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본을 통하여 근대화의 물결을 많이 받아들였고, 또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일본의 문물 그중에서도 언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우리가 광복한 이후 일본말의 잔재를 없애는 데 노력을 기울여 많은 말을 순화하였다. 그러나 그 폐해는 엄청나서 아직도 우리가 그것을 쓰고 있는 말이 많다.
앞으로 이런 말을 순화해야겠지만 대중들이 많이 쓰고 있어서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말 몇 가지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이왕 쓰려면 그 말 뿌리를 바르게 알고 쓰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미술 시간에 쓰던 물감 이름이 ‘사쿠라’였다. 물론 일본 제품이었다. 광복 직후 우리나라는 기술이 없어서 옳은 수채화 물감이 없었기 때문에 물감과 붓을 모두 일본 제품을 썼다. 그것을 쓰면서도 민족적인 자괴감과 더불어 일본의 간악성이 번득번득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벚꽃이 일본 국화인 줄 알았다. 사실 벚꽃은 일본의 국화가 아니다. 국화가 일본 왕실의 상징으로 되어 있을 뿐 공식적인 국화는 없다. 그런데 광복 직후에 벚꽃나무를 마구 베어내기도 했다.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고 잘못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왕벚나무는 우리나라가 자생지라는 것을 그 후 알게 되었다.
벚꽃은 필 때도 아름답지만 질 때도 아름답다. 꽃말도 삶의 덧없음과 아름다움이다. 일제히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트렸다가 그 아름다움에 취한 사이 눈 내리듯 순식간에 진다.
벚꽃을 뜻하는 일본말은 사쿠라(櫻)인데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전혀 다른 뜻으로 쓰게 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다른 속셈을 가지고 어떤 집단에 속한 사람, 특히 여당과 야합하는 야당 정치인을 이른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말을 ‘사기꾼, 야바위꾼’으로 순화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사쿠라’를 이러한 말로 바꾼다면 과연 지금의 ‘사쿠라’가 지닌 어감을 나타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의 뇌리에는 ‘사쿠라’ 하면 우선 일본 사람이 떠오른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를 이간질시키고 간괴한 꾀로 우리를 괴롭히던 그 이미지가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정치 용어 사쿠라는 벚꽃(櫻)이 아니라, 말고기를 뜻하는 일본말 사쿠라니쿠(櫻肉)에서 유래된 것이다. 말고기는 색깔이 벚꽃 같은 연분홍색이어서 소고기와 비슷하다.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말의 일본식 표현인 셈이다. 소고기로 둔갑한 말고기를 속아서 샀을 때 일본인들은 사쿠라니쿠라고 한다. 곧 사기를 당하고 야바위꾼에게 속았다는 뜻이다.
‘쿠사리’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면박(面駁), 핀잔’으로 순화한다고 되어 있다. 쿠사리는 일본어의 ‘구사루(くさる)’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쿠사리가 일본어 구사리(くさり)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것은 옳지 않다. 구사리는 쇠사슬[鎖]이나 이야기, 음곡 등의 한 단락을 뜻하는 말일 뿐, 우리가 지금 쓰는 ‘핀잔, 꾸지람’ 등의 의미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쓰는 쿠사리는 구사리에서 온 것이 아니다.
쿠사리는 일본어 ‘썩다’의 뜻인 ‘구사루(腐)’에 어원을 둔 말이다. 구사루의 명사형 ‘구사리’는 ‘썩은 것’ 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구사리가 우리에게 들어와서 거센소리인 쿠사리가 되었는데, “쿠사리 먹었다.” 하면, “썩은 음식을 먹었다.”는 뜻이 되어 심한 꾸중이나 불쾌한 질책을 들었다는 의미가 실리게 된 것이다.
‘사바사바’도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다. 언중들이 그만큼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바사바라는 말이 속세를 뜻하는 불교 용어 ‘사바(娑婆)’에서 왔다는 주장이다. 사바세계의 무질서와 추태, 옳지 못한 수단과 방법을 ‘사바사바’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사바사바’는 뒷거래를 통하여 떳떳하지 못하게 은밀히 일을 조작하는 짓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데, 이런 것을 속세에 비유한다면 아마도 사바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사바사바가 될 것이다. 아무래도 이러한 주장은 무리가 있다. 그래서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일본어에서 왔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일본어의 연원은 무엇일까?
일본말에서 ‘사바’는 고등어를 뜻한다. 고등어가 지금은 흔하지만 일제강점기엔 꽤 비싼 생선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청탁할 때 유용하게 씌었다. 고등어 한 손을 들고 청탁을 하면, 반기며 일을 잘 처리해주었다는 것이다.
일본어에는 또 ‘고등어를 세다’라는 뜻의 말도 있다. 고등어를 셀 때 잘 속였기 때문에 이 말은 ‘수량을 속여 이익을 탐하다’는 뜻의 숙어가 되었다고 한다.
첫댓글 흔히 쓰이는 말들 중 사쿠라,쿠사리,사바사바,관한 뜻이 그렇다 보니.
일본어 잔재가 없어 지기란 어렵겠다는 생각이 나네요.
오늘도 저는 아주 재미있는 공부를 했습니다.
박사님 고맙습니다.
별것도 아닌데 재미있었다니 부끄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선생님!, 국어학 교수? 장 선생님!, 전 운영자이다 보니, 장 선생님의 人的 상황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원숭이 띠" 되십니까?
전 "양띠" . 전 학창 시절엔 '영어"는 소질이 있었지만, 일본 말은 고의적으로 回避 (Avoidance) 했더랬습니다. 요사이 와서 생각해 보면
3개국 (일본어, 독일어 ,영어 )정도는 '국제화"시대에 맞게 활용하며 살아 가고 있겠습디다. 그죠? 오늘도 장 선생님의 총괄적 '국어 공부에 반 넋이 나갔다 돌아왔습니;다. '선생님曰/ 그 말 뿌리를 바르게 알고 쓰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고요....좌우지간 오늘도 색다른
언어 공부를 했습니다....언어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샤료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 선생님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