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誤讀 / 임영조
장마 걷힌 칠월 땡볕에 지렁이가 슬슬 세상을 잰다 행서도 아니고 예서도 아닌 초서체로 갈겨쓴 일대기 같다 한평생 초야에 숨어 굴린 화두를 최후로 남긴 한 행 절명시 같다 그 판독이 어려운 일필휘지를 촉새 몇 마리 따라가며 읽는다 혀 짧은 부리로 쿡쿡 쪼아 맛본다 제멋대로 재잘대는 화려한 오독 각설이 지렁이의 몸보다 길다 오죽 답답하고 지루했으면 隱者가 몸소 나와 배밀이 하랴 쉬파리떼 성가신 무더위에 벌겋게 달아오른 肉頭文字로.
그 섬에 가면 / 임영조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 사람들 더러 아는 척 해도 실은 가는 길도 모르고 무엇이 있는지는 더욱 모르는 외딴 섬 하나를 나는 안다
그 섬에 가면 홀로 된 여자가 몇 뙈기의 외롬꽃을 가꾸며 산다 온 하루 김을 매고 속된 꿈 솎고 저물면 밤하늘에 총총한 별이 되는 섬 여자 나는 몰래 그녀를 사랑한다
고운 소금 뿌린 듯 메밀꽃 하얀 고샅길 질러 바다로 가노라면 꽃게처럼 웅크린 인가 몇 채 졸 뿐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다,무시로 참새떼소리 왁자한 탱자울 넘어 날아든 꿀벌들의 입맞춤이 진한지 참깨꽃 은방울이 섬 온 채를 흔든다.
그늘 깊은 뒷산 잡목숲에는 탁목조 한 마리가 산해경(山海經)읽듯 괭나무 찍는 소리로 하루해가 저물고 노을 젖은 은박지로 구겨진 바다 물빛 풍금소리 은은한 그 섬에 가면 나 혼자 엿듣는 방언이 있다 감쪽같이 나누는 사랑이 있다 아련하게 니스칠한 추억이 있다 세상과 먼 그 섬에 가면
염소를 찾아서 1 / 임영조
사시장철 검은 망토
사막 1 / 임영조
- 타클라마칸
태초에 쓴 시는 사막이었다
사막 3 ― 낙타의 길 / 임영조
낙타가 가는 길은 늘 사막이었다
간혹 가다 얻는 한 무더기 가시풀
등짐이 무거워도 고개를 들고
모래바람 뿌옇게 미친 날이면
길 없는 길을 가는 낙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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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제 무덤을 지고 끝없이 길을 걷는다. 늘 사막이고 늘 모래벌판인 생을 평생을 앞만 바라보고 걷는다. 시에서 채용된 매개물은 일반적으로 현실과 상상을 연결하면서 자아를 확인해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낙타의 역할은 시인을 대변해준다. 억세고 질긴, 가시같은 생을 씹으며 걷다가 피를 흘리는 시인의 쓰라린 노역을 낙타가 대신 표현해 주고 있다.
모래바람 뿌옇게 미친 날 그 며칠을 앓다가 그는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수상한 풍문처럼 다시 온다는 주인인 시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시인의 육봉은 무덤이 되었다. 시를 쓰다 그 길만이 도라고 굳게 믿는 낙타의 길, 그리로 임영조 시인은 갔다.
(필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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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