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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기도생활
240225낮 (단6:10)
<10)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아멘
지난 주 부흥성회를 통하여 말씀을 영접하고, 큰 은혜 받았습니다. 은혜 받은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말씀이 내 삶에 그대로 역사하도록 말씀대로 살아서 말씀이 복이 되고, 능력이 되고, 생명이 돼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지속적인 기도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 시간 다니엘의 기도생활을 배우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세요. 다 같이 읽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 짧은 말씀 속에서 우리는 다니엘의 기도생활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며 함께 은혜를 받기를 축원합니다.
1. 다니엘은 기도시간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세요. 다 같이 읽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기도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루 한번 기도 시간도 지키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 기도시간을 철저히 지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에 하던 대로” 라고 말씀 한 것을 보니요...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시죠? 네~ 기도 안하시는 성도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는 문제가 있을 때, 응답 받을 일이 있을 때, 다급한 일이 생겼을 때 기도합니다. 그리고 응답 받으면 더 이상 기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또 문제가 생기면 기도합니다. 대부분 성도의 기도는 ‘유일회성으로 반복적’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기도는 기도시간이 있고, 그 기도는 ‘계속 진행형’입니다.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어제도 오늘도, 문제가 없을 때도 있을 때도, 바쁠 때도 한가할 때도 ‘계속 진행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는 기도생활은 문제 있을 때만 하는 ‘유일회성의 반복’이 아닌 ‘계속 진행형’의 기도를 원하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새는 날개가 아무리 무거워도 그것을 힘들어 하지 않습니다. 그로인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끼리는 코가 길고 무거워도 그 코를 귀찮아하거나 무겁다고 잘라내지 않습니다. 돛단배는 그 돛이 무거워도 그것을 꺾어버리지 않습니다. 그 돛 때문에 항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비행기도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인해 날아갑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가 기도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기도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그 기도하는 힘으로 살아갑니다. 기도는 성도에게 힘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이 쓰신 위인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들 기도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기도하고 모세도 기도의 사람입니다. 다윗도, 사무엘도, 엘리야, 엘리사도, 베드로도 바울도, 야고보 사도도 기도하던 사람들입니다.
성경만이 아닙니다. 교회사에 나타난 위대한 인물들도 대부분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디엘, 무디는 미국과 영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부흥사였습니다. 그를 통하여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온 사람이 무려 150 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는 그두 수선공이었습니다. 학벌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은혜 받고 위대한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미국과 영국에서 큰 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가 영국에서 부흥회를 할 때, 한 기자가 도데체, 학벌도 없고, 볼품없는 이 사람의 이 능력이 어디서 나오나 너무나 궁금해서 그를 밀착 취재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어디서 그런 능력이 나오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집회 중 어느 날 밤 기도실에서 기도가 흘러나오는데 무디의 기도 소리였습니다. 무디는 집회기간 중에도 밤늦게까지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기자가 뭐라고 기도하는지 알고 싶어서 귀를 기우렸는데... 이렇게 기도하더랍니다. "Christ is all, I am nothing! 주님이 전부이시고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 기자가 무디의 능력이 하나님만 의지하는 겸손한 기도에 있음을 알았답니다.
성도 여러분!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세상에 의인이 어디 있습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의인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의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주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겨주셨습니다. 믿습니까?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니라” 즉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이 기도하면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믿고 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의심하면 응답이 없습니다.
약1:6~7절, <6)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매일 가져야 합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과 만나는 기도시간을 가졌습니다. 베드로도 기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공생애 중에 하나님과 만나는 기도시간을 수시로 가지셨습니다. 하물며 우리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독대하는, 나만의 기도 시간을 갖는 것은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는 진행형이여야 합니다.
2. 기도는 타협이나 핑계의 여지없이 하나님만 의지하며 해야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이 메데 왕국의 총리로 세워져 나라를 통치하고 있던 때입니다. 나라가 워낙 크다보니 총리가 3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 다리오왕은 그 3명 중에 다니엘이 민첩하고 뛰어나므로 그를 수석 총리로 세우려 했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정치세계는 늘 그렇듯이 남들이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냥 구경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모함하고 비리를 들추어내어 끌어내리려는 세력이 있는 것입니다. 메데 나라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당시 정적(政敵)들이 다니엘의 흠을 잡으려고 조사해 보았지만 흠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털어보았지만 먼지하나 나질 않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찾아낸 것이 다니엘의 기도생활입니다.
다니엘이 기도의 사람인 것을 알고 기도를 못하게 하려고 이상한 법을 만들어 왕의 도장을 받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인 즉은 30일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굴 속에 넣자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리오 왕이 정신이 없었는지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그 누구도 취소를 못할 법령으로 도장을 찍어 버린 것입니다.
정적들이 자기를 제거하려고 묘략을 꾸며 죽이려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그런 음모를 다니엘도 알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기도를 합니다. 정적들이 자기가 기도하는 것을 지켜보려고 스파이를 세웠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30일 동안만 기도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거나 기도를 하는지 안하는지 모르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환경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늘 하던 대로 윗방에 올라가 창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기도한 것은 고국 예루살렘 쪽을 바라보고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30일만, 기도를 잠시 멈출 수도 있습니다. 30일 후에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요...
기도를 하긴 하지만, 윗 층이 아니라 지하에 내려가서 기도하면 아무도 모르잖아요..
고국 예루살렘 쪽을 바라보고 기도하려고 한다면 궂이 무릎꿇지 말고 서성이며 기도하면 아무도 기도하는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다니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기도생활은 현실에 타협이나 핑계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탄은 기도 안하는 사람을 자기의 밥으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한방에 넘어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안하는 사람을 살펴보면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를 안합니다. 돈을 믿든지, 자기를 믿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믿는 사람은 기도를 안 합니다. 그러다가 자기 뜻대로 안되면 시험에 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막14:38절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하신 것입니다.
왜 주님이 이 말씀을 하셨나요? 베드로는 주님을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사실입니다. 진심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지금 마음으로는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시험들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 안하면 시험은 무섭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도하면 시험이 안 찾아옵니다. 설사 시험이 찾아와도 기도하면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만약에 다니엘이 다리오 왕을 믿었다면 그는 기도하기 보다는 왕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왕보다도 하나님을 더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신뢰하는 사람은 기도를 안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물 공세를 펴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인간관계와 처세술을 의지하여 행동합니다. 그래서 수단 좋은 사람은 되고 똑똑한 사람은 될 수 있으니 기도 안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렵습니다. 결국 실망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껴 힘들어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교단의 어른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오랫동안 충성을 다했답니다. 목사님이 시키는 일이라면 간도 쓸개도 다 빼고 살 정도 그야말로 죽도록 충성을 다했답니다.
그런데 지방에 있는 어느 교회가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자기 담임목사님이 한마디만 해주면 될텐데 안 해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배신감과 서운함이 밀려와 그 교회를 사임하고 나왔답니다.
그리고 다른 큰 교회에 가서 부교역자 생활을 했는데 거기서도 같은 경우가 생겼답니다. 역시 그 교회 목사님도 도와주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울고불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보다도 사람을 의지했잖느냐” 하는 마음을 주시더랍니다. 그래서 크게 회개하고 개척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결국 개척교회를 하면서 많은 연단과 훈련을 받으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산에 중형교회 목사님이 오셔서 자기 교회로 와달라고 청빙을 하셨답니다. 지금은 그곳에서 목회를 잘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분의 간증이 그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런 경고를 했습니다. 렘17:5-6절을 보세요.
<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렘17:7-8절을 보세요.
<7)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할렐루야! 사람이나 환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는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기도가 방해 받을 때(물리적, 영적) 마귀가 방해하는 것을 알고 이겨내야 합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면 죽습니다. 법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법이니 지키라고 합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도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이 모든 일이 사람이 꾸몄지만, 배후에 사탄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영의 세계를 훤히 들여다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굴복하면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무슨 모함이나 욕을 해도, 목숨을 잃는다 해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살길입니다. 그것만이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입니다.
타협하거나 굴복하면 지는 것입니다.
코로나 때, 정부에서 예배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을 폐쇄하고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왜 정부가 하라는 대로 않하냐고 욕합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법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코로나 모든 원인이 마치 교회에 있는 것처럼 호도했습니다. 여기에 많은 교회들이 속아 넘어 갔습니다. 결국 이때 예배를 드리지 않았던 교회들은 거의 다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사라진 교회가 만개가 된다고 합니다.
마귀는 이렇게 예배를 못 드리게 하고, 기도를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 타협하고, 굴복하게 하여 결국은 성도의 삶에서 예배가 사라지고, 기도가 없어지게 만듭니다.
다니엘은 왕의 조서에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조서 내용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명령을 어기면 사자굴 속에 들어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는 기도시간을 지키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고지식해 보이고 융통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포기할 수 없었고 거기에 자기 인생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는 기도에 자기 인생의 승부를 걸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들으시고 기도하는 사람을 지키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한 달 동안 기도하면 사자굴에 넣어 사자 밥이 되게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기도하시겠습니까? 한 달 만 기도 쉬면 사자굴에 던져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꼭 기도 하는 티를 내지 않고 속으로 아무도 모르게 기도하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속으로 기도해도 다 들으시는데, 꼭 다니엘처럼 윗방에 올라가 성전이 있는 쪽의 창문을 열어놓고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까? 그래서 꼭 죽음을 자초해야 합니까? 누군가 그런다면 참 어리석다고, 고지식하다고 하겠죠?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실까요?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 누굽니까?
내 인생, 내 앞날, 내 문제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얼핏 보면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이 주인이기에 하나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기도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내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 시간에 내 인생의 승부가 결정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기에 그 기도 시간은 세상 그 어떤 시간보다도 더욱 중요한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전능하심과 일하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보다 더 중요한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다니엘이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과 벨드사살 왕 그리고 다리오 왕 모두 3대 왕을 섬겼습니다. 왕조가 다 달랐습니다. 그런데도 국가가 바뀌고 왕이 바뀌어도 다니엘은 인정을 받고 총리로 세워졌습니다. 그 신뢰가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 신뢰는 신앙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뢰는 기도의 삶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왕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거나 무죄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왜죠? 왕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니엘이 형통한 사람이 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기도시간을 사수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 누굽니까?
내 인생, 내 앞날, 내 문제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얼핏 보면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이 주인이기에 하나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기도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내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 시간에 내 인생의 승부가 결정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기에 그 기도 시간은 세상 그 어떤 시간보다도 더욱 중요한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전능하심과 일하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보다 더 중요한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다니엘이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과 벨드사살 왕 그리고 다리오 왕 모두 3대 왕을 섬겼습니다. 왕조가 다 달랐습니다. 그런데도 국가가 바뀌고 왕이 바뀌어도 다니엘은 인정을 받고 총리로 세워졌습니다. 그 신뢰가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 신뢰는 신앙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뢰는 기도의 삶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왕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거나 무죄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왜죠? 왕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니엘이 형통한 사람이 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기도시간을 사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기도시간을 정하고 그 기도시간에 늘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문제가 있을 때만 하는 유일회성 반복이 아니라 어제도 오늘도 계속 진행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