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전태일 분신 사건과 함께 우리나라 노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인 YH무역 사건에 대해서 들려드릴까 합니다.
YH무역은 1966년에 세워진 가발 회사입니다. 모두 알다시피 가발은 당시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 중 하나였습니다.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수출 지원 정책에 힘입어 10명에서 시작했던 YH무역은 4년 만에 수천 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는 국내 최대 가발 업체로 성장했지요. 전체 기업 순위에서도 15위를 차지한 굴지의 대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YH무역의 노동자들은 회사의 성장과는 무관하게 어려운 생활을 계속해야만 했지요. 경영진들은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고용했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맘에 들지 않는다 싶으면 불법 해고, 부당 전직, 감봉 등의 제제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 11월에 전태일의 분신 사건이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처우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이지요.
회사의 처사에 견디지 못한 여성 노동자들의 불만은 결국 폭발합니다. 1975년 ‘전국섬유노조 YH지부’를 결성한 것이지요. 물론 회사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노동조합 결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노동자들을 즉시 해고하였지요. 그럼에도 노동조합은 지속적인 근무처우 개선을 요구하였고, 같은 해 12월에는 50%의 상여금 지급을 명문화하는 성과를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지요.
YH무역은 당시 무리한 사업 확장과 2차 석유파동 등의 영향으로 경영상태가 악화된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이 정도라면 경영진은 최선을 다했지만 불운하게도 사업이 잘 되지 않았다라고 변명을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YH무역의 더 큰 문제는 불법으로 공금을 횡령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창업자인 장용호는 회사의 자금을 빌리는 형식으로 15억 원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용 인터내셔날 상사’를 세웁니다. YH무역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였지요. 하지만 원래 빌린 15억을 갚지도 않았고, 제품의 대금 역시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장용호 대신 YH무역의 경영을 담당한 진동희 역시 상여금 명목의 허위 장부를 만드는 등의 비리를 저지르며 자금을 빼돌렸지요.
그리고 이런 경영상의 책임을 모두 노동자에게 돌립니다.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는 것으로 모자라 결국 1979년에는 폐업 공고를 내지요.
당장 생계가 막혀버린 노동자들은 야간 농성을 하며 고용 승계 및 폐업 철회에 대한 협의를 요구하지만 회사나 관계 기관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합니다. 해고수당을 8월 10일까지 수령하지 않으면 법원에 공탁한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보내지요. 결국 노동자들은 당시 김영삼 총재가 이끌던 신민당에 어려움을 호소하기로 결정합니다.
YH무역의 여성 노동자들은 8월 9일에 신민당사에서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농성 투쟁을 시작합니다. 노동자들에게 신민당사 농성을 알선한 건 ‘도시산업선교회’라는 개신교 단체였습니다. 개인구원보다는 사회구원이라는 신념 아래 적극적으로 노동운동을 지원하던 선교 단체였지요. 원칙상 정당 건물에서 허락받고 하는 농성은 강제해산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노동운동에 적대적이었던 유신 정권은 원칙을 무시하고 8월 11일에 강제해산에 들어갑니다. ‘101호 작전’이라고 명명 된 진압작전이었지요. 경찰들은 무차별 폭행을 통해 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합니다. 노동자들은 물론 신민당 의원들과 취재 중이던 기자들까지 큰 부상을 입지요. 심지어 노조 집행위원이었던 당시 21세의 김경숙 씨가 추락사하기도 합니다.
강제연행 직후에는 노동자들을 배우 조종한 혐의로 고은 시인, 문동환 목사 이문영 교수 등의 인사들을 구속하기도 합니다.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은 구속되지는 않았지만 상도동의 자택에 끌려가 연금 당했지요.
YH무역 사건은 당시 만연했던 기업주의 비도덕성과 노동자의 고통을 널리 알렸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큽니다. 사건 직후 곳곳에서 진압에 반대하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벌어졌지요.
특히 김영삼 및 신민당 인사들의 모습이 크게 부각되었지습니다. 김영삼 총재는 이후 <뉴욕타임스>와 기자회견 중에 “미국이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압력을 통해 박대통령을 제어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되어 김영삼은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당하지요. 이 영향으로 일어난 것이 같은 해 10월 16일에 벌어진 부마민주항쟁입니다.
곧 1979년은 ‘YH무역 사건’ - ‘김영삼 의원직 제명 파동’ - ‘부마민주항쟁’ - ‘10.26사건’ 으로 이어지는 유신 정권 몰락의 해이기도 합니다. 노동자들의 고통과 저항이 독재타도의 도화선 역할을 한 것이지요.
첫댓글 비도덕적인 기업주는 불법대출, 공금횡령으로
자금을 빼돌리고 폐업신고,
노동자는 농성투쟁 하다가 하늘만 바라보고...
참 딱하다. 잘 읽었습니다.
어두웠던 한 시대의 역사적 사실입니다.
노동자들의 흘린 땀과 피로 지금 누리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