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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구원론의 설교는 모호하게 물에 물탄 듯이 미적지근하다.
그냥 예화나 기복적인 설교가 인기가 있고 교인들도 별 관심이 없다.
교단끼리도 좋은게 좋다고 서로 관점의 차이는 이해하며 사이 좋게 교류한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에 어떤 목사와 구원론에 대해 토론할때 양쪽 주장 다 성경에 근거하고 있으니 둘다 포용하고 주를 시인한 사람은 같은 믿음을 가졌으니 따질 필요가 없고 다 같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그럴듯하게 들리는가?
과연 구원론이 포용될 수 있는 것인가?
관점의 차이는 이해가 가지만 나도 좋은게 좋다라고 복음을 서로 포용하면 좋겠지만 말씀은 그렇지가 않다.
구원론에 있어 복음은 타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참 생명주는 복음이든 다른 복음이든 둘 중 하나 인 것이다.
성경은 도덕책이 아니다.
구원받기 위하여 믿는 것이다.
구원을 확증해야 한다.
하나님만이 주권자이시며 우리의 구원을 확증하실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가 스스로의 믿음을 확증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구원이 확실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구원이 확실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없다.
나는 장로교이지만 예정론적 구원관은 잘못된 관점으로 보고 있다.
많은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이 은혜를 말하지만 아무때나 은혜를 습관적으로 말하지만 정녕 본인은 은혜를 받지 못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구원 받았다는 것이 구원의 확신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확실해야 믿음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만 성령의 역사로 믿어지는 것이다.
믿느냐 믿어지느냐? 논쟁으로 갈라진 침례교단의 한 분파를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구원을 확신한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구원이 확실하지 못한 것이다.
구원의 확신의 내용이 잘못 됐으면 아무리 확신을 외쳐도 소용이 없다.
구원의 확신을 자기 신념이나 의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아는 말씀 한 구절 보자.
고린도 후서13장
5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구원론 하면 단골로 인용하는 구절이다.
먼저 믿음을 어떻게 확증하나?
믿음을 확증하지 못하면 버리운 자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 믿음을 확증해야 한다.
또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계신 줄을 알지 못하면 버리운 자라고 했기 때문에 내 안에 정말 계신가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 것을 알아야 믿음이 확증 된다는 것이다.
믿는 자들은 다 그리스도가 내 속에 계신다고 말하지, 없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줄 알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줄 아는 것은 말씀으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겸손하게 구원은 하나님의 영역이지 믿는 자라도 알 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안다고 하면 교만해서 그렇다 라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직 구원이 뭔지 복음이 뭔지 아직 이해 하지 못한 사람이다.
확신이란 말은 말 그대로 확실한 믿음 이라는 뜻이다.
사전적인 뜻도 굳센 믿음 같은 뜻이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데 확실한 믿음 없이 구원 받는다는 말인가?
구원의 확신이란 내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무엇을 확신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영생"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믿는자는 현재 영생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생명은 말씀 그대로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다.
예수께서 믿는자는 영생을 이미 소유 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사실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확신하는 것 이다.
물론 그 전에 포괄적인 복음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라는 말씀은 이미 죽음에서 영생으로 옮겼다라는 것이다.
죽음에서 영생으로 옮겼는데, 영생이라는 말 자체가 죽지않는 생명인데, 다시 죽을 수 있는가?
"영원히" 살아났다라는 말씀이다.
내가 영원히 살아났다는 것을 믿는가?
내가 영원히 살아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났다"라는 것이다.
영원히 살아났다라는 말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는 뜻이다.
말씀을 잘 이해해야 확신으로 올수가 있다.
무조건 믿습니다 한다고 확신 되는게 아니라 정확한 믿음의 내용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십자가 구속의 의미와 하나님 사랑을 알고 믿는 것이다.
덮어놓고 내용도 잘 이해 못하고 믿습니다하며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라고 하면 그것은 자기 착각의 확신인 것이다.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지만 구원의 명확한 말씀 한 구절을 구체적으로 이해해보자.
히브리서 10장
14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 온전케 하셨느니라
한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은 다 아실 것이다.
거룩하게 된 자는 의롭게 된 자를 말한다.
의롭게 될 자가 아니라 이미 의롭게 된 자이다.
의롭다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다는 뜻인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사람은 죄 안짓고 착하게 사는 의인이 아니라 죄가 완벽하게 하나도 없는 사람을 의인이라 하시고 옳다고 하신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다.
인간의 창조부터 미래의 종말까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은 한명도 없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욥이라든지 하나님이 의인이라 부르시는 인물들은 완벽하게 죄가 하나도 없는 의인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 세상에 죄가 하나도 없는 의인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만이 죄가 하나도 없는 완벽한 의인 이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인을 착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죄가 머리카락 만큼도 없는 사람을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가 티끌 만큼만 있어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약을 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시고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인된 인간들을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완벽히 죄가 없는 의인으로 만드셨다 이다.
믿는자가 의인이 됐다라는 소리가 아니라 믿어도 죄인인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시고 죄가 하나도 없는 의인으로 여겨 주신다라는 뜻이다.
믿어도 죄인이라는 것은 아직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완전한 의인이 되었다라는 것이다.
우리가 뭘 잘해서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보시고 죄가 하나도 없는 의인으로 여겨 주신다는 것이다.
앞으로 잘하면 의인으로 여겨주신다라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보시고 우리가 앞으로 잘하고 안하고 상관 없이, 조건없이, 이미 의롭다고 여겨 주신 것이다.
그렇다고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고 멋대로 살아도 구원받는다고 확신하라는 말이 아니다.
거듭난 사람이 짓는 죄는 죄인가 아닌가?
거듭나도 죄인인가 의인인가?
이 부분을 많이 헷갈려 한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보시고 의롭다 하시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보시고 믿는 자를 의롭다 여겨 주신다.
우리의 육신은 아직 죄성을 가진 죄의 몸을 가지고 있다.
거듭나도 죄를 짓는다.
죄가 없다하면 거짓말 하는 것이다.
요한1서1장
8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우리 마음 속을 들여다 보라 구원 받았다고 죄성이 사라졌는 가?
마지막때 신령한 몸을 입어야만이 완전히 죄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거듭난 신자는 예수님의 피로서 모든 죄를 사함 받았다.
그러므로 현재 육신은 죄를 짓지만 죄가 하나도 없는 의인으로 하나님께서 봐 주신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의 과거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의 죄까지 모두 사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거듭난 신자가 죄를 지을때 마다 십자가에 다시 못박혀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죄 자백과 징계에 대한 이해가 확실해야 만이정립이 될수 있다.
그리고 모든 죄를 사함 받았으니까 죄를 마음 놓고 지어도 된다고 생각하든지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구원의 확신을 말하는 사람은 성령 받지 못하고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다.
이들은 스스로 구원의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구원 받고 난 후 지은 죄도 다 사함 받은 죄이다.
그러나 육신의 연약함으로 죄를 지으면 정죄함으로 지옥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의 기쁨이 사라지고 징계가 따를 수 있고 최악으로 육신의 죽음까지 올 수 있다.
거듭난 신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죄를 짓고 막 살려고 하지 않는다.
로마서 6장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한번 선포하시면 그 말씀은 영원하다.
그 어떤 누구라도 취소 할수가 없다.
하나님 자신도 취소 하시지를 못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고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맹세는 결코 변하지 않으신다고 말씀 하신다.
히브리서6장
17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무엇을 약속 하셨나?
요한1서 2장
25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영생을 약속하셨다.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자 즉,거듭난 자는 약속의 자녀이다.
로마서9장
8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자녀에게 영생을 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증거를 주셨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증거가 없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이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
요한 일서 5장
10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영생을 주신 것과" 영생을 주실 것이 아니라 주신 것이다.
영생을 앞으로 주실 것이 아니라 영생을 이미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는 앞으로 영생을 주실 것을 바라는 자가 아니라 영생을 주신 것을 믿는 자이다.
그리고 거듭난 자에게 영생을 주시고 그 뜻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로 보증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영생을 주시는 것인데 영생을 소유한 하나님 자녀에게 결코 영생을 잃어 버리는 일이 없다라고 맹세하시고 보증 하셨다.
요한복음10장
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영생은 영원히 잃어버릴 수 없다고 하나님이 맹세로 보증 하신다.
하나님이 맹세로 보증 하셨다.
한번 얻은 영생은 영원히 멸망치 않으신다고.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이 영원하고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믿는자가 하나님 자녀라는 증거를 가진 자이고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이다.
그리고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온전케 하실것이 아니라 온전케 이미 하셨다 이다.온전하다 라는 사전적인 뜻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 고스란하다" 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한번 온전케 되면 그것이 중간에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 된다는 것이다.
의인으로 여겨주시다가 마음이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한번 의인이라 여겨주시면 영원히 의인이라 여겨 주신다라는 것이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보시고 우리를 의인으로 여겨 주시는 것이다.
우리를 온전케 하신 것도 어떤 기간 동안만 온전케 하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라는 것이다.
"영원히"라는 말씀에 집중 해보라.
우리가 태어 나기 전 이천년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는 말씀은 앞으로 절대로 변동이 없다는 뜻이다.
어제도 인용한 구절 다시 읽어 보자.
히브리서 9장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예수님의 피로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온전케 하셨다는데 누가 다른 엉뚱한 말씀을 가지고 온전케 된 것을 취소한다 말인가?
그것은 말씀을 대적하는 것이다.
이 말씀 한 구절만 깨달아도 거듭난자는 결코 버림 받지않고 영원히 구원 받았다는 것을 확증하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 가 믿는 자이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자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 갈것은 영원한 속죄를 깨달은 죄사함만 강조하며 지옥의 공포에서 해방된 구원에만 촛점 두는 곳을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겉으로 사랑을 말하지만 속으로 십자가의 사랑이 없는 경우가 많다.
반 강압적인 헌금과 십일조와 교회 건물 건축을 너무 강조하며 교인들에게 노동 착취를 하는 곳은 영원한 속죄를 말해도 생명이 없는 삯꾼들이다.
영을 분별해야 한다.
그리고 복음의 내용도 없이 무조건 믿습니다.
구원을 확신합니다.
나는 영원히 구원 받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라고 아무리 다짐하고 외쳐도 그 확신은 자기 확신이고 스스로 만든 착각이다.
앞으로 거룩하게 될 것이다.
의롭게 될 것이다.
온전하게 될 것이다라고 믿는자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수 없다.
왜냐하면 불 확실한 것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명확한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성경의 구원은 명확하다.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상반된 말씀이 걸림돌 되지 않는다.
말씀이 서로 모순되면 성경은 진리의 말씀이 아니라 거짓이 되는 것이다.
성령께서 그런 상반되어 보이는 구절도 모순되지 않고 더욱 확신되는 말씀으로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복음을 다른 방향으로 잘못 이해하면 잘못된 여러 행태가 나타난다.
계시록은 초대교회 이후 AD 90년 경에 쓰여졌고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인은 계시록 없이 구원의 복음을 전했다.
성경은 모든 말씀이 진리이지만 계시록을 구원론적 복음으로 다가가서는 안된다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구원의 복음은 계시록을 제외한 복음으로 정립해야 하며 십자가의 구속의 복음에 촛점을 맞춰야 한다.
계시록과 종말론은 진리이지만 우리의 해석상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나는 은혜의 복음 구속의 복음에는 타협이 없지만 종말론은 내가 아무리 확정해놓은 종말론적 교리를 확신하고 있어도 이것은 나의 하나의 견해일 뿐이라는 것이 나의 종말론을 대하는 생각이다.
종말론에 구원을 연계하는자들 대부분이 구원이 취소 될 수 있다고 믿는 분 들이다.
그들은 결과론적으로 구원이 종말론에 좌우되기 때문에 종말론 연구에 사활을 걸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이기고 인내하고 끝까지 견디어서 구원을 쟁취해야 하기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가질수 없다.
어떤 파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이 순간까지는 구원을 받았다고.
내일은 나의 구원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정도만 유지하면 통과 시켜 주시지 않겠나라고 말한다.
그들은 본인 스스로를 믿을수 없고 구원이 취소 되는 자 속에 자신도 포함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0.1 프로의 불확실성이 있어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보증하신다는 확실한 말씀을 붙들고 수 많은 구원이 취소 될 수있다 라고 보여지는 구절을 그냥 문자대로 읽어서 쉽게 넘어 가지 말고 곰곰히 묵상 해보면 그 말씀 뜻이 구원이 취소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구원이 취소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의 완전한 구원을 받아 들이지않고 자신이 구원을 유지하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복음이 될 수 없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수 없으며 복음의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모른체 신앙의 열심으로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진리이고 모순 될수 없다.
우리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든지 오해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기를 원하신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확신의 뜻이 굳센 믿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전서 1장
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확신으로 된 것이니
이 말씀도 오해하여 신비한 기적으로 확신을 가져야 되는 것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뜻이 아니라 우리가 전해 들은 복음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능력으로 새겨지고 성령께서 큰 확신을 주신 것이다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 큰 확신을 가지고 환난 가운데서 확신의 기쁨으로 고난을 인내 하라는 말씀이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 만이 성령의 기쁨을 누릴수있고 고난을 인내할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잘못된 믿음으로 잘못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하여 말씀의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말씀의 능력과 성령으로 큰 확신을 가지고 있는 자가 믿음있는 자이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디모데 후서 2장
15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