣 ‘산이슬’을 결성하고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1977년 이후 솔로로 전향하여 독집앨범을 냈으며, 이듬해 "곡예사의 첫사랑"으로 "서울 국제가요제"에 출전하여 금상을 받았다.
이후 10대가수상을 수상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나 1980년대 초 결혼하면서 가요계에서 은퇴하였다. 한국의 포크음악을 주도한 여성 통기타 가수 10명 (양희은, 남궁옥분, 박은옥, 신형원, 신계행, 한경애, 채은옥, 윤정하, 장은아)이 결성한 ‘우리들’의 회원으로 활동해왔으며, 2003년에는 회원들과 함께 콘서트 ‘보고싶다 친구야’를 열었다. 2004년 초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해왔으나 병세 악화로 2004년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박경애
춘수
줄을 타며 행복했지
춤을 추면 신이 났지
손풍금을 울리면서
사랑노래 불렀었지
공 굴리며 좋아했지
노래하면 즐거웠지
흰 분 칠에 빨간 코로
사랑얘기 들려줬지
영원히 사랑하자~~
맹세했었지
죽어도 변치말자~~
언약했었지
울어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어릿광대의 서글픈 사랑~~~
줄을 타며 좋아했지
춤을 추면 신이 났지
손풍금을 울리면서
사랑노래 불렀었지.
영원히 사랑하자~~
맹세했었지
죽어도 변치말자~~
언약했었지
울어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어릿광대의 서글픈 사랑~~~
공 굴리며 좋아했지
노래하면 즐거웠지
흰 분 칠에 빨간 코로
사랑얘기 들려줬지
랄~~라~~랄~~라~~
첫댓글 해설 고맙습니다ᆞ
춘수님ㆍ
박경애ㅡ곡예사의 첫사랑ㆍ
한 곡 외에 더 있군요ㆍ
70년대 후반 대학시절 이 노래 나온 후 지금도 애창ㆍ애청되고 있지요ㆍ
제가 아는 박경애는요ᆢ
나이가 저와 같은 김인순ㆍ심수봉과 동갑인 줄 알았더니 한 살 위네요ㆍ
고향이 인천으로 외모도 좋지만
치아가 정배열이라 동창 치대생이
치과 손님 아니라고 하던 말 기억납니다ㆍ
제 친우는 지금도 이 노래가 18번예요ㆍ
50나이에 저 세상가서 안됐어요ㆍ
김인순도 교통사고 당해서 갔으니
더 억울한 경우죠ㆍ
7080은 평생 들어야될 거예요ㆍ
갑장 반가우이~ 고마워
이노래 마니 불렀었는데.. ㅠㅠ
애창곡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