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집읽기 墓碣銘⑴: 빙산을 좇는 삶, 기억되지 않는 삶
양반으로 태어나 무관으로 살다간 사람이 있다. 성리학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그 시대의 조류에서 조금 이탈한 삶이다. 무인으로서의 빼어난 신체를 타고난 것은 아니지만 병법에는 탁월했다. 하지만 그 병법이란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이 있어야 빛나는 법이다. 그는 당대의 세도가 홍국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일화가 문인과 무인으로서의 사이(間) 존재로서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유배 떠날 때의 일이다. “‘그대가 비록 떠나가더라도 편지와 뇌물을 마련하여 덕로에게 사례하면, 덕로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 것이오.’ 하였다. 공이 그를 비웃으며, ‘자네는 덕로를 태산처럼 보는가 본데, 그는 빙산에 지나지 않네(“子雖去, 留書與賄, 謝德老, 其意可轉也.” 公哂之曰: “公視德老爲太山乎? 是亦氷山耳.” 『여유당전서3』, 문집Ⅱ, 320쪽).”
불과 두어 달 사이에 밀고 당기다(밀당) 셋이 합치고 합쳤다 다시 각자 말하고 겨누고 말들은 더 심해지고(막말) 정치가 퀴즈풀이라는 듯 문제 내고 하나는 밀어내고 다른 하나도 탄핵하려다 다시 둘이 합치고…. 국민을 위함이 아닌 것과 자신의 소신이라도 지키기 위한 행태가 분명하게 비교된다. 태산(시대정신, 민의)은 온데간데 없이 빙산(권력, 이익)만 좇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러고도? 역사가 기록할 일이다. 아니, 기록되기에도 너무 허접하고 추잡하다.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홍공의 묘갈명((咸鏡北道兵馬節度使洪公墓碣銘)
“… 날쌔고 날쌘 호신이, 일찍이 봉액에 숨었었네(矯矯虎臣, 蚤隱逢掖)
뛰어난 지략은 드러나지 못했지만, 시책에 나타났네(龍韜其鬱, 見乎蓍策)
왕께서 너는 오너라, 나는 너를 놓지 않으리라(王曰汝來, 予不汝釋)
너의 붓 버리고서, 이 쇠갑옷을 입어라(舍汝手錐, 衽玆金革)
교에 보루를 쌓지 않으니, 너는 장차 무엇을 하려느냐(郊不築壘, 汝將安役)
저 금화당에 올라가서, 너의 축적을 쏟아라 하였네(躋彼金華, 瀉汝蓄積)
왕의 말씀 윤을 내어, 보불이 빛났어라(潤色王言, 黼黻其赫)
공을 무인이라 하나, 이 비석을 보라(謂公其武, 視此貞石. 『여유당전서3』, 문집Ⅱ, 3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