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린 가림막
2009 Daniel's Digital Artworks(2657)
Original Image size 8,000 x 6,000 Pixes(137.3 M) Resolution 300dpi, RGB Mode, JPEG Format.
안을 지켜내고 밖과 소통하는 <발>
건축용어에서의 가림막이란 '파티션'이다.
이 '파티션'이란 하나의 공간을 용도에 따라 임의분할하는 구조물이지만 대개의 경우, 천정에서
바닥까지 막게 되면 Wall이라 부르게 되고 일정 간격을 띄워 막는 것을 '파티션'이라고 부른다.
이 때, 두 용어의 구분은 상당한 차이가 있어 시선만 차단하지만 실내는 공유하는 '파티션'에
비하여 벽체구조물인 '월'은 사실상 공간을 분할함과 동시에 단절하는 것이라 그 의미가 다르다.
이렇듯 시선을 차단하면서도 열린 공간의 대표적 구조물, 또는 설치물이 동양에서는 <발>이다.
안과 밖이 적절하게 시선을 차단하면서도 내다보이는 설치물, 발은 생활의 지혜중에 대단히 돋
보이는 설치물로 전래되어 왔다.
물론 '발'은 동양의 전유물이 당연히 아니다.
'클레오파트라' 시대 이전 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가장 소중한 부분, '프라이버시'를
지켜내는 파숫군 역할을 해 온 것이 또 이 <발>이다. 이것은 늘 안을 지켜내고 밖과 소통하는 이
중적 효용가치로 사랑받아 왔으며 내밀한 사생활을 가려주는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온 것이다.
그런데 오래 사용한 <발>이 부분적으로 뜯겨나갔다던지 망가진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절대효용가치가 훼손된 <발>은 그 본연의 책무를 다하지 못 하여 여간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것
이 아니다. 바로 이런 경우의 난감함은 비단 <발>이라는 상징성 이외의 세상 일 모든 것에 적용
이 되는 낭패로 버리자니 미련이 남고 곁에 두자니 시샘말로 '맛이 간' 어정쩡한 대상이 된다.
잘 나가던 남편이 실직을 했을 경우, 멀쩡하던 옆 사람이 갑작스레 지체부자유자가 된 경우, 또
애지중지하던 비싼 모피코트가 찢긴 경우....그런 것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것들로 세
상을 살다보면 부지기수로 만나게 되는 불행한 일 중 하나다.
'발'은 가리고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보이라고 있는 것이다.
부분적으로나마 가리지 못 하거나 보이지 못 하는 '발'은 사실 용도폐기될 처지임에도 몸을 웅크
려가며 껴안고 사는 사람은 그나마 인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모질지 못 한 사람일수록 그렇다.
나는 누구의 '발'이며 또 누가 나의 '발'인가? 또 그 '발'들은 아직 멀쩡하게 걸려있는가.....
첫댓글 "발은 늘 안을 지켜내고 밖과 소통하는 이중적 효용가치가 있다 ." 마음에 와 닫는 말이다 열릴듯 닫힌 문 같이 . 박태현저 소통이란 책을 보면 "변화 할려면 소통하라 ! 행복하려면 소통하라 ! "고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어느정도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지 ???
이원장 따라갈라모 나는 아직 발바닥 근처에서 놀고 있는 모양?????ㅎㅎㅎ
잘 정돈 된 것들도 천연색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아주 이상하게 비일걸...소통 소통 해삿는기 소통이 안되는 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