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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9월 22일 화요일
[(녹)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잠언의 저자는,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니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 가지 교훈>
▥ 잠언의 말씀입니다. 21,1-6.10-13
1 임금의 마음은 주님 손안에 있는 물줄기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끄신다.
2 사람의 길이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3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
4 거만한 눈과 오만한 마음 그리고 악인들의 개간지는 죄악일 뿐이다.
5 부지런한 이의 계획은 반드시 이익을 남기지만
조급한 자는 모두 궁핍만 겪게 된다.
6 속임수 혀로 보화를 장만함은 죽음을 찾는 자들의 덧없는 환상일 뿐이다.
10 악인의 영혼은 악만 갈망하고 그의 눈에는 제 이웃도 가엾지 않다.
11 빈정꾼이 벌받으면 어수룩한 자가 지혜로워지고
지혜로운 이가 지도를 받으면 지식을 얻는다.
12 의인은 악인의 집을 살피고 악인을 불행에 빠지게 한다.
13 빈곤한 이의 울부짖음에 귀를 막는 자는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대답을 얻지 못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9-21
그때에 19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20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2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조금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을 만나러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예수님께서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21)라고 말씀하신 것이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예수님은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시기에 어머니와 형제들을 따뜻한 모습으로 맞아들이는 모습을 기대하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자비와 사랑, 구원의 은총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가까이, 친근하게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은 사람들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과 자비가 예수님의 가족들에게 치우쳐 있다고 느꼈다면, 군중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믿고 따르지 못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찾아왔던 성모님과 형제들이 그분께 홀대받았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결론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이루는 복된 친교가 모든 이에게 열리게 되었다는 큰 기쁨과 희망의 소식이 오늘 복음의 결론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나 내가 잘해 주고 싶은 사람들만 골라서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품어 안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왕태언 요셉 신부)
평생토록 말씀에 순명하고, 묵상하고, 되새기고, 간직하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모님의 생애를 묵상하다 보면 신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말씀을 굳게 믿으셨고, 그 말씀을 평생 간직하셨고, 그 말씀이 당신 안에서 성장하도록 매일 매 순간 자신을 비워낸 분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참으로 안쓰럽고 안타까운 면도 없지 않습니다. 아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나 행동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늘 그 말씀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묵상하고 곱씹는 노력을 무한 반복하셨습니다.
오늘 성모님께서는 꽤 의아한 일들을 겪으십니다. 루카 복음 사가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성모님께서 왜 예수님을 찾아가셨을까요? 예수님에 대해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을 들은 친척들이 성모님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마리아, 아무래도 아드님께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출가(出家) 이후 상황이 정말 안 좋은 것 같아요. 저러다가 제명대로 못살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최근 들어 보이고 계신 예수님의 행보는 점점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유다 지도층 인사들이 목숨 걸고 있는 안식일 규정을 산산조각내셨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의 논쟁 중에 틈만 나면 그들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유다 지도층 인사를 넘어 헤로데의 귀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아드님 걱정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성모님께서는 형제들을 앞세워 예수님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기서도 의아한 생각을 갖는 분들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 성모님께서 예수님 외에 또 다른 출산을 하셨던가?
사실 이 구절을 빌미로 일부 개신교 신학자들은 성모님의 평생 동정 교리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 말고도 다른 자녀를 두셨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교부들께서는 아주 명료하게 설명하십니다. 당시 유다 문화 안에서 형제라는 표현은 친형제뿐만 아니라 사촌 형제, 오촌 형제, 육촌 형제들에게도 적용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루카 복음 사가가 사용한 형제들이란 표현은 광의(廣義)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의구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당신 안부가 걱정되어 찾아가신 성모님이신데,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와보시지도 않았다는 것, 한 마디로 문전박대했다는 것인데, 그리고 던지시는 말씀 역시 성모님 입장에서 용납하기 힘든 부분이라는 것.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이다.”
사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성모님을 무시하는 말씀, 불효막심한 말씀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모님을 극찬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류역사상 하느님의 말씀을 가장 잘 경청하고 구체적인 삶 속에서 정확히 실천한 사람은 바로 성모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평생토록 하느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마음 깊이 간직하고, 곱씹고 또 곱씹었으며, 온전히 말씀 안에 머무시고, 그 말씀을 온 생애를 통해 실천하신 성모님이셨기에,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에게 천상 모후의 관을 씌워주시며 하늘과 땅의 어머니로 인정하셨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오늘은 제가 최근에 만났던 두 가정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한 가정은 낯선 미국 땅에서 희망을 찾고 있었고, 다른 한 가정은 오랜 병고 속에서 주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가정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 곁에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주는 따뜻한 이웃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면담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부부였습니다. 아내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고, 이미 다른 곳으로 전이되어 항암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새로운 임상 치료를 받기 위해 남편과 함께 이곳에 왔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치료를 위해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언어와 문화의 어려움을 감당하며 오직 아내의 치유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온 것입니다.
부부가 저를 만나고 싶어 했던 이유는 세례와 성체 때문이었습니다. 두 분은 원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축일에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를 배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내의 병이 깊어지면서 정식 세례식을 기다릴 수 없게 되었고, 먼저 대세를 받았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기도문을 열심히 외우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신앙을 키워 가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성체를 모시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열흘 동안 필요한 교리를 배우도록 하였고, 지난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보례를 베풀고 부부가 첫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해 드렸습니다. 성체를 모시는 자매님의 모습은 무척 경건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자비와 넘치는 사랑으로 자매님이 치유되어, 부부가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같은 날 병자성사를 베풀기 위해 병원을 찾았습니다. 열두 해 전에 뇌출혈로 쓰러졌던 자매님이었습니다. 지난해에는 발목을 절단해야 하는 큰 수술도 받았습니다. 그 많은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 의지하며 신앙을 지켜 온 분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자매님의 손을 잡고 병자성사를 베풀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주님의 자비를 청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한번 자매님의 손을 잡아 주시고, 의식을 회복하여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신앙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때때로 가나의 혼인 잔치와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포도주가 떨어지고, 우리가 준비한 것이 부족하며, 인간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그때 성모님께서는 어려움을 먼저 알아보시고 예수님께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성모님의 세심한 관심과 전구를 통해 물이 포도주로 변했고, 위기에 처한 혼인 잔치는 다시 기쁨과 풍요를 되찾았습니다.
제가 만난 두 가정의 곁에도 성모님을 닮은 따뜻한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부부를 저에게 소개한 자매님은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는 분입니다. 낯선 땅에 처음 온 부부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고, 집을 구할 때까지 자기의 집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부부의 딱한 사정을 알고, 아내가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제게 면담을 부탁하였습니다. 이 자매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삶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낯선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병과 아픔을 자기의 일처럼 여기며 돌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매님은 말로만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 주었고, 그 부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사랑을 통해 낯선 땅이 따뜻한 고향이 되었고, 두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자매님에게도 따뜻한 천사가 있었습니다. 병자성사를 부탁한 자매님은 평소 가정방문을 통해 성체를 모셔드리고 함께 기도하던 분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을 듣자 곧바로 제게 연락하여 병자성사를 청했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는 어머니를 간호하는 딸을 위해 김밥까지 준비해 가져다주었습니다. 병자성사를 청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밤낮없이 어머니를 돌보는 딸의 허기와 피곤함까지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크고 특별한 일을 해야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친 사람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건네는 것,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낯선 사람에게 머물 자리를 내어 주는 것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봉헌했는지만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했는지만 헤아리시는 분도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지는지, 우리의 신앙이 정의와 공정의 실천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십니다. 제물을 바치면서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참된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기도를 바치면서 어려운 사람을 차갑게 대한다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자비로운 마음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봉헌은 고통받는 이웃을 향해 내미는 따뜻한 손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는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족의 의미를 더욱 넓혀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고, 형제와 자매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신앙인은 이름만 신자인 사람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참된 신앙인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을 듣고 아픈 사람을 찾아가는 사람, “낯선 이를 받아들여라.”라는 말씀을 듣고 자신의 집을 내어 주는 사람, “우는 사람과 함께 울어라.”라는 말씀을 듣고 병상 곁에서 함께 기도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참된 가족입니다.
오늘 두 자매님은 예수님의 가족이 누구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한 자매님은 낯선 부부에게 머물 곳을 마련해 주었고,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다른 자매님은 병든 이를 찾아가 기도하고, 지친 가족에게 김밥을 건네주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작고 평범한 행동일지 모르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아름다운 사랑의 제물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외롭게 치료받는 사람, 가족의 간병으로 지친 사람, 낯선 곳에서 두려워하는 사람, 신앙을 찾고 싶지만,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그들의 신음과 눈물을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먼저 알아보셨듯이, 우리도 이웃의 부족함과 아픔을 먼저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셨듯이, 우리도 어려움에 놓인 사람을 주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신앙은 거창한 말이 아닙니다. 신앙은 따뜻한 방 한 칸을 내주는 것입니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사람이 나의 어머니이고, 나의 형제이며, 나의 자매이다.”
<예수님 우리 가족>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루카 8,19)
저희를
믿으시고
바라시며
사랑하시는
예수님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저희가
당신을 뵈려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가로막고 있으니까요
나를
믿고
바라며
사랑하는
그대들이여
그게 아니랍니다
내 곁에서
내 말을 듣고 있는
그대들이 바로
나의 형제요 자매니까요
오늘의 성인
성 토마스 (Thomas)
활동년도 : 1488-1555년
신분 : 대주교
지역 : 빌라노바(Villanova)
같은 이름 : 도마, 토머스
알론조 토마스 가르시아와 루치아 마르티네스 카스텔라노스의 아들로 태어난 빌라노바의 성 토마스는 에스파냐 카스티야(Castilla)의 푸엔텔라나(Fuentellana)에서 나서 자랐고, 10세 때에 알칼라(Alcala)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여기서 문학 석사와 신학교수 자격증을 받고, 불과 26세의 나이에 그 대학교의 교수로 발탁되었다. 1516년 그는 성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하여 1518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여러 수도원의 원장을 역임하다가 안달루시아(Andalusia)와 카스티야의 관구장이 되었다. 이때 그는 성 아우구스티노회 최초의 선교단을 멕시코로 파견하였다.
그 후 그는 카를로스 5세의 전속사제로 임명되었으나 그라나다(Granada)의 주교직은 거부하던 중 1544년에 발렌시아(Valencia)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이 교구는 90년 동안이나 주교좌가 공석이었기 때문에 그는 즉시 개혁에 착수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일약 유명한 주교로 인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어인들의 개종을 위해서도 정열을 쏟았다. 또한 그는 사제들로 하여금 개종자들의 어린이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조처하였다. 비록 트렌토(Trento) 공의회에는 참석하지 못하였으나 에스파냐 교회 내의 개혁 운동에는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1658년 교황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이냐시오 (Ignatius)
활동년도 : 1686 –1770년
신분 : 신부
지역 : 산티아(Santhia)
같은 이름 : 이그나티오, 이그나티우스, 이냐시우스
성 이냐시오는 1686년 7월 5일 북부 이탈리아 베르첼리(Vercelli) 지방의 산티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렌조 마우리지오(Lorenzo Maurizio)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부유한 벨비소티(Belvisotti) 가문의 육남매 중 넷째로 자랐다. 그는 훌륭한 신부로부터 초기 교육을 받으며 그로부터 사제직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1710년에 교구 신부로 서품을 받은 그는 6년 동안 사제 직무를 수행한 뒤 카푸친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때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과 본당 신자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성 이냐시오는 카푸친회에서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내적인 평화를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를 따르는 생활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1717년 5월 24일 서원을 한 그는 장상들에게 순명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영적인 여정은 이탈리아 북부 사부아(Savoie) 지방에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복종을 넘어서 그의 형제들을 섬기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였다. 그는 완전히 ‘주님의 의향’을 따랐다. 1727년 성 이냐시오는 토리노 몬테(Torino-Monte)의 수도원으로 보내졌다. 이 공동체에서 그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여겨졌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영적 지혜를 베풀었다. 그래서 신부들과 영성적으로 성숙한 이들 그리고 타락한 죄인들이 수도원으로 그를 찾아와 죄를 고백하고 영성지도를 받았다.
1731년에 그는 몬도비(Mondovi)의 수도원으로 파견되어 수도원의 총대리 겸 수련장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는 14년 동안 수련장으로서 자신의 지도에 맡겨진 수련자들이 주님의 진실한 추종자로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순종적인 아들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하는데 유일한 관심을 두었다. 성 이냐시오의 가르침은 두 기둥에 그 기반을 두고 있었다. 즉 수련자들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과 말보다는 행동으로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수련자들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함께 해 주었고, 그들의 양성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다. 1744년 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눈병으로 인해 거의 실명 상태가 되었고, 그로 인해 수련소를 떠나 토리노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느 정도 치료가 된 뒤에 그는 다시 활동 사도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1743년부터 1746년까지 피에몬테(Piemonte) 지방에서 발생한 전쟁으로 인해 많은 희생자들이 생기고 질병이 돌기 시작하였다. 사르디니아(Sardinia) 왕국(사르디니아와 피에몬테)의 샤를 엠마누엘 3세(Charles Emmanuel III) 왕은 카푸친회 수도자들에게 병원에서 의료적이고 영성적인 지도를 부탁하였다. 그래서 성 이냐시오는 군종신부의 책임자로서 아스티(Asti), 비노보(Vinovo), 알레산드리아(Alessandria)의 병원에서 복음적인 사랑을 실천하며 2년 동안 활동하였다.
피에몬테 지방이 평화를 되찾았을 때 성 이냐시오는 토리노 몬테의 수도원으로 돌아와 생의 마지막 24년 동안 영적 지도자와 고해신부로서 지냈다. 그는 병든 이들을 찾아 다녔고 불쌍한 이들을 위해 돈과 먹을 것들을 구하러 다녔다. “낙원은 게으름뱅이들을 위한 곳이 아니다. 어서 일을 하자!”라고 줄곧 이야기하던 그는 1770년 9월 22일 토리노 몬테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거룩한 길을 안내하였고, 하느님으로부터 버려졌다고 느끼던 사람들을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다시 진정한 신앙에로 이끌었다. 그는 카푸친회 신부로서 특히 충성심, 검소함, 겸손함을 통해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에 충실했다. 그는 영성적으로 병든 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죄인과 고립된 이들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그는 1966년 4월 17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2년 5월 19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마우리시오 (Maurice)
활동년도 : +287년경?
신분 : 군인, 순교자
지역 : 아가우눔(Agaunum)
같은 이름 : 마우리시우스, 마우리씨오, 마우리씨우스, 마우리티오, 마우리티우스, 모리스
성 엑스수페리오 (Exsuperius)
활동년도 : +287년경?
신분 : 군인, 순교자
지역 : 아가우눔(Agaunum)
같은이름 : 엑수뻬리오, 엑수뻬리우스, 엑수페리오, 엑수페리우스, 엑스수뻬리오, 엑스수뻬리우스, 엑스수페리우스
성 비탈리스 (Vitalis)
활동년도 : +287년경?
신분 : 군인, 순교자
지역 : 아가우눔(Agaunum)
같은 이름 : 비딸리스
성 빅토르 (Victor)
활동년도 : +287년경?
신분 : 군인, 순교자
지역 : 아가우눔(Agaunum)
같은 이름 : 빅또르, 빅똘, 빅톨
성 인노첸시오(Innocent)
활동년도 : +287년경?
신분 : 군인, 순교자
지역 : 아가우눔(Agaunum)
같은 이름 : 인노첸시우스, 인노켄티오, 인노켄티우스
성 칸디도 (Candidus)
활동년도 : +287년경?
신분 : 군인, 순교자
지역 : 아가우눔(Agaunum)
같은 이름 : 간디도, 간디두스, 깐디도, 깐디두스, 칸디두스
프랑스 리옹(Lyon)의 주교인 성 에우케리우스(Eucherius)에 의하면, 막시미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테반의 헤르쿨리우스 부대는 이집트 상류에서 온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부대장인 성 마우리티우스(Mauritius, 또는 마우리시오)와 수많은 동료들은 바고데족을 격퇴한 승전 축하연에서 이방신에게 희생 제물 드리는 것을 거절하였다.
거듭 같은 명령이 떨어졌지만 그들은 요지부동이었기 때문에 황제는 반란을 두려워한 나머지 일단의 테반 부대원들을 아가우눔(Agaunum)에서 전멸시켰다고 한다.
이들의 지도자는 성 마우리티우스와 엑스수페리우스(Exsuperius) 그리고 칸디두스(Candidus)였다고 한다. 또한 이름이 전해지는 군인 순교자로 성 비탈리스(Vitalis), 빅토르(Victor), 인노켄티우스(Innocentius) 등이 있다. 후일 전기 작가들은 쾰른(Koln)에서 파엔그라까지 무수한 무명의 테반 부대 순교자들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현재 생 모르스 앙발래에 있는 수도원은 이때 죽은 순교자들을 기념하여 세운 수도원이라 한다.
이들은 보통 아가우눔의 순교자들로 기억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