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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산/북악산(342.5m)
1.산행구간: 동대문-혜화문-말바위안내소-숙정문-청운대-백악산-인왕산-남대문
2.산행일자: 2014. 12.10(수요일)
3.산행거리 : 13.68km
4.산행참가자: 아내
5.코스별 산행시각
◎ 휘경동 주공 아파트 출발(09:50)
◎ 흥인지문/동대문 (10:20)
◎ 한양도성박물관(10:26)
◎ 낙산공원(10:45)
◎ 혜화문/동소문(11:15)
◎ 와룡공원/한양도성 말바위쉼터690m,혜화문,낙산1800m,성북동467m(11:45)
◎ 삼청공원 말바위(12:00)
◎ 말바위 안내소(12:10)
◎ 숙정문/북대문(12:20)
◎ 곡장(12:32)
◎ 청운대/293m(12:44)
◎ 1.21사태 소나무(12:48)
◎ 백악산/342m/백악마루(12:51)
◎ 돌고래 쉼터(12:56~13:10)
◎ 창의문 안내소(13:25)
◎ 창의문/북소문/자하문(13:28)
◎ 윤동주시인의 언덕(13:33)
◎ 인왕산길/정상1.01km,사직공원3.03km,창의(자하)문0.64km,청운어린이집(13:49)
◎ 기차바위 갈림길(14:00)
◎ 기차바위(14:05)
◎ 기차바위 갈림길(14:10)
◎ 인왕산/339.9m/서울 467(14:20)
◎ 범바위(14:34)
◎ 곡장/군부대입구(14:38)
◎ 부처바위전망대(14:41)
◎ 인왕산길(14:48)
◎ 사직공원/세븐일레븐(14:57)
◎ 월암근린공원(15:04)
◎ 돈의문터(서대문)/강북삼성병원(15:11)
◎ 정동극장(15:18)
◎ 숭례문(남대문)(15:30)
6.산행기
.............................
산행보담 트레킹이 어울리는 한양도성 둘러보기입니다.
2011년 7월
명칭이 서울성곽에서 서울 한양도성으로 변경되었다고 하는데요
그 역사을 보면
1392년 개성에서 조선왕조를 개국한 이성계 즉 태조는 즉위한 후 곧바로 한양천도를 계획합니다.
그리고 태조 4년(1395)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 축조 계획에 따라 한양도성을 수축하기 시작 합니다.
북악산(342m)울 비롯 낙산(125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연결하는 자연성곽을 더불어 총 길이는 18.6km에 달했다고 합니다.
산이 아닌 평지는 토성으로...
그리고 산에는 산성으로....
그렇게 공사는 농한기에만 이루어졌으며 1396년에 서울성곽 대부분 그리고 4대문과 4소문을 완공하였다고 전해 집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규모가 컸던 남대문은 2년 뒤인 1398년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목적은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하지만 그보담 왕권 세력을 강화하기 위함이었겠죠
거슬러 올라가보면
1392년7월 이성계는 고려 공양왕을 자위반 타위반이지만 폐위 시킵니다.
그리고 풍수지리에서 개성에 이어 두번째로 좋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실은 여전히 고려을 기억하며 조선에 대한 반감을 가진 새력들때문이라도 한양으로 천도할것을 명하지만
오랫동안 개성에서 살아온 신하들 입장에서 보면 그리 달갑지않게 생각함은 뻔한 이치이겠죠
그리고 잠시 주춤했던 한양천도는 1394년 8월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신도궁궐조성도감을 설치 그해 11월 29일 천도를 단행 600년역사의 한양시대의 시작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조선의 수도가 될수있었던 영향은 무엇보다 풍수지리에 의함인데요
한성의 입지적인 조건은 종산인 북한산으로 부터 뻗어나온 북악산이 주산이 되어 북쪽을 받치고 동쪽으로는 낙산이 청룡이 되며 서쪽으로는 인왕산이 백호가 되어 시가지를 에워 싸는 좌청룡 우백호의 형상을 하고 잇다는 점이죠
그리고 남쪽에는 목면(남산)산이 남쪽을 경계로 그 중앙에 흐르는 청계천이 한강과 합류하는 지리적 조건이라는 분석이었겠죠
그래서인지 몰라도 진산인 백악을 배경으로 경복궁의 노단을, 부주산인 응봉을 배경으로 창덕궁을, 또 경북궁 전면에 육조,그후면에 시전을 배치하는등 좌조우사(左祖右社),전조후시(前朝後市) 배치개념을 도입하였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27년 후, 세종은 한양도성에 대한 보수 작업을 진행, 한양도성 전면에 걸쳐 흙으로 쌓은 토성을 모두 돌로 다시 쌓고, 공격·방어 시설을 늘렸는데요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한양도성의 골격을 이룬다고 볼수 있다고 합니다.
이후 숙종 30년에는 성곽의 돌을 정사각형으로 다듬어 벽면이 수직이 되도록 보수를 하였는데요,
태조에서 숙종 대에 이르기까지, 260년간 서울성곽은 부분적인 보수만 있었을 뿐 큰 붕괴 없이 그 모습을 유지해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 전차를 부설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 나갔고,
이듬해는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 부설을 위해 남대문 부근을 철거하게 되죠.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서대문과 혜화문이 헐리면서 사실상 서울의 평지성곽은 모두 철거되어 오늘날에는 총 길이 18.2km 중 산지성곽 10.5km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둘째아이의 생일이 12월 10일 입니다.
세상이 그리도 보고싶어서인지 몰라도 엄마 뱃속에서 열달도 채우지 못한 팔삭둥이로 태워나 참 많이도 속을 썩이더니만 그래도 훌쩍자란 아들 모습...
아무리봐도 대견하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네요
병원에서 포기하라는 애기도 수십번...
그리고 매일같이 우유와 기저귀등 병원에서 필요한 물건(불포함된 의료비)을 사들라너라 잔돈이 마를세 없을 1달반 인큐베이터 생활....
그래도 고등학교때 한번씩 간혹 속을 썩이던 녀석이 이제는 어엿한 대학 3학년
비록 방위이지만 병역의무도 마쳤고...
하여간 볼때마다 이따금 생각나게하는 어린시절...
주변에서 병원비로 나간돈으로 계산하기는 어렵다지만 천원짜리 지폐로 쌓았으면 키보다 더 높이 쌓았을거라는 이야기도 이제는 추억으로 변한지 오래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9일
한달전에 예매해둔 KTX열차....
지난한주는 전국을 강타하는 맹추위였는데 서울 간다니 날씨가 따스해질거라는 기상청 예보입니다.
이런경우도 있나 싶습니다.
비록 2박3일이라 3일후에 또 한파가 몰아칠거라는 예보가 나와 있긴 하지만....
뭐 어째튼 추븐것보담 따스한게 헐 낳겠죠
12시 도착한 서울역의 서울 바람은 바람만 불어도 피부고 얼얼할만큼 차가운 바람입니다.
뭐 이런날보고 안춥다고....
지인들로부터의 만나자는 연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의 저녁만찬을 위해 귀막고 입막고....눈막고...
◎ 휘경동 주공 아파트 출발(09:50)
12월 10일
아이들 학교갈시간과 함께 집을 나섭니다.
한양도성 트레킹을 위해서 입니다.
몇일전부터 준비해 왔지만
지도도 다운받아 카피해 놓았지만 가지고 오지 않았던터....
하지만 급히 스마트폰에 주요지점의 사진만 담아 왔지만 이어지지 않은 길이라 중간 중간 알바도 하고...
어찌되었던 간에 출발합니다.
목적달성을 해야 하니까요
◎ 흥인지문/동대문 (10:20)
한창 잔디 공사중인 동대문에서 한양도성 박물관까지의 길...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일하는 인부들...
한양도성 박물관을 둘러볼요량이었지만 오늘 저녁에 아이들하고 2차 만찬도 있고하니 갈데까지 가보자는 욕심도 있고 하니 어디 한군데 둘러볼 여유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한양도성의 역사를 둘러볼수 있는 그런곳인데요 관람시간은 10시부터 16시까지라고 합니다.
해서 한양도성 박물관은 패스....
한양도성길...............
한양도성 안..............
중간에 서울대학병원도 보이고.....
◎ 낙산공원(10:45)
그런 길따라 낙산에 올라섭니다.
125m라는 낙산....
산의 모습이 낙타 등처럼 볼록하게 솟았다고 하여 낙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하는데요.
풍수지리상 한양도성의 내사산(內四山)의 하나로,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한다는 낙산.
옛날 도성 5대 명승지에 이름을 올린 낙산은 조선시대 때 문인들이 별장을 짓고 살 만큼 풍광이 아름답기로 널리 알려져 왔다고 합니다.
어디한곳 봉우리라는 개념이 없어진지 오래지만 산 전체가 화강암인 돌산으로 현재 낙산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 혜화문/동소문(11:15)
그리고 이어지는 낙산 공원...
이곳에서 암문으로 빠져 한양도성 성곽외벽으로 이어지는 길따라 혜화문까지 가야 하는데요
어디한곳 이정표가 없으니 대형 알바를 합니다.
곧장 낙산공원내 한양도성 성곽내벽따라 내려서는데 벽으로 막혀 있고 중간에 문하나 있지만 닫혀있는 상태....
왼쪽으로 내려서지만 동숭동마을이고...
어쩌나 저쩌나 고민하다 돌아서기는 틀렸고 동숭동으로 내려섭니다.
그제사 스마트폰의 지도를 확인하니 갈수 없는 그곳 한양도성길은 카톨릭대학이 막고 있었네요
말로는 개방 운운하지만 실제로 보면 페쇄적인 그런면을 볼수 있는 대목인셈입니다.
그렇게 길은 동숭동 아트홀따라 헤화교차로 그리고 혜화문까지 둘러오게 만듭니다.
혜화문.....
혜화문(惠化門)은 서울성곽의 사소문 중 하나로, 속칭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15세기 초 서울의 북대문인 숙정문이 폐쇄되면서 혜화문을 북문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원래 소문을 지키는 출직호군(出直護軍, 문을 지키는 병사)이 20명이고 대문은 30명이지만 혜화문은 출직호군이 30명이었다고 하는군요.
1396년(태조 5년)에 완공되었는데, 당시는 홍화문(弘化門)이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1511년(중종 6년)에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발음이 같다 하여 혜화문으로 이름을 고쳐 부른다고 하는데요
1592년 문루가 불탔으나, 1744년(영조 20년)에 재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를 거쳐 1994년 복원했으나 위치도 다른 곳에그리고 모양도 엇비슷하게 지어진 것이리고 합니다.
헤화문을 두고 잠시 이어지던 성곽은 이예 도시로 바꿔진지 오래인듯 보입니다.
한양도성 성곽길은 이렇게 끊어지고.....
서울 과학고을 왼쪽에 두고.....
이어지는 한양도성길.........
◎ 와룡공원/한양도성 말바위쉼터690m,혜화문,낙산1800m,성북동467m(11:45)
성곽을 허물어 학교를
그리고 빌라,주택이 성곽을 대변해주고 있는 성곽없는 성곽길...
그런길은 잠시 이어집니다.
성북동과 헤화동을 연결하는 도로를 만나면서 서울 과학고를 왼쪽에 두고 다시 성곽길을 이어 갑니다.
그리고 그길은 와룡공원에 올라섭니다.
와룡공원은 삼청공원,창경공원과 더불어 북악산 도시자연공원이 인접해있는곳으로 용이 길게 누워있는 향상을 하여 와룡동이라고 한다는 와룡공원
한양도성 내벽은 군부대가 막고 있고 트레킹길은 외벽으로 이어집니다.
600년 역사의 한양 도성길
말바위 가는길.................
◎ 삼청공원 말바위(12:00)
외벽에 한양도성 말바위쉼터690m,혜화문,낙산1800m,성북동467m의 이정표도 세워져 있고...
성북동에서 올라오는 길목에는 군부대막사인듯 파란색으로 페인트칠은 했지만 블럭으로 세워진 막사....
필요 없어모 철거 해버리던지....
눈살찌푸리게 만드는 곳입니다.
이어지는 성곽 외벽길...
말바위 안내소의 이정표도 나오고...
그리고 잠시후 삼청공원에 올라섭니다.
조선시대에 말을 이용한 문무백관이 시를 읊고 녹음을 만끽하며 가장많이 쉬던자리라 하여 말바위라 불리기도 하고 백악(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죄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 끝에 있는 바위라 하여 말바위라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전에 바위에 벼럭이 많이 친다고 하여 벼락바위라라고도 불리기도 했다는 말바위....
그앞에 말바위 이정표도 있고...
또 이쪽방향으로 시잔을 찍지날라는 안내판도 붙혀져 있네요
지금 시대가 어느시대인데 아직도 사진까지 찍지말라니...
공중에서 보면 1m내외의 물건도 식별한다는 위성 카메라가 등장한지 오래건만 아직도 이런거 가지고 말싸움을 할건인지 묻고 싶으네요
그래 무서버서 피하는게 아니고 더러버서 안찍는다며 돌아 섭니다.
하지만 전망대에서 보는 조망은 좋습니다.
비록 가스가 많이 끼긴 했지만 남산까지 그리고 63빌딩까지 시야에 들어 오는 조망입니다.
다시 돌아 섭니다.
말바위 전망대에서 보는 한양도성 안
성균관대도 보이고....
◎ 말바위 안내소(12:10)
말바위 안내소입니다.
한양도성의 주산인 북악산을 지날수 있는 개목걸이가 생각나게 하는 곳....
미리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정보도
그리고 마음대로 사진도 찍을수 없다는 정도도 알고 있기에...
군인인듯 두사람이 지키고 있는말바위 안내소...
안내소가 아니고 통제소 입니다.
입장시간이 하절기(3월~10월)는09시부터 16시까지, 그리고 동절기(11월~2월)는10시부터 15시까지 라고 합니다.
주소,이름과 개목걸리를 교환
안내소를 지나 올라섭니다.
군인들이 지키는 한양도성길............
◎ 숙정문/북대문(12:20)
눈알 크게떤 카메라..
군데군데 지키고 있는 초소내의 병사
그리고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오가는 지킴이들...
소나무와 어우러지는 성곽은 이쁘기만 하구먼 지키는 이들로 하여금 살벌한 분위기는 왜 느겨야 하는지...
통이라는 대한민국....
아직은 요원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는 생각중에 나타나는 숙정문.......
서울성곽을 이루는 사대문(四大門) 가운데 하나로 도성의 북쪽 대문이죠.
1396년(태조 5) 9월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四小門)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고 하는데요.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북문 등으로도 부르는데요
숙정문이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523년(중종 18)이며, 북정문(北靖門)이란 표현도 나오는데, 숙청문과 숙정문이 혼용되다가 뒤에 자연스럽게 숙정문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군요.
도성 북문이지만 서울성곽의 나머지 문과는 달리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413년 풍수지리학자 최양선(崔揚善)이 지맥을 손상시킨다는 상소를 올린 뒤에는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고 하는데요.
이후 숙청문은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합니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청와대 경비를 위해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다가, 2006년 4월부터 일반에 개방되었다 합니다.
또 숙정문은 남대문인 숭례문과 대비하는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이기도 하는데요.
이 문은 정월대보름 전 세 번 놀러오면 액운이 사라진다는 속설이 있어 여인들이 많이 찾기도 했다고 합니다.
◎ 곡장(12:32)
다시 이어지는 성곽길.....
어디한곳 마음놓고 카메라에 담을수도 없는 그런길...
군데군데 부라리고 있는 카메라
그리고 초소마다,
또 무전기와 호각들고 지키는 병사들...
그런길 따라 곡장이란곳에 올라섭니다.
이렇다할 이정표도 없는곳...
곡장
곡장(曲墻)은 성곽의 시설 중 하나로, 방어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성곽 일부분을 둥글게 돌출시킨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잠시 둘러 물한모급 하고 내려섭니다.
◎ 청운대/293m(12:44)
좋은 자리는 언제나 군부대막사가 자리하고 있고 그길을 터주는 대신 성곽길은 내외벽길로 연결을시켜놓은것도 어찌보면 다행이라면 다행인듯 싶습니다.
참 이런것도 고마워해야 하는 세상이니...
외벽을 둘러 다시 내경으로 들어 서는 초소
그앞에 청운대라는 정상서기 세워져 있네요
청운대
청운대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라기 보단 북악산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 중 하나로 서울시내가 한눈에 잘 들어오는 그런곳이죠
두눈을 부라리고 있는 병사들의 눈도 그러하고...뭐 보이는곳마다 사진을 찍지말라는 규제뿐이고...
◎ 1.21사태 소나무(12:48)
곧장 이어지는 발길....
1·21 사태 소나무를 볼 수 있는데요.
수령이 200년이 넘은 소나무라합니다.
안내문을 잠시 빌려오면은요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부대 김신조등 31명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 청운동에서 경찰과 교전후 북악산및 인왕산으로 도주, 군경과 교전중 현 소나무에 15발의 총탄 흔적이 남게 되었는데용;후 1.21 사태 소나무라 부르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당시 14일간의 작전결과 31명중 1명 도주 29명 사살1명 생포라는 전과를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사건을 계기로 향토예비군이 창설하게 되죠
그때 15발이나 맞은 소나무는 죽지 않고 아직도 잘 자라고 있구요.
◎ 백악산/342m/백악마루(12:51)
다시 이어지는 발길은 기나긴 계단길 오르막길입니다.
초소가 있는 갈림길에서 백악산으로 올라섭니다.
백악마루라고 라는 백악산
342m라지만 한양도성의 주산인 백악마루
백악마루는 북악산의 정상으로 조선시대 가뭄이 들면 이 곳에서도 기우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한양도성성곽은 9500자 축정하고 97구역으로 나눠 1구역를 600자로 공사를 했다 하는데요
각 구역마다 천자문의 글자로 번호를붙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북악의 정상에서 동으로 돌면서 천(天) 지(地) 현(玄) 황(黃)으로 시작해 95번째인 글자 조(弔)로 북악산에서 끝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북악산 성곽은 2006년 4월 홍련사에서 숙정문 촛대바위까지의 1.1km가 개방되었다가 2007년 4월 와룡공원 숙정문 백악마루 창의문까지의 4.3km가 전면 개방되었다지만 산전체가 아닌 성곽일부만 개방된것이라 보면 될것입니다.
그리고 2007년 출입이 간소화 되었다지만 여전이 군부대가 장악하고 있는 북악산 성곽길...
언제나 국민의 품으로 돌아 오려는지 궁급할뿐입니다.
북악산 코스는 1968년 이른바 1·21 사태 이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줄곧 일반인들의 발길이 철저히 차단돼 있던 곳이죠.
그러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인 2006년 4월부터 단계적으로 개방되기 시작해 지금은 전면 개방됐었다고 합니다.
자하문으로 내려서는 성곽길
이곳에서 팻찰 반납 하고.....
◎ 창의문/북소문/자하문(13:28)
다시 내려섭니다.
자하문까지 길에 늘어선 성곽길.....
급경사지역에 계단길마져 높낮이가 다른 길....
반대로 오르다보면 제법 땀깨나 흘릴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잠시 돌고래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합니다.
바삐 걷는다고 여유도 없이 지나 왔건만 무얼 봤는지 무얼 지나쳤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은 북악산길....
이곳에서 지킴이가 무전기소리에 귀기울인채 두눈을 부라리고 있고....
요기를 하고는 창의문까지는 단번에 내려섭니다.
표찰 반납소라는 안내문과 함게 그 살벌했던 북악길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창의문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인 창의문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이지만 이 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많이 불려 진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4소문 중의 하나로
1396년(태조 5) 도성을 쌓을 때 북서쪽에 세운 문으로 4대문 중 북대문인 숙청문이 항상 닫혀 있었으므로 경기도 양주 등 북쪽으로 통행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문을 거쳐서 왕래했다고 합니다.
1741년(영조 17) 훈련대장 구성임이 "창의문은 인조반정(1623년) 때 의군이 진입한 곳이니 성문을 개수하면서 문루를 건축함이 좋을 것"이라고 건의하면서 문루로서 제구실을 하게 됐었다고 하는데요.
창의문은 전형적인 성곽 문루의 모습으로 서울의 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또 성문 맨 위에는 봉황 한 쌍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데요
속설에 의하면 이는 닭 모양을 그린 것인데, 창의문 밖 지형이 지네처럼 생겼던 터라 지네의 천적인 닭을 그려넣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문은 1958년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는군여
또다시 성곽길은 끊어지고.....
윤동주 시인의 언덕.......
인왕산길에 성괵길로 이어지는 갈림길.............
한양도성길.............
도성길.............
기차바위 조망............
기차바위에서 북악산을 조망...........
기차바위에서 한양도성을............
◎ 기차바위(14:05)
다시 이어지는 길은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지나면서 인왕산길이 연결 되면서 성터를 벗어 닙니다.
물론 성곽길은 군부대가 차자 하고 있기에 그러하지만 ....
이제는 좀 비켜 줄때도 되었건만 .....얼마후 인왕산길에 경찰초소가 하나 있고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성곽길로 붙습니다.
철조멍 넘으로 정상1.01km,사직공원3.03km,창의(자하)문0.64km,청운어린이집의 이정표도 서있고....
그런데 북악산 대부분의 초소는 군부대가 그리고 이곳부터 인왕산 초소는 경찰이 차지하고 있는가 봅니다.
그러니 000를 둘러싸고 있는 좌청룡 우백호는 군부대 경찰들들이 지켜보고 있는 모습인 셈이죠
다시 이어지는 성곽길....
000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젊은 친구 둘이서 있길래 뭐하느냐니 보안상 말씀드릴수 없다며 지네들끼리 수군덕 거림니다.
대답안해도 잘알터....
허긴 물어본내도 그러네요
물어보지 않아도 잘알터 근데 내가 왜 물어 봤지
다시 이어지는 성곽길.....
가파른 계단길이 기차바위 갈림길까지 이어지는데 어김없이 갈림길에도 경찰이 초소를 세워 놓았군요
이곳에 근무하는 친구들은 야경을 원없이 보겠다는 생각입니다.
하기사 이런 구경거리도 매일보면 볼거야 없겠지만 매일저녁마다 색다른 느낌일수는 있겠죠
잠시 기차바위에 다녀오기로 합니다.
가치바위라봤자 암릉에 줄을 메어 놓은것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곳은 내겐 초행길이 아닌가....
어디를 둘러봐도 막힘이없어 참 좋은곳입니다.
아그들이 지키는 000도 사정없이 시야에 들어 오고...
카메라 찍지말라는 문구도 없고...
다시 기차길 갈림길로 북귀 합니다.
소나무.................
인왕산...............
조망................
인왕산 치마바위.................
◎ 인왕산/339.9m/서울 467(14:20)
잠시 성곽길을 따르던 길은 인왕산이라는 암릉아래부터는 자연성터길입니다.
그리고 책바위를 지나 339.8m의 인왕산 정상에 올라섭니다.
그 흔한 정상석 한 없는 인왕산
대산에 암릉정수리에 삼각점을 박아 놓았네요
뭐 굳이 삼각점을 정수리에 박아 놓은 이유가 뭘까여
인왕산
낮으나 격이 높은산이라는 인왕산
인왕산을 치마바위로 유명하다죠
중종의 첫번째 왕비인 단경왕후에 관련된 전설인데요
연산군을 폐하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진성대군이 중종이 되는데요 그의 부인인 단경왕후 친정 아버지 또한 반정때 피살 되죠
이러한 가운데 반정을 주도해온 박원종등이 죄인의딸은 왕비가 될수 없다하여 인왕산 아래 사직골 옛거처로 쫓겨나 살게 됩니다.
이에 중종은 부인을 잊을수가 없어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기슭을 바라보곤 하였다는데요
이에 신씨는 이말을 전해 듣고는 종을 시켜 자기가 입고 입던 붉은 치마를 경회루가 보이는바위에 걸쳐놓음으로 간절흔뜻을 표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일로 인해 사람들은 이바위를 차마바위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한켠을 차지한 초소....
지네들도 할일없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사진찍어 달라는 행락객들의 카메라로 열심히 진지하게 찍는 모습이 하루이틀만의 모습이 아닌듯 보입니다.
인왕산을 내려섭니다.
인왕산에서 보는 범바위와 곡장
◎ 범바위(14:34)
아들과의 약속시간은 5시인데....
남산까지는 갈수 있을런지 남대문까지 가서 결정 하기로 합니다.
여전히 이방면으로는 사진을 찍을수 없다는 안내문.....
가파른 내리막길은 성곽길 외 우횟길도 만들어놓았고...
또 중국 산에서나 볼성싶었던 암릉을 깍아 만든 옛길도 눈에 들어 옵니다.
그런길따라 이어지는 성곽길.............
잠시후 성곽길중간에 암릉에 올라서는데요
범바위 랍니다.
뭐 범바위처럼 생기지는 않았지만 .....
그러넫 이곳에도 지킴이가 왔다갔다 하고 있네요
그러면서 청와대 방면은 카메라를 들이대지 말라는 표시이구요
헤서 인왕산쪽은 카메라를 찍으도 상관 없느냐니 괜찮다 하는군요
지네들이 정해놓은 틀에 맞쳐가야하는게 서로가 편한법...
돌아섭니다.
범바위에서 뒤돌아본 인왕산
달팽이 바위
부처바위
선바위
인왕산길..............
◎ 사직공원/세븐일레븐(14:57)
내려서는길에 또하나의 곡장을 만나는데요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발칸포라고.....
갈수없는길을 하염없이 둘러보다 내려섭니다.
이어지는 성곽길....
또하나의 초소가 있는 암문에서 우연히 바라본 암릉.............
근무를 서고 있는 의경이죠
저게 무슨 바위냐 이름이 있는 바위냐니
곡장아래 서있는 바위를 아슬바위라 합니다.
그러면서 설명까지....
아슬하게 서있다해서 아슬 바위랍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는 달팽이 바위라 하는군요
아~ 그러냐며 밴드에 아슬바위라 올려놓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부처바위 이군요
그리고 으아래바위는 달팽이 바위가 맞구요
그 의경이 엉터리로 가르켜 줬네요
그리고 그아래 선바위는 워낙 유명하리만큼 인왕산에서 소문남 바위이니 당연이 알수 있지만..........
선바위
이바위는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부인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많이 하여 기자암이라고도 불려지며 바위의 모습이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입는것처름 보여 참선한다는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불리기도 한답니다.
이바위가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상이라는 설화와 태조부부의 상이라는설화가 전해지는데요
일제 강점기시절 남산에 있던 국사당을 이바위 곁으로 옮긴 뒤부터는 이바위와 함께 무신으로 모시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옛 문헌에 조선 태조때 한양으로 천도할때 선바위에 관한 설화가 전해져 오는데요
한양도성을 쌓을때 무학대사는 선바위를 도성안에 둘수 있게 설계하려 했었고 이에 정도전은 성밖에 두도록 설계하려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도전은 성안에 두면 불교가 웅성할것이고 도성 밖에 두면 유고가 흥할것이라고 태조를 설득결국 성밖에 두었다는것입니다.
이에 무학대사는 탄식하며 이제는 승도들은 선비들의 책보따리나 지고 따라다닐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길따라 내려서는데 인왕산길이 무학재로 연결되는 길입니다.
경찰초소도 마무리되는듯 하고......
도로를 횡단 성곽길따라 내려섭니다.
그리고 성곽길은 마무리 되고 사직공원 가는길과 연결 되면서 정면에 세분일레븐이 자리 하고 있고 그 이후 성곽길은 없어진지 오래인듯...
돈의문터/삼성강북병원
정동극장앞...............
◎ 숭례문(남대문)(15:30)
골목길따라 내려서는데 월암 근린공원이 자리 하고 있고...
그리고 서울시 교육청 앞을 지나 정동 사거리에 내려섭니다.
오른쪽에 삼성 강북병원옆에 돈의문터라는 팻말이 있을뿐 그 어디 성곽이 있는지 흔적도 없는 길....
횡단보도를 건너 경향신문사옥을 지나 정동 극장을 지납니다.
그리고 그이후 서소문터로 가야 하지만 오늘은 곧장 덕수궁 돌담길따라 남대문에서 마무리를 합니다.
아침 느지막하게 시작한 한양 도성길....
이런 저런 에피소드 (episode)도 많았지만 그래고 야무진 마무리를 하기 위해 면목산 즉 남산을 넘을까도 생각해봤지만 이곳 남대문에서 남산까지의 무의미한 길....
한양도성길이라지만 성곽이 없는길은 이정표라도 해놓았으면 길을 찾는데 그리 애로사항이 없을텐데...
너무 이정표가 없는것도 흠이라면 흠입니다.
첫번째로 낙산 공원에서 헤화문으로 가는길은 암문에서 이정표를 해놓았으면 싶구요
두번째로 서울 과학고등학교 주변에도...
그리고 사직공원 가는 길목에서 남대문까지 전혀 이정표가 없어 정말 욕많이 나오더구먼요
어째튼 오늘 이곳에서 한양도성길을 마무리하고 남대문 시장 나들이에 들어 갑니다.
그리고 아이들하고의 약속시간에 맞추어 들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