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조직학의 차원에서 평론한 글은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더군요.
추신. 요즘 제가 '개벽타임즈'를 재개편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 10시 정도만 넘어가면 트래픽이 걸려서 접속이 안되더군요. 아니면 제가 쓰고 있는 서버계정이 제일 저렴한 거라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개편이 끝나는대로 자금을 좀 투자해서 계정용량을 좀 올리려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꾸벅~^^ (오늘은 지금 이 시각부터 접속이 안되고 있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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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때 꽃다운 군인이었다. - 원제
'위 워 솔져스(이하 '솔져스'라 함)'를 보고 일단 떠오른 감상은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했군.."이었다.
이 말은 애초 영화제작 의도가 그 어떤 극적 감동보다는 '오로지 충실한 상황재현'에 있는 듯이 시종일관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나열되는 잘 정리된 기사를 보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말미에 가면 원작이 등장인물 중 한명이었던 종군기자의 회고록임을 말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고 '솔져스'에 이야기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고(사실 영화 전반에 깔린 '미국주의 가치관'은 여전히 은근하지만 그건 헐리우드의 고질병이니 진작 감안하고 보면 되는 것이다.) 전개되는 장면묘사 하나하나가 아주 사실적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앞서 "사실적인 묘사 운운.." 한 것은 '솔져스'에서는 소위 폭력미학에 근거한 어설픈 낭만주의의 잔재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솔져스'에는 주윤발의 성냥개비도 없었고 난데없이 성당 안 가득 날아오르는 비둘기 떼도 없었다.
온갖 비장미를 있는대로 쳐바르고는 주인공의 상투적인 결말을 판에 박힌 슬로우비데오로 그려내는 뮤직비디오성 싸구려 예술혼이 없었다는 것이다.(뮤직비디오가 값싸게 만들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죽는 장면에서도 카메라빨을 염두에 두고 있는 중인 그 겉멋 풀풀 날리는 어설픈 니힐리즘과 철딱서니 없는 나르시시즘의 유치찬란한 짬뽕 말이다.
'솔져스'는 전쟁터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을 수 있는지, 또 그런 죽음이 얼마나 무차별적인지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폭력'이라는 상극지리相極之理에 길들여진, 나아가서 그에 따른 미학(심지어는 상업적 가치)마저 추구하는 이 문명의 위태로운 미성숙을 직시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길고도 치열했던 전투가 종료되고 이윽고 아침이 되었을 때 헬기를 타고 전장에 몰려왔던 기자들의 잰 발걸음과 눈동자에서 다시금 그 실체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들에게 전쟁은 단지 아주 구미당기는 이슈메이커일 따름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했나.
무언가 근사한 승전 세레모니를 기대했던 그들에게 예의 종군기자를 비롯한 군인들이 보여준 것은 얼굴에 찌든 땟자국과 전장의 생사관의 엄정무사함에 압도당한 초보군인들의 넋잃은 침묵이었다.
내가 군복무를 하면서 사격훈련장에서 처음으로 총성을 듣고는 그에 관한 막연한 낭만적 선입견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적이 있었다.
그 소리는 '탕, 탕'이 아니고 '깡, 깡'이었다.
소시적부터 보아온 토요명화 속에서 주인공의 매력을 한층 배가시키는 소품에 불과했던, 아울러 나도 한발쯤 맞아도 봄직한 만만함이 '탕, 탕'이었다면 '깡, 깡'은 그런 세상물정 모르는 소견을 가차없이 비웃는 냉정한 실상이었으며 스치기만 해도 몸뚱아리가 툭, 툭 볼품없이 해체될 듯한(무슨 놈의 폼인가), 따라서 생존본능을 철저히 챙기게 만드는 냉혈성이었다.
그것도 수십명의 사수들이 한꺼번에 그런 소리를 토해내는데에야.
'솔져스'에 묘사된 전장은 바로 그러한 폭력의 무자비한 몰생명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그러한 야만에 드리운 탐미적 환상을 어서 어서 걷어 내라고 재촉하는 듯 했다.
전쟁터에서는 모든 인문적 가치가 증발되어 버리고 오로지 남는 것은 생사존망의 절대기로 뿐인 것이다.
전쟁터의 총알은 그가 이제 막 태어난 첫아이의 아버지인지, 얼마나 고결한 인격의 소유자인지, 그래서 앞으로 얼마나 세상의 등불이 될 존재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게 '솔져스'의 희생자들은 그 어떤 당위성도 해명받지 못한 채 문득문득 죽어갔다.
그 과정에서 미처 풀지못한 생에의 집착은 원한의 파장으로 변환되어 이 우주곳곳에 켜켜히 쌓여갈 것이다.
문제는 현 문명체제가 존속하는 한, 그것은 바로 이 문명의 현 주소이며 지금 이 순간도 지속되고 있는 일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범문명차원에서의 전면적인 재고와 혁신에 이의를 제기하는 그 어떤 논리도 설득력을 상실해버리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우리는 개벽을 염원한다.
P.S. '솔져스'에서 느낀 감상 하나 더.
도입부에 프랑스군대가 현장에 투입되었다가 몰살당하게 되는데 그 중 유독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월맹군의 급습을 당한 프랑스군대의 나팔수가 공격신호를 보내려는 찰나, 첫소절도 채 부르지 못하고 유탄이 목에 박히며 쓰러지는 장면이었다.
이 나팔수는 군대가 행군을 하다가 '사주경계를 위해' 잠시 정지할 때도 그걸 알리는 나팔을 불렀다.
뒤에 이것을 두고 프랑스군대를 평가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자만심때문에 패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이미 아셨겠지만 프랑스군대는 현대전의 룰에 전혀 무지, 아니 아예 무시했다는 것이다
적군이 매복되어 있을 것을 뻔히 알고도 내가 여기 있노라고 순진하게 나팔을 불어댔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월맹군을 얕봤는지를 말해준다.
아니면 당시까지도 유럽은 진군나팔을 동반한 전근대적인 전투를 치루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승부의 세계에서는 이렇듯 끊임없이 군더더기를 떨어내며 진보해나가는 중단없는 자기개혁이 요구될 뿐이지 묵은 가치에의 안일한 집착은 부질없는 어리광에 불과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