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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너와 나의 쉼터 ♣ 원문보기 글쓴이: 농원
중국의 차문화
차(茶) 문화
중국인은 하루도 차 없이는 못 사는 민족이다. 벌써 4천년의 역사를 가지며 어느 공공장소에 가더라도 차잎만 있으면 언제든지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끓는 물이 준비되어 있다. 중국인이 기름기 많은 음식을 많이 먹는데도 살이 찐 사람이 적은 것이 차를 마셔 단백질과 지방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동남아에서도 마시는 인구가 계속 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차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또한 중국지역을 이동하다 보면 기타의 서비스는 수준 이하지만 더운 찻물을 제공하는 서비스 만큼은 수준급이다. 아무리 작고 후미진 곳을 가도 더운 찻물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중국인들의 식생활과 건조한 대륙의 공기나 날씨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겠지만 어쨌든 현대 중국인들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 바로 차(茶)다. 차의 종류는 綠茶와 紅茶, 靑茶, 白茶, 花茶 등으로 구분되고 북부지방에서는 화차, 남쪽에서는 녹차나 홍차를 많이 마시고 있다.
중국의 차 문화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 문화(茶道)와는 달리 생활의 일부로서 자리하여 서민들의 삶 속에서는 오히려 수분공급을 위한 음료수 대용의 자리를 점하고 있는 듯 하다. 녹차(綠茶)는 중국의 차 가운데 역사가 가장 길며, 생산량이 많고 품종이 다양하다.
녹차 중의 명차는 서호 용정차 (西湖龍井茶), 항주 벽라춘차 (杭州碧螺春茶), 우화차 (雨花茶), 太平 候魁茶, 君山 銀針茶, 黃山 毛峯茶, 盧山 雲務茶 등 약 90여 종류가 있다.홍차 (紅茶)는 국내 총생산의 1/4을 차지하며, 수출량은 총수출량의 1/2를 차지한다. 홍차 중의 명차는 기(祁) 홍차, 기(淇) 홍차, 영(英) 홍차이다. 분말형과 엽차형이 있으며, 엽차형은 중국 특산이며 茶 이름이 紅字로 끝나는 것은 모두 紅茶이다.
靑茶는 녹차의 청신한 향과 특유의 감미로운 맛을 겸하여 갖추었다. 특히 마신 후에 뒷맛이 가져오는 독특한 감칠 맛이 기막히다. 중국 동/남해안에 연한 복건/ 대만/광동일대가 주요 산지로, 대만의 烏龍茶, 包種茶, 복건의 武夷岩茶와 水仙烏龍, 安鷄의 鐵觀音茶, 광동의 鳳凰單叢, 浪菜 등이 있다. 백차 (白茶)는 차잎 전체가 솜같은 하얀 털로 덮여있고, 차에 달인 후의 탕색은 淡黃色으로 우아한 빛을 발한다.
맛의 단백함이 군자의 기품을 연상시킨다. 쓸개와 위에 좋으며 백호은침 (白毫銀針)과 백호단 (白毫丹)은 백차의 진풍이다. 화차 (花茶)는 중국의 독특한 차로서 향편차 (香片茶)라고도 한다. 차와 꽃을 함께 말려 제조하는데도 맛과 향은 더욱 어우러져 나온다. 복주의 다리공정 (茶莉空靑)은 화차 중의 상등품이다. 주로 북방지역에서 즐겨 마신다. 긴압차 (緊壓茶)는 보통 큰 차 잎이나 차나무 가지로 먼저 흑차 (黑茶), 홍차 또는 화차를 만든 다음 그것을 원료로 하여 다시 만드는 것으로 보이, 육보 (六堡)가 긴압차 중의 명품이다.
차 마시는 방법은 먼저 적정량의 차를 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가득 부운 다음 뚜껑을 닫고 (향기가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 찻잎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 마신다. 차는 향기와 맛을 동시에 즐기는 음료이며, 마시면서 맛이 우러나올 때까지 계속 물을 첨가하여 마신다. 중국인은 滿이라는 것을 좋아하여 손님 접대시 컵이 비기 전에 계속 물을 채워준다.
중국의 차문화는 식사시, 회의시, 생활 깊숙이 파고 들어 우리들이 물 마시는 것과 동일하다.별도의 특별한 예의를 요하지 않으나 상대방의 잔에 물이 빌 경우 계속 따라주는 것이 예의다. 아울러 차에는 여러 가지 효능이 있다. 소화와 배뇨 기능을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을 주며, 중국의 물 (석회질이 많음)이 좋지 않은 관계로 물속의 불순물이나 독성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기름기 많은 중국 음식물을 먹고 난 후 차를 마시면 기름기 제거에 도움을 준다
차를 당나라 이전에는 '도'나 '명'이라고 불렀답니당. 전설에 의하면요 차는 4천 여 전 신농씨때 발견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구 합니다.그리고 당나라 이후 차가 대량재배되면서 도자의 건너금 'ㅡ'획을 없애고 '차'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차를 발견한 것과 차를 음료로 이용한 것은 중국인들이 인류 문화 역사에 대한 기여라 할수 있다.지금까지도 차는 세계 3대 음료중의 하나에 속한데요.세계에서 차를 마시는 법을 발명한 나라는 중국이구요.
중국에서 차를 제일 처음 마신 지역은 사천이구요. 사천지역에서도 차는 처음에 약재로 이용되었다구 합니다. 후에 사람들은 생활 가운데서 차가 약재로 병을 치료하는데 쓰이고 또 마셔도 되고, 열을 내리고 갈증을 해소하는 등 건강에 이롭다는 점을 발견한 뒤로 많이 마시기 시작했답니다.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 후 차는 사천에서부터 전 지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서한때에이르러서는 약으로부터 음료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었답니다.
중국에서 제일 먼저 차를 마시는 풍습은 장강 유역 사람들이 형성하였고 당,송대 이후에는 차를 마시는 것이 보편화 되어 사회적인 풍조를 이루어 섭죽 변경 지역에까지 확산되어 갔답니다. 805년 중국천대사 국청사에 와서 도를 닦던 일본 스님 최장에 의해 차종자가 일본에 전해져 일본에서도 차를 마시기 시작했고 17세기 이후 중국 차는 인도네시아,인도와 유럽,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전해져 세계적인 음료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당.차를 마시는 방법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만은 변화를 가져왔다.
당송 시대에는 차를 갈아서 가루를 낸 다음 가루로 환을 지어 말렸다가 다시 부셔서 파,생강,귤껍질,박하,대추,소금 등조미료를 넣어 끊여 마셨다. 또 차를 가루내어 끊인 물을 부어 죽처럼 타서 마셨다.그래서 "차를 마신다"라 하지 않고 "차를 먹는다"고 표현했다고 합니다.이처럼 차를 끊여서 마시는 방법은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차 고유의 맛도 떨어져 송,원 이후에는 단순히 차를 컵에 넣고 위에 끊는 물을 부어 마시는 방식이 유행되었으며 명,청 이후로는 지금까지 차를 꼭 뚜겅 달린 컵이나 그릇에 끊는 물을 부은 다음 뚜껑을 닫아 차 잎을 우려서 차 물을 마신다.이렇게 마시는 방법이 차의 맛을 가장 잘 음미할수 있다고 한다.
중국의명차
주로 복건(福建), 절강(浙江), 광동(廣東)에서 자라는 차나무는 중국이 원산이 아니며, 서기 543년 북부 인도로부터 고행자에 의해 수입되어, 9세기에는 국민 모두가 음료로서 사용하게 되었다. 차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유입된 것은 16세기 말 네델란드 사람들에 의해서였다. 보디달마 혹은 푸른 눈의 브라만인 달마는 왕손으로 인도 불교의 선교사였는데 그는 서기 526년 중국에 당도하였으며 불교의 육조(六組) 가운데 수장으로서 간주된다.
어떤 사람은 그를 사도 코마스와 동일인으로 생각한다. 그의 교리는 외적인 행위와 규정을 준수하는 일보다 내적인 마음의 명상을 통해서 안전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갈대를 타고 양자강을 기적적으로 건너는 것은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의 주제를 이루었다. 그가 앉아서 명상을 하기만 하면 졸음이 덮쳤는데 잠에서 깨자 졸지 않으려고 그는 자기의 눈꺼풀을 베어 버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눈까풀은 땅 위에 떨어지자 뿌리를 내리고 싹이 돋아났다. 거기서 자란 식물이 최초의 차나무이었으며 그것은 영원히 깨어 있음을 상징하는 근거가 되었다."티"라는 단어는 복건지방의 발음 타(ta)로부터 연원되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챠(tea)라고 부르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태이(tay), 일명 테(tee)라고 부르며 모든 의사들이 시인하는 바 최상의 중국음료는 런던 거래소 근처 수위탱스 랜트의 술타니스 헤드라는 커피 하우스에서 3세기 전 판매하기 위해 광고를 냈었다.(1606년 1월 31일 위클리 뉴스) 중국용어 츠아(Ch'a)는 쿠트(若茶) 혹은 투(茶) 즉 '꽃상치'와 동일한 것이라고 하며 고전 속에 가끔 언급되고 있지만 한나라의 어느 왕이 통치하는 동안 차에 대한 투(茶)라는 이름은 사용이 금지되었고 지금은 주로 독약을 나타내는 데만 사용된다.
고전에서 사용된 이름 명(茗)은 당나라 때 도입되었으며 아직도 문학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그것은 원래 차나무의 때늦은 수확을 나타냈다. 질이 좀 떨어지는 차를 가르키는 이름으로 설(草+設)과 천(草+舛)이 있다.서기 804년에 죽은 육우(陸雨)는 차에 관한 유명한 작품인 다경(茶經)을 저술하였는데 타 경작자들에 의해 수호신으로 숭앙받고 있다.
"차씨를 뿌리는 시기는 9월초이다. 3평방 피트 가량의 구멍을 파고 구멍마다 9~10개의 씨를 심는다. 묘목이 1인치 가량 자라게 되면 경작자는 주위에 자라는 풀을 제거한다....보통 안개와 눈이 많은 고산 꼭대기에서 자라는 최상품의 차는 잎사귀에 훌륭한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차나무는 3년이 지날 무렵 첫 수확을 하게 되며해마다 서너차례 수확된다.
아직 잎사귀가 다 피지 않았을 때에 첫수확을 하게 된다"중국중부지방의 차나무들은 식물 학자들이 말하는 테아 치넨시스(Tea Chinensis) 혹은 테아 비리디스(Thea Viridis)인데 그 잎사귀들은 남부 지역의 티 카코니엔시스나 티 아사미카보다 훨씬 끝이 뽀죽한 것 같다."오랜기간의 재배와 마구잡이 식으로 심은 결과 단일종의 다원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이 두종 사이의 잡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차잎사귀의 녹색, 흑색 혹은 붉은색의 변종들은 어떤 차나무에서도 생산될 수 있다.
잎사귀들은 일 년에 서너 차례 따내며, 최상품인 첫 수확은 4월에 한다. 불필요한 수분을 제거하기 위해 잎사귀들을 햇볕에 약간 말린 후 인부들이 통에 넣고 발로 밟아 잎사귀가 꼬이게 만든다.저온에서 몇차례 가열한 잎사귀들을 키질을 하고 썰어 측연선을 댄 상장에 담는데 이렇게 해서 400 상자에서 600 상자씩 상표를 붙여 출고 한다.""차의 혼합물은 지극히 많은데 중국인들은 이 방면에 있어서 대단한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사용되는 혼합물 가운데는 차줄기와 벼 껍질은 물론 서양 물푸레나무, 오얏, 들장미의 잎사귀들이 있다. 방향을 풍기는 꽃들이 질이 떨어지는 차에 향기를 풍기게 하는데 사용된다.
때때로 소량의 차에다 다른 잎사귀들이나 원하는 차 빛깔을 내기 위해 심황, 남색, 감청, 고령토를 섞은 전분 용해제에 모래나 절분을 섞어 만든 '가짜차'로 알려진 인공 합성물이 진품의 차로 둔갑하는 때가 많다."가나무(木+賈,Sageretiatheezans)잎사귀를 버들, 포푸라, Spiroea 나무 잎사귀와 섞어 조잡하지만 쓸 만한 대용품을 만든다.전다(石+專茶)는 차 가루를 쪄서 압착하여 단단한 과자로 만든다. 산다(山茶)도 역시 차과(혹은 Ternstroemiaceae)에 속하며 씨에서 짜내는 이른 바 차유(茶油)를 낸다. "본초(本草) 혹은 약초를 달루는 책에서 차는 청량제, 건위제, 흥분제, 자극제, 완하제및 수렴제, 이뇨제, 월경 촉진제로 기술되어 있으며, 다량을 집중적으로 복용하면 토제가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장기간 다량을 복용하면 사람은 마르고 빈혈증을 일으킨다고 믿어진다. 차를 약간 탄 물로 안질과 진무른 상처를 씻으면 좋다. 차씨(茶子)는 감기, 호흡 곤란 및 머리가 울릴 때 좋다고 한다."차(茶)라는 명칭은 여러 음료에서 사용되지만 정확하게는 학명이 Camellia Sinensis인 차나무의 어린잎을 따서 가공한것을 이른다. 차의 시작은 전설로 살펴보는 방법, 기록을 살펴보는 방법,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 고대 삼황(수인, 복희, 신농)중의 한 사람인 신농이 초목의 식용과 약용 가부를 위해 산천을 돌아다니며 먹어보다가 독초에 중독이 되었는데 우연히 바람에 날려온 나뭇잎이 있어 씹어보았더니 해독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차나무는 그 이전부터 존재하기 때문에 약 5천년전 부터 음용하였다고 추측된다. 남겨진 기록을 살펴보면 B.C200년전 주공단(周公旦)의 이아. 석목편(爾雅. 釋木篇)에 가장 오래된 기록이 있고 사기(史記)에 B.C1066년 서주(西周)의 파촉지방에서 차의 재배가 행해졌으며 춘추전국 시대에는 한족과 소수민족에 의해 본격적인 차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고 한다.이와 같이 차는 처음에는 질병치료나 예방, 제례 등의 의식에 사용되었다가 점차 기호음료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도에서 허왕후가 차종자를 가져와 심었다는 설이 있지만 고증이 미미하고 신라 흥덕왕(興德王)3년에 김대렴(金大廉)이 당나라로부터 차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신라, 고려시대에는 음다풍습이 성행하였으나 조선시대로 접어들어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사원 중심이던 음다풍습이 사원쇠퇴와 함께 위축되기 시작한다. 그러한 시기에도 다인(茶人)들은 배출되어 대표적으로 서산대사와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초의선사(草衣禪師)는 동다송(東茶頌), 다신전(茶神傳)을 저술하였고 차의 다성 (茶聖)이라 불리워진다.
★ 중국의 10대 명차
1. 서호 용정차(西湖龍井茶, Dragon well Green Tea)
용정차는 중국 녹차의 대명사이며 세계적인 명차 이다. 용정은 차의 명칭이기도 하고 샘의 명칭이기도 하며 절의 명칭이기도 하다. 용정이란 샘이 있어 용정사란 절이 세워지고 그 절에서 재배한 차를 용정차라 이름하였다. 신선한 난 꽃향기를 지녔으며 형태는 작설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차를 우리면 어린 차 싹과 여린 차 잎이 하나하나 피어나서 깃대에 나부끼는 깃발과 같다. 녹색의 빛, 싱그러운 향기, 순하고 부드러운 맛과 찻잎의 아름다움으로 녹색황후로 불리고 있다. 청 대의 건륭제는 강남에 내려와 용정 사봉산 아래에서 마셔본 용정차에 감탄해 그곳에 있던 18그루의 차나무를 어차 지정을 하였는데 지금도 그 나무들은 생기가 있다 한다.
용정차의 주산지는 사봉산, 매가호, 옹가산, 운서, 호포, 영은 등의 봉우리이며 항상 숲이 울창하고 1년 내내 기후가 온난하며 물안개가 둘러쳐 져 있다. 평균기온 16℃이며 강수량은1500mm이상이다. 특히 사봉에서 생산되는 용정차는 1988년 제27회 세계 우수 식품평가대회에서 최고의 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며, 안기산과 다소, 비타민C가 다른 차보다 많이 함유되어 있다.
※ 용정차는 항주 서쪽에 있는 용정산에서 나는 차라 하여 용정차라 한다. 용정은 일반 오룡의 반발효와 달리 불발효 잎차이다.
용정차에는 전설이 있다. 용정산에는 용정사라고 있엇는데 이곳에 승장스님이란 분이 계시었다, 그는 이 용정차를 늘 부처님께 공양드리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목을 축이고 가게끔 배려를 하였다. 어느날 백발이 선 할머니가 와서는 용정차를 보시하기를 원하였다. 스님은 기꺼이 이 차를 내어놓았으며 노인은 맛있게 드시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숭장스님은 꿈을 꾸엇는데 문수보살이 나타나서 "그대가 달여준 용정차는 잘 마시었네 이제부터 그대가 원하는 원력대로 사바세상으로 나아가 중생들의 어두운 가슴에 등불을 밝혀 주는 일을 하게나"하는 것이었다. 그 노인이 바로 문수보살이 었던 것이다. 용정차는 용정산에서 나는 것을 용정차라하고 그중 사자봉에서 나는 차를 사봉용정차라한다.
청명전에 따는 차를 명전 용정, 곡우전에 따는 것을 우전 용정차라한다. 명전 용정을 최고품으로 여긴다. 용정차는 일기일창, 일기일아 일때 차잎을 따서 만드며 때를 놓치면 풀잎과도 같다 한다. 다섯가지 품질이 있으며 일반차와는 다르게 눌러 만든게 특징인데 좋은차는 윤기가 나고 색이 짙으며 맛은 순하면서도 깊다. 홍콩에서도 대륙의 용정을 파는데 포장에 극품이라고 써있는 것이 가장좋은차다. 대만에서도 나오고 있으나 맛과 향은 다르다.
☞ 용정차의 제조
① 용정차는 수작으로 채취하고 볶어 만든 귀한 명차 이다.
② 1kg의 용정차는 7만 2천여 어린순으로 널고 → 살청 → 회조 → 휘과의 과정을 걸쳐서 전통적 10대 수법으로 8시간 정성들여 볶어 만들었다.
☞ 용정차 따르는 법
① 한컵에 한스푼의 차잎을 넣어 85℃~90℃의 뜨거운 물로 따른다.② 용정차를 따르고 컵에 두껑을 덮으면 차향과 영양분이 상하기에 컵에 뚜껑을 덮지 말아야 한다.
☞ 용정차의 저장
① 용정차를 밀봉하여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두어야 한다.(유통기한은 18개월이다.)
② 용정차는 냄새나는 다른 식료품과 혼합하여 두지 말아야 한다.
③ 용정차의 향 맛을 오래 보존하는 방법- 도자기, 질그릇에 건습제와 함께 넣는다.- 공기를 빼내고 질소를 넣어 보관한다.- 규소교질 방법- 저운 냉장법
☞ 용정차의 약용
① 효능 : 콜레스테놀, 지혈, 혈압을 내리고 당뇨를 예방치료한다.
② 약제 조성 : 산사 10g, 진피 5g, 용정차 5g③ 복용방법 : 컵에 산사, 진피를 끓는 물로 몇초 담구어 씻어 낸후 200cc의 끓는 물에 담구어 놓고 식어지면 용정차를 넣어 한시간이 지나 마신다. 매일 식후 600~800cc 마시면 효과가 아주 좋다.
2. 안계 철관음(安溪鐵觀音)
안계철관음은 오랜 역사를 가진 중국차 가운데 하나이다. 복건성 안계현에서 생산되는데 유명한 산지로는 안계현의 서평, 장항, 검덕등이다. 이곳은 산이 많고 기후가 온화하며 강우량이 풍부하다. 철관음은 높은 향기가 있고 차맛이 단데 마신 후에는 입안에 과일의 향기가 남아돈다.
탕색은 선명한 등황색이고 잎은 두텁다. 철관음은 다 자란 잎으로 만드는데 만들어진 찻 잎은 가운데는 푸르고 가장자리는 붉은 빛을 띤다. 그리고 여러번 우려내어도 향기와 맛이 변하지 않는다. 찻잎은 4번 따는데 봄에 따는 춘차, 여름에 따는 하차, 더울 때 따는 서차, 가을에 따는추차로 나눈다. 춘차는 입하 전후로 따며, 추차는 백로 전에 딴다. 차의 품질은 춘차가 가장 좋으며 하차는 잎이 엷고 차의 맛과 향기가 떨어진다.
추차는 향기가 뛰어나서 '추향차'로도 불리운다. 철관음은 찻 잎이 다 펴졌을 때 따며 제다방법은 햇빛에 시들려 비비고 식혀서 하룻밤 발효시킨 뒤 다시 차를 볶고 비비고 불에 쬐어 말린다.※ 철관음은 그 역사가 오래되고 향이 깊고 뛰어나 일찍이 이름이 났다.
철관음은 어디서 생겨난 차일까? 여기에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농부 위음이 꿈에서 본 후에 얻었다 하고 또 다른 이야기는 선비 왕사가 발견한 것이라고도 한다. 첫째는 옛날 중국 복건성 안계현의 송암촌이라는 마을에 위암이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성실하고 마음이 고왔는데 차나무 키우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만족하며 지냈다. 산을 개간해 차나무를 심고 정성으로 키웠으므로 수확이 좋았다.
직접 차잎을 따고 볶아서 만든 차는 질이 매우 좋아서 명성이 자자했다.그의 집안에 소중히 모시는 관음상이 하나 있었는데 매일 아침 저녁으로 세잔의 향기로운 차를 관음상앞에 바치곤 했다. 이러기를 10여년하는 동안 하루도 거른 날이 없었다.어느날 위음은 꿈 속에서 삽을 메고 집 뒤에 있는 바위로 올라갔다. 바위에 차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었는데 크기는 사람 키만 하고 가지가 무성하고 잎이 많았다. 그리고 좋은 난향이 풍겨났다.
위음은 호기심이 났다. '바위위에 언제 이런 차나무가 자라났을까?' 그리고 몸을 굽혀 차잎을 따려는 순간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바로 잠을 깼다. 위음은 깨버린 꿈이 아쉬워 다시 잠을 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였다.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위음은 벌떡 일어나 삽을 메고 꿈속에 갔던 길을 따라 바위산을 올라갔다. 자세히 보니 꿈속에 봤던 바위를 뚫고 차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잎사귀를 부산히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그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나무는 잎이 너무 무성해 우산을 펴놓은 것 같았고 차잎도 푸르기가 금방이라도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잎의 가장자리는 톱니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고 향기 또한 진했다. 모든 것이 꿈에 본 그대로였다. 그는 잎을 몇 개 따다가 정성껏 차를 만들었다. 그리고 의흥자사를 꺼내 차를 부었다. 다호 안에서 좋은 향기가 솟아 코로 스며들었다. 차를 마시니 맛이 특히 좋고 깊이가 있는데 목안 깊숙한 곳까지 향이 스미어 일시에 정신이 맑아지고 근육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위음은 산으로 올라가 어린 차나무를 뽑아서 집으로 돌아와 몇개의 화분에 나누어 심었다. 2,3년이 지나자 어린 묘목이 튼튼히 자라고 잎은 푸르러져 차를 만들기에 좋게 되었다. 이것으로 만든 차는 맛이 뛰어나 비밀히 감추어 두고 귀한 손님이 오셨을 때만조금씩 나누어 드렸다. 한번 맛을 본 사람은 누구라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날 집에 찾아온 손님이 있어 이 귀한 차를 대접했다. 그 손님도 예외없이 극찬을 하고 무슨 차인가를 물어왔다. 위음은 집 뒤에 있는 바위산에서 발견한 차인데 그 산의 모습이 마치 나한처럼 위험이 있어 '철나한'이라 이름을 붙이는 것이 어떨까 생각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손님은 머리를 저으며 '나한의 모습은 보기에 아름답지 못하니 이런 맛좋은 차에는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네. 이것은 관음보살이 꿈에 나타나 그르쳐주신 것인성 싶으니 철관음이라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네.'라고 말해주었다.
위음도 그 손님의 의견에 찬성했다. 이렇게 해서 '철관음'이라는 이름의 차가 생겨났다.둘째는 선비 왕사도 복건성 안계현 사람이었다. 그는 일생을 통해 신기한 꽃과 풀을 좋아했다. 그래서 서헌묘포라는 정원을 만들고 신기한 화초를 발견하면 이곳에 옮겨 심고 감상하곤 했다.어느날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친구를 만나 남암산이라는 곳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그러다 우연히 바위틈에서 아주 독특하게 생긴 차나무가 꼿꼿이 서서 짙은 향을 풍기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곧 이 차나무를 캐다 자기 정원에 옮겨 심었다. 그리고는 갖은 정성을 다해 보살피기 시작했다. 이윽고 차나무는 잎이 무성해지고 가지가 튼튼해져 보기에도 아름답게 자랐다. 곡우기 지나 비가 내리고 차 따기에 좋은 시절이 되자 그도 차잎을 땄다. 그리고 정성껏 차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는 모양이 특이하고 향기가 뛰어나 곧 집안의 보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는 예부시랑에게 선물로 이 차를 드렸다. 예부시랑은 곧 또 이 차를 귀히 여겨 황제께 바쳤다. 황제는 차를 맛본 후 왕사를 불러 차의 유래를 물었다. 왕사의 얘기를 다 들은 황제는 차가 관음처럼 아름답고 철처럼 무겁고 남암산에서 발견되었다 하여 남암철관음'이라 이름 지어주었다. 후에 남암철관음은 퍼져나가 안계현에 모두 심어졌다. 후세 사람들은 '안계철관음'이라고 불렀다.
3. 기문 홍차(祁門紅茶)
기문홍차는 흔히 기홍 이라고 불리는데, 향기가 넘치고 단맛이 나며 신선한 맛을 자랑한다. 외관은 끝이 뾰족하고 가늘며, 탕색은 불타는 듯한선명한 붉은 색이다. 기홍이 생산되는 안휘성 남단은 중국의 명산 황산의 한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나와 서쪽에 이르는 지역으로써, 산의 기복이 심하고, 산이 전체 면적의 90%를 차지한다.
서북쪽에는 해발 1700미터의 대홍령과 역산이 있고, 동쪽에는 남목령, 남쪽에는 거근령이 있어서 사면에 높은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그 속에 다원이 형성되어 있는데, 보통 해발 100∼350미터의 구릉지대에 위치해 있다. 기문현의 기후는 온화하고 봄,여름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연평균 기온은 15.6℃이고 강우량은 160mm 이상이다. 기문홍차의특성은 향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며 장미꽃의 달콤한 향기가 있고 짙은 선홍색의 탕색을 가지고 있다. 제다 과정은 차를 4월부터 9월까지 따는데, 일창일기와 일창이기의 차 잎으로 만들어진다. 보통 일창일기의 차는 20%정도이며 일차이기로 만들어진 차는 50%정도를 차지한다. 기문홍차는 어린 잎으로만들어지며, 제다 과정은 시들리고, 비벼서, 발효하고 건조한다.
4. 백호은침(白毫銀針)
중국에서는 은침백호, 은침, 백호로 알려져 있고 현재는 백호은침으로 많이 불려지고 있다. 백호은침의 생산지는 복정현과 정화현이며, 복정현에서는 1857년 복정대백차 품종 개발에 성공하여 1885년부터 차를 만들었고, 정화현에서는 1880년 정화대백차 품종을 개발하여 1889년부터 차를 생산하였는데, 백호은침은 이 복정대백차와 정화대백차의 품종으로 만든다.
백호은침의 차 싹은 살찌고 바늘처럼 뾰족하고 길며 흰털이 전체를 덮고 있다. 매년 가을에서 겨울사이 비료를 충분히 주어야만 이듬해 봄의 차 싹이 크며, 첫 번째 딴 차 싹이 가장 상등품이고 두 번째 차 싹이 차 등품이며, 세 번째부터는 질이 떨어진다. 여름이나 가을에 딴 차 싹은 작아서 백호은침을 만들지 않는다.
가장 좋은 상등품의 백호은침은 일창일기를 따서 손으로 살짝 창과 기를 떼어내어 광주리에 겹치지 않게 늘어 놓아 약한 햇볕 아래나 통풍이 잘되는 그늘아래 두어 80∼90%정도로 말린 후 30∼40℃의 온도로 천천히 찐다. 녹차의 제다 방법과 비슷하나, 녹차처럼 비비지는 않는다. 백호은침차의 맛은 깨끗하고 신선하며 향기는 청아하고 탕색은 옅은 살구 색이다. 성질이 차며 열을 내리는데 탁월하다.
5. 벽라춘(碧螺春)
벽라춘은 소주 오흥현 동정호의 동산과 서산에서 난다. 짙은 향기와 신선한 맛을 지니고 있으며 탕색은 선명한 벽록색이고, 어린 차싹과 잎은 여린 비취빛이며 잎의 모양은 소라고동처럼 구부러져 있다. 채다 시기는 춘분에서 곡우 때까지이며, 강희제가 차색이 벽록색이고 찻잎이 소라고동처럼 나선형이며 동정산 벽록봉 아래에서 난다고 하여 벽라춘 이라 이름하였다. 1등급에서 낮은 등급으로 갈수록 잎이 커지고 털이적어진다.
그러나 가장 낮은 차라 하더라도 다른 녹차 잎보다는 더 어리다. 바로 춘분과 곡우 사이에 채다 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벽라춘의 원료로 가장 좋은 것은 일창 일기 인데, 제다 과정은 찻잎을 따서 먼저 잎을 선별하여 큰 잎은 제거하고 젖은 헝겊으로 덮어두어 수분을 유지하게 한 뒤 가마솥에서 볶아 내는데, 차를 만들 때 볶고, 비비고, 말리는 과정을 한 솥 안에서 한다.
※ 아주 오랜 옛날 동정산 서쪽 꼭대기에 벽라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다. 예쁘고 총명한 벽라는 마음씨도 곱고 노래도 잘 불렀다. 동정산 옆 태호에서 고기를 잡거나 밭에 나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벽라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온갖 피곤을 잊었다. 마을사람들은 기쁨을 주는 벽라를 사랑했다.
어느 해 봄, 마을에 크나큰 재앙이 닥쳤다. 태호에 나쁜 용이 나타나 자기를 위해 사당을 짓고 날마다 향을 피우고 달마다 제물을 바치고해마다 예쁜 소녀를 아내로 바치라고 요구했다. 나쁜 용은 벽라를 원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사랑하는 벽라가 용의 아내가 되는 것을허락하지 않았다. 화가난 용은 태효에 푹풍을 일으켜 고기잡이 배를 부숴뜨리고 마을의 집과 나무를 망가뜨렸다.동정산 동쪽에 물고기를 잡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소년은 용감했고 물 속에서 칠일낮 칠일밤을 헤엄칠수 있었다. 소년은 벽라의 노래를 무척 좋아해서 매일 집에 돌아갈 때면 동정산 서쪽으로 와서 몰래 벽라의 노래를 듣고 가곤 했다. 나쁜 용이 벽라를 원한다는 얘기를 들은 소년은 용과 싸워서 마을사람들을 보호하고 아름다운 벽라를 구하겠다고 결심했다.달빛도 비치지 않는 밤, 소년은 작살을 들고 용을 찾아나섰다.
나쁜 용은 나무를 뽑고 집을 부숴뜨리고 있었다. 소년은 용에게 살금살금 다가가서 힘껏 작살을 던졌다. 작살은 용의 등에 꽂혔다. 소년은 피를 흘리는 용과 칠일낮 칠임밤을 싸웠다. 그리고 둘다 지쳐 쓰러졌다. 나쁜 용이 쓰러지자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와 작살과 창과 칼로 용을 죽였다. 심한 부상을 입은 소년은 마을사람들의 정성어린 간호에도 도무지 나아질 줄 모르고 나날이 병세가 악화되었다.
어느날 소년은 마을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저는 더 살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벽라 아가씨가 나를 위해 불러주는 노래를 들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예전에 물고기를 잡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언제나 벽라 아가씨가 계신 곳에 가서 노래소리를 듣곤 했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벽라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온 마을사람들이 존경하는 소년이 그토록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감동받은 벽라는 소년을 자기의 집에 옮기고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그러나 소년에게는 어떤 약도 효험이 없었다. 다만 벽라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소년은 나날이 쇠약해지기만 했다.어느날 약초를 찾으러 나섰던 벽라는 소년이 나쁜 용과 싸움을 벌였던 곳까지 가게 되엇다. 그곳에 작은 차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벽라는 차나무를 산꼭대기에 옮겨 심어서 훗날 사람들이 나쁜 용과 싸워 마을을 구해준 용감한 소년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날씨가 아직 쌀쌀했지만 산꼭대기에 옮긴 차나무는 잘 자랐다. 벽라는 아침에 일어나면 입김을 불어 어린 차잎을 따뜻하게 해주었다.청명이 지나고 곡우가 멀지 않은 어느날, 차잎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쯤 소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밥도 먹지 못하고 약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소년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벽라에게 말했다."아리따운 벽라 아가씨. 매일 저에게 노래를 들려 주시고 잘 보살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가씨의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죽거든 산꼭대기에 묻어주세요." 소년의 말을 들은 벽라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날마다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어 키운 차잎을 따서 마지막으로 소년에게 끓여주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벽라가 가져온 찻잔에서 깊고 그윽한 향기가 번져나와 소년을 깨웠다. "정말 향기롭군요."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벽라에게 가까스로 말했다. 벽라는 소년에게 슬픈 듯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차를 권했다. 한입에 차를 다 마신 소년은 마치 속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온몸의 땀구멍이 열리고 호흡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소년은 팔을 들어보고 다리를 펴보았다.
"내가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되었어요. 벽라 아가씨가 주신 약을 먹고 이렇게 좋아졌어요."벽라는 소년의 말을 듣고 너무 기뻐서 수정 같은 눈물만 떨구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그만 움직이고 누워서 안정을 취하세요. 약은 얼마든지 있어요." 이때부터 벽라의 노래에는 기쁨과 행복이 가득했다. 벽라는 노래를 부르며 차잎을 따고 비비고 볶아서 차를 끓여 소년에게 매일 마시게 하였다. 소년은 약을 마시고 날마다 건강해졌다.
그러나 벽라의 얼굴은 쇠약해지기만 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벽라는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에 머금은 채, 노래를 부르며 숨을 거두었다.소년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벽라를 산꼭대기에 묻어 주고 그 옆에서 살며 차나무를 보살펴주었다. 몇년뒤 그곳은 넓은 차밭이 되었다.맑은 구름이 동정산의 서쪽을 끼고 흘러갈 때면 사람들은 벽라가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매해 곡우가 다가올 때면 마을의 처녀들이 동정산에 올라가사 차잎을 따서 차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 차를 벽라춘이라 불렀다.
6. 황산 모봉차(黃山毛峰茶)
황산모봉차의 외관은 작고 흰 은빛 털이 차잎을 덮고 있으며 높은 향기와 부드러운 맛을 자랑한다. 모봉차가 생산되는 황산은 안휘성의 유명한 명승지로써 중국 5대 명산중 하나이다. 산세가 웅장하고, 구름과 안개가 사시사철 끼어 있으며, 푸른 소나무가 무성하고, 그 사이 사이로 골짜기와 샘이 사방에 흩어져 있어서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그 곳 해발 900∼1,000m 사이에 황산모봉차의 다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차의 푸른빛이 더한층 황산의 자연 경관을 빼어나게 한다. 이 산악지대의 연 평균 온도는 14∼17℃이고 강우량은 2,000mm 이상이다. 토양은 검은 사력질의 토양으로 무기질이 많으면서 배수가 잘된다.
황산모봉차는 향기가 높고 맛이 신선하며 부드럽고 작고 어리며 많은 백호가 있다. 찻잎의 빛깔은 황록색이며 우려낸 잎도 선명한 황록색이고, 탕색은 맑고 투명하며, 특급과 1급의 모봉차를 명차로 구분한다. 모봉차는 청명에서 입하 시기에 잎을 따서 만들어지는데 입하이후에 따서 만든 것은 모봉차로 분류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특급은 차 싹 하나와 찻잎 하나인 일창일기로 만들고 1급은 싹 하나에 잎이 두 개인 일창이기를 원료로 하여 만들며, 2급은 일창이기와 일창삼기로 만들며, 3급은 활짝 다 펴진 일창이기나 삼기로 만들어진다. 제다방법은 찻잎을 살청하고 비벼서 건조시키는데 특급과 일급은 비비지 않는다.
7. 동정 오룡차(凍頂 烏龍茶)
대만에서 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 가정년간(1796∼1890) 때라고 추정되는데, 그때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차가 오룡차이다. 오룡차의 재배와 제다 기술의 유입은 복건성의 주민들이 이주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다. 동정오룡차는 청심오룡의 품종으로 주로 만드는데, 다 만들어진 차의 차 통을 개봉하면 강열한 향기가 쏟아져 나오고 차를 우려내면 밝은 황금색을 띤다.
향기는 계수나무 꽃 향기에 가깝고, 맛은 달고 부드러우며 목구멍 깊은 곳에서 치솟아 오르는 향기가 일품이다. 우려낸 뒤 차 잎을 보면 오룡차의 특색인 가운데가 담 녹색이며, 가장자리가 붉다. 가장 좋은 동정오룡은 일창이기의 차잎으로 만드는데, 대만은 기후가 온화하여 12월∼ 2월을 제외하고 늘 차가 생산된다. 일반적으로 춘차는 3월 하순에서 5월 하순, 하차는 5월 하순에서 8월 하순, 추차는 8월 하순에서 9월하순, 동차는 10월 중순에서 11월 하순까지이다. 제다 방법은 시들려서 흔들어주며 발효시키고 살청하여 비벼서 건조시킨다.
※ 복건성 사현 초양향. 이 지방 사람들은 차를 딸 때에 검은 뱀 때문에 곤혹을 치뤘다. 어떤 때는 검은 뱀이 차밭에, 차나무에, 차나무 근처 풀속에 있어서 어린 아가씨들이 차잎을 따다가 뱀을 보고 소리치며 모두들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므로 차를 따는데 보통 어려움이 따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슬기로운 노인네가 있어 차 따는 아가씨들을 모아놓고, "차나무에 있는 뱀은 뱀이 아니라 작은 용이다. 그 작은 용은 차나무를 보호하고 또 아가씨들을 보호한다."고 설득하였다. 중국인들은 십이진법(十二進法)에 쥐,소,호랑이,토끼,용,뱀 이런 식으로 음양의 오행을 나눈다.
그것을 우리나라에서는 뱀띠라고 하지만 중국인들은 뱀을 뱀이라 하지 않고 작은 용이라고 상징화하여 그대로 믿고 있다. 왜냐하면 용은 길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은 검은 뱀이 보호해 준다는 뜻으로 흑사차(黑蛇茶)라고 이름지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꺼림칙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중국 민남어로 오(烏)와 흑(黑)은 발음이 같고, 용(龍)과 뱀(蛇)을 동일시하는 풍속으로 오룡차가 되었다.
8. 천목 청천차(天目 淸泉茶)
천목청정차가 생산되는 천목산은 절강성(浙江省) 임안현(臨安縣)에 있는데, 임안현은 찬목산의 동천목과 서천목 두 개의 주봉 사이에 있다. 동천목과 서천목은 각각 해발 1500m가 넘는 정상에 못이 있는데, 거울처럼 맑은 못의 모습이 마치두 개의 눈이 하늘을 담고 있는 듯 하다고 하여 천목산 이라고 불리어지게 되었다. 청청차가 생산되는 지역은 천목산에서도 삼림이 무성한 지역이며 토양이 기름지고 부식토양으로 이루어져 흙의 색은 검은색을 띠고 약산성의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기후는 안개가 많고 기온이 대체로 낮아 습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차나무는 대부분 해발 600m에서 1,250m 사이에 찬바람을 피해 많이 심어져 있는데, 품질은 차를 따서 만드는 시기에 따라 정곡, 우전, 맹첨, 매백, 소춘으로 나눈다. 정곡은 일창일기로 만들어지며, 소춘은 일창이기로 만들어진다. 천목산의 차는 잎이 두꺼워 가볍게 비비기 때문에, 우려내어 맛을 보면 첫 맛은 담담하고, 두 번째 맛은 진한다. 청정차의 잎은 두껍고 백호가 드러나며, 짙은 녹색이다. 우려내면 짙은 향기가 오래 지속되고 탕색은 투명하고 맑은 비취빛 이며, 우려낸 뒤의 차 잎의 빛깔은 연한 황록색이다.
9. 운남 보이차(雲南普耳茶)
운남 에서는 대엽종의 찻잎을 이용하여 차를 만드는데 차 맛이 진하며 부드럽고 여러 차례 우려내어 마신다. 옛날에는 보이차를 약으로 이용하여 「운남성지」,「물리소지」「백화경」등의 기록을 보면 보이차에 관한 약리적 특징이 기록되어 있다. 보이차는 높은 향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는데 그 향기는 운남성 대엽종에서 만의 특이한 향기이다. 진하고 감칠맛 나며 여러번 우려내도 처음의 향기와 맛이 변하지 않는다.
탕색은 등황색을 띤다. 이 지역의기후는 온화하고, 강우량이 풍부하며 토양의 비옥한 상층부는 풍부한 유기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찻잎을 따는 시기는 3월초에서 11월까지이다. 봄, 여름, 가을로 나누는데 봄차는 3월에서 4월, 여름 차는 5월에서 7월이고 가을차는 8월에서 11월까지이다. 상품의 보이차는 대체로 일창이기나 일창삼기로 만들어진다.
10. 천량차(千量茶)
천량차는 청나라때 유명한 차인데 차 무게가 1000냥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차의 모양은 둥근 원주형이고 길이는 146.7cm, 무게 36.25kg이다. 손으로 압축하여 만든 후 죽순, 대나무잎, 종려나무 잎으로 싸고 겉 표면에 다시 대나무 자리로 싸서 나귀나 말에 실어 멀리 운반하기 편리하도록 만들어 졌다. 이 차는 주로 황실궁중에 진상 되거나 몽고 귀족들에게 비싼 값으로 거래되었으나, 청 말 1912년 이전에 궁중 진상이중단되면서 제조가 중단되었다.
천량차는 1950년대에 도로가 개통되면서 2kg되는 화전차 형태로 변형되어 다시 만들어 졌으며 문혁 이후 약 300냥 정도가 되는 포장이 안된 천량차가 소량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천량차는 교목형 소엽종의 아주 어린잎으로 만들어져 차 잎의 밀도가 높다. 외관은 검은 갈색이고, 탕색은 황홍색이다. 차향기는 순수하고 맑으며 차맛은 매우 짙으면서도 달고 부드러우며 마치 오래 묵은 술과 같이 오래될수록 맛이 깊어진다.
오래된 천량차는 입속에 들어간 후 체내에 축적되었다가 서서히 전신으로 확산되어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제다 과정은 생엽을 살청하여 비비고 그대로 무더기 채 쌓아두어 그 습기와 열로 발효시킨 후 충분히 발효가 되면 건조시켜서 다시 쌓아두어 재발효 시킨후 쪄서 둥근 원통에 강하게 압축하여 틀에 박아내 후 서늘한 곳에서 건조시킨다.
11. 말리화차
말리화차는 우리나라에서 쟈스민차로 잘 알려져 있다. 말리화차의 품질은 바탕이 된 차의 품질과 꽃이 배합된 정도와 꽃이 생산된 시기등으로 구분된다. 말리화는 향기가 짙은 방향성 식물인데, 꽃송이의 품질은 홑꽃과 겹꽃이 있다.
홑꽃은 9∼11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고 겹꽃은 13∼14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둘중 겹꽃의 향기가 더욱 짙고, 생산량도 많아 말리화차는 주로 이 겹꽃으로 만들어진다. 화차는 두 종류를 합성하기 때문에 제다과정이 복잡한 편인데, 그것은 차는 건조하고 꽃은 습하기 때문에 합성과정이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화차의 제다는 먼저 수분 함량이 4∼5%인 차잎을 준비하여 신선한 꽃과 함께 온도를 낮추어 가 한 다음 차와 꽃을 섞는다.
꽃의 핀 정도로 차잎과 꽃의 양을 조절하고 향기가 날아가지 않도록 다시 차로 덮는다. 온도를 차츰 올려가면서 덩이를 만들고, 만들어진 덩이를 헤쳐서 열을 식히는데, 이와 같은 과정을 반복하여 수분이 줄어들면 향기로운 화차가 된다.
12. 국화차
국화차는 절강성에서 생산된 황백소국이 유명하며 상품 국화차는 6∼7번을 찐다. 일반적인 국화차는 1번 내지는 2번 정도를 찌며 위를 돕고 눈을 밝게 하고, 따뜻하게 마시면 땀이 나고 몸이 가벼워진다. 맛이 깔끔하고 순하며 매년 10월말 만개한 꽃을 따서 증기로 쪄서 건조시킨다.
출처 : http://pkho.com.ne.kr/oyhak/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