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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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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화려한 誤讀 외 / 임영조
동산 추천 0 조회 50 15.12.08 21: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화려한 誤讀 / 임영조  

 

 

장마 걷힌 칠월 땡볕에

지렁이가 슬슬 세상을 잰다
시멘트 길을 온몸으로 긴 자국

행서도 아니고 예서도 아닌

초서체로 갈겨쓴 일대기 같다

한평생 초야에 숨어 굴린 화두를

최후로 남긴 한 행 절명시 같다

그 판독이 어려운 일필휘지를

촉새 몇 마리 따라가며 읽는다

혀 짧은 부리로 쿡쿡 쪼아 맛본다

제멋대로 재잘대는 화려한 오독

각설이 지렁이의 몸보다 길다

오죽 답답하고 지루했으면

隱者가 몸소 나와 배밀이 하랴

쉬파리떼 성가신 무더위에

벌겋게 달아오른 肉頭文字로.

 

 

 

 

 

 

그 섬에 가면 / 임영조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

사람들 더러 아는 척 해도

실은 가는 길도 모르고

무엇이 있는지는 더욱 모르는

외딴 섬 하나를 나는 안다


햇볕과 바람 유독 넉넉하고 정갈한

그 섬에 가면 홀로 된 여자가

몇 뙈기의 외롬꽃을 가꾸며 산다

온 하루 김을 매고 속된 꿈 솎고

저물면 밤하늘에 총총한 별이 되는 섬 여자

나는 몰래 그녀를 사랑한다


가을볕 붉게 타는 수수밭 지나

고운 소금 뿌린 듯 메밀꽃 하얀

고샅길 질러 바다로 가노라면

꽃게처럼 웅크린 인가 몇 채 졸 뿐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다,무시로

참새떼소리 왁자한 탱자울 넘어

날아든 꿀벌들의 입맞춤이 진한지

참깨꽃 은방울이 섬 온 채를 흔든다.

 

그늘 깊은 뒷산 잡목숲에는

탁목조 한 마리가 산해경(山海經)읽듯

괭나무 찍는 소리로 하루해가 저물고

노을 젖은 은박지로 구겨진 바다

물빛  풍금소리 은은한  그 섬에 가면

나 혼자 엿듣는 방언이 있다

감쪽같이 나누는 사랑이 있다

아련하게 니스칠한 추억이 있다

세상과 먼 그 섬에 가면

 

 

 

 

 

 

염소를 찾아서 1 / 임영조

 

 

사시장철 검은 망토
하관은 빨아 박복한 턱에
재래식 수염 기르고, 종종
풍월을 읊는 소문난 음치
그 한심한 건달을 아시는지요
남이야 바쁘든 말든
자고 새면 들녘이나 냇가로 나가
유유자적 하루 해를 축내는 行者
해지면 제 그림자 밟고 돌아와
절망절망 고독을 씹는
그 하릴없는 축생을 아시는지요
참으로 딱한 한량이, 실은
먼 옛날 大國에서 흘러 들어온
글줄이나 했다는 귀족의 후예
여말에 남포현 외딴 섬
竹刀도 귀양갔다 풀려나 그 길로
羊角山 기슭 박토에 말뚝 막고
대대로 농사짓고 달빛 받아 글 읽던
청빈한 백면서생의 후예
그를 아시는지요
뿔은 세우되 冠으로 쓸 뿐
수염은 기르되 뽐내지 않고
식사 때는 으레 어깨부터 낮추는
누추한 처소도 탓하지 않는 샌님
억지로 목줄을 당기면
오히려 완강히 저항하는 외고집
개같이 아부할 줄 모르고
돼지같이 과욕 할 줄 모르고
고양이같이 교활할 줄 모르는
그래서 늘 외롭고 검소한 축생
그를 이젠 아셨는지요?

 

 

 

 

 

 

사막 1 / 임영조

 

- 타클라마칸

 

 

태초에 쓴 시는 사막이었다
자잘한 글씨로만 쓴 대서사시
타클라마칸 그 불귀(不歸)의 백지 위에
신이 남긴 불후의 명작이었다
사람은 물론 풀도 나무도 없고
날고 기는 짐승도 지운 여백이었다
다만 빛부신 태양과 목마른 시간
닮은 듯 서로 다른 상징이 모여
저마다 서걱서걱 빛을 뿜고 있었다
점자를 짚듯 낙타를 타고 가며
마음 자주 추슬러도 뒤똥거리고
눈에서는 모래가 흘러나와 쓰렸다
길이 끝나는 곳은 사막이었다
지평선 멀리 펼쳐진 푸른 호수를
가이드는 신기루라 하였으나
마음은 자꾸 호반으로 달렸다, 가서
모래경 읽는 주민이 되고 싶었다
가장 오랜 독자는 바람이었다
어느 대목엔 결 고운 밑줄을 치고
수 틀리면 뿌옇게 뒤집엎는 과격한
바람도 독자였다, 읽을수록 난해한
너무 방대해서 번역조차 겁나는
신이 마지막 쓴 불멸의 경전이었다
내가 읽은 타클라마칸 사막은.

 

 

 

 

 

 

사막 3 ― 낙타의 길 / 임영조

 

 

낙타가 가는 길은 늘 사막이었다
삶이란 대개 마른 모래벌판에
터벅터벅 발자국을 찍는 일
뛰어봤자 세상은 또 사막이었다

 

간혹 가다 얻는 한 무더기 가시풀
그 억세고 질긴 요행을 오래 씹었다
입안에 피가 터져 흥건하도록
반추하는 노역의 쓰라린 세월처럼
맨밥은 참 팍팍하고 지금거렸다

 

등짐이 무거워도 고개를 들고
평생을 앞만 보고 걸었다, 더러는
무릎이 까지도록 설설 기면서
비단길이 어디냐고 물으면
사막의 하루는 일교차가 심했다

 

모래바람 뿌옇게 미친 날이면
속눈썹 긴 눈을 자주 끔벅거렸다
봄이 다 가도 황사는 멎지 않고
수상한 풍문만 천지에 분분할 뿐
온다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길 없는 길을 가는 낙타는
등에 진 제 육봉이 무덤이 된다
가도가도 끝 모를 길은 사막길
그 길만이 도道라고 굳게 믿는
낙타는 제 무덤을 지고 다닌다

 

 

 

 

*******************************************

 

타는 제 무덤을 지고 끝없이 길을 걷는다.

늘 사막이고 늘 모래벌판인 생을 평생을 앞만 바라보고

걷는다.

시에서 채용된 매개물은 일반적으로 현실상상을

연결하면서 자아를 확인해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낙타의 역할시인을 대변해준다.

억세고 질긴, 가시같은 생을 씹으며 걷다가 피를 흘리는

시인의 쓰라린 노역을 낙타가 대신 표현해 주고 있다.

 

모래바람 뿌옇게 미친 날 그 며칠을 앓다가 그는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수상한 풍문처럼 다시 온다는 주인인 시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시인의 육봉은 무덤이 되었다.

시를 쓰다 그 길만이 도라고 굳게 믿는 낙타의 길,

그리로 임영조 시인은 갔다.

 

(필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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