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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167_2 「當塗趙炎少府粉圖山水歌」李白
-당도에서 조염소부의 벽화 산수도를 보고 부른 노래-
峨眉高出西極天,①(아미고출서극천) -아미산은 서쪽 먼 하늘에 높이 솟았고,
羅浮直與南溟連。②(나부직여남명련) -나부산은 곧바로 남쪽 바다로 벋어나갔네.
名公繹思揮彩筆,③(명공역사휘채필) -유명한 畵工은 깊은 생각 끝에 그림붓을 휘둘러,
驅山走海置眼前。④(구산주해치안전) -산을 몰아 바다로 달아나도록 눈앞에다 그려놓았네.
滿堂空翠如可掃,⑤(만당공취여하소) -화면 가득히 그린 푸른 하늘은 훤하게 트인 듯한데,
赤城霞氣蒼梧煙。⑥(적성하기창오연) -적성산의 안개 자욱함은 창오의 언덕에 안개 낀 듯
洞庭瀟湘意渺綿,⑦(동정소상의묘면) -동정호와 소상 강에서 堯임금의 두 딸 娥皇女英이
舜임금을 따라 湘江에 몸을 던진 節義의 뜻을 면면히 이어가면서,
三江七澤情洄沿。⑧(삼강칠택정회연) -마치 강과 못을 오르락내리락 하여 자매의 애절한 정을
말하여 주는 듯하네.
驚濤洶湧向何處,⑨(경도흉용향하처) -무섭게 밀려오는 파도와 세차게 이는 물결 속에 어디로
가려는가?
孤舟一去迷歸年。⑩(고주일거미귀년) -외로운 배 떠나면서 어느 해에 돌아오는지를 알지 못하네.
征帆不動亦不旋,⑪(정범부동역불선) -멀리 가야 하는 배 움직이지 않으면 또한 되돌아올 수
없으니,
飄如隨風落天邊。⑫(표여수풍락천변) -회오리치는 바람 따라 하늘 가로 사라져 가려 하네.
心搖目斷興難盡,⑬(심요목단흥난진) -가슴이 벅차올라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니 그림은 보이지
않고,
幾時可到三山巔。⑭(기시가도삼산전) -한동안 멍하여 마치 삼신산 꼭대기에라도 와 있는가?
하였네.
西峰崢嶸噴流泉,⑮(서봉쟁영분류천) -서쪽 봉우리 높이 솟아 흐르는 샘물을 뿜어내고,
橫石蹙水波潺湲。⑯(횡석축수파잔원) -깔려 있는 바위 돌에 내려 꽃이며 파도를 일으켜 유유히
흘러가네.
東崖合沓蔽輕霧,⑰(동애합답폐경무) -동쪽 벼랑은 겹겹이 뿌연 안개 덮여 있고,
深林雜樹空芊綿。⑱(심림잡수공천면) -욱어진 수풀은 잡목들이 쓸데없이 무성하게 자랐네.
此中冥昧失晝夜,⑲(차중명매실주야) -그 안은 캄캄하여 밤낮을 잃었고,
隱几寂聽無鳴蟬。⑳(은궤적청무명선) -걸상에 엎드려 조용히 들어봐도 매미 울음소리 없으니
소리는 그려내지 못했구나.
長松之下列羽客,①(장송지하렬우객) -낙락장송 그늘아래 신선으로 보이는 이,
對坐不語南昌仙。②(대좌불어남창선) -마주하고도 말을 못하지만 남창의 신선일세.
南昌仙人趙夫子,③(남창선인조부자) -남창의 신선이라면 바로 趙炎 夫子가 아니었나?
妙年曆落青雲士。④(묘년력락청운사) -젊은 나이에 성격이 소탈하고 탁 트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명한 사람 되었지.
訟庭無事羅眾賓,⑤(송정무사라중빈) -재판정에서 뭇사람들이 묶여 있다가 무사히 풀려난 듯,
杳然如在丹青裡。⑥(묘연여재단청리) -여유 있고 편안한 마음이 그림 속에 담긴 것 같네.
五色粉圖安足珍,⑦(오색분도안족진) -오색 그림이 어찌 흡족한 珍景이 되겠는가만,
真仙可以全吾身。⑧(진선가이전오신) -참 신선이 될 수만 있다면 은둔하여 나의 몸을 모두
받치겠네.
若待功成拂衣去,⑨(약대공성불의거) -만약 기다렸다가 옷에 묻은 속세의 티끌을 떨어내고
신선되어 가는데 성공한다면,
武陵桃花笑殺人。⑩(무릉도화소살인) -무릉도화원 사람들이 보고는 배꼽을 쥐고 웃을 거야.
如-[助](2) 用於語末, 相當於“焉”
突如(갑짝스레), 其來如(거기 왔니?), 焚如(타는가?), 死如(죽었나 봐), 棄如(버리니)。
羅[벌일 라(나), 그물 라(나),]
<註釋>
當塗-6. 古縣名。西漢 置,屬 揚州 九江郡 。
相傳 夏禹 時為 塗山國。(전하기는, 하나라 우임금 때에 도산국이라 했고,)
《漢書·地理誌上》:“當塗,侯國.” (당도는 제후국이다)
顏師古注引應劭曰:“禹所娶塗山侯國也。有禹虛.”
(禹가 도산제후국에서 장가든 곳, 유허가 있다)
※李白이 말년에 族叔 李陽氷에게 몸을 의탁하다 病死한 곳이기도 함.
少府-고대 중국의 財務官廳.
前漢시대에는 帝室財政을 맡아 황제의 家産的 收入(주로 山海池澤으로부터의 수입)을
관할했으며, 그 장관은 9卿에 列座되었다. 後漢 이후 국가 재정을 관장하는 大司農에게
주요 임무를 흡수당하고, 궁정에서 사용하는 器物이나 공예품을 제작하는 관청이 되었다.
[출처] 소부 [少府 ] | 네이버 백과사전
繹思-2.推究思考。( (원인·이치를) 규명하고 생각해 보는 것)
明謝肇淛《五雜俎·物部四》:“禮之節度,尚可繹思;而樂之旨趣,茫無著落也。”
渺綿=渺綿-1.悠遠;不盡貌。(멀고 먼, 끊이지 않고.)
唐李白《趙炎少府粉圖山水歌》:“ 洞庭瀟湘意渺緜,三江七澤情洄沿。”
赤城-2.山名。多以稱土石色赤而狀如城堞的山。在浙江省天台縣北,為天台山南門。
《文選·孫綽〈遊天台山賦〉》:“ 赤城霞舉而建標。”
李善注:“支遁《天台山銘序》曰:'往天台,當由赤城山為道徑。'孔靈符《會稽記》曰:
'赤城,山名,色皆赤,狀似雲霞.'”
●2.산 이름, 대개 흙빛갈이 적색에다 성가퀴 같은 모양의 산이라고 칭하는 것으로, 절강성
천태현 북쪽에 있고, 천태산의 남문 역할을 한다.
<문선, 손탁의[유천태산부]>에, ‘적성산의 안개를 들어 표식을 한다.’하였다.
李善의 注에는, “지둔(支遁)의 <천태산명서>에 천태산을 가려면, 마땅히 적성산을 거쳐
가야 하는데, ‘공령부<회계기>왈, 적성은 산 이름이고, 색이 대개 붉고,
구름과 안개가 낀 상태이다’”라 하였다.
蒼梧-亦作“ 九嶷 ”。 1.山名。在 湖南 寧遠縣 南。
《山海經·海內經》:“南方蒼梧之丘, 蒼梧之淵,其中有九嶷山, 舜之所葬,在長沙零陵界中.”
郭璞注:“其山九谿皆相似,故云'九疑'。”
《史記·五帝本紀》:“﹝ 舜﹞葬於江南九疑,是為零陵。”
●<산해경해내경>에, 남쪽 창오의 언덕과 창오의 연못에 구의산이 있는데. 순임금 장사지낸
곳이다. 장사 영릉 안에 있다. 곽박의 주에, 그 산에는 9골짜기가 서로 흡사하여, ‘九疑’라
일컬었다. <사시 오제본기>에는, 순임금의 장지는 강남 구의산에 있는데, ‘영릉’이라 한다.
洞庭-3. 湖名。太湖 的別名。
《文選·左思<吳都賦>》:“指包山而為期,集洞庭而淹留。”
劉逵注引王逸曰:“太湖在秣陵東,湖中有包山,山中有如石室,俗謂洞庭。”參見“ 太湖”。
瀟湘-1.指 湘江。因 湘江 水清深故名。(상강을 지칭함, 상강이 물이 맑고 깊어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山海經·中山經》:“帝之二女居之,是常遊於江淵, 澧沅之風,交瀟湘之淵。”
《文選·謝朓<新亭渚別範零陵>詩》:“洞庭張樂池, 瀟湘帝子遊。”
李善注引王逸曰:“ 娥皇女英隨舜不返,死於湘水。”
●<산해경, 중산경>에 “제왕의 2녀가 산다. 이들은 늘 강과 못에서 노는데, 예원강의 바람으로
소상강의 못에서 주고받고 한다.”
<문선, 사조[신정저별범영릉]시>에, “동정호와 장락지에 소상강 제왕의 자식들 놀고”
李善의 注를 인용한 왕일이 말하기를 “아황과 여영은 돌아오지 못하는 순임금을
따라 상수에 몸을 던져 죽었네.”
三江七澤-泛指江河湖澤。
唐李白《當塗趙炎少府粉圖山水歌》:“ 洞庭瀟湘意渺綿,三江七澤情洄沿。”
洄沿-謂逆流而上與順流而下。(꺼구로 흐르면 위로, 제대로 흐르면 아래로 흘러가는 것을 일컬음)
南朝宋謝靈運《過始寧墅》詩:“山行窮登頓,水涉盡洄沿。”
潺湲-1.[형용사][문어] 강물이 천천히 흐르는 모양. 유유히 흐르다.
合沓-1.重迭;攢聚。(겹치다, 여기저기 모여 있다)
漢賈誼《旱雲賦》:“遂積聚而合沓兮,相紛薄而慷慨。”
芊綿-亦作“芊緜”。1.草木茂盛貌。
南朝梁元帝《郢州晉安寺碑銘》:“ 鳳凰之嶺,芊綿映色。”
冥昧-2.幽暗。
三國魏阮籍《大人先生傳》:“躍潛飄之冥昧兮,濯光曜之昭明。”
唐李白《當塗趙炎少府粉圖山水歌》:“此中冥昧失晝夜,隱几寂聽無鳴蟬.”
隱几-1.靠著几案,伏在几案上。(걸상에 기대어, 엎드려 걸상에 있네)
《孟子·公孫醜下》:“有欲為王留行者,坐而言,不應,隱几而臥.”
(왕이 다녀가려고 하다가 앉으며 말하는데도 응하지 않고 팔걸이 방석에 누어있네.)
南昌仙-西漢時南昌尉梅福。(서한 때에 남창현에서 벼슬을 살았던 梅福)
《水經註》:漢成帝時,九江梅福為南昌尉,後一旦舍妻子去九江,傳云得仙。
這裡藉以美稱畫主人當塗尉趙炎。
<수경의 주>에, 漢나라 성제 때에, 구강에 梅福이 남창에서 벼슬을 살았다. 훗날 어느
아침에 처자들을 데리고 구강으로 갔는데, 소문으로는 신선이 됐다하네.
曆落-2. 磊落,灑脫不拘。(소탈하고 탁 트였음에도 불구하고)
《晉書·桓彝傳》:“ 顗嘗歎曰:' 茂倫嶔崎歷落,固可笑人也。'”
青雲士-벼슬이 높고 명성이 난 사람을 지칭하여 비유함.
《史記·伯夷列傳》:“閭巷之人,欲砥行立名者,非附青雲之士,惡能施於後世哉?”
張守節正義:“若不託貴大之士,何得封侯爵賞而名留後代也?”
後因以“青雲士”喻指位高名顯的人。
<사기, 백이열전>에, 여염집 사람이 이름을 세워내 보려고 한다면, 지위가 높고 명성이 있는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고, 추한 꼴을 후대에 남기고 하는가?
장수절이 정의하기를, “만약 귀하고 큰 인물에게 부탁하지 않으면, 어찌 후작으로 봉함을
얻어 이름을 후대에게 남길 수 있는가?”
眾賓-2.眾多的客人。
《後漢書·郭太傳》:“ 林宗(郭太)唯與李膺同舟而濟,眾賓望之,以為神仙焉。”
杳然-3.猶悠然。形容心情。(여유롭고 한가한 심정)
《舊唐書·文苑傳下·元德秀》:“秩滿,南游陸渾,見佳山水,杳然有長往之志,乃結廬山阿.”
如在-《論語·八佾》:“祭如在,祭神如神在.” (제사는 제사모실 신이 실제 있는 것 같이 하라)
謂祭祀神靈、祖先時,好像受祭者就在面前。
後稱祭祀誠敬為“如在”。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일컫는데, 조상보다 먼저 좋은 인상으로
제사를 받는 분의 면전에 나서야 한다.
훗날 제사지내는 것은 정성스럽고 경건해야 한다고 해서 “如在”라 한다.
丹青-3.指畫像;圖畫。
唐杜甫《過郭代公故宅》詩:“迥出名臣上,丹青照臺閣。”
楊倫箋注:“丹青,謂畫像也。”
<解說>
이 詩는 이백이 말년에 當塗 친척 李陽氷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으면서 중국 동남부 일대를 유람하였는데, 아마도 그 때에 지은 것으로 여겨진다. 詩의 짜임이나 표현하려는 詩語의 선택에서 원숙미를 볼 수 있고, 무리한 어휘를 지어내지 않고 기존의 詩語만을 구사한 것으로 보아 그렇지 않은가 한다.
이 詩는 특이하게 前班과 後班으로 나누면서 중간에 緩辭部를 두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전반은 그림에 대한 설명을 畵工의 입장에서 짚어보았고, 후반은 자신의 심정을 묘사하였으며, 중간의 緩辭部는 전후반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도록 전반부와는 달리 그림속의 미비점을 언급하여 후반부와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長文의 詩賦에서 늘 있는 것인데 우리들이 이를 看過하는 경향이 있어서 잘 알려지지 못한 면이 있다.
前班部는 ①~⑭구, 緩辭部는 ⑮~⑳, 後班部는 ①~⑩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에서
①~④구는 그림의 대강의 겉모습을,
⑤~⑧구는 그림의 質的 形質을 묘사하면서, 역사적 故事를 介在하여 그림의 격을 한층 높였다고
할 것이다.
⑨~⑭구는 그림 속에다가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喜怒哀樂 別離情恨의 悔恨을 개재시켜 詩格을
단순한 景物詩가 아닌 살아있는 心相의 敍情詩로 이끌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말로 대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완사부에서는
전반부가 그림이 주는 미적 감명이 대단하였음을 말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인간의 心性을 충족치 못한다는 것으로, 그림의 한계성을 지적하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⑱~⑳에서 ‘잡목들만 쓸데없이 자라있고, 밤낮을 잃었으며, 매미소리는 없네.’ 하는 3구의
묘사는 그림의 한계성의 의미를 直說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후반부에서는
①~⑥구는 그림 속의 인물을 소개하면서 畵家가 神仙의 모습으로 그렸음을 말한 것으로,
전반부의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졌음을 의미하고 있고,
⑦~⑩구는 바로 이백이 그림을 보는 주된 의미를 담았다고 할 것이다. 屈原의 桃花源記를
인용함으로 해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범위를 뚜렷하게 또 폭을 넓혀 표현하고
있는 묘사는 참으로 기발 나다 하지 않을 수 없어 찬탄을 금치 못할 일이라 할 것이다.
詩經에 ‘周雖舊邦 其命維新’ -주나라가 비록오래 된 나라이나, 그 받은 천명은 새롭도다.가 있는데, 필자가 李白의 시 풀이를 하다 보니, 딱 그런 느낌이 든다.
聖詩雖多解, 其詩每維新 (말이 되나 모르겠다.)
詩經- 大雅- 文王之什-文王
文帝在上 (문제재상)-문왕께서 위에 계시니,
於昭于天 (어소우천)-아 하늘에서 밝히시는구나.
周雖舊邦 (주수구방)-주나라가 비록오래된 나라이나,
其命維新 (기면유신)-그 받은 천명은 새롭도다.
有周不顯 (유주불현)-주나라 임금께서 크게 밝혀야,
帝命不時 (제명불시)-상제의 명령이 크게 때에 맞는다.
文王陟降 (문왕척강)-문왕께서 오르내리시며,
在帝左右 (재제좌우)-상제님 옆에 계시다.
6節까지나 1節만 轉載, -출처 한자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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