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서
- 도종환
강물이 우리에게 주는 소리를
더 오래 듣고 있어야 했다
강물이 흘러 아래로 가는 뜻을
다 아는 듯 성급하게 전하러 다니기 전에
가르치려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게 강물의 힘줄이건 멈추지 않는 빛깔이건
오히려 물줄기 만날 때마다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먼저 생각해야 했다
흘러가며 반짝이는 풀과 꽃들 만날 때마다
꽃으로 열매로 올라가려 기를 쓰지 말고
뿌리 쪽으로 소리 없이 내려가야 했다
어디서 이 실패는 비롯되었는가 골똘해지기 전에
조금 고였다 싶으면 서둘러 바다로
이끌고 가려 한 건 잘못이었다
고여 넘쳐 저절로 흐름을 찾아갈 때까지
한사리 가득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ㅡ월간 《시see》(2023,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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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짧은 정치사에서 유명한 문학인이 앞자리를 차지한 일이 거의 없습니다
담쟁이 시인이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지켜보았지만
남북화해 무드에 휩쓸려 웃음기 싹 뺀 얼굴로 기자들 앞에 몇 차례 서는 그 정도 역할 뿐이었습니다
문학 정신은 한 편의 시를 잉태하고 우리말로 옷감 한 벌 짜내면 그만입니다
주위를 가르치러 들다가는 그 정신마저 혼탁해지지 않던가요?
남쪽의 담쟁이는 휴전선 철조망을 넘지 못하고, 아직 155마일에 꽉 막혀있습니다
임진강이 얼어붙었다는데, 철원 평야에 겨울철새들이 다시 날아와 머문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