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대통령 탄핵을 거쳐 코로나19 이후 시대에 들어와서 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 송곳처럼 예사롭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교회는 세상에서 “남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기관”(본회퍼)이라고 하지만 한국의 시민사회는 과연 교회가 그러한지에 대한 무거운 의심을 하고 있다. 성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사익추구의 제의적 종교가 되어버렸다면 이런 교회는 하루라도 빨리 해체하고 새로운 대안적 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년층의 교회 이탈이 가파르다. 청년 사이에서도 올바른 정신을 가졌다면 현재의 낙후된 도덕적 수준의 교회에 가는 것이 상식과 합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정의의 실현’과 ‘은총의 전파’라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어떻게 하면 청년들에게 다시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교회가 무엇을 하면 청년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청년의 빈곤 문제와 교회의 선교와 연결해 볼 때, 청년 없이 국가의 미래 없고, 청년 없는 교회의 내일은 불가능하다는 신념으로 교회가 청년 돌봄의 첨병 역할 내지는 전위적 실천을 해야 한다. 나는 23세부터 모(母) 교회에서 첫 사역을 청년부에서 시작했고, 중국 선교사 14년 동안에도 한족 청년을 목회자로 세우는 신학교 사역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7년 전에 청년 중심의 교회를 개척했다가 지금은 이 개척 교회와 60년 된 지역교회가 합병(통합)하여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나의 32년 사역은 거의 청년들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내가 청년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울고 웃고 그들의 내부자가 되어 발견한 것은, 결혼이 벼슬이 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출산과 육아는 빈곤 청년들에게는 그림의 떡이거나 아예 제쳐둔 주제라는 것이다. 마음은 원이로되 돈이 없어 포기하는 것들이 많다면 교회는 우는 자들과 어떻게 함께 울어 줄 수 있을지 고민했고, 마음의 위로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제는 교회가 돈으로 말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돈으로 말하는 청년 선교의 첫 번째 주제는 ‘청년 대상 무이자 무담보 대출’이다. 그래서 마침내 교회 구성원이 조합원이 되는 조건으로 ‘고엘뱅크’라는 신용협동조합 형태의 은행을 설립했다. 이 조합은행은 무이자 무담보 대출을 설립 초기부터 시행했으며 7년째 계속 운영되고 있다. 2023년 3월 현재 조합원 64명, 대출 총 77건, 대출받은 조합원 총 33명, 대출 총액 약 1억 1천 4백만 원이다. 대출 항목으로는 학자금과 주거비가 많았고 의료비, 생활비, 여행경비, 수리비, 창업자금 등이었다. 희년 은행같이 비영리단체의 대출 사업은 있지만 특정한 지역교회에서 독립적인 신용협동조합 형태로 청년 대출을 해 주는 곳은 극소수다.
청년 중심의 개척 교회 때의 예배 순서에는 공동기도문을 함께 소리 내어 읽으며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다. 공동체가 함께 신앙고백을 기도로 표현하는 자리였다. 청년의 빈곤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몸과 돈으로 격물(格物)하는 신앙을 표현하려는 고민이 공동기도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동기도문 가운데 <산상수훈 기도문>을 먼저 소개해 보겠다. 1. 성취와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심령이 가난한 공동체 되게 하소서 2. 이웃의 슬픔과 사회의 갈등에 위로와 평화를 주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3.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을 통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4. “예”하면 “예”, “아니오”하면 “아니오” 하는 정직한 말과 실천을 하게 하소서 5. 하나님의 부름 받은 백성으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하소서 6. 시간과 물질을 나눌 때 먹이시고 입히시는 주님을 보게 하소서 7. ‘나’를 위한 기도보다 ‘너’를 위한 기도를 하게 하소서 8. 먼저 찾아가 죄를 용서하게 하소서 9. 편견을 버리고 사랑의 눈으로 보게 하소서 10. 착취와 소유, 불안과 경쟁의 길이 아닌 공의와 자유의 길을 걷게 하소서. 우리는 <산상수훈 기도문>을 2년 6개월 이상 매 주일 예배 시간에 함께 읽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성도들의 마음과 세계관에도 하나부터 열까지 기도문에 담긴 이웃 사랑, 돈의 나눔, 환대, 돌봄의 언어들이 시나브로 새겨지고 있었다. 이처럼 예배에서의 공동기도문을 통해 교회의 공유된 언어가 교회 구성원에게 내재화되었기에, 도덕적 가치와 기독교 세계관이 조합원들에게 함양됨으로써 고엘뱅크도 높은 자금 회전율을 유지하며 운영될 수 있었다.
돈으로 말하는 청년 선교의 두 번째 주제는 ‘청년 공동 주거 공간 만들기’이다. 청년 주거 공유 프로젝트는 아직 계획 중에 있지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제화하고 장차 구현될 증거임을 붙잡고 계획 실현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교통 요지에 있는 대형교회 소그룹 공간을 평일에 청년창업 공간으로 무료 개방하면 “비록 ‘개독교’ 시대이지만 회개의 합당한 열매 중의 하나가 되어 교회 이미지 만회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도시 교회들이 게스트하우스를 사숙(私塾)형 청년주거공간으로 만들어서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이나 유학이나 취업하러 온 조선족이나 외국 청년들에게 안정되어 독립할 때까지 무상 주거 대여를 해 주면 어떨까? 비어 있는 목사관을 리모델링 하거나 다시 지어서 청년이나 청년 부부에게 조건부 무상 주거 제공을 하는 것도 어려운 시대의 성육신적 청년 선교가 될 수 있다.
돈을 나누고 받을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돈을 흘려보내는 삶의 방식은 교회의 생태계에서 나올 때 힘이 있고 반향이 생긴다. 미담(美談)의 울림 속에 너도나도 기도의 실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본다. 하나님의 구원은 샬롬이 청년 세대에게 충만하게 퍼지는 것이다. 샬롬은 희년 사회의 다른 이름이다. 교회의 청년 선교가 ‘평등적 자유’의 심화와 확장을 빈곤 청년층 속으로 침투시킬 수 있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의 복된 상태를 다음 세대 가운데 볼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교회는 우는 자들과 어떻게 함께 울어 줄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