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부분, 신인 작품상 응모>
우리에게 화분이 있다면
대전어은중학교 3학년 5반 안민진
(010-6599-8635)
초등학교 1학년 첫 등교날, 설레는 마음으로 가방 한 가득 챙겼던 준비물과 크고 높게만 보이던 학교 건물은 어렴풋하지만, 선생님의 첫 과제만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오늘 선생님이 내 줄 과제가 있어요. 여름방학 때까지 키울 작은 화분을 하나 가져오기입니다”
생명력이 아주 강해서, 동네 꽃집 사장님이 키우기 좋을 것이라고 추천해 주신 것은 작은 아이비 화분이었다. 스페이드 모양의 여린 초록 잎과 매끈한 도자기 화분이 퍽 마음에 들어
나는 주저함 없이 아이비를 골랐다. 그러나 화분에 대한 내 관심은 한달이 더 가지 못했고, 나의 작은 아이비는 유치원 때 만든 여느 만들기처럼 소복이 먼지가 쌓여갔다.
화분과의 첫 만남 그 뒤로 서너 달쯤 지나고, 무더운 여름이 왔다. 문득 아차 하고 생각이 들어 화분을 확인해보니 아이비는 삐죽히 자라는 있었지만, 멋드러진 모습이 아니라 내심 실망했었다.
화분에서 쑥 뽑아낸 수백 개의 하얀 아이비의 뿌리는 화분 안에서 엄청난 회오리처럼 뿌리들이 사방으로 뻗어 대고 있었다. 화분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물을 찾지 못해 몇몇은 화분 바닥의 물구멍으로 살길을 찾아 더 길게 뻗어 대기도 했다.
그 모습은 어린 나의 눈에 꽤 충격적이었다. 내가 잊어버리고 방치 했을 때도 아무 소리 내지 않던 식물이, 뿌리를 뻗을 공간이 없어 작은 구멍들로까지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생물이었다는 사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식물이 자람에 따라 큰 화분으로 옮겨줘야 할 때도 온다는 중요한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며칠 전 아파트 단지에서 여러 봄꽃들이 만개한 화단을 지나가다 그때의 그 화분이 떠올랐다.
사람에게도 화분이 있을까? 사람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개인적 공간이 있다. 나와 친밀한 사람, 내가 잘 아는 장소, 나와 비슷한 생각들. 주어를 ‘나’로 둔 그 공간들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그 화분은 우리에게 소속감 느끼게도 하고 목소리를 모아 의견 낼 수 있게도 해준다. 문제는 그 아늑한 공간에서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동영상 사이트 중 하나인 유튜브만 봐도 그걸 느낄 수 있다. 유튜브 사용자의 시청 영상을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은 내가 보고 싶은 정보만 계속해서 전달해주기 때문에 나와 다른 의견은 접하기 어렵고, 애써 검색하지 않는 이상 나의 시야에 드러나지 못한다. 과거에는 공신력 있는 뉴스매체를 통해 여러 사건과 다양한 의견을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원하는 류의 정보만 선택적으로 본다. 조금만 깊게 생각한다면 이 편리한 기술이 얼마나 사람들을 극단적으로 몰고 갈지 정말 위험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님의 ‘열두 발자국’ 책에서 평상시에 생각하지 않던 방향으로 머리를 쓰고, 혼란스러워 할 때에 우리 뇌는 가장 성장한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옛 성인들이 깨달은 사실들이 과학적으로 증명 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늘 하던대로만 뇌를 쓰고자 한다면 사람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를 보호해주고 지켜준다 생각했던 화분이 결국 나를 가두고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런 편향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렵지만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색다른 시도도 해보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