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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讀>일본 간첩의 조선 정탐록"(2부) 🕹조선의 상업 활동 39. 지폐에 대한 평가 공방전 엽전 외에 통화가 없는 나라 사람의 생각은 황당했다. 조선인들은 지폐를 보면 이렇게 말했다. "이게 돈이라고? 면직물에 붙인 인쇄물이 전부인데?" "우리 속이려고 하는 거 아님?" "만약 이런 걸. 돈이라고 가지고 다니면 도적들한테 엄청 빼앗길 걸." 40. 조선의 통화: 당오전(當五錢)의 현실 현재 조선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상평전(上平錢)과 당오전(當五錢) 두 종류가 있다. 모두 공방전 엽전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상평전 5개의 가치를 지녔던 당오전은 지금은 그딴 거 없어졌다. 그냥 다 똑같은 엽전으로 취급되어 당오전은 이름만 있을 뿐 특별한 가치는 없었다. ▲ 구한말에 만들어진 상평통보와 당오전: 사실 생긴 것도 같았다. 41. 인삼 인삼은 조선 특유의 명산물이다. 산지는 경기도의 개성, 용인, 충청도의 괴산, 전라도의 금산 등이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개성 송도의 인삼이다. 품질이 좋은 것은 가격도 비쌌다. 그런데 조선에서 인삼밭을 가진 자는 반드시 부자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재배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삼을 재배하는 밭은 나무 울타리로 사방을 둘러싸고 함부로 사람이 출입하는 것을 금했다. 그리고 밭 주변에 작은 움막 원두막을 지어서 파수꾼을 두고 지키게 했다. 42. 시장 경성, 공주, 평양,개성 등의 대도시의 시장은 나름 괜찮다 해도 기타 소도시의 시장이라는 것은 4개의 기둥을 세우고 짚으로 지붕을 엮어 얹은 조잡한 가옥들이 2,30개씩 줄지어 선 형태가 전부다. 5일에 한 번씩 장이 들어서는데, 장날이 되면 가까운 곳에 있는 상인들이 모여서, 시장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팔려고 하는 물건을 진열한다. 그리고 매매는 대부분 돈을 사용하지 않고 주로 물건을 교환할 뿐인데, 그 모양이 마치 상고시대를 연상케 한다. 한편 장이 서는 날 외에는 바늘 한 개도 파는 곳이 없었으므로, 식용품부터 일용의 잡화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날 사두지 않으면 안됐다. 때문에 장날에 비라도 내린다면 장을 열 수 없게 되므로 커다란 불편을 느끼게 된다. 43. 싸구려 물건 판매 서양의 상인들은, 일본은 싸구려 물건을 파는 나라라고 하여 일부러 일본 수준에 맞는 조악한 제품을 가지고 오곤 한다. 그런데 일본인들도 조선은 싸구려 물건만 판다고 하여 또 조선 수준에 맞는 조악한 제품만을 가지고 온다. 44. 중국인 조선팔도가는 곳마다, 시장에서 중국인을 보지 않는 지역이 없다. 이런 중국 상인들이 파는 물품은 대략 바늘, 못, 댕기, 부싯돌, 성냥, 담뱃대 등이었다. 이들은 조선인들과 섞여서 시장에 점포를 펴고 형편없는 음식을 먹고, 싼 옷을 입고 등으로 근검절약해서 나중에 귀국할 때는 큰 돈을 벌어서 가게 된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쓸데없이 한탕주의에만 눈이 멀어, 평소에 이러한 행동을 조롱하고 또 중국인을 미천하게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에 온 일본 상인들은 재산을 모으기는 커녕, 파산해서 빈털터리로 귀국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인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다. 45. 조선에서는 자본이 필요하지 않다. 일본에서 사업을 하려면 커다란 자본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조선은 빈약한 나라다. 자본을 써서 사업을 영위할만한 나라가 아니다. 큰 돈을 가지고 와봤자 그걸 쓸 방도가 없다. 요컨대 조선은 돈 없는 자라면 한번 도전해볼 곳이다. 중국인들만 봐도 한 푼의 자본도 없이 와서 거액의 재산을 얻어 귀국하는 자들이 많다. 46. 우물 안의 개구리 경성에 있는 영국 영사관의 고용인 최모 씨가 일찍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씨 "영국인들은 하루 50냥씩의 담배를 피우더라. 50냥이면 일가 식구 (그들이 먹을 수 있는 밑천인데 그 교만과 사치를 생각하면 영국이라는 나라는 곧 망하게 될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서 거친 식사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형편의 조선인이 지금 누구를 걱정하고 있는 것인가! 계수나무를 장작으로 때고 옥으로 밥을 짓고 있는 부자 영국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하루 50냥의 담배 값을 가지고 교만과 사치의 극치라니 우물 안의 어리석은 개구리는 참으로 막막하다. 🕹 조선 여행 47. 여름 여행 방 안에는 빈대, 모기, 이, 벼룩이 많아서 도저히 실내에서 잠을 잘 수 없다. 여름에는 객사의 주인도 실내로 안내하지 않고 안에 있는 정원 혹은 길 위에 돗자리를 깔고 목침을 가지고 와서 그 위에서 자게 한다. 그래도 벌레들은 여러 무리가 되어 공격해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마른 풀을 태워서 모기를 쫓아내면 모기가 모이지 않지만 사람들도 연기를 마시는 통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점점 연기가 없어지는 것이 느껴지면 머지않아 모기떼가 소리를 내며 귓가를 스친다. 특히 빈대는 한번 물면 일주일 내내 아프다. 48. 선착장 조선의 강에는 대개 교량이 없다. 배로 건너가거나 배가 없을 때는 그냥 옷을 벗고 헤엄쳐가는 수밖에 없다.
49. 요리점과 여관 조선에 가보지 않는 사람들은 조선에도 일본과 같은 요리점, 여관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선의 요리점도 여관도 이름뿐이고, 차라리 없다고 해도 거의 틀린 말은 아니다. 그 요리점이라고 하는 것은 '주막' 이라고 부르는 곳인데 여기에는 따로 손님방 이라는 것이 없다. 대충 한방에 마부, 가마꾼, 여행객 들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는 것이다. 여관이 없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일본의 싸구려 여인숙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여관은 음식 값을 받을 뿐이고 그 외에는 숙박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때에 따라서는 둥근 된장(메주)을 천정에 매달아 두는 집도 있어서 그 냄새가 매우 심하여 집안에 들어가면 곧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두통이 일어날 때도 있다. 또 조선 사람은 담배를 좋아해서 여관의 실내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도 문을 열어 환기시키려 하지 않는다. 옆으로 누워 있는 자, 앉아 있는 자, 잠자는 자, 깨어 있는 자, 방귀를 뀌는 자, 이를 가는 자, 한방에 십 수명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누워 있다. 이 모양을 보면, 차라리 야외에서 노숙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게 될 정도다. 조금의 결벽증이라도 있는 자는 잠시도 여기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것이다.
50. 길 옆의 부뚜막 조선을 여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길 옆에 돌을 쌓고, 불을 때서 그슬린 흔적이 나는 작은 부뚜막을 보게 된다. 이것은 조선의 여행객이 스스로 밥을 지어서 식사를 한 흔적이다. 조선의 가난한 여행객은 흙으로 만든 작은 솥을 지고, 쌀을 사서 스스로 밥을 짓고, 되도록이면 여관에서 식사를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순박한 풍조가 아니라 가난하기 때문이다. 51. 불결함 불결함은 조선의 명물이다. 경성은 말할 것도 없고, 팔도 가는 곳마다 도시다운 도시를 볼 수가 없다. 거리에는 가축의 배설물과 인분이 가득 차있고 그 불결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시장의 중앙에는 공동변소를 설치했지만 그것은 다만 짚으로 지붕을 엮고, 거적을 두른 조잡한 것인데 그 똥을 받아 먹으려 개와 돼지를 길러 사람이 들어가면 옆에서 기다렸다가 인분이 나오면 받아먹는데, 그 모습을 보면 거의 구토를 하게 된다. 음식물의 불결함 역시 이 나라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썩은 생선과 야채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음식물을 조리하는 모양을 볼 때는 어떠한 호걸이라 해도 수저를 드는데 있어 주저할 수밖에 없다. 요리하는 자는 도중에 간을 보는데 자신의 입 속에 들어간 숟가락으로 계속 간을 본다. 젓가락 같은 것은 오랫동안 거의 씻은 일이 없고 콧물을 닦은 손으로 김치 항아리를 젓는 등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방안에 들어가면 벽은 누런색으로 닿으면 의복이 더러워지고 지붕 밑에 진흙을 바른 천정은 낮아서 하품을 하면 목이 지붕에 닿을 정도다. 넓은 방이라고 해도 크기는 3평 정도며, 좁은 방은 0.5평에도 미치지 못한다. 방안에 앉아있는 손님들은 만일 가래 뱉을 때는, 앉아 있던 멍석을 들고 그 아래에 뱉고, 콧물이 떨어질 때는 손을 비비고 바로 벽에 바른다. 그래도 사람들은 전혀 불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객사에 목욕탕이 없는 것 또한 더욱 여행자를 고통스럽게 한다. 여름은 빈대와 모기가 매우 많아서 지친 몸에도 잠을 자기 힘들고 파리와 같은 것은 사시사철 실내에 날아다니고 있다. 객사의 문은 작아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조선의 열악한 인프라 52. 좁디 좁은 도로 어느 날 경성의 길을 조선인에게 필담으로 물었더니 조선인이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내가 찾아가려던 구포는 경성에서 큰 길과 접한 곳이었다. 그러데 목적지 근처에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작은 길 외에 큰 길은 보이지가 않았다. 혹시 잘못 들어왔나 싶어 샅샅이 뒤져보아도 결국 큰 길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조선인이 말한 큰 길이란 어쩌면 이 작은 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과연 내 생각이 옳았다. 조선의 도로가 형편없다는 사실에 몹시도 놀라는 순간이었다. 일본의 역사서에서는, 흔히 신라시대에 이미 백성에게 우차법을 가르쳤다고 나와 있지만, 이런 논두렁 같은 도로를 어떻게 우차가 통행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에서 경성까지의 도로는 모두 이와 비슷하다. 일본의 마을길 보다도 심하게 울퉁불퉁 하여, 군대는 일렬로 가지 않으면 통행하기도 어렵다. 오직 의주 ~경성에 이르는 길만 도로가 다소 정돈되고 사이즈도 넓어져, 군대의 2열 행군이 가능할 정도였는데 이는 중국과의 사대의 결과로서, 중국 사신의 왕래길이라 다른 길보다 더 좋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53. 민둥산 조선의 산은 대부분 민둥산으로 수목이 없으며 조금만 가물어도 수원(水原)이 바로 말랐다. 이럴 때면 논밭이 갈라지고 벼 모시대종이 붉은색을 드러내어 백성들이 고생하고 근심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높은 땅을 관계하는 데는 수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뭄을 쉽게 극복할 수 있지만, 조선에는 수차가 없어 겨우 물통으로 물을 퍼 올렸기 때문에 그 불편함은 실로 말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가뭄이 계속되어 거의 수확이 없을 때 조선인은 아녀자를 부잣집이나 중국인에게 팔아서 노비로 만들어서 겨우 쌀과 보리를 구했다. 흉년에 백성들은 기근으로 고통을 받아 부잣집 문앞에 가서 밥을 구걸하는 모습, 찢어진 옷에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뺨에 뼈가 튀어 나올 정도로 마른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걷는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하다. 답답한 마음에 한번은 조선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다. 혼마 "당신 나라의 산에는 왜 수목을 심지 않는가?"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조선인 "호랑이의 피해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애써 나무를 심지 않은 거임."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누가 봐도 빠져 나가려고 꾸며대는 말일 뿐이다. 54. 제방(堤防) 조선 팔도의 하천은 평소에는 물이 적거나 완전히 말라버린 상태지만, 조금이라도 비가 오면 물의 양이 바로 불어난다. 비 온 뒤 여러 날이 지나면 홍수가 범람하는데 이때 홍수로 밭이 잠기는 것을 염려해 조선사람은 될수록 물가를 피해 경작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제방사업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경작지가 있어도 종자를 뿌리고 묘를 심는 것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부산 ~구포 사이에 김해라는 낙동강의 삼각주가 있는데 그 땅은 매우 비옥한 땅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미 한번을 쓸 수 없었다. 55. 공동체 정신의 부재(不在) 제방사업에 한정되지 않더라도 무슨 사업에서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조선에서는 바랄 수가 없다. 도로가 수리되어 있지 않고, 위생적이지 못한 것도 공동체 정신이 부족한 결과다.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도 개개인이 소자본을 가지고 일시적으로 도모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안동포, 화문석,부채 등의 특이하고 우수한 산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널리 해외에 판로를 열려는 의지가 없으며 상공업은 여전히 발달하지 못하고 있다. ☆☆☆☆☆☆☆ 일본인이 기술한 위의 내용은 거의 모두 진실이다. 우리는 실제로 위와 같은 시대와 환경을 직접 체험하였고 625전쟁 후에는 더 비참하게 살았다. 그러나 우리 세대에 가난을 극복하고 복지, 민주, 인권을 추구하게 된 것은 놀라운 변화다. 그러나 정의와 양심이 실종된 정신적 후진성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참다운 문명사회를 여는 작업은 건전한 인격을 추구하는 인성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ㅡ이철세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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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본은 선진국입니다 그런데도 친일 친일 하며 일본을 미워만 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조선시대의 그 모양이 보입니다 특히 이, 빈대, 벼룩, 모기, 정말 참을 수 없는 기생충이지요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