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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쥴리엣
지난 겨울의 일입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어느 날 저는 두루미를 보러 철원에 갔었습니다. 양지리 민통선에 들어가서 두루미를 찾았지만 발견하지를 못하고 독수리를 보고 사진을 찍다가 들켜서 관할 사단의 소초장으로부터 한번 더 걸리면 헌병대 이첩하겠다는 엄포를 받고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철원 읍내로 돌아와서 허기를 채울려고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분식집에 들어가서 어디 쉴만한 곳이 없으냐고 물어보니 분식집 바로 뒤에 새로 개장한 찜질방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찜질방에는 처음 들어갔는데 중간에는 텔레비전과 놀이기구도 있어서 쉴 수 있도록한 곳이더군요.
찜질방에 들어온 한 아저씨를 만나서 두루미를 보고 싶다고 얘기를 하니 통일촌 민통선을 소개시켜주었습니다. 그 곳은 두루미가 아주 많다고했고 본가가 통일촌이라고 하시더군요. 현재도 노모가 계시고 두루미를 보고 싶다면 노모를 찾아가라는 얘기를 하였습니다. 물론 민통선을 출입할 때는 통일촌의 본가 주소를 말하면 된다는 친철한 설명이었습니다. 다음날 일찍 두루미를 볼 계획을 세우고 찜질방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이미 노곤해진 상태라 집으로 가기도 힘들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통일촌 방향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통일촌으로 들어가니 추운 겨울에 철책선이 바로 보여 여기가 전방이구나라는 것이 실감났습니다. 어쩐지 으스스하기도 하고 날도 춥고 전방 환경이 을씨년스러웠습니다.
그 아저씨의 본가를 찾아가니 노모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맞아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두루미가 오는 계절이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두루미도 날이 너무 추우면 남쪽으로 가버린다고 합니다. 다시 두루미를 보려면 내년 가을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무가 끓여주는 커피 한잔을 얻어 마시고 통일촌 마을 앞을 나가서 걸어보았습니다. 멀리 보이는 전방 철책선 앞의 넓은 논에는 흰눈이 쌓여있고 한없이 평화스럽고 조용한 모습이었습니다.
통일촌이 외부인과 단절되어 갇혀있는데라고 하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세속을 피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라 할 수 있겠더군요. 그 할머니 고향은 서울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인 군인을 따라 전방에 와서 박대통령 때 통일촌 땅을 불하받았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서울 생각도 많이 났지만 지금은 여기가 편하다고 했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와보는 조용한 분위기 마을이었습니다. 날은 찬바람이었지만 맑은 공기와 대자연을 처음보니 마음이 확트이는 것같았습니다. 고향집에 온 것같아서 한참을 마을을 한참 걷다가 돌아왔습니다.
그 때까지 할머니는 열심히 테리비 연속극을 보시고 계셨습니다. 이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사시면서 사랑과 증오, 미련. 회한으로 가득찬 인간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연속극을 보시다니, 흡사 맑은 산위에 올라가서 답배를 피우는 모습 같아서 이상했지만 인간들이란 아무래도 복잡하고 답답한 인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나봅니다. 사랑과 증오,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우리 인간들은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정말 끝없이 창작되는 연속극 사랑이야기는 어제도 오늘도 그칠 줄모릅니다. 우리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 물리지도 않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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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영어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보고 나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에 한글 해석 반, 영어 공부 반으로 읽은 베니스의 상인은 여주인공의 재치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기분 좋은 사랑의 이야기였습니다. 마땅히 읽을거리도 없었고 사춘기 시절의 감수성이 좋을 때 베니스의 상인은 여러 가지로 저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영어 공부는 뒷심이 부족하여 그기서 끝났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이 행복한 사랑의 이야기라면 로미오와쥴레엣은 슬픈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베니스의상인을 읽고나서 저는 세익스피어라는 사람이 천재적인 희곡작가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이태리에 간 저는 근처에 쥴리엣 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동료들에게 쥴리엣 집을 가보자고 졸랐습니다. 요위의 할머니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물리지 않는 사랑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던거지요.
쥴리엣의 동상 앞에서.
다미야 너는 로미와 쥴리엣을 읽어보았니? 로미오는 읽었는데 쥴리엣은 아직 몬 읽었어요.
로미오와 쥴리엣의 대사에서 아직도 생각나는 명대사는 로미오가 쥴리엣을 처음 보고 첫눈에 반해서
‘Oh, Juliet, my sun, arise and kill the envious moon! She is leaning her cheek upon her hand. I wish I were a glove upon that hand so that I might touch her cheek!' (오, 쥴리엣, 나의 태양 빨리 떠서 시샘하는 저 달을 없애주오! 쥴리엣이 뽈때기에 손을 대고 있구나. 내가 저 손에 낀 장갑이 되어 그녀의 뺨을 만지고 싶퍼라~~)
로미오가 약을 먹고 잠든 쥴리엣을 향해서
Eye look your last! Arms take your last embrace and lips, seal with righteous kiss adateless bargain to engrossing death!(나의 눈은 이제 극대와 마지막 작별을 나누고 나의 팔은 그대와 마지막 포옹을 하오. 나의 입술로 그대와 기약없는 죽음에 대한 고결한 키스로 작별을 고하오)
Here's to my death!(내 사랑을 위하여!)
쥴리엣이 약을 먹고 죽은 로미오에게
Drunk all, and left no friendly drop to help me after? I will kiss your lips: Perhaps some poison yet hang on them to make me die(내가 뒤따라 가도록 남기지 않고 모두 다 드셨나요? 그대 입술 키스를 하겠어요. 그 대입술에 남아 있는 독약으로 죽음을 맞이하겠어요.)
This is your sheath: There rust, and let me die.(여기가 너의 칼집이니라. 여기서 녹슬거라. 나를 죽여다오)
아랫부분 대사는 아래 영화 ‘세익스피어 인 러브’에 그대로 나옵니다. 세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쥴리엣 역으로 나오는 여배우는 기네스 펠트로라는 여배우라고 하는데 과연 미인이군요. 허나 책속의 실제 주인공 쥴리엣은 이렇게 성숙한 여인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나이가 무려 12살! 다미양과 같은 나이이지요. 12살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발랑까지게 사랑 놀음을 한다는 것이 좀 어색하지만 젊으나 늙어나 영원히 물리지 않는 것은 사랑인가봅니다. 이 가을에 옆꾸리 썰렁한 청춘뜰이여~ 옆꾸리 설렁해봐야 나만 억울하니 어디 물리지 않는 짝을 구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