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전용으로의 이 장식품인 손목시계인 리슬릿은 계속적으로 정밀성과 내구력이 더해가면서 발전은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회중시계는 그 사이에 남성들에게 전쟁 중의 필수품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회중시계가 조끼 주머니에 들어 있어서 분초를 다투는 긴박한 전쟁 상황에서 시간을 확인하기에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에 여자만 장식용으로 쓰던 손목시계가 회중시계보다도 빠르게 시간을 볼 수가 있어 남자 군인들에게도 사용하여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무렵 1880년대에 또 하나의 스위스에서 다른 시계 회사인 지라드 페르고Girard erregaux란 회사에서 리슬릿을 본따서 첫 남성용 손목시계를 군사용으로 대량 생산하였다. 원래 이 시계는 독일의 해군에서 해상공격 시간 조율을 목적으로 제작이 되었는데 이를 처음 생각해낸 인물이 한 독일의 포병이라 한다. 이 포병은 보기에 불편한 회중시계를 끈으로 묶어 손목에 둘렀는데 이 아이디어에 마음이 든 상관이 시계 제작자를 불러 끈이 달린 시계를 여러 개 생산하는 방법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이윽고 지라드 페르고는 제작에 들어갔는데 처음엔 손목시계보다도 진전은 되었지만 단순히 끈만 달려있어 현대에 비하면 엉성했었다.
그러나 그 참신한 아이디어는 영국에 전해져서 영국이 소수의 군대, 그리고 머나먼 아프리카 남단에서 보급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현지의 보어인을 물리치는데 이 원시적 손목시계가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영국이 남아프리카의 지하자원의 부를 노리고 일으킨 그 전쟁에서 시간의 정확성이 부각이 되었다. 말하자면 말과 총검이 쇠퇴하면서 대포나 비행기의 폭격이 차츰차츰 더 위력을 발휘할 때 정확한 시간의 측정은 불가피했던 것이다.
이전에는 병사 개개인의 전투능력이 별로 영향을 못미쳤지만 산업혁명의 여파로 과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중화기도 소총에서 연발총, 자동소총, 기관총, 무연 화약 등 혁신적인 무기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런 총이나 대포는 막무가내식으로 쏘지 아니하고 병사들이 이동 시간을 맞추고 측면공격을 지위하고 동시에 집중사격을 명령하려면 정밀기계처럼 움직이어야 했는데 상관의 순간적이고 발악적인 발사 명령의 목소리보다도 미리 시간 약속을 정하여 손에 차고 있는 시계를 보는 것이 훨씬 유효했던 것이다.
이 군사용 끈 시계가 좋은 상품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많은 시계 회사들이 관심을 가지고 신상품으로 내놓기 시작하였고 주로 이 보아전쟁과 연관지어 손목시계를 광고하기 시작했지만 20세기 초까지 아직은 회중시계가 대세이었지 손목시계는 멀었다.
다만 비로소 남성에도 손목시계가 조금씩 자리를 잡게 되었고 숙녀용은 팔찌시계watch bracelet로 신사용은 손목시계wristwatch 로 구분이 되기 시작하였다.
witpo
Ⓐ 지라드 페르고가 만든 손목시계. 군사용이었기에 보호를 위해 시계 위에 철망이 있다.
Ⓑ 보어전쟁(Boer War, Anglo Boer War)은 아프리카에서 종단 정책을 추진하던 영국 제국과 당시 남아프리카지역에 정착해 살던 네덜란드계 보어족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보어인이 살던 곳에서 다이아몬드와 금광이 발견이 되자, 이것을 탐낸 영국이 일으켰다.
중화기와 시계의 도입 이외에도 군인의 복장이 변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사진과 같이 눈에 띄는 색은 총의 표적이 쉽게 되었기에 전쟁의 후반부에 카키색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