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골키퍼는 한국 축구에서 가장 취약한 포지션 중 하나였다. 월드컵 무대에서 실점의 멍에는 줄곧 골키퍼에게 씌워졌고 국내리그에서는 용병 선수들의 득세로 국내 선수들은 설자리마저 잃은 채 한동안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K-리그의 발전과 더불어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1973년은 한국 축구에 무척 의미 있는 한해였다. 이운재, 서동명과 같은 걸출한 인물에 더불어 오늘 만나보려는 조준호(32)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선수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뒤늦게 만개한 자신의 기량을 한껏 펼쳐 보이며 독일 대표팀 승선을 꿈꾸는 조준호 골키퍼를 11월 25일 부천 SK 숙소에서 만나 보았다.
- 대표팀 예비 엔트리에 깜짝 선발되셔서 많은 사람들이 제법 놀라고 있습니다.
저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냥 우연히 휴식 시간에 인터넷 하다가 무심코 클릭을 딱 했는데 내 이름이 있어서(웃음). 어릴 때부터 항상 내 능력에 맞춰서 목표를 잡아 왔기 때문에 정말 대표팀은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거든요. 저는 정말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에 내가 대표팀에 갈 수 있다고 생각 자체를 못해 봤어요. 아직 예비엔트리라 좋아하기는 이르지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으니까... 주위에서는 많이들 그러세요 일단 이름을 올린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이제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현재로서는 실감이 나질 않아요.
- 김현태 코치님이 정말 좋아하시겠습니다.
일단 김현태 선생님이 가르친 골키퍼들은 전부 대표팀을 거쳤거든요. 저만 한 번도 없었는데 선생님이 많이 기뻐하시고 계세요. 좋은 결과로 보답하고 싶은데 기회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가 중요하지요.
- 사실 만나기 전에 성격이 좀 내성적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떻습니까?
제가 워낙 나서는 것을 잘 못해요. (혹시 그 A형?) 아니요. O형인데 뭐랄까 A형 같은 O형이라고 해야 하나? 사람은 다 여러 가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잖아요. 하지만 어렸을 때는 상당히 활발했어요. 실업팀에 있을 때 까지만 해도 운동에 관해서 너무 과감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도 듣곤 했는데, 프로에 와서 시련을 겪으니까 사람이 좀 차분해지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하더라구요. (경륜이 쌓여서 그런 것은 아닌가 싶은데..) 하하 글쎄 그런 것은 아닐거에요. 제가 프로 7년차인데 다른 골키퍼에 비해 경기수가 그렇게 많지도 않은 편이거든요.
-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대학 졸업하고 은행 팀에 입단을 한 점이 좀 특이합니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주택은행으로 입단을 했습니다. 하하 제가 말했잖아요. 내 능력을 알기 때문에... 대표 팀도 같은 맥락인데 한번 해보고는 싶겠지만 이운재, 서동명 이친구들이 저랑 동기거든요. 워낙 잘들 했으니까 뭐, 도리어 저는 프로팀에 가는 것 보다 은행 팀에 가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래서 누구보다 일찍 진로에 대한 결정을 내렸었습니다. 그렇게 주택은행에 입단해서 우승도 하고 성적을 좀 올라다보니 좀 욕심이 생기더군요.
물론 그 당시에 프로에서 제의도 있었지만 팀 사정상 참 쉽게 떠나기가 힘들었습니다. 근데 그때 IMF가 터지면서 구단이 해체가 되고나니까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은행에 나가서 동전이나 바꿀까...’(웃음) 아니면 ‘모험을 해야 하나...’ 주위 분들이 용기를 많이 주셨습니다. 계속 운동을 해라. 그렇게 드래프트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 그렇게 입단한 포항 시절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요?
포항에 입단을 해서 1년차 때 지금 인천의 김이섭 골키퍼와 주전 경쟁을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번갈아가면서 경기에 출전을 했거든요. 그러다 2년차 때는 제가 거의 게임을 나가다보니 참 내 자신이 안이한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내가 이제 주전이구나’(웃음) 근데 그 다음해 갑자기 병지 형이 입단을 하시는 겁니다. 당시 최순호 감독님께서 많은 선수들을 영입하셨는데 그렇게 갑자기 병지 형님이 오시니까 나도 당시에는 우선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제 자신이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다보니 더 그런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최순호 감독님께서 저를 개인적으로 불러놓고 얘기를 하셨습니다. “우리 팀은 세컨드 골키퍼가 필요하다. 왜 이렇게 고민을 하느냐?” 그래서 “저는 나이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출장 시간을 염두에 두게 된다.”고 말씀드렸죠. 그런 점에서 감독님이 저에게 배려를 많이 해주시겠다고 하셨고 사실 병지 형이 들어와서 저의 입지가 좁아진 면도 있지만 사적으로나 운동적으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지금도 제가 제일 존경하는 선배중의 한 분입니다.
- 도리어 좀 밉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선수인데...
많은 사람들이 병지 형을 보면 개성이 매우 강하고, 자기 생각을 많이 할 것 같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남을 배려하고 주위 사람들을 챙기는 것도 그렇고 정말 정이 많으시거든요. 특히 유달리 저한테는 더더욱 그러셨고, 지금까지도 병지 형하고는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씩 통화를 합니다. 지금도 도움을 많이 받아요. 일단 운동 얘기를 많이 하죠. 부상은 없는지 팀 분위기는 괜찮은지에 대한 얘기가 많고, 그 외에는 사적인 대화를 합니다.
- 지금에 와서 김병지 선수와 정면대결을 한다면 어떨까요?
안되죠. 아직 안됩니다. 운동 쪽으로는 아직까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병지 형은 정말 축구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제일 배우고 싶은 점이 자신감을 갖고 축구를 즐긴다는 점이예요. 저 같은 경우에는 소심한 면도 있고, 실수를 하면 오래 마음에 담아두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병지 형은 실수를 하더라도 그것을 빨리 잊고 다시 정상 페이스를 찾고 그래요. 지금도 위기 대처능력은 우리나라에서 병지 형을 따라갈 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부천으로 입단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집니다.
포항에서 자리를 못 잡고 있다가 FA가 되었을 때 사실 인천으로 갈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어찌어찌하다보니 아무것도 결정이 나지 않은 채 한 열흘이 공중에 붕 떠버린 겁니다. 참 답답한 상황이었고, 그때 또 포항에서 다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갑자기 부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정해성 감독님이 직접 전화를 하셔서 아무 조건 없이 입단을 권유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기분 좋게 부천으로 이적을 하게 되었죠.
- 아무래도 조준호 선수가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건 작년 FA 컵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은 많은 분들이 잘 모르고 계시지요. 한윤이나 용형이는 많이 아셔도 저는 아직. 그때 기억을 하면 지금도 너무 아쉽습니다. 프로에 들어와서 진짜 우승을 한 번도 못해봤거든요. 정말 왜 연말에 외국 보면 우승하고 샴페인 막 터뜨리고 선수들끼리 뿌리고 하잖아요. 나는 그런 걸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으니까 작년에 그런 기회가 온 거에요. 근데 딱 졌을 때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울어 봤습니다. 왠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기분이 들었었어요.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사실 내가 팀에 처음 왔을 때 후보 선수를 불러다 기회를 주셨는데 뭔가 보답을 하고 싶고 그런 부담이 좀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정규리그에서 최하위를 하고 ‘내가 와서 달라진게 뭐가 있나?’ 라는 자책감이 들 때 FA컵 결승전을 올라갔으니 정말 챔피언을 하고 싶었습니다.
서포터들이 꽃도 주고 축하도 주고 했는데 저는 진짜 못 나가겠더군요. 너무 슬퍼서.
- 올해는 부천으로는 아쉬운 결과지만, 조준호 선수는 프로 데뷔 후 최소 실점률을 기록했고 주전 골키퍼로서 제몫을 해낸 한해가 아닌가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올해는 제가 특별히 잘했다기보다 말 그대로 수비수와 미드필더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골키퍼를 실점율을 가지고 평가하기 보다는 위기 상황에 있어 얼마나 대처를 하고, 선방을 많이 해주느냐가 중요한 것 아닐까요? 나름대로 작년에는 정확히 1점대 실점을 했어도 오히려 팀 기여도가 높았는데 올해 실점율은 더 좋을지 몰라도 팀에 도움은 더 못줬다고 생각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많이 했었어요. ‘아... 이런 일들도 있구나...’ 너무 마음적으로 힘들다보니까 코치 선생님한테 차라리 저를 좀 빼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완전 지옥을 걷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하나? 포항 전에 백패스를 잘못 받아 실점도 하고, 부산 전에서는 도화성 선수의 최장거리 슛 실점도 하고.(웃음)
그런 일 겪다 보니 정말 초반에는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물론 후기에 가면서 좋은 모습도 보였고 결과적으로 좋은 일도 많이 생겼는데, 저는 항상 그래요 ‘좋은 일이 생기면 나쁜 일도 생기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하죠.
- 부천의 후기리그 막판에 연승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일단은 선수들의 목표의식이 확실했었죠. 처음엔 우리가 플레이오프에 과연 진출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가졌었어요. 그래도 중간에 연승을 많이 했었고, 후기에 들어오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는 거에요. “할 수 있겠구나!” 또 국내 선수들 끼리 하다보니까 단합도 잘되고 그래서 선수들 간의 의지가 강했고 감독님께서도 그런 점을 많이 이끌어 주셔서 좋은 결과도 있었다고 봅니다.
- 정해성 감독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항상 2군한테는 동기부여, 1군에게는 긴장감을 주세요. 예전 히딩크 감독이 추구했던 모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게임을 뛴 다고 하여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요. 제가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도 무조건 뛰는 것이 아닙니다. 스타라고 해도 안이한 플레이를 하면 바로 2군, 2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면 바로 1군으로 올려 주시기 때문에 동기 부여가 확실하게 됩니다. 작년 같은 경우에는 선수단 40명중에 2-3명 빼놓고 1군 경기를 모두 뛰었었거든요. 올해도 상당수가 그랬고, 여러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세요.
카리스마!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이 됩니다. 저는 김현태 코치님이 주로 주문을 하시지만, 제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감독님 중에 선수 장악능력은 최고라고 생각해요.
- 문득 어린 시절은 어떻게 지내셨는지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필드 플레이어를 했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에 가서 감독님이 골키퍼를 해보라고 하시더라구요. 나는 정말 하기 싫었는데...(웃음) 지금도 남들은 내가 골키퍼를 했으니 현재까지 살아남았다고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평소에 안 되는 것도 누군가와 경쟁을 하면 갑자기 되는 게 있어요. 승부욕이 유달리 강해요. 그래서 아마 필드플레이어를 했어도 대성까지는 아니겠지만 쉽게 운동을 그만두지는 않는 수준이 아닐까 해요. (웃음)
사실 제가 어렸을 때 가정환경이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웠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누구나 어려운 환경은 있지만 정말 하루하루 살기가 어려울 정도였거든요. 하지만 제가 인복이 있는지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정말 고마운 은사님들과 주변 분들이 많습니다. 그때 생각이 많이 나서 지금도 1년에 두 번 이상은 찾아뵙고 있거든요.
고등학교 때부터 솔직히 돈을 먼저 벌고 싶었습니다. 내가 어렵다보니까 우선 돈을 좀 벌어서 일단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그때 항상 같은 팀에 잘하는 선수를 마음속 경쟁자로 삼아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 참 누구 못지않게 인생의 쓴맛을 많이 보신 셈인데, 현재의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제가 몸소 느낀 것을 갖고 후배들에게 한마디를 하자면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흔히 프로에서 실력이 괜찮다는 선수도 게임을 자주 못 나가거나 슬럼프에 오면 자기가 한창 화려했던 시절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현재 젊은 선수들도 이런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일찍 깨우치고 빨리 성숙해지는 선수들도 많아요.
저는 팀에서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예요. 때로는 악역을 맡는 편이죠. (그래도 후배들은 좋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사람이 다 자기 욕심이 있는데, 팀이 잘 되야 나도 잘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나중에 후배들이 저의 뜻을 알겠죠.
- 외국 선수 중에 좋아하는 선수가 있다면...
덴마크의 슈마이겔 선수요. 골키퍼의 전설이라고 하는데 자신 있는 플레이가 정말 좋아요.제일 닮고 싶은 것이 선수들을 장악하는 면이 배울 점인 것 같아요.
- 골키퍼로써 남달리 필요한 요소라면 무엇일까요?
성격인 것 같아요. 저 같은 내성적인 것보다는 외향적인 것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다양한 유형이 있어요. 이운재 선수처럼 듬직한 스타일이 있다면 병지 형처럼 활동력이 큰 스타일도 있구요. 자기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 있는거죠.
-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요?
앞서 말했듯이 작년 FA컵 결승전이고, 올해 마지막 경기도 기억에 남아요. 저는 승부차기와 인연이 되게 많아요. 결정적일 때 항상 맞붙게되요. 승부차기에서 좋은 기억이 많았는데 작년 FA컵의 아쉬움이 많죠. 경기 흐름상 저희 팀이 이길 줄 알았거든요.
그리고 올 시즌 대전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는데, 저희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선수들의 경험을 무시 못 하는 것처럼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어본다고 저희가 조금 부족했기 때문에 놓친 경기였어요. 감독님께서 하신 말씀이 “2등은 정말 노력하면 만들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1등은 하늘이 만들어줘야 한다.”는 말을 하셨는데, 아직까지 하늘이 만들어주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하늘이 감동할 만큼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 프로 7년차입니다. 7년간 지켜본 K-리그에 대해 한 마디 부탁합니다.
우리 K-리그가 속도감에 느리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는 부분도 있어요. 영국 프리미어리그나 기타 유럽리그를 비교해보면, 전체적인 선수들의 능력의 차이는 있죠. 가장 큰 차이는 볼을 키핑하는 능력이라고 봐요. 그것에서 공격을 전개하는 속도가 차이가 나는 것이니까. 그리고 연고의식은 아직까지 조금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자기 소속이라는 것이 아직 부족한 것이 맞거든요. 솔직히 국가대항전이 인기가 있는 것은 ‘자기의 나라’ 라는 소속감이 있거든요. 현재까지는 프로축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지 아직 연고의식자체는 유럽리그에 비해 좀 부족하다고 봅니다.
- 골키퍼로서 상대하기에 K-리그 공격수 중 가장 인상적인 선수는 누가 있을까요?
정말 박주영 선수는 용병 같아요. 볼 키핑능력과 슈팅 타이밍이 국내 선수들과 다른 면이 있습니다. 용병 선수들이 득점력이 좋은 것도 키핑력이 좋으니까 슈팅 타이밍이 빨라요. 남들은 두 번 잡을 때 그 한 번에 잡아서 슈팅으로 연결하거든요. 위치 선정도 참 좋구요.
하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시련은 충분히 올수 있어요. 그러한 시련을 얼마나 노력하면서 버텨내는가가 그 선수들의 성공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솔직히 게임을 뛰다가 입지가 좁아지면 대부분이 이적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그런 마음가짐을 갖는 것은 절대 좋지 않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도 요새 젊은 친구들은 확실히 달라요. 어떻게 보면 인간적으로 좀 정이 없고 이기적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훈련적인 측면에서 일찍 깨닫거든요.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봐요.
- 경기가 중계되는 화면상으로 보면 가끔 도인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하,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 하는데 사실 경기장에서는 냉정해지려고 합니다. 포항에서도 긴장을 풀고 있다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내 자신을 조금 힘들게 만들 수 도 있지만 숙소, 연습장, 경기장에서 절대 긴장을 늦춘다는 생각은 안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서 기다리는 자에게 반드시 기회는 찾아온다고 믿습니다.
K-리그 명예기자 김용일, 홍성인
첫댓글 포항 김병지 조준호 김이섭시절이그립군 ㅋㅋㅋ 골리명가포항 ㅋ
조준호.. 대전과의 마지막 홈경기에서 보여준 안 좋은 모습. 복수합니다!!
와우 코 엄청 크시넹
정말 좋은선수.
-_-;; 조준호 키퍼.. 비록 얼굴은 잘알려져 있지아느나... 실력은 최고인선수... 볼처리능력은 좋은거 같은데... 울화성씨 한테 65m 먹은게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