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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꽃 |
귀룽나무 |
현호색 |
산벚나무 |
숲에서의 점심식사
정상이 훤하게 보이는 솔숲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쳤다
마당쇠가 얼려서 가져온 막걸리를 한 그릇 마셨더니 늘어졌던 심신이 금새 되살아났다
두릅전, 계란말이, 쑥개떡, 김밥, 떡갈비, 컵라면, 찰밥, 인삼막걸리,...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막걸리는 밥이다
논두렁 밭두렁에 앉아
하늘 보며 마시던 밥이다
물밥!
사랑으로 마시고
눈물로 안주하는
한숨으로 마시고
절망으로 입을 닦던
막걸리는 밥이다
마시는 밥 ............................................홍해리의 詩 <막걸리> 전문
가야산 정상(678m)
가야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우리 고장 모악산에 오르는 길과 매우 흡사하였다
모악산 정상에 있는 형태의 통신탑까지 자리하고 있었는데, 정상이 개방되지 않은 게 차이점이었다
하루종일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조망을 별로 좋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땀을 흠뻑 흘려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하산을 마치다
무사히 하산을 마치고 내포문화발원탑 앞에서 신산회 깃발을 펼쳐 들고 기념촬영을 하였다
옛날에는 여기를 내포(內浦)라 했고, 지금도 이 일대를 내포평야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 고장 사람들은 사는 행정구역이 서로 달라도 마치 옆마을 사람처럼 느끼는 친근한 동향의식을 갖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내포의 풍요와 평화가 가야산에서 발원한 것으로 믿어 이곳에 내포문화발원탑을 세운 모양이다
슬픈 수덕사
내포땅 가야산이 가장 이름 높은 명승지는 바로 수덕사다
가야산 남쪽 덕숭산 중턱에 널찍이 자리잡은 수덕사는 백제 때부터 내려오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고려 때 지은 대웅전이 건재하고, 근세에 들어와서는 경허와 만공 스님 같은 큰 스님이 있었고, 여승들의 큰 선방도 있다
그러나 그 옛날의 수덕사는 완벽하게 망가져버려서 더 이상 <수덕사의 여승>같은 정취를 느낄 수가 없다
최근 몇 년간에 걸친 어마어마한 중창불사로 의리의리한 사찰이 되어 돈냄새가 물씬 풍기는 절이 되어버렸다
어울리지 않는 포대화상
천왕문을 지나 황하정루 만나기 전 오른편에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깨끗한 조각상이 하나 있었다
이 조형물은 미륵불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중국 후량시대의 선승 포대화상 (布袋和尙)이라고 한다
그런데 중국풍의 느낌이 물씬 풍기고...불경스럽게도 금복주의 광고를 보는듯 하여 웃음이 절로 나왔다
문화관광해설사-송애순
요셉 친구가 문화관광해설사를 미리 예약해 놓아서 자세하고 친근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송애순 해설사는 인상이 좋고, 불교 미술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요셉이 해설사의 손을 오랫동안 잡고 있어서 귀여운 항의를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대단한 생명력
수백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대웅전의 석축 사이에서 자라는 작은 식물을 보았다
강하고 튼튼한 돌의 느낌과 연약하기 그지없는 잡초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처럼 작은 공간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이어가는 잡초의 생명력이 우리 민족의 저력이 아니었던가!!!
무심(無心)
무심(無心)이란 감정도 의식도 없는, 아무 생각이 없는 마음 상태라는 의미이다.
불교에서는 허망하게 분별하는 삿된 마음, 미혹한 마음을 여윈 것을 가리켜 무심이라 한다.
부처님을 믿고, 향하여 그 마음에 더러움이 없고, 무심의 가르침을 또한 믿으면 이것이 굳은 믿음이다
수덕사 대웅전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열왕 34년에 지어진 수덕사 본전 건물이다.
일제 강점기 말 해체 복원하면서 명문이 발견되었다.
그 결과로 정확한 건축연대를 알 수 있었고, 봉정사 극락전, 무량수전과 더불어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수덕사 대웅전은 단순하고 간결한 구조 속에서 정숙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측면은 배흘림기둥과 각이 진 들보를 노출시키면서 절묘한 면분할로 집의 모양새를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쓸쓸한 수덕여관
수덕여관은 우리 현대미술사의 걸출한 화가 고암 이응로의 본부인이 운영하던 여관이다
그런데 고암은 1957년 프랑스 파리로로 유학갈 때 본부인을 버리고 이화여대 제자인 박인경 여사와 함께 갔다
1968년 이른바 동백림공작사건으로 고암이 옥살이를 할 때 전주교도소로 옥바라지 한 분은 버림받은 본부인이었다
이것을 아름다운 얘기라고 해야 할 것인가, 슬픈 얘기라 할 것인가?.....나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고암의 문자추상화
수덕여관의 뒷뜰 우물가 양옆에는 서너 사람이 올라 앉을 만한 평평하고 두툼한 암반이 두개 있다
그 암반 양옆에는 고암의 문자추상화가 새겨져 있고 "1969년 이응로 그리다" 라는 낙관까지 새겨져 있다
고암은 우리 전통회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가장 탁월하고 기량있는 화가이지만 만년의 얘긴 쓸쓸하기만 하다
미술관 앞의 조각상
수덕사의 경내에는 돈을 많이 들인 값비싼 조각품들이 많이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나는 미술관 앞에 있는 이 조각 작품이 가장 맘에 들어서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우선 돈을 적게 들인 것 같아서 좋았고, 동자승의 천진스럽고 가식없는 미소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하산주는 즐거워 |
물안개 부부와 함께~ |
요셉과 글라라의 정배주~ |
막걸리가 아니라 꽃술이다 |
첫댓글 부지런한 친구덕분에 다시한번 가야산 남연군묘의 기운과 수덕사의 풍경소리를 관음하네.
운명 중에서 명은 바꿀 수없고 운은 바꿀 수가 있다고 하는데 운을 바꾸는 것중에 음택, 양택, 성명, 기도, 선행, 독서, 운동 등이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 공부와 운동그리고 운좋은 사람들과의 교류라고 생각하네.
좋은 사람들과 공부를 하면서 운동을 하는 송천동 성당 산악회원들은 섬김과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시니
앞날에 무진 무궁한 영광과 발전이 이루어 지리라 생각하네.
친구가 싸온 도시락과 냉동막걸리 정상주를 못마셔 애석하지만
벗꽃흩날리는 벗나무아래에서 마시는 홍삼막걸리 하산주와 벗꽃향과 버무러진찹쌀밥은 일품이었네.
멀리에서 친구가 와주어서 우리의 산행이 더욱 빛나고 아름다웠다
특히 구수한 입담으로 펼쳐내려간 남연군묘 해설은 산행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었지
다음번에는 우리와 산행도 함께 하면서 사랑과 우정을 돈독하게 해보자
가야산에서 네 몫의 도시락을 짊어지고 다니느라고 어깨 빠지는줄 알았다 ㅋㅋㅋ
역사탐방과 숨고르기 손맛과 정이 오가는 산행이었습니다
명은 하늘의 뜻이니 그런다치고 운은 부지런하면 찾을 수있다는말인데
신앙인은 운도 기도하며 바꾸지요
오늘아침은 운도 좋습니다 ㅋ
오봇하고 추억거리 많은 산행이었습니다.
갈매못성지까지 갔으면 더욱 좋았을텐데..그것도 우리의 운이었나 봅니다
홍삼막걸리에 꽃잎을 띄워서 마셨던 시간은 신선놀음이었지요
가야산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활기차게 한주 시작합니다..
장면마다 기의 뿌리... 비애의 현장... 요모조모.. 가슴가득 담아갑니다.
특히 수덕사는 동행하지 못했는데.. 자세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꽃들의 화려한 잔치속에서 .. 맛있는 먹거리..
그날의 감흥을 한층 빛내주구요..
성향이 달라 보이는~ㅎㅎ
우정의 묘미에 진정어린 찬사를 보냅니다..
성향이 달라보여도 공통점이 많이 있습니다 ㅋㅋㅋ
영세를 시켰으니 신산회에 가입시키고 산행도 함께 다니도록 해보렵니다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맛깔나는 산행기를 읽어야만 정기산행이 비로소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번에는 김용구 형님, 말담좋으시고 인물좋으시고, 해박한 지식으로
강연을 해주셔서 진심감사드립니다. 담에도 오셔서 좋은신 말씀 기대합니다. 감사 감사
김용구 친구는 소시적부터 강의를 하고 다녀서 입심이 좋습니다
히말라야에 가서도 한 시간 동안 특별 강연을 한 적이 있었지요
푸른솔님
나를 형님이라 부르시니 앞으로 푸른솔을 동생이라 부르겠습니다.
멋진 남자동생과 아름답고 글을 잘쓰시는 제수씨를 얻었으니
전주에 갈 때 막걸리 파티라도 하면서 축하연을 베풀어야 겠습니다.
아쉽게 못갔어도 함께한 듯한....산행기가 보배스럽습니다.
하늘을 보며... 사랑으로... 눈물로... 한숨으로... 절망과 그리움으로 입을 닦던...
가슴에 오래오래 남아 적어 보았습니다그려.........
로사 언니와 함께 산에 가면 나도 모르게 에너지가 솟구칩니다
어서 빨리 농사일 마치고 함께 산행하는 행복을 누리게 해주세요...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