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과 함평천지를 거쳐 무안으로(나주 - 무안 29km)
4월 17일, 쾌청한 날씨다. 어제는 의령 등 영남지방이 27도까지 올라가는 등 초여름날씨여서 걷기에 약간 힘든 날이었는데 오늘은 어제보다 아침기온이 낮고 낮에도 시원한 편이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체육진흥회 회원으로 나주에서 열리는 사이클대회의 심판인 김옥환씨가 방문하여 인사를 하고 식사비를 내주었다. 일부러 찾아와 격려의 뜻을 전하고 대회기념모자까지 선물하는 호의가 감사하다. 어제밤에 이틀간 일정으로 합류한 서울의 김숙자, 김혜숙 씨는 맛있는 호도과자를 가져왔고.
출발지점인 나주시청 앞 완사천에 일찍 도착하여 어제 살피지 못한 장화왕후 오씨 유적비를 돌아보았다. 유적비에는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 오씨의 행적이 저세히 적혀 있는데 마지막에 붙인 시조풍의 문장이 이를 잘 압축하고 있다.'금성산 맑은 정기 나주벌에 넘치는데 영산강 가로뻗어 삼천리를 받쳐안고 저기저 완사천은 고려건국요람일세, 아이야 못들었냐 오왕후의 그 슬기를 옛터에 다시 서서 통일위업 되새기니 천년의 어제 일이 오늘인듯 새롭구나.'
나주시청에서 출발하여 영산포 옆 철길을 지나서 영산강 줄기를 돌아 나주시 다시면, 문평면, 함평군 학다리와 엄다면을 거쳐 무안읍에 이르는 29km 길이 오늘의 걷기 행로다. 오전 8시, 시청을 출발하여 내리막길을 따라가다 구진포방향으로 들어서니 옛 철길이 나타난다. KTX 전철길을 닦느라 옛길을 자전거도로로 개조하였을까, 걷기에 쾌적한 길이다. 한 시간쯤 이길을 따라 걸으니 강폭이 넓은 영산강이 눈에 들어온다. 잘 정비된 강변경관이 수려하고 맑은 강물에 그림자로 비치는 산기슭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같다.
가는 길목에 정갈하게 단장한 나주 임씨 묘소들이 늘어선 가운데 백호 임제의 기념비가 우뚝하다. 임제는 조선 중엽의 대문호로 호방하고 거칠 것이 없는 문체로 문명을 날렸다. 오전 9시 반경, 쉴곳을 찾느라 고심하는데 길옆에 나주천연앰색박물관이 보인다. 광주에 살면서도 그런 박물관이 있는지 몰라서 부끄럽다. 상설전시관에 들어가 염색의 여러 정보를 접하며 이곳에서 가까운 나주시 다시면 샛골의 무명베 '셋골나이'는 그 품질이 섬세하고 고와서 극상품으로 유명하다고 적혀 있고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에 이미 염색이 상당수준에 이르렀음을 알게된다. '셋골나이'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이의 장인이 있는 것도 처음으로 알았다.
10시 반경에 다시면소재지를 지나노라니 40대의 여성이 일본인들을 붙잡고 일본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20년 전에 결혼하여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그녀는 '고향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 옛말처럼 고국에서 온 동포들이 무척 반가운 표정이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처연하다.
다시면을 지나니 문평지방산업단지에 들어선 공장들의 규모가 꽤 크다. 그중의 어느 공장 앞에는 노조를 탄압하는 사주를 규탄하는 플래카드가 여러 개 걸려 있기도. 그러고보니 나주는 일찍이 나주비료공장이 있던 곳이다.우리나라가 산업화 되기전에 큰 공장으로는 충주비료와 나주비료공장을 내세울만큼 열악한 시절을 딛고 지금처럼 발전한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되새겨 본다. 오후에 학다리를 지나며 살핀 농공단지에도 30여개의 공장이 들어서 있다.
나주시계를 벗어나니 함평군 학교면에 들어선다. 함평나비축제와 함평한우가 유명한 고장, 쑥대머리의 첫머리에 호남의 여러 고을을 들먹일 때 제일 먼저 등장하는 곳이 함평천지다. 점심을 먹기위해 들린 식당도 함평천지휴게소다. 점심메뉴는 돈까스, 12시 전에 휴게소에 도착하여 한 시간 넘게 넉넉한 휴식을 취하고 오후 걷기에 나섰다.
걷는 동안 만나는 이마다 우리 일행을 바라보며 신기한 표정이다. 어느 아낙은 때를 지어 힘차게 걷는 모습이 부러운듯 '좋아보여요'라고 말한다. 함평 엄다면의 길가에 특이한 비석이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 내용을 살피니 '남도 노동요'라는 제목 밑에 노래가사를 적었는데 걷는 길이 바빠 자세히 읽지못하고 돌아섰다. 꾸준하게 일하며 오늘의 역사를 일구어 온 수많은 일꾼들의 노고를 상찬하는 것이리라. 열심히 일하는 그대들의 손이 아름다워라.
무안읍에 들어서서 군청에 이르는 길이 생각보다 빠르다.(도착시간은 오후 3시 반) 그런데 오늘 처음 참여한 두 분은 막판이 힘들다고 말한다. 초심자와 경험자의 감각이 이처럼 다른 것, 초보운전자가 자연스럽게 숙련기사가 되는 것처럼 우리모두 삶의 베테랑이 되었으면.
추신,
저녁식사는 연포탕이다. 무안은 낙지가 유명하다. 식당주인의 오빠가 오늘 잡은 것을 들여와서 끓였다는 낙지가 싱싱하다. 광주에 비하여 값도 저렴하여서 좋다.나주는 곰탕이 특미인데 숙소주변에 곰탕집이 없어서 맛을 보지 못하였다. 숙소와 식당이 걷는 길목에 있어야 하는 제약 때문에 지역특식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무안은 양파의 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식사 후에는 내일 떠나게 되는 사다코씨와 홍 이사를 위해 간단한 송별연을 열고 한국 노래와 일본 노래를 서로 주고 받으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