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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아카데미홀에서 열린 자선 사진전 '순례의 길'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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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였다. 리처드 기어가 먼저 "마지막으로 정치적인 질문에 하나 답 하겠다"고 답한 것이다. 기자간담회 직전 사회자에게 정치적·사회적 질문은 일절 받지 않겠다는 공지가 있었기에 간담회장은 술렁였다.
리처드 기어는 재차 "(질문이 없다면) 내가 하나 말하겠다"고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티벳에서 벽에 그려진 그림을 사진으로 찍은 경험담을 들려주며 "내 사진들을 보고 티벳 사람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때 리처드 기어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도 사진작가도 아닌, 폭력에 반대하고 티벳의 독립을 지지하는 한 인간이었다.
"이 사진은 1988년인가, 1989년에 우담살라의 한 수도원 벽에 중국인에게 고문 받는 티벳 여자 승려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을 찍은 것이다. 며칠 뒤, 비로 그림이 씻겨 내려가 내 사진이 그 그림을 유일하게 기록한 증거가 됐다.
이후 1993년 티벳에 방문했을 때 세 명의 여자 승려들을 만났다. 그들은 티벳 내 중국 감옥에서 막 나온 사람들이었는데, 내가 사진에 찍었던 그림과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래서 그 그림을 찍은 사진들 사이에 여자 승려를 넣어 사진을 다시 찍었다. 당시 상황을 이해하고 이 사진을 보면, 내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고문은 티벳 내 중국 감옥에서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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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4일부터 7월 24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V-갤러리에서 전시되는 자선 사진전 ‘순례의 길’ 참여와 홍보를 위해 내한한 리처드 기어가 21일 오전 서울 조계사를 방문, 불교중앙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다. |
ⓒ 불교문화사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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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 삶을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아"
할리우드의 명배우 리처드 기어가 지난 20일 5박 6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11개국 20여 개 도시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사진전 <순례의 길> 전시로 서울을 찾았다. 22일 오후 2시 서울 양재동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리처드 기어는 "전시장에 걸린 사진들을 둘러보고 왔는데, 보고 나니 감상에 젖게 된다"고 말문을 연 뒤 "한국 전시장의 사진 프린트 상태나 설치된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며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이어 리처드 기어는 배우로서가 아닌 사진가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은 소년이었을 때부터 사진을 찍는다는 게 네모난 프레임 안에 세상을 편집한다는 의미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을 찍을 것인지, 어떻게 세상을 담아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이성적인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감성에 의한 것이다.
이건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도 비슷하다. 객관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다른 이의 생각을 나의 감정과 생각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어떤 것을 느끼지 않는다면 예술도 없다. 어떤 이를 만났을 때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어떤 관계도 생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감정을) 느낀다면, 그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진찍기'에 삶을 은유해 내는 리처드 기어는 삶의 이치를 깨닫기 위한 길을 걷고 있는 수행자처럼 보였다. 또한 그는 배우로서 일하는 것과 사진작가로서 일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사진작가로 작업하는 것은 나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는 과정이었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즐거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영화를 만들 때 수백 명의 사람이 관계돼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또한 서로 간에 영감을 준다는 큰 장점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협의해야 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부분들도 생기게 마련이다. 혼자 작업할 때는 그런 부분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리처드 기어가 기록할 한국의 모습?
평소 불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리처드 기어는 불교가 한국 문화에 미친 영향에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부인, 아들과 동행한 이번 방한 기간 중 창덕궁 관람은 물론 경남 통도사에 내려가 템플라이프를 체험하는 등 한국 문화를 다양하게 접하기 위해 일정을 잡은 것도 그래서다.
간담회가 열린 이날도 드럼 연주에 소질이 있는 아들을 위해 국립국악원에서 한국의 북을 직접 연주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또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방문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어제 굉장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좀 더 시간을 보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불자들과 스님들 모두 다 우리에게 관대했다. 그리고 절 건너편에 있는 채식 식당에서 내가 이때까지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최고의 음식을 먹었다."
리처드 기어는 언젠가 자신이 한국 문화에 느낀 감정을 사진으로 표현해 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 그가 느낀 감정을 충분히 발효시키는 시간을 거쳐야만 그가 사진으로 기록할 한국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 말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이야기가 어떻게 발전될지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충분히 진행돼야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대해 어떤 깊이 있는 감상을 가지기 위해선 한국을 많이 방문해야 할 것 같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
리처드 기어가 자신의 사진 64점과 뜻을 같이 한 작가 24명의 작품을 모아 연 <순례의 길> 사진전은 예술의 전당에서 7월 24일까지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