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이 모두 빨갛고 심장 생김새 같은
예쁘다고 아니면 아름답다고 아니면 신비롭다고 해야 하는지
적당한 수사를 찾기 힘든 과일 석류.
어린 시절 노랫말로만 들었던 석류를 대면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이면 교우들이 과일을 가져와 강단에 쌓아놓는데
첫해에는 이 과일을 모아 노인 단체에 드렸지만 지금은 만찬예배가 끝난 후 모여서 나눠 먹는다.
사과 감 배 귤 파인애플 바나나 포도 드물게는 모과까지...
어느 해 유독 그중 빨간 심장 모양의 열매가 시선을 견인하는데 석류였다.
석류와의 조우는 이런 추수감사예배에서였다.
추수감사와 가을과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나눌 수 없는 이미지이다.
인간은 비와 바람을 맞아가면서 밭을 가는 지상의 농부요, 하나님은 인간 노고에 상응한 이상의 열매를 주신다.
인간은 그 열매를 먹고 영양분 공급을 받아 다시금 인간의 운명인 지상의 현실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나가야 하고 우리는 싸워야하고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휘두르는 삽과 곡괭이는 닳거나 부러지고, 악천후에 시달리기도 하고,
우리가 뿌리는 씨앗이 새의 먹이가 되거나 해충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작렬하는 여름 태양열에 우리의 몸과 기력이 타들어가기도 하고,
태풍이나 홍수나 우박에 우리의 노력이 손상되기도 한다.
마침내 가을이 왔을 때, 우리는 우리에게 돌아올 수확을 확인하기 위해
씨앗과 함께 우리의 생과 땀을 뿌려댄 저 들판에 선다.
그렇게 비틀거리며 지나온 우리 인생의 수확이란 무엇인가?
만족한가?
아니면 비통한가?
우리가 죄인이기도 하고, 우리의 어리석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진 물리적 결과에 눈물을 삼키며 주저앉기도 한다.
아, 나는 무엇이며 내 인생이란 것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그런데 은혜란 이런 것이다. 그 서글픈 현장 속에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무엇인가가 놓여있다.
그것은 우리가 뿌렸던 피땀처럼 붉고, 그 피가 고동치는 심장처럼 둥글다.
석류다. 잃어버릴 것 같았던 내 인생에 석류가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석류가 잃어버릴 것 같았던 내 인생의 의미를 전환시켰다.
주여, 그렇습니다.
죄 많고 무가치한 나에게 당신은 석류를 주셨습니다.
그냥 이 무의미의 바다를 지나쳐 허무의 절벽으로 떨어져버릴 뻔했던 하찮은 내 인생에
당신은 붉은 피를 흘리는 빨간 석류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석류는 바로 당신이셨습니다.
2024. 12. 7
이 호 혁
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석류를 보시면서 예수님의 보혈을 생각하시다니..은혜로운 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