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양식
트레비 분수
바로크는 회화, 조각, 건축 등 조형미술의 모든 분야에서 일제히 일어난 풍조였다. 그 특징을 알려면 실례를 보는 것이 가장 좋다.
왼쪽 그림은 로마의 트레비 분수이다. 조각의 주제는 해마가 이끄는 조개 껍질 전차를 타고 해신 넵튠이 건물 안에서 막 달려나온 장면이다. 해신의 동작은 일부러 좌우 균형이 맞지 않게 함으로써 생동감을 표현하고 있다. 해마도 해마의 재갈을 잡고 고동을 불고 있는 트리톤 (넵튠의 아들로 하반신이 물고기)도 좌우가 흐트러져 있다.
분수 자체도 르네상스 시대라면 정원과 직선을 써서 반 듯하게 만들었겠지만 여기서는 불규칙한 곡면만 쓰고 좌우의 대칭은커녕 몸부림치는 듯한 격렬한 동적인 느낌을 분수 전면에 걸쳐서 자아내고 있다. 주위에 배치되어 있는 돌들도 마찬가지이다.
조각군과 배경물이 일체가 되어 융합해 버리는 것도 바로크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르네상스식이나 그 후에 나타난 클래식 양식에서는 설사 조상이 건물에 붙여진 경우에도 별도로 독립되어 있었다.
호화로운 종교건축
궁전과 같은 세속 건축물이라면 '과연 호화로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구나' 하고 감탄할 만 하지만 종교 건축이라면 아무래도 동양인에게는 납득이 각지 않는 듯 하다. 지나치게 요란스럽고 장식이 과다한 느낌이 들어서 종교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종교 건축에 관한 한 로마네스크의 소박한 느낌, 고딕의 장엄한 느낌이나 르네상스의 단정한 느낌 쪽이 좋아 보인다. 그러나 현존하는 교회, 궁정예배당, 수도원 같은 종교건축을 양식별로 분류하면 바로크식이 숫적으로 가장 많다.
바로크 건축을 한눈에 식별하려면
어떤 건물이 바로크식인가를 한눈에 분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불규칙한 곡선이나 곡면을 과용하거나 일정한 '형태의 연속성'을 일부러 끊어서 다른 선으로 바꾸거나 했다면 그 건물은 바로크식이라 생각해도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단 르네상스식에서 바로크식으로의 이행은 점진적으로 행해졌으므로 과도적인 형태는 얼마든지 있다. 바로크식에서 클래식 양식으로의 이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독일에서는 바로크식 말기에 로코코식을 가미한 형태가 나타났다.
바로크의 막을 연 산 카르리노
왼쪽 사진은 산 카르리노 아레 쿠아트로 폰타네 (4개의 샘에 면해 있는 성 카를로)라는 긴 이름을 가진 교회이다. 이 고장 사람들은 '산 카르리노' (귀여운 성 카를로)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다. 장소는 발베리니 광장에서 동남 쪽의 언덕을 올라간 곳에 있다. 네 모퉁이에 각각 춘하추동을 나타내는 샘이 있으므로 '4개의 샘'이라고도 불린다.
이 교회는 바로크식의 개막을 알리는 귀중한 존재로 미술사 책에는 반드시 사진과 함께 나온다. 바로크식의 창시자 중에 한 사람인 볼로미니 작으로 내부는 1649년에, 정면 외부는 1667년에 완성되었다.
정면 외부는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층은 중앙이 볼록 모양으로, 좌우가 오목 모양의 곡면을 이루고 있고, 위층은 세 면 모두 오목 모양의 곡면이지만 중앙에 타원통 형의 밖으로 난 창과 난간이 볼록 모양으로 삐쳐 나와 와 있다. 그 위에 붙어 있는 타원형의 메달도 일부러 크게 해서 불안정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상하 2층 사이에는 특히 두툼한 선을 넣어서 상하의 관련성을 일부러 끊어 버리고 있다. 정면 외부의 방 끝도 끊겨서 공중에 뜬 채로 있다. 종루도 마찬가지로 상반되는 곡면과 되받아내기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로마를 정복한 바로크식
정원과 직선의 짜임새에 의한 차분한 양식밖에 몰랐던 세상 사람들은 이 교회를 보고 깜짝 놀라 찬반이 엇갈려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보수파는 이 교회의 양식을 '미친 짓'이라 했고,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혁신파는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다.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별로 기발한 디자인으로 여겨지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참으로 미증유의 것이었다. 별과는 눈사태처럼 혁신파의 승리로 끝이 났다. 본래는 보수적이어야 할 교황, 고위성직자, 귀족들도 이제는 이 새로운 취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교회, 궁전, 저택으로부터 길거리의 분수조각에 이르기까지 바로크식이 아니면 통하지를 않았다. 나보나 광장의 '4대하의 샘'도 그렇지만 로마에는 의외로 바로크의 기념물이 많다.
출처 : http://dragon.seowon.ac.kr/~jeronimo/landeskunde/culture/barock.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