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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랬지
⎈ 효선이 새벽 장에서 김치 거리를 사다가 김치를 담아 ‘노래 숨’ 멤버들과 함께 내일 퇴원한다는 산모(産母) 상율 엄마한테로 간 뒤에 홀로 산책길에 나선다. 이번엔 옥천 길로 접어들어 향동마을→아교마을→옥천저수장→삽다리에서 SOS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까지 걷는다. 개울가에 감나무 한 그루 제법 노란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그런데 나무가 목에 이런 팻말을 걸고 있다. “절대 손대지 말 것. 발견되면 작년도까지 변상시킴” 무슨 말인가? 이건 임자가 있는 감이니 허락 없이 따먹지 말라고, 따먹다 걸리면 작년에 잃어버린 감까지 값을 물리겠다는 뜻이겠다. 어디 정말 그렇게 되는지 손을 살짝 감나무에 대볼까? 하다가 우습고 치사해서 관둔다. 과연 저 감나무, 제 주인이 저를 저렇게 지켜주는 줄 알고서 고마워할까? 아직 멀었다, 아직 멀었다, 사람이 한 그루 나무처럼 살 수 있으려면! 고갯마루에는 엄청 큰 식당건물이 이층으로 서 있는데 주차장에 잡초가 우거지고 인적이 보이지 않는다. 저만큼 크게 집을 지으려면 들어간 돈도 돈이지만 수많은 인부들이 구슬땀을 흘렸을 텐데… 어쩐지 요즘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속이 짠하다. (2017. 10. 16)
⎈ 저녁나절 뜬금없이 전주 한상열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해 사는 후배 목사 내외와 순천에 왔단다. 효선이 자연스레 식사에 초대했고 시래기로 된장국을 끓여 맛있게 먹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중, 한 목사에게 무슨 힘든 일이 있나 싶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한님이 어련히 잘 하시겠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속으로 빌어준다. (2017. 10. 17)
⎈ 7학년 마음공부, 한 시간 내내 집중하기가 아이들한테는 약간 무리겠지만, 그런대로 몇 녀석 제외하고는 끝까지 마음을 모아준다. 제발 너희는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고 약자가 강자를 겁내면서 부러워하는 야만(野蠻) 세상을 청산하고, 강자가 약자를 돕고 약자가 강자를 존중하는 인간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사나흘 전부터 아랫니 앞부분 잇몸에 가벼운 통증이 있다. 처음엔 무슨 상처가 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잇몸 속이 살짝 부었다. 가라앉으려니 했는데 아직 그대로다. 더 아프지도 않고 덜 아프지도 않고, 신경 쓰기 좋을 만큼 성가시다. 오늘은 거북하게 묵직한 기분이 턱 아래까지 번지면서 ‘지금 여기에 깨어있기’를 아주 잘 도와준다.
저녁나절, 잇몸이 꽤 부어올랐다. 아무래도 고름이 괸 것 같다. 효선이 서둘러 치과로 간다. 의사가, 고름주머니가 있네요, 한다. 바늘로 찔러 고름만 제거하면 될 것 같은데 전문가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 신경치료를 해야 한다며 진짜 신경을 건드린다. 아프지만 참을 수밖에. 모레 다시 오란다. 효선이 내일 오후로 약속을 당겨놓고 돌아온다. (2017. 10. 18)
⎈ “사랑이란 성심껏 노력해서 되는 무엇이 아니고, 일터에서 배울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는 사실을 성인들은 알고 있다. 사랑은 시도 때도 없이 뚫고 들어오고 갑자기 나타난다. 그것은 황혼의 지는 해를 바라보거나 연인의 눈을 들여다보는 것일 수도 있고, 만물의 근본과 진실을 꿰뚫어보는 통찰의 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을 발견할 때 당신은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진다. 그것을 당신이 창작한 게 아님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것을 실현한 게 아니라 단지 그것에 참여했을 뿐임을 당신은 알고 있다. 모든 것을 밑에서 받쳐주는, 그것이 사랑이다. 단테가 말했듯이, 사랑은 ‘해와 달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에너지다. 성 빈센트 드 폴은 가난한 이들에게, 자기가 그들을 도울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나로 하여금 그것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신들은 내가 진실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창(窓)입니다.’ 나는 사랑하지 않았다. 당신도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이 그렇게 거기 있었고, 그것이 우리 사이에 있는 것을 우리가 문득 보았을 따름이다.”
리처드 신부는 이 글을 쓰기까지 어떤 길을 걸었을까? 그가 자기 신상(身上) 이야기에 인색하니 알 수 없지만, 머리로 궁리만 해서 이 비밀을 깨쳤을 것 같지는 않은데…
출판사에서 책 한 권 보내왔다. 제목이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대충 내용을 살펴보니 어느 용감한(?) 성공회 주교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자세히 펼쳐놓은 것 같다. 인간들이란 참 재미있다. 해가 지구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해를 도는 거라는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를 목숨 걸고 했어야 하는 것이 저들의 세상이다. 그럴 리 없지만, 혹시 기독교에 대하여 무슨 책을 쓴다면 제목을 ‘기독교, 죽지 않으면 죽는다.’로 하리라.
거창 주 선생이 농사지은 쌀을 보내왔다. 맛있는 밥을 지어 부지런히 나눠먹어야겠다.
효선 동행해서 죽도봉에 오른다. 순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말씀과 밥의 집’은 지붕만 살짝 보이고. 봉우리 부근 약수가 맛있고 아깝다. 서울에서 건일 군이 순천대에 강의하러 왔다면서 들렀다. 마주 앉아 한동안 침묵하고 있자니, 효선이 말하기를, 선생님 얼굴 뵈러 온다더니 정말 얼굴만 보고 가시네요? 한다. 효선은 두통이 있으면서도 치과 다녀오고 건일 군 친구와 함께 저녁까지 대접한다. 고마운 정도가 아니다. (2017. 10. 19)
⎈ 기림이가 새벽 3시에 순산(順産)했단다. 아이도 산모도 건강하다고. 태어나면서 찍힌(?) 사진을 보내왔는데, 첫 눈에 제 어미의 할머니 얼굴 그대로다. 고맙습니다, 한님.
학교 수업 마치고 보리밥 차로 부산행. 김정곤 씨 합류하여 부들이 대접하는 초밥으로 저녁 먹고 컴컴한 금정산 고개 넘어 참빛학교에 도착. 우리는 비록 그렇게 못 자랐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천직(天職)을 찾아 행복하고 건강한 세상에서 살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 도와주자고 했다. 학교 부근 아몽 집에 잠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2017. 10. 20)
⎈ 아침 먹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풀꽃유치원 방문. 바자회가 이미 시작되어 어린 꼬맹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방방이 모여 공작도 하고 과자도 먹고 떡메로 쳐서 인절미를 만들기도 한다. 그것들이 자연의 품에 안겨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크는 것을 보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졸업한 아이 엄마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와서 일을 거드는 모습도 보기 좋다. 이 원장에게 소정(韶汀)이란 호(號)를 전해준다.
오후 3시 정각, 순천향교에서 ‘칸토레스 노래 숨’이 주관하는 트라베르소 앙상블 S 초청 ‘얼리 바로크 음악회’가 열렸다. 악기를 들고 사람들 앞에 선 효선의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 역시 프로들은 다르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진지한 자세가 사람들 가슴을 두드린다. 잠시 오스트리아 어느 귀족 살롱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향교 강당을 가득 메웠다. 박소정 선생 지인이 대접하는 저녁식사를 악사들과 함께 나누고, 그들을 역에서 송별하고, 곧장 학교에 가서 토요명상. 민정 아버지와 초면인 남자 한 분 동참. 아무래도 민정 아버지는 한님 손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 느낌이라고, 두더지가 처음 기도드렸다는 이 방이 배움터의 심장이라고, 이 작은 방에서 모든 것이 나와야 한다고…
공주 원미연 선생이 농사지은 배를 세 상자나 학교로 보내주셨다. 요즘 시장에서 파는 배는 기분 나쁠 만큼 달아서 잘 먹지 않는데, 이 배는 옛날 배 맛 그대로다. (2017. 10. 21)
⎈ 오후 예배, 이어서 노래 숨. 저녁을 효선이 대접한다. 쌀이 또 생겼으니 부지런히 밥해서 나눠 먹자고 했다. 두더지가, 요즘 배움터 안팎에서 묘한 움직임이 태동되는 게 느껴진단다. 그럴수록 앞에 나서지 말고 우리 본디 자리인 ‘뒤’를 지키자고 했다. (2017. 10. 22)
⎈ 오전에 치과 다녀옴. 잇몸이 많이 가라앉았다. 효선이 아침에 연습하는데,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서로 파동이 맞아서 공명(共鳴)을 이루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자기를 찾아왔단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서로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아예 만나지지 않고 더 이상 공명이 안 되면 헤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거다. 다시 말해, 상대 안에 자기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그러니 결국 누구를 상대로 다투거나 그를 미워하여 분노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근사한 가르침. 고마운 말씀이다.
이 화백 내외와 박소정 선생 함께 저녁식사. 효선이 돼지갈비를 맛있게 요리했다. 이 화백이 선물로 그림을 건네준다. 감자 두 포기가 왕성한(?) 지렁이 똥 틈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한국 세밀화의 텍스트라 해도 될 걸작이다.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효선은 이번 콘서트를 치르면서 세심하게 일하시는 한님의 손길을 느꼈고 그래서 적잖은 감동이 있었던 모양이다. 맞다, 사람이 말보다 경험으로 배워 알아야 그게 진정한 앎이다. (2017. 10. 23)
⎈ 예진이가 두더지와 함께 글쓰기 공부를 하겠다며 찾아왔다. 작가가 되려면 진정한 작가가 되라고, 그러려면 먼저 기초를 든든히 쌓아야 한다고, 조금 엄하게 말해주었다.
구례 고상철 씨가 돈을 지불할 테니 꽃을 사라고 했단다. 함께 꽃가게를 다녀온 소리샘 말로는, 효선이 ‘날개달린 아이처럼’ 신이 나서 꽃나무를 잔뜩 사왔단다. 갑자기 마당이 소란스러울 만큼 옹기종기 꽃밭으로 바뀌었다. 한님이 하나하나 세밀하게 당신 집을 손질하시는 것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래서 효선도 저토록 신명이 나는 걸게다. (2017. 10 24)
⎈ 7학년 마음공부. 틱낫한의 글 한 대목 읽는데 한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참사랑은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이를 하나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너희가 알려면 아주 많은 실패와 좌절과 환희를 경험해야 할 거라고, 속으로 말해준다.
하와이에서 성연이 딸 소림과 함께 왔다. 고맙고 반갑다. 먼저 하늘로 돌아간 남편 양 교수가 누워있는 곳으로, 뒤는 깎아지른 절벽 앞은 망망대해인 그곳으로 돌아간단다. 몸은 비록 수척하지만 속은 훨씬 원만해진 모습이다. 소림이 자기 말로 ‘새 인생’이 되었다니, 그 또한 반가운 소식이다. 효선이 차린 간소한 저녁상으로 모두 배불렀다. (2017. 10. 25)
⎈ 오전에 출발하여 청주 산후조리원에서 기림과 소리 만남.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엿새 전 세상에 갓 태어난 아민(雅旻)을 초대면한다. 눈이 샛별처럼 영롱하다.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점심 먹고 조금 앉아 있다가 홍 목사네 길벗교회로 간다. 새로 이사 와서 실내 마무리공사 중이다. 목사와 교인들이 함께 인테리어 작업을 했단다. 전의 공간보다 넓고 자리도 초등학교 뒷문 바로 앞이라, 도서실로 적당한 곳이다. 길벗교회 창립 11주년이 되는 11월 첫 주일에 오픈한다고. 효선을 서울로 보내고, 홍 목사가 자기 트럭에 나를 태워 쌍샘교회 게스트하우스로 데려간다. 고단하다. 도착하자마자 곧장 자리에 눕는다. (2017. 10. 26)
⎈ 새벽에 꿈을 꾸었다. 나라에서 주는 무슨 신분증을 신청하느라고 사람들이 줄을 섰는데 나도 거기에 서 있었다. 그 신분증이 없으면 여러 가지로 불이익을 당한단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내 이름 아닌 김종진 이름으로 신분증을 신청했다. 관리가 김종진을 잘 안다면서 쉽게 접수하고 도장을 찍어주었다. 이어서 이현주 이름으로 신청하자 그가 말했다. “방금 당신 신청하지 않았소? 이중 신청은 곤란합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그래요? 좋습니다. 나도 이제 살만큼 살았고 이 나이에 새삼 국가의 신분증 따위 필요치 않소. 내 신분은 내가 정하고 하늘이 증명합니다. 다른 뭐가 내 신분을 정하고 증명하는 데 동의할 수 없소.” 소리가 차츰 커지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방안에 달빛이 훤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달빛이 아니라 종탑 꼭대기에서 은색으로 빛나는 십자가 네온사인이었다.)
교회 식당에서 아침 식사. 오랜만에 희선 전도사를 거기에서 보았다. 전에 보던 모습보다 후덕하고 편안해진 얼굴이다. 고맙고 반갑다. 쌍샘교회 목사 내외와 홍 목사, 이름을 알 수 없는 부인이 아침 식사에 동참한다. 밥값이라며 간밤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시 산후조리원. 김 목사가 마을행사에 다녀와야 해서 내가 임시 보호자 신분으로 산모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기림이 아이를 신생아실에서 데려온다. 난생처음 외손자를 품에 안아본다. 녀석이 눈을 뜨고 쳐다보는데 내가 모르는 무엇을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그거 알아요, 할아버지? 말없이 대꾸한다. 모른다, 잊어버렸어, 하지만 머잖아 다시 알게 될 터인즉, 네가 지금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알 것이다. 아무튼 잘 왔어. 내가 겪어보니 살아볼만한 세상이다. 특히 너희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우아한 세상일 게다. 축하한다. 너에게 주어진 일 아쉬움 없이 잘 감당하며 한 세상 재미있게 놀아보렴.
효선이 잔뜩 피곤한 얼굴로 서울에서 청주로 내려와 점심 먹고 순천을 향하는데 중간 휴게소에서 한 숨 잤지만 둘 다 깜박 졸았는지 익산에서 표지판을 놓치고 호남선을 계속 타다보니 어느새 금산사를 지나 정읍이다. 어쩔 것인가? 유턴 없는 고속도로라, 광주까지 내려와서 곡성으로 돌아온다. 한 시간은 지체됐으리라. 그런데 효선은 아무 말 없이 차를 몬다. 짜증나지 않느냐고 물으니, 요즘 무슨 일이든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 괜찮단다. 먼 길을 무사히 잘 왔다. 한님께 감사드린다. (2017. 10. 27)
⎈ 사랑어린학교 마을잔치. 배움지기와 학부모들이 아이들과 더불어 분주히 자기 몫의 일을 감당하며 즐기는 모습이 저마다 어여쁘고 착하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김반장이라는 가수와 그 밴드의 주도로 마당에서 한바탕 어울려 노는데 춤을 조금 췄더니 과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몸이 무겁고 열이 난다. 저녁 먹고 토요명상. 멀리 가까이에서 온 여러 사람이 방안 가득 둘러앉았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추구하는 배움터로 만들어보자고 간곡한 한 마디가 절로 나온다. 고맙고 흐뭇한 하루. (2017. 10. 28)
⎈ 용화사 예배. 부산, 전주, 인천, 진안, 합천, 서울, 해남 등 각지에서 어제 마을잔치에 온 여럿이 동참.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적잖은 사람이 한 방에 모였는데 누구 하나 얼굴 붉히지 않고 목에 울대 세우지 않고 함께 웃고 함께 눈물짓는다. 노래와 말과 웃음 사이로 번갈아 깃털처럼 부드러운 고요가 스며든다.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예배였다. 헤어지기 싫어서일까? 저녁을 자장면으로 나누고 각자 자기 길로 흩어진다. (2017. 10. 29)
⎈ 가수 김반장 내외와 두더지 신난다가 점심을 함께 한다. 젊은 친구가 음악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게 아니라 생각이 깊고 상당히 철학적이다. 보기 좋게 반가운 친구들이다. 식사 도중에 소리샘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며 급히 동참한다. 저녁에는 예진과 두더지가 글쓰기 공부하러 왔다. 기초부터 다지자고, 벽돌이 부실하면 건물이 금방 무너지게 마련이라고…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알아듣는 표정이 귀엽고 소중하다. (2017. 10. 30)
⎈ 출판사 사장이 계약서 들고 내려오셨다. 리처드 로어 신부의 책 ‘위쪽으로 떨어지다’ 편집이 거의 마무리되었는데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다른 고유명사를 개신교에서 쓰는 것으로, 성구 인용도 공동번역을 개역으로 바꿔줄 수 있겠느냐고, 조심스레 묻는다. 개신교 신자들은 ‘하느님’이란 말이 보이면 아예 책을 사지 않는단다. ‘하나님’을 고집할 아무 터무니가 없듯이 ‘하느님’을 고집할 이유 또한 없으니 얼마든지 좋을 대로 고치시라고 답해준다. 허, 그것 참! 아무리 공자 이르기를, 무리의 몽매함은 성인도 어쩔 수 없다 하셨지만…
오후 4시쯤 문을 나서서 순천만 정원 모노레일 시발점 아래까지 동천 따라 걷는다. 떠날 때는 해가 밝았는데 돌아오는 길은 어둠에 젖어있다. 집에서 배움터까지 줄곧 걸으면 넉넉잡아 4시간쯤 걸리겠다. 언제고 한번 새벽에 길 떠나 걸어봐야겠다. (2017, 10. 31)
⎈ 7학년 마음공부. 점심시간 전에 소월에게 초상화를 부탁한다. 진지한 표정으로 그리는 모습이 귀엽다. 안경 뒤에서 커다란 두 눈이 샛별처럼 반짝인다. 민들레가 공부를 착실히 한 것 같다. 며칠 동안 그만큼 힘들었다는 얘기다. 우리는 그분의 소중한 손발임을 잊지 말자고 권면한다. 걱정거리가 있다면 머리가 걱정할 일이다. 손발은 걱정하지 않는다. 아니 걱정할 줄 모른다. 점심 먹고 귀가 길을 걷기로 한다. 해창 마을까지 두더지가 차로 태워주고 동천을 거슬러 나머지 길을 걷는다. 집에 도착하니 효선은 벌써 와 있고 시간은 4시가 되었다. 1시 못 미쳐 출발했으니 3시간 반 이상 걸린 셈이다. (2017. 11. 1)
⎈ 지나가는 자칭 ‘수행자’라는 사람이 왔으니 나와서 만나보란다. 효선 말인즉, 웬 사람이 대문을 두드려서 누구냐 물으니 미륵불 어쩌고 하기에 습관처럼 여기는 교회 다니는 집이라고 했다가, 순간적으로 ‘뭐가 그리 두려우냐?’ ‘사이비잖아?’ ‘저 사람이 나라면?’ 이런 대화가 속에서 오갔고 그래서 그를 차 한 잔 하고 가라며 불러들였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본인이 대순진리회에 속한 무슨 포교단체의 일원이라고 신분을 밝힌다. ‘예수 믿는 집’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다니는 모양이다. 웃으면서, 여기 ‘예수 믿는 집’이라고 했다가 다시 문 열고 들어오라고, 차 한 잔 드시라고 하는 집은 처음 아니냐고 물으니, 따라서 웃으며 그렇단다. 말 그대로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돌아가며 이것도 무슨 인연인지 고맙다는 말을 연발한다. 젊은 사람이 고생 많이 한 얼굴이다. 등 두드려줬다. 반년 만에 ‘천사들과 말하다’ 번역을 마친다.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겠다. 고맙습니다. 한님. (2017. 11. 2)
⎈ 노자(老子) 이르기를,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힌다고 했다. 돈만 경제적으로 쓸 게 아니라 실은 혀를 경제적으로 쓸 줄 알아야 한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지만, 혀는 한 번 잘못 놀리면 그로 인한 상처가 오래 가거나 평생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위당 선생께서는 나에게 묻지 않으면 답하지 말라 하셨고, 정생이 형은 나에게 가르치려 하지 말라고 했다. 잊을 수 없는 두 분 스승의 가르침이다. 간혹 까먹어서 탈이지만.
저녁식사를 중앙교회 홍 목사, 두더지와 함께 효선이 요리한 멕시코 음식으로 나눈다. 유익하고 진솔한 대화가 오고 간다. 모두가 한님의 은총이고 사랑이다. (2017. 11. 3)
⎈ 어제부터 몸 상태가 좀 불편하더니 오늘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몸살기운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엊그저께 너무 많이 걸었나보다. 새벽에 이탈리아 레스토랑 주인 파울로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내려왔다. 아침 먹으며 효선이 내가 너무 오래 걸었나보다고 설명한다. 나도 한 마디 덧붙인다. “Too much good is not good.” (지나치게 좋은 것은 좋지 않다.) 파울로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평범한 진실을 어째서 일을 저지르고 나서야 깨치는 걸까? 공자께서 중용을 지키는 자 참으로 드물다고 탄식하셨다는 게 공연한 옛날 얘기가 아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쉬어야겠다. 토요명상 불참. (2017. 11. 4)
⎈ 새벽 동네 목욕탕을 다녀오니 몸이 제법 가벼워졌다. 그래도 조심한다. 오후 용화사 예배. 두더지가 부산에서 온 용달차 기사와 그 아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감동이다. 뇌에 손상을 입어 온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아내를 벌써 몇 년 동안 돌보며 산다는 기사의 얼굴에서 더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웃음이 마냥 흘러넘치는데, 마치 한님이 두더지에게 “잘 봐라!” 하시는 것 같더란다. 한님이 상반되면서 어울리는 두 모습으로 동시에 나타나신 것 같다고 말했다. 메시지는 간단하다. “나는 없는 데가 없다, 그러니 눈 크게 뜨고 내가 거기 있음을 알아차려라.” 예배 마칠 때쯤 되어 광주에서 무위당 노자를 읽는 분들이 도착, 이야기 자리를 이어간다. 몇 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들이 오가는 사이에 와온 바다가 붉은 노을로 황홀히 물든다. 함께 식사 나누고 헤어짐. 출판사에서 번역을 의뢰해온 간디 옥중서신을 읽는다. 음, 간디가 괜한 간디가 아님을 알겠다. (2017. 11. 5)
⎈ 출판사에 전화로 간디 옥중서신 번역해보겠다고 말하다. 덕분에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어 고맙다. 소리샘 부모 초대하여 프랑스 요리로 점심식사. 보리밥과 두더지 합석. 예진과 두더지의 작문 솜씨가 나아졌다. 글쓰기를 통하여 인품이 연마된다면 더 좋을 텐데… 좋은 글을 많이 부지런히 읽으라고 말해주다. 예진에게서 가능성이 엿보인다. (2017. 11. 6)
⎈ 효선은 12월에 있을 공연 준비로 바쁘고, 온종일 번역과 텔레비전 사이를 오간다. 한 발짝도 문밖을 나서지 않는다. 기림이 아민을 데리고 무사히 퇴원했단다. 제 집에 와서 밝은 햇살 받으며 잠든 아이 모습이 안심(安心)이라는 단어를 귓속에 포근히 속삭여준다.
트럼프라는 미국 사람이 4천억 원짜리 비행기를 타고 일본을 거쳐 서울에 왔단다. 지구촌 사람들 참 별짓 다한다. 뭐가 그리 무서운지 사방에 경호원들이다. (2017. 11. 7)
⎈ 7학년 마음공부. 도서관 마룻바닥을 서성이며 기도드린다, 한님, 여기는 당신의 땅입니다. 당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이 이곳 배움터에서 이루어지이다. 수업 마치고 나니 보리밥이 시내에 볼일 있다며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고 밥도 사준다. 오는 길에 은하수가 지키는 카페에 들러 맛있는 커피 한 잔. 집에 와서 간디 번역. 지난 번 마을잔치에 수고한 이들이 회식하는 자리에 초대받아 저녁 식사. 고마운 또 하루. (2017. 11. 8)
⎈ 효선의 꿈에 바람결이 색동실로 꼼꼼하게 ‘소리 숨’ 석 자를 수놓아 자기에게 선물했단다. 바람결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그가 보낸 건 분명했단다. 성령님이 당신에게 좋은 선물을 주신 것 같다고, 바람 또는 숨이라는 말(루아흐)이 성경에서는 성령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해주니 눈에서 빛을 내며 좋아한다. 그럴수록 앞에 나서지 말 것을 당부하다.
새벽에 길을 떠나 서울 도착. 치과 들러 치료받고 효선은 부암동 집으로… 충주 ‘한살림’에서 무위당학교를 개설하고 한 마디 하란다. 도착하는 대로 요가 운동하는 방에서 전기요 위에 누워 잠도 자고 책도 본다. 무슨 이야기를 두 시간 가량 하고 나서 마즈막재에 있는 교육복지관(?)의 방 하나 빌려 머문다. 슬기가 늦게 와서 잠자리 봐주고 간다. (2017. 11. 9)
⎈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숙소에서 나와 동량 쪽으로 방향을 잡고 충주호를 내려다보며 길을 걷는다. 가끔 차들이 스쳐갈 뿐,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걷는다. 강 건너 선착장이 보인다. 한때 무슨 글을 쓴다며 초가집 방 하나 빌려 혼자 있던 마을이 저기 어디 있었지. 두 시간쯤 걸으니 다리가 아파서 택시라도 탈까 했지만 빈 택시들이 지나가면서 손을 들어도 그냥 가버린다. 아마 누구를 태우러 가는 모양이다. 딱 세 걸음 지각으로 시내버스를 놓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목행리 거의 다 와서 등 뒤로 지나가던 택시가 이번에는 손도 들지 않았는데 저만큼 길가에 멈추어 나를 기다리는 눈치다. 손짓으로 잡아놓고 천천히 걸어서 택시를 탄다. 충주 터미널에서 수안보까지 버스로 가니 김 목사가 기다리고 있다. 아민이 어제까지 배가 고파서(?) 보채는 통에 어미아비가 덩달아 잠을 설친 모양이다. 모유로 채워지지 않는 배를 분유로 채워주니 어젯밤은 잠을 좀 잘 수 있었단다. 소리가 와서 하룻밤 자며 밥도 해주고 이런저런 수발을 들어주는 모양이 보기 좋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아쉬웠을 제 어미 생각에 가슴 한편이 짠한 건 어쩔 수 없다.
충주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순천으로 버스 타고 오는 동안 몸은 무거워도 잠이 오지 않고 할 수 없이(?) 텔레비전을 보는데 젊은 아이돌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며 논다. 그런데 그들이 쓰는 언어가 나에게는 너무 낯설어 도무지 무슨 말이 오가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다. 누가 자기 땅에서 유배당했다더니 나야말로 당대에서 쫓겨난 이방인의 심정이다. 세월의 흐름이 너무 빠른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하다가 이런 내가 과연 예진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는 걸까? 엉뚱한 생각도 든다. 집에 도착하니 효선은 조곡동성당 사제 만나러 가고 빈방에 홀로 앉아 동네 분식집에서 사온 김밥 한 줄 먹는다. (2017. 11. 10)
⎈ 아침 먹고 동네 목욕탕에서 피로를 푼다. 여기저기 앞서 다녀간 이들이 사용했을 수건들이 마구잡이로 널려있다. 하나하나 거두어 바구니에 담는다.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도 이러는가? 쓰고 난 수건 하나 제 자리에 두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하긴 남의 말 할 것 없지. 너는 벗은 양말 아무렇게나 방바닥에 던져두지 않느냐? 요즘은 그러지 않으려고 마음 쓴다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그러지 않았던가? 사소한 일에 마음 쓰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아쉽다. 어려서 철저히 그런 훈육을 받았더라면 젊은 시절을 좀 더 행복하고 다정한 ‘남자’로 살 수 있었을 텐데… 후회는 말 그대로 쓸 데 없는 짓. 이제라도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할 일이다.
며칠 만에 간디 번역. 이분 참 곤란한 분이다. 음식이란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니? “우리는 약을 복용하듯이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게 맛있는지 아닌지를 고려하지 않고, 과연 우리 몸에 필요한 것인지 그것만 보고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약을 너무 조금 먹으면 효과가 없거나 충분히 없고, 너무 많이 먹으면 인체에 해가 되듯이, 음식 또한 그렇다. 따라서 오로지 맛을 즐기고자 무엇을 먹는다면 그것은 계(戒)를 위반하는 것이다.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 것도 마찬가지로 계율 위반이다. 그렇기 때문에 맛을 내거나 바꾸려고 소금을 치는 것, 또는 맛없는 것을 맛있게 하려고 소금에 절이는 것 역시 계율 위반이다. 하지만 적당한 염분 섭취가 건강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음식에 소금 간을 하는 것은 계율 위반이 아니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인체에 필요한 것이라고 스스로 속이면서 음식에 소금이나 다른 무엇을 첨가하는 것은 명백한 사기(詐欺)라 하겠다.”
토요명상. 부모 배움에 온 고마운 어머니 아버지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2017. 11. 11)
⎈ 용화사 예배. 보리밥, 반디, 신난다, 두더지, 바람빛. 한님의 계획이 우리를 통해서 주변의 박수를 받으며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기대하지 말자고, 인생 실패를 염두에 두고 그래도 이 길을 가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한 놈 상주고 잘못한 놈 벌주는 식으로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아보려는 지난날의 관습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 아래, 그때그때 주시는 지혜와 힘으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무슨 비밀결사라도 하는 심정에서 호소가 나온다. 이건 또 무엇인가?
하늘은 왜 나에게 뜬금없이 간디의 이런 글을 읽고 우리말로 옮기게 하시는지…
“무소유는 도둑질 금지와 짝을 이룬다. 어떤 물건을 본디 훔친 것이 아니더라도 필요 없이 소유한다면 그것을 훔친 물건으로 보아야 한다. 소유는 미래를 위한 저장을 암시한다.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 ‘사랑’의 법을 지키는 사람은 미래에 대비하여 무엇을 붙잡을 수 없다. 신(神)은 내일을 위해서 쌓아두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것 이상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신의 섭리를 믿어 의지한다면 그가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날마다 주실 줄 알고 안심해야 옳다. 신앙으로 산 성인과 신봉자들이 그런 삶의 정당성을 경험으로 입증했다. …사람이 무소유를 완벽하게 실천하려면 저 새들처럼 머리 가릴 지붕도 없이 의복도 없이 내일을 위해 쌓아둔 양식도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래도 날마다 그날 먹을 양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장만하는 건 신의 일이지 그의 일이 아니다. 이런 이상을 실천하는 사람은 아주 없거나 있어도 극히 소수가 있을 뿐이다. 구도자라면 …자기 소유를 점검하고 조금이나마 그것을 줄이도록 힘써야 한다.”
하려면 제대로 하고 아니면 말라!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더니, 간디 당신의 시퍼런 라디칼이여, 과연 참으로 무자비하구나. (2017. 11. 12)
⎈ 그것이 자기 바깥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대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삼키는 블랙홀 같은 여자 속에 빠져들면서 아하, 이제 나에게는 이미 ‘나인 나’와 아직 ‘나 아닌 나’가 있을 뿐 다른 아무것도 없구나, 생각하다가 잠에서 깨어난다. (2017. 11. 13)
⎈ 간디, 리처드 로어, 줄리안, 번역. 간디 선생이 오늘은 마음에 위안과 함께 격려를 준다. “…이 모든 게 우리 것이 아니라 하느님 것이다.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마저도 그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왜 무슨 두려움을 간직할 것인가? 그래서 우파니사드는 권한다, ‘사물에 대한 집착을 여읜 상태로 그것을 즐겨라.’ 소유자로서가 아니라 맡은 자로서 그것을 대하라는 얘기다. 그분 덕분에 우리가 그것을 지니게 된, 바로 ‘그분’이 온갖 고리대금업자들로부터 그것을 지키는 데 필요한 힘과 무기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우리가 주인 노릇 하기를 멈추고 발밑의 티끌보다 더 겸손히 하인의 자리로 내려앉을 때 모든 두려움이 안개처럼 걷히고 우리는 말 못할 평화 속에서 진실의 신(神)을 얼굴과 얼굴로 마주 대할 것이다.” 또 이런 말도 한다. “…어떤 누구도 만지면 안 되는 사람으로 태어날 수 없다. 모두가 하나이자 같은 ‘불’의 불꽃들이기 때문이다.” (2017. 11. 14)
⎈ 7학년 마음공부. 자기 ‘생각’이 하는 말보다 ‘몸’이 하는 말을 잘 듣고 그대로 하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얘기. 과연 말뜻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머리가 모르는 것을 몸은 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실험에 인간흰쥐로 참여한 예온, 강민, 지우는 뭘 좀 느꼈겠지. 연원(然園) 화백 내외와 함께 점심하는데 준서 엄마가 따라와 밥값을 낸다. 준서 아버지는 지금 태평양을 건너 호주에 정박해 있다고… (2017.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