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序
이 영화를 보면서 이 땅 곳곳에 얼마나 많은 일제 식민사관 잔재가 아직까지 활개를 치는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전쟁영화 자체가 이순신 장군이라는 한 사람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라 치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전부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성경에서 말하는 모세 기적인 괴력난신 여호아 빽도 아닌 마당에 어떻게 전투함 12척으로 적선 300척을 무찌를 수가 있을까? 문제는 계속적인 세뇌 교육으로 이를 전 국민이 믿어왔다는 데 있는 것이다. 당시 배를 가지고 있던 양반들이 자기의 전 재산인 그 배를 전부 동원 이장군에 가지고 와서 전선에 편입 참전한 결과로 당시 징비록 등의 기록을 살피면 그 숫자가 600~700척 가량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온 국민이 힘을 합치면 못 이길 전쟁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단지 왜놈을 숭배하는 식민사학자들이 이장군 혼자서 이긴 것처럼 역사를 기술한 관계로 우린 그렇게 통쾌하게 이겼다고 우쭐 대지만 거긴 민족이 힘을 합치면 안 되는 술수를 이들이 발휘한 것을 교묘히 감추고 있는 사실을 무리가 모르고 지나고 있다. 우린 선천적으로 똘똘 뭉치기를 좋아하는 민족으로 이를 잘못 이해한 이승만 같은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 라는 해괴한 논리를 폈던 자의 꼬붕이 된지가 오래다.
중국에서 장개석과 모택동이 30년간 일본과 싸우면서 자기들끼리 패권을 향해 또 서로 싸우면서 그 결과 모택동이 이겼던 것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지지가 없는 군대는 결국 지고 만다는 만고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장개석은 지면서 대만으로 도망가면서 피눈물을 흘렸다. 그 많은 미국의 지원 받으면서도 부패로 인해 전쟁에서 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군함을 건조하면서 내부기기를 성능이 안 나오는데도 비싸게 사서 그 배가 움직이지 못한다고 난리를 치지만 그때 장개석 군대는 그 군함을 통째로 팔아 먹었고 그 군함이 어디 갔는지 아무도 모르는 군대였다. 군수물자 먼저 팔아먹는 놈이 똑똑한 군대가 국민을 착취하는 군대가 전쟁에서 이겼다는 사실은 성경에서 말하는 괴력난신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2. 임진왜란(壬辰倭亂) 공신
임진왜란 결과 선조가 내린 교지 공신서열에서 선조까지 넣는다면
장원: 선조: 자신이 천군(명군)을 불러서 전쟁에 이겼으니 당연히 장원이다. 나라가 기울어져가는 명나라 군대의 썩음이란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즉 참전을 목적으로 그들이 강탈해간 은의 양은 조선이 가지고 있는 80% 이상이었으며 쩐이 될만한 물건들을 무한정 요구해서 그들은 가지고 갔다. 장담하건대 이런 군대를 가진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만다. 실제로 명은 얼마 못 가서 청에 나라를 뺏기고 만다. 다 그 뿌리가 있는 것이다. 별도로 기술하겠지만 왜에 대비해서 군사장비를 보강하던 장군은 원균의 모함으로 즉 반란을 도모한다는 구실로 정말로 무지한 고문을 받고 권율 밑에서 일반 보졸로 전쟁에 참여케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 나라엔 이씨가 없다. 그런데 새로운 이가가 있다는 민심이 있었고 이를 전주 이씨에서 덕수 이가로 정권이 바뀐다는 속설을 믿고 반란의 싹을 자른다는 구실 하에 이런 짓거릴 한 왕이 장원이라니 참으로 히히 그리고 또 히히 다!
1위: 원균: 임금이 죽으라고 즉 섶을 지고 불 속에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가서 죽는 충신이니 가히 임금 입장에선 자신 다음으로의 공신 서열이 아깝지 않다. 이자가 한 짓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참으로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이자가 공신서열 임금 빼고 1위다. 그리고 그 왕이 선조다. 또 히히!
2위: 권율: 육군이 주역이었던 당시에 해군 중요성을 모른 선조로서는 당연히 2위가 맞다. 또 또 히히!
3위: 이순신: 해군에서 123전 123승을 했으나 결국은 육군 밑이라 권율 밑에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感之德之) 해야 할 일이다. 이번엔 흐흐
사실 조선 왕조에서 가장 두려운 것의 하나가 역모다. 그 근거는 정도전이 세웠던 신권정치와 맥을 같이 한다. 또한 건국이념의 틀이 논어 맹자 정주자로 특히 맹자는 임금이 백성을 보살피지 못하면 반란을 해도 무리가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바로 이 반란 때문에 그 싹을 자르기 위해 군대까지 없앴던 왕이 세조다. 명나라가 있으니 군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 셈으로 나라를 다스린 이유가 반란의 싹인 군대를 없앤 결과인 것이다. 여기에 한몫 더한 왕이 선조다. 사대주의란 다 이런 것을 빗댄 창피한 내용이지만 이를 교묘히 없앤 것이 식민사학자로써 일본을 숭배하는 것도 사대주의에 포함을 안 시킨 것을 보면 이 또한 웃기는 사건이다.
3. 대전으로 도망친 이승만, 국민들에겐 “나도 서울을 지키고 있다”(모 신문 자료 인용)
1950년 6월25일, 국민 전체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승만은 새벽부터 전쟁 발발의 소식을 듣고 우선 자기 혼자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26일 아침 8시 신성모 국방장관이 방송에 나와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북진 중에 있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그런데 27일 새벽부터 비상국무회의가 열렸지만 이승만은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고 열차편으로 이미 몰래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대전 도피에 관해 각료는 물론, 국회의원, 하물며 육군본부에까지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승만은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곧 특별담화를 녹음한다. 27일 밤 9시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전파를 타고 전국민에게 전달되었다: 아주 어눌하게 “우--리 구-ㄱ -군이 요-ㅇ-감-하-게 저-ㄱ을 물 리 치 고 이 습 니 다. 구-ㄱ 민과 공 무 워는 정 부 발 표를 믿 고 동 요 하지 마십시오. 나 대통령 본 인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게 서 울 을 지 키 고 이습니다.” 생 거짓말이었다. 지금도 그가 연설하는 내용을 들으면 30이 넘어서 미국간 친구가 한국말 다 잊어 버린 양 어눌하게 “구-ㄱ 미-ㄴ 여-러-부—ㄴ”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이게 말이 된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내 친구들 30전에 미국 이민 갔는데 한국말 전부 잊어 먹었겠다. 말되면 누가 말 좀 하면 어디 덧나냐?
이날 정훈국장교의 말만 믿은 모윤숙은 밤늦게까지 가두선전방송을 하고 다녔다. 이승만의 파렴치한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8일 새벽 2시30분 아무 예고도 없이 한강대교를 폭파시켜 버렸다. 사전 통보나 통제가 없었기에 50대 이상의 차량이 물에 빠지고 그 다리를 건너가던 시민 500여명이 폭사하였다. 군사전략적으로 볼 때도 이것은 터무니없는 실수였다.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던 우리 국군이 퇴로를 차단당하고 와해, 희생된 것이다.
이승만은 7월1일 대전에서 또다시 도망갈 때도 목포로 가서 부산으로 배를 타고 갔다. 경부가도가 이미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전 서울 시민을 서울에 가두어놓고 자기 혼자만 살 생각을 했다. 그리고 9•28 서울수복을 했을 때 서울에 남아 고생한 뭇 시민들을 부역했다고 죽이고 고문하고 연좌제로 묶어 놓았다. 우리는 이러한 이승만을 성스러운 통치자로 모시는 기나긴 정치사적 이념의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뿐인가? 건국의 아버지라 칭하면서 국부를 만들려는 의도는 아마도 친일파 후손들이 조상이 한일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벌리는 일종의 사기극이다. 망할 자식들!
4. 의주로 도망간 선조, 임진강변 건물과 배 다 태워버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도 선조는 대책 없이 먼저 도망쳤다. 사실 왜군은 이순신에게 해로를 차단당해 보급이 끊겼기 때문에 식량이 없었고 지쳐 있었다. 서울은 한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다. 그리고 당시 서울에는 화약이 2만7천 근이나 저장되어 있었다. 한강의 대형 수송선들과 지형을 활용하고 강북 강변에 군사를 배치하여 대처했더라면 왜군의 도강을 쉽사리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선조는 가마를 메어줄 사람도 없어 우중에 말을 타고 쫄쫄 비 맞고 굶으면서 북상에 북상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이승만처럼 자기가 건넌 임진강변의 건물과 배는 다 태워버렸다. 한번 생각해보라! 그가 의주까지 도망갈 때, 그의 말을 이끌었던 말단 관리 이마와 임란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 장군 두 사람의 공훈을 평가할 때, 누굴 더 높게 평점 했을까? 왜란이 끝나고 전체 훈공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선조는 이순신이 일적추(一賊酋)의 목도 베지 못했고, 일적진(一賊陳)도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생 거짓말을 하면서, 왜란을 토평한 것은 오로지 자기가 의주에서 요청하여 온 천병(天兵) 덕분이라고 말한다. 선조의 의식 속에서는 이순신이나 왜적과 피 흘리며 싸운 의병들보다 자기 말몰이꾼이 더 위대한 것이다.
이순신이 좌수사로서 당시 세태의 관행에 역행하여 임란 직전에 수군과 화포와 전술과 전함을 정렬해놓았다는 이 사실은 오로지 그의 독자적 판단에 의거한 것이다. 이러한 이순신에게 선조는 원균의 모함을 빌미로 종적죄를 씌워 서울로 끌어올리자마자 심한 고문을 가했다. 삼도수군통제사로서 5년 동안 나라를 구한 명장을 함부로 나국(拿鞫)한 것이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선조 이승만에서 보듯이 우리 역사는 구조적으로 책임을 질 줄 아는 결단의 인물을 키우지 않았다. 그러나 31운동, 419 등 우리 유전자 속에는 지금도 끊임없이 나라를 위하는 인자가 항시 꿈틀대고 있는 민족이다.
명의 이제마는 말했다. “투현질능(妬賢疾能) 이상의 대환(大患)이 없고 호현낙선(好賢樂善) 이상의 대약(大藥)이 없다”. 맹자는 낙문고언(樂聞苦言) 즉 호선(好善)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천하를 다스리기에 넉넉함이 있다 했다. 호선이란 쓴 말을 듣기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5. 結
우리민족 자체가 단결하지 못하면 힘을 못쓰는 그런 민족을 왜놈 압잡이들이 조선인은 패야 사람이 된다, 개인은 똑똑하나 뭉치지 못한다는 등의 세뇌교육을 꾸준히 한 결과 지금도 이를 굳게 믿고 행동하는 친일파가 너무나 많다. 단결된 힘으로 덤비면 왜놈은 조선을 병탄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렇게 야금야금 우릴 먹고 부리길 36년이나 했다.
명량은 그 영화 전개에 있어 우리 국민의 단결된 힘과 이순신 장군의 훌륭한 지도력에 의한 전쟁 승리 영화로 거듭나야만 영화로써 사명을 다할 수 있다. 끝
첫댓글 바둑에서 결정적인 실수가 있고 작은 실수가 있듯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실책은 이것 저것 엄청 많지만 결정적인 실책은 범하지 않았다고 말할수 있음. 김구, 조봉암 등 소위 민족주의자들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이 나라는 분명히 공산화 되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음. 공산주의 국가(김일성 정권)에서 과연 지금 처럼 우리가 살아가고 있을까??? 이승만 반공정권이 탄생하였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확신함.
우리 반장님의 논고는 항상 역설적인지만 재미는 있어유~~~~~
나도 한마디세월호 사고 이준석선장 이승만 선조 이명박 거슬러올라견 이씨조선 이성계아마 이말은도울 김용옥씨가입에 침튀어나게 이야기한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