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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미국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8.5% 상승하며 정점론에 대한 기대가 확산됐으나 5월에 물가상승률이 8.6%를 기록하면서 그런 기대는 인플레이션의 정점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바뀌어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로존 역시 8%대의 높은 물가상승률이 유지되고 있고 우리나라 또한 5%대 물가상승률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인플레이션은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이미 전 세계로 확산돼 글로벌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록적으로 높고, 쉽게 잡히지 않고 있는 물가는 국제유가와 여러 가지 정치 현안이 얽혀 있다는 점에서 1970년대 오일 쇼크 때의 기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상승시킬 때 이를 조정해 주는 시장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는 등 새로운 유형의 인플레이션이 도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대두되기도 한다. 향후 인플레이션의 진행 방향을 예단해 보기 위해 지금 광범위하게 경제를 압박하고 있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양적완화, 전쟁 등으로 원자재 가격 폭등 일상회복 영향으로 당분간 높은 수준 유지 지금 우리가 당면한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의 결과물이다. 주요국들이 팬데믹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풀린 유동성과 코로나19라는 질병이 발생시킨 공포 그리고 이 질병이 가속화한 나라별지역별 갈등 등이 현재의 매우 복합적인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일시적인 요인이 작동한 결과물인 부분도 있지만 구조적인 변화를 수반한 부분도 있는 만큼 물가상승률은 올해 중 고점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지만 하락 과정은 매우 울퉁불퉁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매우 강한 긴축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주요 중앙은행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물가 수준 안으로 들어가기까지는 2~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을 세 가지 측면에서 정리해 보면, 국제 원자재 가격 폭등과 글로벌 공급망 경색 그리고 노동시장의 병목이다. 우선, 현재 우리 눈앞에서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 부상해 있는 것은 글로벌 원자재 가격의 폭등이다. 원유를 필두로 한 원자재 가격 폭등의 일차적인 원인은 당연히 양적완화 등 유동성 공급정책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대비 4배 이상 증가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자산이나 대부분 마이너스로 하락했던 실질금리는 기업들의 실물투자가 위축된 국면에서 여러 가지 투기적 자산 가격을 급등시켰고 원자재 역시 그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동성이 회수되는 국면에서도 높은 가격이 계속 형성돼 있는 것인데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원유 등 에너지를 비롯해 주요 원자재의 메이저 공급자인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이자 경제 제재를 받는 대상이라는 점이 글로벌 수급이 틀어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고 1분기 정도 지남에 따라 전쟁이라는 자극적인 뉴스에는 경제주체들이 익숙해지고 있지만 전쟁이 예상외로 장기화되고 있고 어떻게 마무리될지 불확실하다는 점은 향후 물가 불안이 언제 완화될지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전쟁 이외에도 대부분의 나라가 코로나19 봉쇄에서 벗어난 첫 번째 휴가시즌을 맞는 등 일상회복으로 인한 수요회복도 당분간 국제유가를 비롯한 주요 원자재 가격이 높게 유지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작용한다. 그리고 높은 원자재 가격이 최종 소비재로 전달되는 데 소요되는 시차를 감안하면 이전보다 높은 물가상승률이 체감적으로는 훨씬 길게 유지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글로벌 공급망 경색 또는 제약이 지속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팬데믹 국면에서 글로벌 공급 경색은 나라별로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지역 봉쇄의 결과로 발생했다. 최근 들어서는 대부분의 나라가 일상화 정책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봉쇄로 인한 단절은 중국을 제외하고 해소되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 경색은 여전히 원유 등 원료의 공급으로부터 주요 부품과 물류에 이르기까지 인플레이션이 쉽게 떨어지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이 일상화로 나아가는 와중에도 거대한 글로벌 공급 기지인 중국이 여전히 폐쇄적인 방역정책을 시행하며 그 효과를 반감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지만, 글로벌 리더십이 크게 약화되고 세계경제가 파편화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원자재나 기타 상품과 서비스의 이동을 방해하는 법적물리적시장적 마찰 계수가 높아지는 부분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강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제재로 인한 러시아산 원유 공급 부족분에 대해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크게 호응하지 않고 있는 점이나 러시아 원유가 중국이나 인도로 흘러 들어가면서 제재의 효과는 낮아지고 유럽 공급가는 더 올라가는 현상 등이 그 예다. 미국이 정치적 이유 등으로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되고 산유국들의 증산이 이뤄지면 지금보다는 물가 압력이 크게 낮아지겠지만 이미 세계화가 역행하면서 생기는 공급망 제약은 계속 물가 안정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6월부터 미국에서는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수입을 규제하는 법안이 발효됐는데 이로 인해 의류나 태양광 패널, 알루미늄, 배터리 등 주요 수입제품의 검역 절차가 강화되면 병목현상은 더 깊어질 수 있다. 팬데믹 국면에서 노동 공급이 급격히 위축되며 큰 폭의 임금 상승 발생 세 번째는 노동시장의 병목이 발생시키는 임금 상승 부분이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가장 특징적인 모습은 노동시장에서 공급이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큰 폭의 임금 상승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노동의 공급은 전쟁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단기간에 크게 변할 수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경기 순환에 따른 노동 수요의 변동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팬데믹 국면에서는 스페인 독감 이후 100년 만에 발생한 글로벌 팬데믹 질병이 주는 공포와 봉쇄라는 환경 외에, 일을 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생활지원금이 지급됨에 따라 자발적으로 노동시장을 이탈하는 노동자가 많이 발생했다. 재정 여력이 있는 주요 선진국에서 코로나19 피해가 컸던 것이 이 현상을 부추겼다. 노동 공급 충격은 최근에는 크게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일상화가 많이 진행됐고 보조금 지급이 지난해로 마무리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일상화로 크게 늘어난 노동 수요로 인해 임금은 아직 안정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예를 보면 올해 들어 구인율(job opening rate)이 팬데믹 이전 10년 평균인 3.1%보다 2배 이상 높은 7%대를 지속하고 있다. 이는 높은 임금 상승세가 경기침체 충격이 닥치기 전에는 쉽게 해소되지 못하고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2022년 07월호
『나라경제』 편집실2022년 07월호
한국은행(이하 한은)은 대내외 금융경제 여건의 변화에 맞춰 지난해 8월부터 기준금리를 0.25%p씩 다섯 차례에 걸쳐 인상했다. 이에 따라 한은 기준금리는 올해 1월 코로나19 위기 직전 수준(1.25%)으로 되돌려진 데 이어 5월에는 1.75%까지 높아졌다. 이러한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국내 금융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에 앞서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의 정책전환 배경과 정책 운용 현황을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금융 안정 리스크 및 물가 상승 압력 대응 위해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 전환 우선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의 전환은 코로나19라는 이례적 보건위기에 대응한 초완화적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기 위한 정책 방향의 선회였다. 방역 상황과 함께 국내외 금융경제 여건이 개선됨에 따라 사상 최저 수준인 0.50%까지 떨어진 기준금리도 점진적으로 정상화해 나갈 필요가 있었다. 또한 경기 회복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금융 안정 측면의 리스크에 대응할 필요성이 커진 점도 주요 정책결정 배경 중 하나였다. 그간 주택가격 오름세와 맞물려 빠르게 확대돼 온 GDP 대비 가계부채 수준이 중장기적 시계에서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 왔다. 마지막으로 가장 핵심적인 기준금리 인상 배경으로 물가 상승 압력 확대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물가 오름세가 한은의 물가안정목표(2%)를 상당 폭 상회하는 수준을 장기간 지속하면서 계속 높아지고 있어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다. 한때 글로벌 공급병목이나 원자재 가격 급등과 같이 공급 측 요인에 주로 기인한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높아진 물가 수준이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에도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까지 이르러 그러한 예상이 빗나갔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미국 연준이 물가에 대한 뒤늦은 대응(behind the curve)으로 비판받고, 글로벌 금융경제에 적지 않은 충격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에도 정책금리를 0.75%p씩 올리는 소위 자이언트스텝까지 단행한 데는 지난해 물가 상황에 대한 오판이 자리하고 있다. 한은의 경우에도 특히 향후 물가 여건에 따라서는 통화정책 대응의 속도가 달라질 수 있겠으나, 주요국보다 선제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했기에 현재까지는 경제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대응을 점진적으로 해오고 있다. 통화정책은 먼저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이후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로 파급되는데, 지난해 시작된 기준금리 인상은 1차 경로인 금융시장에 원활히 파급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금리와 여수신금리가 상승하고 정부의 대출규제도 강화되면서 민간신용의 증가율이 가계대출을 중심으로 둔화되고 있다. 장기간의 저금리 기조로 자산시장 전반에 만연했던 수익추구행태도 완화되는 모습이다. 개인들의 주식 및 가상자산 순매수와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기준금리 인상 이후 상당 폭 축소됐고, 그간 빠르게 확대되던 시장형실적배당형 금융상품의 증가세가 둔화되는 동시에 정기예적금과 같은 저위험저수익의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볼 때 그간 우리 경제의 주요 리스크 요인으로 평가돼 온 가계부채 및 자산시장 관련 금융 안정 리스크는 정책 의도대로 완화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가계대출과 달리 기업대출은 투자 및 운전자금 수요 등으로 여전히 높은 증가율을 이어가고 있으며, 보다 광범위한 개념인 통화량(M2)으로 평가한 시중유동성도 최근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으나 예년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또한 그간의 가계부채 누증과 주택가격 상승폭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금융 불균형 완화에는 상당한 시간과 꾸준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책대응 효과와 공급차질 개선으로 인플레이션은 하반기 이후 점차 안정화될 전망 다음으로 실물경제 영향을 살펴보면, 기준금리 인상은 경제주체들의 차입비용 증대 등을 통해 시차를 두고 성장세 및 물가 오름세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거시계량모형을 이용해 분석해 보면, 기준금리 25bp 인상은 GDP 성장률 및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차연도에 각각 0.1%p 및 0.04%p 정도 약화시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는 과거 평균적인 영향으로 정책결정 시의 금융경제 여건에 따라 그 크기는 달라지며, 거시계량모형의 구성, 추정 방법 및 대상 기간 등에 따라서도 다르게 추정될 수 있다. 한편 기준금리 인상 이후에도 국내경제는 꾸준한 성장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성장세가 지난해보다 다소 약화되는 모습이나, 여전히 잠재수준을 상회하는 성장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한층 증대됐음에도 수출이 양호한 실적을 이어가고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경제활동 정상화로 소비가 빠른 회복흐름을 보이고 있다. 고용 여건 개선으로 가계소득이 증대된 데다 그간 큰 폭으로 늘어난 가계저축도 소비여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물가의 경우 다섯 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한은의 물가안정목표 수준을 상회하는 높은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아울러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도 상승하고 있어 높아진 물가 인식이 다시 실제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2차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은에 부여된 핵심 법적책무가 물가 안정이라는 점에서 최근 높아진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화정책 대응과 앞으로의 물가 전망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이번 물가 상승은 앞서 언급한 대로 글로벌 공급병목이나 원자재 가격 급등과 같은 공급 측 요인에서 주로 비롯됐다. 일반적으로 공급충격은 지속성이 약한 데다 통화정책은 수요를 조절하는 수단인 만큼 공급 측 요인에 기인한 물가 상승에는 통화정책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공급 측 요인에 더해 소비 회복과 고용 여건 개선 등 수요 측 요인이 가세하면서 인플레이션의 지속성이 강화된 데다,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이 물가안정목표 수준을 이탈할 조짐도 일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높아진 물가에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분명하며, 이에 따라 한은은 당분간 물가에 방점을 두고 중기적 시계에서 통화정책을 수행해 나갈 계획이다. 향후 물가 경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지만 그간의 정책대응의 효과와 공급차질의 점진적 개선으로 인플레이션이 올해 하반기 이후 점차 안정화돼 물가안정목표 수준에 접근해갈 것으로 한은은 전망하고 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기준금리 인상기의 통화정책 키워드는 선제와 점진이다. 점진적인 대응의 이점은 경제주체들과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경제에 대한 의도치 않은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으며, 선제적인 대응은 바로 이러한 점진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한다. 앞으로도 한은은 경제주체들과의 소통을 강화해 나가면서 선제적인 통화정책 대응을 통해 물가 및 기대인플레이션의 안정을 도모해 나갈 것이다.
방홍기 한국은행 정책분석팀장2022년 07월호
미중 무역 분쟁, 코로나19 확산 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2020년 하반기부터 상승 추세를 보이던 국제 곡물 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급등했다. 이러한 국제 곡물 가격 급등으로 식량 안보를 우려한 개도국들이 농산물 수출을 제한하는 정책을 앞다퉈 시행하면서 국제 곡물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 곡물가격지수(Cereal Price Index)는 지난 5월 기준으로 전년 동월 대비 29.7%, 평년(최근 5년 평균) 대비 62.7% 상승했다. 곡물 이외의 농축산물도 생산 및 소비 측면에서의 대체 관계와 농산물의 금융화 등으로 곡물 가격과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 전년 동월 대비 기준으로 식용유는 31.1%, 유제품은 16.9%, 육류는 13.6%, 설탕은 12.6% 상승했다. 이러한 세계 농산물 가격의 급등은 농식품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농식품 및 외식 물가에 상당한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국제 곡물 가격 변동성 증가의 원인과 전망을 살펴보고 정부의 농식품 물가 안정화 정책에 대해 정리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국제 곡물시장 위기 빈번해질 우려 30여 년간 안정세를 유지했던 국제 곡물 가격은 2000년대 중반을 넘으면서 급등락을 반복하는 모습이다. 1970년대 초 석유 파동에 이은 식량의 무기화 논란으로 식량 자급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증산을 위한 각국의 농업보조금 지급과 투자가 증가했다. 이러한 농업 부문 지원으로 세계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국제 곡물시장은 2000년대 초까지 명목가격이 일정 수준에서 유지되며 실질가격은 하락하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기간 중국, 인도가 식량 자급을 달성했으며 EU도 순수출국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WTO 체제로 인해 농업보조금 감축과 자유무역이 강조되면서 글로벌 식량 공급망에서 농업경쟁력을 보유한 소수 국가의 역할은 증가한 데 반해, 농업경쟁력이 열위에 있는 국가들의 식량 수입의존도는 높아졌다. 이렇게 세계 식량 공급이 소수의 국가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기상 요인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 신흥국 수요 증가, 바이오 연료용 수요 증가, 세계경제 위기 등의 시장 충격은 곧바로 국제 곡물 가격 급등이라는 시장 위기로 귀결돼 2008년에 1차 애그플레이션(agflation), 2011~2012년에 2차 애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최근의 국제 곡물 가격 급등도 밀, 옥수수, 해바라기유 등 부문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생산과 수출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측면이 크다. 현재와 같이 국제 곡물 공급망이 소수의 국가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높은 가격 변동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미중 무역 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화의 후퇴와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기후변화 영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높은 시장 집중도와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의 분쟁 발생 가능성은 향후 국제 곡물 가격 변동성을 높여 시장 위기를 더욱 빈번하게 만들 것이다. 세계 농식품 가격 상승은 쌀 이외의 곡물 및 유지류, 설탕 대부분과 육류, 유제품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농식품 소비자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올해 5월 소비자물가는 쌀값 하락 등으로 농산물 물가가 안정적인 수준(전년 동기 대비 0.6% 하락)을 보였음에도 수입 농식품 사용 비중이 높은 가공식품외식축산물 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7.6%, 7.4%, 12.1% 상승했다. 통상적으로 수입 곡물로 생산되는 식품소재(밀가루, 전분당, 대두유 등)와 배합사료 가격은 국제 곡물 가격을 3~6개월 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아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농산물 가격 변동 폭이 국내 가공식품사료 물가에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올해 하반기에 농식품 물가 상승 압력은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농식품 물가 상승에 세제금융 지원, 대체 원산지 확보 등으로 대응 우리나라는 2008년 애그플레이션을 계기로 국내 식량 생산공급 확대, 해외 농업 개발, 국가곡물조달체계 구축을 통해 국제 곡물 위기 시 대응수단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기경보시스템을 운영하는 시장 위기 대응체계를 구축해 왔다. 이러한 체계에 따라 2020년 후반부터 시작된 국제 곡물 가격 상승에 대응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인 2021년 4월 조기경보 단계를 안정에서 주의로 격상하는 한편 업계의 부담을 완화하고 국내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제금융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응책을 추진했다. 2021년 6월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올해 3월에는 기존의 세제금융 지원을 강화했고, 대체 원산지 확보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민관 합동 대응책을 발표했다. 이러한 대응에도 농식품 물가 상승이 심화되자 지난 6월에는 기존의 세제금융 지원에 더해 농축산물 할인쿠폰 확대, 밀가루 가격 안정 지원 등의 추가적인 대책을 수립했다. 국내 농식품 물가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부의 통제권이 미치지 못하는 국제 농산물 가격 상승과 우리나라의 높은 수입의존도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국제 곡물 위기 대응을 위해 추진됐던 정책들이 낮은 경제성, 초기의 실적 부진 등으로 실질적인 투자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위기 대응 수단이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국제 곡물 가격 안정화로 식량 안보 이슈가 국민적 관심사에서 멀어지면서 국제 곡물 위기 대응체계를 갖추기 위한 정책 추진이 지속되지 못했다. 국내 농업자원의 한계로 일정량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식량 안보 확보와 농식품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국내 식량 생산공급을 최대한 확대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안정시키는 정책 이외에 묘수는 없다. 이러한 정책은 장기에 걸쳐 대규모 자본투자가 이뤄져야 성과를 낼 수 있으므로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농식품 물가의 상승은 특히 저소득 가구 등 취약계층의 식량 안보를 위협한다. 기존의 식량 안보 정책은 식량 확보에 초점을 두고 수행되면서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되는 취약계층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식량 위기 대응매뉴얼 등에 농식품 물가 상승 시에 취약계층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김종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2022년 07월호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는 석유 위기, 가스 위기, 전기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고, 이 에너지 위기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석유 위기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에너지 자문이었던 로버트 맥낼리는 현재 위기가 역사적으로 엄청난 사건이며 경제적정치적지역적 변혁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에너지금융경제 전문가가 에너지 위기는 경제 위기로 번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휘발유 가격이 오르고 소비자가 에너지 인플레이션을 경험할 것이라는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위기가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범위와 규모로 번질 것이라는 경고로 이해해야 한다. 세계 주요국의 친환경 일변도 정책이 에너지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 6월 5일 기준으로 석탄은 연초 대비 246% 상승했고, 원유는 브렌트유 가격이 68%, 천연가스는 미국 헨리허브 가격이 175% 오른 상태이며, 동북아 천연가스는 3월 현물가격(JKM)이 MMbtu(열량단위)당 85달러로 2021년 초 대비 10배 이상 상승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에너지 위기의 원인과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에너지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전쟁만 끝나면 단기간에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다. 문제의 발단은 주요국이 온실가스 저감과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친환경 일변도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강조하며 탄소를 배출하는 국가와 기업들을 재무적 투자자들을 통해 압박하기 시작했다. 탄소중립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운 추세가 불씨를 제공하고 전쟁이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론적으로는 화석연료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화석연료를 공급하는 기업들이 새로운 투자를 통해 공급을 늘리고, 이 과정에서 가격이 다시 하락해 에너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사이클을 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화석연료를 공정에 사용하는 것이 글로벌 경제활동의 주요한 생산방식임에도 탄소중립과 ESG 투자를 강조하다 보니 화석연료 투자자는 좌초자산화(시장 환경의 변화로 인해 자산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를 걱정해야 한다. 그러한 이유로 쉽게 화석연료에 신규 투자를 늘리는 결정을 할 수 없다. 즉 수요는 여전히 높으나 공급을 늘리는 주체가 없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원유 정제시설 증설 규모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순감소를 경험했다. 석유의 시대가 저물고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기차로 대체될 거라는 전망하에서는 원유 정제시설 투자가 쉽게 일어날 리 없다. 현재 글로벌 정제시설 중 40년 이상 된 노후 설비가 30% 이상이고 새로운 시설 투자는 늘기 어려운 상황에서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원유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천연가스 부족이다. 원유는 증산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천연가스는 신규 개발부터 판매까지 약 5년 이상이 필요하고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한 자금조달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유와 마찬가지로 최근 탄소중립 트렌드로 인해 신규 천연가스 투자결정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결되긴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럽에 파이프라인 공급 천연가스(PNG) 공급량을 절대적으로 줄이고 있다. 전쟁 전에 러시아는 유럽 천연가스 공급의 40%를 담당하고 있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늘려주지 않으면 유럽 주요국은 여름 전력수요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고, 겨울에 난방수요까지 겹치게 되면 재앙적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 특히 독일은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독일이 탈석탄과 탈원전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한 것이 근본 원인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40%까지 늘렸으나 바람과 태양은 우리가 원할 때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는, 간헐성 높고 불안정한 발전원이라서 이를 안정적으로 보완해 줄 에너지원으로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전쟁 이전에도 석탄을 포함한 전통 발전원을 늘리고 있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석탄 발전 비중을 25%에서 37%로 늘렸다. 탄소중립 선진국이라고 칭송받는 독일이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결국 에너지 전환보다 인플레이션 억제와 수급 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현실을 피해가지 못하는 것이다. 더 불안한 사실은 유럽이 러시아의 천연가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PNG를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물량이 약 5,100만 톤인데 유럽이 이 정도 물량을 현물로 구매하려 나서는 경우 에너지 부족 사태(energy crunch)는 해결 불가능한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우리나라, 일본, 중국도 겨울에 LNG 현물을 구매해야 되기 때문이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물량이 부족해 수급을 맞추지 못하는 비극적인 상황도 예견이 가능하다. 천연가스는 도시가스용으로 난방이나 공장의 연료원료로 사용되거나 LNG 발전에 필요하다. 수급 불안이 커질수록 전력시장이나 열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경제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뾰족한 묘안이 없는 상태다. 에너지 가격 상승, 한국의 수출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도 화석연료 가격이 오르면 에너지 가격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탄소를 저감하라는 압박은 철강산업의 코크스(cokes)를 활용한 저렴한 생산 공정을 전면적으로 값비싼 친환경 방식인 전기로나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개편하도록 한다. 시멘트도 저렴한 석탄 대신 친환경 연료를 활용해 생산해야 한다. 친환경 운송비까지 포함하면 당연히 철강과 시멘트 가격 상승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화석연료 가격 상승은 요소수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암모니아 가격을 올려서 비료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곡물 및 식량 가격 인상으로 전파된다. 각국이 자원과 물자 수출을 금지하고 자원과 식량을 무기화하는 단계에 접어드는 신호는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이 이미 현실이 돼가는 상황에서 코로나19가 종식돼 수요견인 인플레이션까지 겹치게 되면 단순한 인플레이션 문제가 아니라 경기침체와 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는 여전히 제조업이 GDP의 30%를 차지하고 주력 산업에 전기전자, 철강, 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포진해 있다. 특히 수출과 수입이 GDP의 70%를 차지하는 개방경제 구조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해외의 탄소중립 추세를 무시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피해는 한국에 치명적인 수출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위기가 전면적인 경제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현명한 정책적 결단과 국민들의 에너지 절감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임을 명심해야 한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2022년 07월호
현재 인플레이션 관련 불확실성은 매우 크다. 몇 달 앞을 내다보기도 어렵다. 연초에 발표됐던 2%대 전망 수치들이 6개월도 지나지 않아 4%대로 수정되는 상황이다. 물가 전망이 이렇게 어려운 것은 세계경제가 과거의 글로벌 저물가 환경에서 이탈해 일종의 변곡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물가가 앞으로 어떤 궤도에 안착할 것인지는 글로벌 물가 환경의 향방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주요국의 정책대응과 글로벌 공급망 상황이 중요한 요인들이다. 국내 물가는 소비 회복세, 임금 상승 등 상방 압력 큰 상황 우선 미국 등 주요국의 정책대응은 물가 안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1970년대에도 저물가에서 고물가 기조로 전환되면서 지금 같은 불확실성이 문제가 됐다. 당시 미국 정책당국자들 사이에서는 인플레이션은 공급 요인에 기인한 것이고,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이들의 생각보다 심각했다.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약 15년 동안 미국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7%를 기록했으며, 폴 볼커 당시 미국 연준 의장이 기준금리를 20%까지 높이는 초강력 처방을 내놓고 나서야 비로소 물가가 안정궤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은 당국자들로 하여금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기 전에 충분히 대응하자는 생각을 갖게 한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정책당국이 역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소극적 대응을 하지는 않을 것이며, 따라서 고물가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는 상황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즉 당국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강력한 선제대응을 불사할 것이므로 인플레이션은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안정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물가상승률을 2%로 안착시킬 때까지 강력한 대응을 계속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고, 조 바이든 대통령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이러한 대응 기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당국의 희망대로 거시경제가 연착륙할 수도 있고, 물가가 안정되면서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물가가 안정되지 못하면서 경기가 침체돼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도 있다. 어느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것인지는 정책당국이 얼마나 신뢰성 있게 정책을 펼칠 것인지,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어느 수준에서 해결될 것인지 등에 달려 있다. 공급망 문제를 간단히 살펴보자. 향후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러시아산 원유의 수입제한이 계속되고, 동시에 중국의 코로나19 봉쇄조치가 완화돼 원유 수요가 늘면 국제유가의 상방 압력은 높은 수준에서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곡물 가격 역시 전쟁으로 인한 생산 차질, 주요 곡물 생산국의 수출 제한 등으로 상당 기간 상방 압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공급망 상황이 당장의 병목현상뿐 아니라 상당 부분 세계질서의 변화와도 관련된다는 점이다. 크게 보면 세계화의 후퇴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의 흐름은 국가 간의 기술정치 패권 경쟁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과 동유럽이 미국 중심 세계질서에 편입됐던 1990년대 이후 지속돼 온 글로벌 공급 확대 기조가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이 상황이 안정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불확실한 만큼, 비용 효율성보다는 안정성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상당 기간 글로벌 저물가 환경이 쉽게 재현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향후 우리나라의 물가는 미국의 금리인상과 글로벌 공급망 문제라는 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 국내 물가 동향을 보면, 석유류식품뿐 아니라 서비스물가의 상승세도 가시화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소비 회복세도 나타나고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있어 임금 인상 압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공급 및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이 모두 높은 수준으로 지속되면서 당분간 5%를 크게 상회하는 인플레이션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원자재 공급 여건이 개선되거나 국내외 경기 회복세가 둔화되면 물가 상승 압력도 약화될 수 있겠으나 지금으로서는 상방 압력이 큰 상황이다. 조세재정통화 정책 적절히 활용하고 공급능력 확대에도 힘써야 인플레이션을 적정 수준으로 안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급 문제는 우리가 통제하기 어렵지만, 물가 상승의 진원지가 되는 수입 원자재 및 관련 부문에 조세재정 등의 수단을 탄력적으로 활용하면 비용 충격이 여타 부문에 전이되거나 확산되는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물가 상승이 인플레이션 기대의 전반적 확산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신뢰성 있게 정책을 펼쳐야 한다. 특히 미국이 빅스텝자이언트스텝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한미 간 금리 역전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는데, 이 문제를 원만히 다뤄 시장의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달러 유출입 흐름과 이에 따른 환율의 안정성은 물가에도 영향을 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책당국은 사후적으로, 예기치 못한 금리 상승 등으로 피해를 보는 취약계층과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빚을 내 버티다 이자 부담이 늘어난 자영업자 등에 대해서는 재정과 정책금융을 적절히 활용해 어려움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나아가 공급 문제가 중요해진 만큼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공급능력을 확충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고압경제(high-pressure economy) 정책, 즉 재정 확대 등 수요증진 정책을 중시하다 최근에는 현대 공급경제학(modern supply-side economics)을 바이든 정부의 새 경제정책 브랜드로 제시하고 있다. 1980년대의 공급경제학과 달리 현대 공급경제학은 정부가 노동공급 확대, 교육, 연구개발, 인프라 투자 등을 통해 공급능력을 확대하고 공급 측 애로를 해소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정책을 말한다. 한국도 환경 변화에 맞춰 이와 같은 공급능력 확대 정책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 역시 정부와 협력해 안정성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적극 대응하면서 에너지, 유통망 등의 효율을 높이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은 대외적 요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국내 경제주체들의 대응에도 크게 좌우될 것이다. 적절한 대응을 통해 거시경제 안정성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면 물가 안정을 위한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변화의 흐름 속에 새로운 기회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2022년 07월호
■ 특집: 세계는 인플레이션과 전쟁 중
■ 이슈: 디지털자산, 제도권 편입 눈앞
■ NOW: 여행이 돌아온다
■ 연중기획: 새로운 도약, 코로나 너머로
코로나19로 깨닫게 된 새로운 인문학 교육 시스템 | 김재인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경제정책해설
ㆍ 스마트 주소정보 플랫폼 구축해 AI 로봇 배송 등 혁신서비스 창출한다 | 최훈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분권실장
ㆍ 장애인방송 확대 등으로 소외계층의 미디어 접근성 높인다 | 곽진희 방송통신위원회 편성평가정책과장
ㆍ 회계감리절차의 신속성과 투명성 제고 | 송병관 금융위원회 기업회계팀장
■ 세계는 지금
ㆍ 급격한 사회변화 속 교육의 역할은? | 김지연 주OECD대표부 참사관
ㆍ 전자적 전송물 무관세, WTO 각료회의서 일단 연장 합의 | 조승연 주제네바대표부 1등서기관
■ 임정욱이 만난 혁신기업가
몸값 3,500억 원 반도체 스타트업, 세계시장 본격 도전 |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
■ 글로벌 비즈니스 리포트
내년 대선 앞둔 파라과이, 마약·밀수 소재로 여당 계파 간 공세 격화 | 김선태 KOTRA 파라과이 아순시온무역관장
■ 시평
성공적인 연금 개혁을 위한 다섯 가지 제안 | 서상목 국제사회복지협의회(ICSW) 회장
이 밖에도 <독서의 문장들>, <김창기의 영화 상담실>, <차별의 씨앗>, <강양구의 과학 토크>, <1달 1음반> 등 다양한 읽을거리가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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