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회가 본연의 모습을 잃고 있을 때,
그 정체성 회복의 방법으로 우리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선교도 마찬가지다. 선교가 갈길을 놓치고 우왕좌왕 할 때
우리는 성경과 역사에서 선교의 본질을 회상하고 그길로 가야한다.
2. 무엇이 선교의 길을 희미하게 하는가
무엇이 선교의 방향에 혼선을 주는가
시대의 조류인가
교회 정책의 변화인가
선교사들의 여론인가
3. 작금 선교 영역 전반에 구동력을 떨어뜨린 가장 큰 문제들과 시대 변화에 대한 해결책들이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문제는 한국 교회부흥의 약화이다. 이른바 교세가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현실론이다.
교세가 줄기 때문에 선교비가 줄고 선교사 파송도 줄어든다는 위기론이다.
두번째 문제는 코비드19의 영향이다. 실제 코비드의 영향은 선교의 지형을 뿌리부터 흔들거리게 했다.
전염병으로 인한 교회모임폐쇄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일시 선교의 중단을 가져오게 했다.
세번째는 4차산업혁명시대와 대중의 트렌드 변화애 따른 대응문제이다.
빅데이타,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나노기술의 발전 등 산업기술의 변화는 미래 선교의 지형에도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출산문제, 국가를 주도하는 연령층의 변화 및 노령인구의 증가등
사회와 대중의 트렌드 변화 또한 선교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네번째는 세계 이주민 선교의 부각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이주민 사회가 되었다. 약250만명이 이주민이다.
250만명이라는 숫자는 작은 나라의 인구수 정도이기 때문에 상당한 숫자라고 볼 수 있다.
한국 교회는 원심력적 선교에서 구심력적 선교를 고심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4. 이런 변화의 시기를 맞으면서 선교계가(아니 선교사들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듯하다)
과거의 모습과 달리 주춤거리며 주저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 나 자신부터 무기력감이 찾아오는 것을
경험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위에 언급한 문제들을 거론하면서 이제 어떡하냐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냐고,
이제 선교지를 떠날 때가 된 것 같다고, 선교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등등 나름대로의 해법을 제시하는데 대부분
부정적인 암시를 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적극적으로 대처하자면서 힘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5. 선교의 본질은 무엇일까
세계선교는 선교위임령을 따라 지리적 확장을 이루어냈고 마침내 미전도종족들에게 나아갔다.
이로보건대 선교의 본질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언어 공동체부족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성경에서 볼 때, 오늘날의 선교 방식은 초대교회에서 비롯되었다.
초대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 전통을 따라서 세계 모든 교회가 이를 수행해 왔다.
6. 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체자 이시고 교회와 선교사가 사명을 받고 순종하는 구조이다.
선교에 있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분리될 수 없듯이 교회와 선교사 역시 선교에 있어서 분리될 수 없는 한몸이다.
7. 위의 직면한 4가지 변화들을 선교의 본질과 관련해서 어떻게 우리가 대응할지를 생각해본다.
1) 오늘날 한국교회 교세의 약화가 선교의 약화를 가져올 것은 현실적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교세의 약화가 반드시 선교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단만 하더라도 전체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10% 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선교에 동참하지 못했던 수많은 교회들 가운데 10~20%만 다시 선교에 동원한다면 이는 극복될 수 있는 문제이다. 한국 교회 교세의 약화가 선교의 약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일부 인정할 부분이 있지만 삼위 하나님의 지상 명령인 선교를 해나가기 대단히 어려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가끔 나에게, 이제는 선교의 방향을 바꾸라고 조언하는 이들이 있다.
비즈니스 미션을(즉, 사업비자를 받아서 사업을) 하라고 한다. 그 이유를 위에서 언급한 한국 교회의 교세의 약화를 든다.
한마디로 말해서, 경제적인 논리로 비즈니스 미션을 하라는 권면이다. 물론, 나를 위해서 해주는 말이다.
이제는 한국교회에서 보내주는 선교비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벌어서 쓰는 자비량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시라, 평생 비즈니스를 한번도 해보지 않고 늘 전통적인 선교만 하던 목사 선교사가
어느날 비즈니스 맨이 되겠다고 하면서 사업체를 한다고 하는 게 얼마만큼의 성공률이 있을까. 만일 비즈니스를 한다고
해도 사업 초기에 투자되는 수억의 자본금을 선교사에게 교회가 과연 제공해줄 것인가? 사업의 초년생에게 선뜻 거금을
내주고 사업을 해보라고 할 교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자칫하면 선교지에서 빚쟁이로 전락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게
사업이다. 물론, 사업을 오랫동안 해보았던 경험자라거나 아니면 파송전부터 비즈니스 미션을 목표로 한 선교사는 가능하다.
그러나 사업만큼 전문적인 경영인이 필요한 분야도 흔치 않다. 사업의 무경험자들이 누구의 조언을 듣고 단지 재정을
벌어보겠다고 뛰어드는 것은 타문화권에서 사업의 미숙함으로 선교를 중단하게 되는 위험에 처할수도 있게 된다.
한국 교회의 교세 약화가 선교 재정의 약화를 가져다 주는 요인을 십분 이해할 때, 우리는 다른 방법을 강구 할수 있다.
우선. 자신의 사역을 재정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 본인의 수입중에서 너무 많은 재정이 투여되고 있는 사역을 적절한
재정으로 변환해야 한다.
아무튼 선교의 본질을 생각할 때, 교회는 교세와 관계없이 선교해야 한다. 이 말은 특정 교회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세계 교회 전체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만일 교세가 약해졌으면 선교비를 줄일지언정 선교를 중단
해서는 안된다. 이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교회가 해야 할 당연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한국 교회 교세의 약화가 반드시 선교의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은 섣부른 진단일 수 있다.
도리어 이전에 선교에 참여하지 않던 교회들을 새롭게 선교에 참여시키는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2) 코비드19가 선교에 끼친 영향과 그 문제를 생각해 본다.
코비드19의 영향에는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있겠다. 이중 부정적인 영향이 더욱 컸다. 몽골의 경우, 우선 실정법적으로
예배 모임을 금지당해서 오랫동안 모일수 없던 점이 가장 큰 아픔이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한 그 자체가 가장 큰 손실이었고 다음으로는 신앙이 약한 초신자들이 신앙 성장의 기회를 놓친 부분이 크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였다.
예배모임 금지의 여파로 관련된 공적인 교회 사역들, 즉 전도사역, 기도사역, 훈련사역, 봉사사역 들도 모두 중단되었다.
이렇게 대면 모임이 금지됨으로 인해서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비접촉의 방법들이 모색되었다.
코비드19가 조금 가라앉았던 시기에는 8~10명 이내 회집이 허락되기도 했다. 그런 때에는 교회당 혹은 교인 가정집을 회집 장소로 사용하였다.
몽골 지방의 경우, 특히 노령의 교인들은 휴대폰이 없거나 있다해도 오래된 구식 휴대폰이었고, 또한 인터넷 데이타를 사용하지 않는 분들이 있어서 개별적으로 zoom을 사용하지 못하고 소수가 모여 그 중에 zoom을 활용할 줄 아는 젊은이의 도움으로 비대면 예배를 드렸다. zoom 을 통한 비대면 예배는 순조롭지 못했다. 데이타가 끊겨서 멈추기도 하고 잡음들로 인해서 소통이 안되고 거의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였다. 처음 사용해보는 비대면 온라인 예배는 혼란을 겪으며 그렇게 몇번 반복되면서 조금씩 숙달되었고 안정화 되었지만 대면 모임이 안되는 상황에서 비대면으로나마 예배 모임을 가졌다는데 의의를 두는 정도였다고 할 수 있겠다.
코비드19 시기에 대면 예배를 대체하는 온라인 비대면 예배가 등장하였다. 온라인 비대면 예배로 인해서 그나마 완전한 예배 중단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은 긍정적인 면이었다. 만일 코로나가 계속해서 더 창궐하고 심해졌다면 외국인 선교사들의 현지 사역이 중단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현지인 리더의 존재감과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선교의 본질중에 하나가 "제자삼는 사역"이다. 코로나 사태가 현지 교회의 리더십을 현지인에게 가능한 빠르게 이양하는 것의 필요성을 상기시켜 주었다. 선교사는 결국 넘겨주고 물러나야 하는 사람이다. 리더십을 넘겨주고 물러나는 시점은 경우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험상 10년~12년 정도면 좋겠다 싶다. 선교사의 사역중 보통 1텀(term)을 6년으로 보았을 때 2텀이면 현지인 리더를 세울 수 있겠다고 보여진다. 물론 전적으로 필자 개인의 견해일 뿐이다. 리더를 세우는 일이 가게에서 물건 사듯이 속성일 수 는 없기 때문에 교회마다의 개별적 특수한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제자 세움의 기한에 기준선이 있는 것이 좋겠다 싶다.
3) 4차 산업혁명시대의 선교, 본질로 극복한다
지금은 4차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빅데이터는 슈퍼컴퓨터를 가능케 했고,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앞서고 있다.
사물인터넷의 시대, 나노 산업, 로봇의 등장, 자율주행등 디지털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곧 디지털과 생물학이 연결되어 인간이 꿈에 그리던 생명 연장도 머지않은 듯 하다.
디지털 정보혁명 시대에서의 선교는 어떠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