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제 - 안전항해와 좋은 날씨를 기원 - 안전한 바다
항공기나 자동차 등 다른 교통수단과 달리 운행 중에 제사나 축제를 여는 운송수단은 배가 유일하다. 그것은 바로
선박이 적도를 통과할 때 지내는 적도제(赤道祭, Neptune's Revel)이다.
적도는 지구를 남반구와 북반구로 나누는 가상의 선이고 위도 0도를 뜻한다. 적도제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과거 범선 항해시대에 적도 부근의 무풍지대에 들어오면 바람이 없어 배가 움직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자 선원들이 바람을 불러오기 위해 바다의 신 '넵튠'에게 살아있는 말을 바치는 제사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대의 동력추진 선박은 바람과 관계없이 항해 할 수 있으므로 본래의 적도제 의미는 사실상 퇴색되었고, 좋은 날씨와 무사고 및 안전항해를 바라는 기원제 정도의 목적으로 제사를 지낸다.
또한 과거 선박 속력이 빠르지 않고 선원수가 많던 시절에는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고, 적도를 가장 많이 통과한
사람이 바다 신(神)으로 분장하여 세상으로 내려오면 선장이 바다의 신에게 적도를 여는 큰 열쇠를 받아들고 그 뒤를 가장행렬로 분장한 선원들이 따르며 즐겁게 보내는 지루한 항해를 달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빠른 속력과 최소의 선원들로 구성된 오늘날 선박에서는 규정된 항해, 기관당직 운영과 기본적인 선박의 유지관리만 가능하므로 적도제와 같은 행사를 치루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도제의 의미는 남아서 적도를 통과하는 날에는 오후 과업을 쉬면서 선교에 간단한 제사상을 차리고
승무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 선장이 제주가 되어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며 안전항해를 기원한다. 선장이 절을
할 때 항해사는 기적을 길게 울려 바다 신이 듣도록 한다.
부지런하고 솜씨 좋은 조리장이 승선하고 있으면 항구 출항 전 제사 때 쓸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하므로 승무원들은
적도제를 손꼽아 기다린다. 또한 다른 날과 달리 이때는 공식적으로 음주를 허용하므로 가볍게 한 잔씩 할 수도 있다. 육지에서 먹어보기 힘든 바다가제도 외국 항에서 선적했다가 이날 맛을 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외항 선박의 항로는 남북방향보다 동서방향이 많다. 그 이유는 북미 대륙과 아시아 및 유럽 그리고 중동과 아프리카 북부 등 지구상 대부분의 육지가 북반구에 속해 있고, 많은 선진국이 이곳에 있어 이들 대륙사이에
화물운송이 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남반구는 오세아니아와 남미 대륙 정도이므로 적도를 지나는 항로와 항해가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다수
동서방향 항해선박은 적도제를 지내지 못하므로 경도 180도 날짜변경선을 지날 때 적도제와 같은 제사를 지낸다.
화물선과 달리 승선자가 많은 해양계 실습선이나 해군의 원양순항 훈련함대에서는 바다 신을 정하고 용왕에게
푸짐하게 제사도 지내며 죄인들을 불러와 재판을 하는 등 축제를 한다. 이날은 선장이나 최고 지휘자가 바다 신에게 그 동안의 악행(?)을 조사받고 죄값을 현금이나 현물로 낸다.
항상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며 근무하는 승무원들이 있는 한 안전항해를 기원하는 적도제의 풍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항해중 좋은 날씨만 있고 악천후가 포함된 기상예보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사 후에 명주실로 묶은 명태를 기상예보 수신용팩스기 위에 올려놓은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고 인간이 자연 앞에 미약한 존재임을 문득문득 느끼곤 한다.
사진 44年 전함 나가토(長門) 함상의 적도제(赤道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