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가는 날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아침 벌초를 하러간다
대구수목원 우측에 맨발걷기 길을 따라
약 20분 올라가면 정자가있다 정자뒤편 울타리가 있고 문5가 있다 평소 잠겨져있으나 관리실에 전화하면 열어준다
산길을 약 10분 오르면 어머님 산소가 나온다 1981년 수목원이 생기기 훨씬 전에 어머님을 모신 것이다 세월이 많이 변했다
대구의 쓰레기를 약 10년 매립하였던가 그후 얼마지나 수목원이 들어섰다
어머님 초상치를 때는 길이없었던 계곡이었는데 지금은 달서구민의 좋은 휴식처요 건강을 지키는 운동 공원이 되었다
유천교 거렁가에서 상여를 해체하여 관만 들고 길이 없어 논두렁 밭두렁을 가로질러 운구했던 기억이난다 아주 골짝에 산소를 만드느라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던 장레식이었다
올해는 가물었는지 풀이 많지않아 금방 벌초를 마쳤다 벌초가 아니면 오지않는 산소 또 내년까지 잘 지켜주시길 기도하고
내려왔다
아버님 산소는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다
옥포면 송촌동
아버님은 어머님 돌아가시고 5년후 돌아가셨다 1986년 5월 12일(음)
모내기가 끝날 무렵이었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산소를 가까이 쓰지않은 이유가 있다
수목원 어머님 옆에 모실 수있었는데
아버님은 첫 부인은 월배 최씨였다 딸 둘 낳고 돌아가셨다 두번째 부인이 우리 어머님이셨다
두째 부인을 가까이 모시면 첫 부인이 시기하신다고 다른 곳에 모신 것이다
내 나이 서른셋 ,막내 아들 겨우 백일무렵 여유롭지 못한 시기에 아버님 돌아가셨다
마땅히 모실 곳이 없어 누님과 상의를 했는데 옥포 송촌에 사는 두째 누님이 지금의 조그만한 밭을 소개했고 장례치른 후 밭값을 치른 것이다
평당 5천원 약 100평, 장례식 조의금으로 치른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가난하고 힘든 가정형편이었는데 돌아가시는 날
밭 하나 살수있는 신기한 일이 생긴 것이다
요즘 평당 30만원 정도 하니 아버님은 마지막 선물을 주신 것이다
요즘은 매장을 하는 문화가 거의 없다
내가 저세상 가는 날 유언 할예정이다
어머님 아버님 산소 다 화장하고 없애라고
그리고 우리 부부의 장지는 교회 장지에 화장유골 묻어라 고. 할테다
땀흘리며 벌초 하고 매년 산소를 찾으면
옛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나 형제들 간의 우애는 있겠지만 요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세대가 지나면 장례문화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추석명절을 앞두고 형제간에 친척간에 산소 성묘의 자리에서 반갑게 만났는데 이제 친척 일가 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형제간에도 점점 멀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에서 추모의 정을 나누던 가족관계가 점점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첫댓글 더운 날씨에 부모님 묘소 벌초 하신다고 수고 많으셨네요
읽으면서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네요
울 남편 일년에 세번씩 부모님 산소 가꾸더만 이제 작년부터 동네분에게 부탁해서 합니다
제작년 벌초 다녀와서 샤워하다 목욕탕에서 꽈당 넘어져 그 때부터 산소 간다면 제가 결사 반대 합니다요 ㅎ
박남규 고문님 가족과 행복한 한가위 보내시고 항상 건ㆍ행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