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4차전도여행과
바울의 사역
사도행전 27:1-44(신p.234) 찬송 498장 / 사도신경 / 찬송
500장 20151226
오늘도 사도행전 27장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의 4차
전도여행이라고 하는 로마로 가는 행로를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모함을 받아 재판을 받게 되었고, 또한 암살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시민의
권한으로 가이사, 황제의 이름으로 상소를 는 바람에 결국 바울은 로마군사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로마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계획 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울과 바울의
일행들은 로마로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27:1절에 보면 바울을 로마로 이송 할 시기가 결정이 됩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오해를 받아 4번의
재판을 거치는 동안 2년이나 걸렸지만, 로마로 가는 기간은
순식간에 결정이 납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의 군대 백부장인 “율리오”라는 사람의 책임하에서 다른 죄수들과 함께 바울은 로마로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바울은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아직 재판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죄인은
아니고 “미결수”의 신분으로 배를 타고 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율리오는 바울은 죄인처럼 취급하지 않고, 어느 정도 자유를 주게 됩니다.
3절에 보면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순조롭게 로마로 가는 배가 출발을 했지만 중간에서 큰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듯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는 길에도 늘 순탄 한 것은
아닙니다. 언제든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당시에 배는 엔진을 가지고 운행하는 배가 아니라 바람을 따라 운행하는
범선이었기 때문에 지중해를 지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중해에서 불어 오는 계절 풍 때문에
바람의 방향이 맞지 않으면 오랜 시간이 걸려서 지중해를 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배는 5절에
보면 “무라”라는 곳에 머물러 “알렉산드리아 배”를 갈아타고 지중에 중앙에 있는 그레데 섬에
있는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이 때 바람의 방향이 맞지 않아 여러 날을 머물게 되는데 조급한 마음에
“백부장 율리오”가 빨리 배를 띄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어자피 때가 되면 우리가 로마로 가게 될텐데 조급하게 가지
말라고 때를 기다리자고 권면을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고 때가 있는데 급하게 움직이다가는 많은
손해를 볼 수 있다고 권면을 하지만 율리오가 선원들의 말을 믿고 급하게 배를 띄우게 됩니다.
그런데 이 때부터 바울이 탄 배가 “유라굴로라는 큰 풍랑”을 만나면서 큰 환난을 겪게 됩니다.
범선은 돛을 올리면 바람의 힘으로 배가 움직이기 때문에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급작스럽게 불어 오는 바람 때문에 돛을 내릴 수가 없어서 바람이 부는 대로 그냥 배가 밀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16절에 보면 “거루를 잡았다”고 되어 있는데 이 거루는 “작은 구명보트”를 말합니다.
바람에 밀려 떨어져나간 구명보트를 간신히 줄로 메어서 배의 방향을 잡고 가는데, 이틀쯤
되었을 때는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들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절에 사흘쯤 되었을
때 배에 있는 기구들도 다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는 여러 날을 지내면서 해와 달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풍랑 속에서
헤매게 됩니다.
이쯤 되었을 때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쳐서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든 사람들이 거대한 폭풍 속에 갇혀 살 소망을
잃어 버리고, 자기 생명만 붙들고 두려워하고 있는데,
사도바울이 그 가운데서 서서 그 사람들의 위로자가 되고, 소망이 되어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22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라고 말하게 됩니다.
바울은 죄수의 모습으로 수갑을 차고 있었을 것이고, 백부장이나 노련한 선원들도 어쩔 줄을 몰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때 바울은 모든 사람의 위로자가 되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내가 로마에 있는 가이사 황제 앞에 서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로마로 갈 때까지 여러분 중에 한 사람도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이런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풍랑 속에서 어찌 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 할 때
“예수님이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 분이라”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욕심대로 죄의 욕심 따라 살면서 얽히고 설켜서 세상의 풍파
속에서 꼬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때 형통함과 평탄함과 평안 있다는 것을 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27절에 보면 세상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바울은 홀로 서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 섬기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자기 혼자 살겠다고 배를 버리고 도망을 가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14일이 지났고, 배가 육지에
가까이 가려고 할 때 사명감이 없는 선원들이 도망을 가려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29절에 보면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나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고물”은 “배 윗편”을 말하는 것이고 “이물”은 “뱃 머리”를 말합니 다.
배가 어느 정도 육지에 가까이 왔을 때 사공들,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뱃 머리에 가서 닻을 내리는 척 하면서 그룻배, 구명보트를
내려 도망을 가려고 합니다.
이 때 바울은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가서 “저 선원들이 도망을 가면 배를 지킬
사람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룻배를 잘라버리고 선원들을 붙잡아 두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모습이 바로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다른 사람들이
죽든지 말든지 자기 생명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난 번에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도 계속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선장과 선원들이 어린 생명들을 배에
남겨두고 도망을 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자기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파수꾼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
잘 되었는지를 지적하고 바로 잡아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의 지도자들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교회가 잘 못되고, 성도들이
잘 못된 길을 갈 때는 그 죄를 지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잡아 줄 때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34절에 보면
14일이나 굶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힘을 얻게 합니다, 양식을 나눠 주는 것입니다”
35절에 보면 “양식을 주면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감사기도하고
그 음식을 나눠 먹을 때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얻게 됩니다”
37절에 보면 그렇게 바울이 책임진 사람이 “273명이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명자는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육안으로 육지가 보일 만큼 가까이 갔을 때 육지로 배를
이동할 수 있을지 선원들과 의논을 하고 닻줄을 끊고 돛을 펴서 육지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41절에 보면 이물, 뱃머리가 땅에 닿고, 고물, 배
뒤편이 깨어져서 배가 가라 안게 됩니다.
이때 군인들이 죄수들이 바다로 뛰어내려 도망을 갈 것 같으니 죄수들을
다 죽이자고 말할 때
바울의 행동을 다 지켜 보았던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을 구원하려고 죄수들을
죽이지 못하게 함으로 다 같이 헤엄을 쳐서 육지로 내려오게 됩니다.
그래서 44절에 보면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바다에서 구원을 받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우리 인생의 이야기가 다 담겨져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대한 인생의 풍랑 속에서 어찌 할 바를 몰라 이러 저리
헤매고 자기 생명 하나 지키자고 기진 맥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죄악 세상 속에서 누가 이 사람들을 살리고 위로자가 되고, 섬기는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는 사람 만이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똑같이 풍랑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받고, 똑같기 먹지 못해 기진 맥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풍랑도
이기고, 배고픔도 견디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삶의
기준이 되어주기도 하고, 생명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한 번 사는 인생, 어떤
인생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인생인가? 깊이 묵상하시고,
오늘 저와 여러분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능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따라서 영육간에 양식을 나눠주고, 영혼을 살리고,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섬기는자로 한 평생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