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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cafe.daum.net/Eliyahu/88iT/4574
(쉐카이나 코리아의 엘리야후 님의 글을 복사해서 정리했습니다)
이란과 북한의 차이
요즘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남북협상, 북미협상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 중에서도 다수의
사람들이 이란을 옹호하며 이스라엘과 미국이 악의 축이다. 히틀러가 선견지명이 있었는데
유대인 씨를 말리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 이스라엘도 핵무기를 없애야 한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핵무기로 멸종시켜야 한다. 이란만세를 주장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 주장들의 배경에는북한과 이란의 핵문제가 둘다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인들의 반이스라엘 정서는 반기독교 정서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자신들의 크나큰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을 치러왔던 열국 사람들의 눈과 혀와 살이 썩을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스카랴 14:12)
그들 반이스라엘국가의 국민들중 남은 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여호와 앞에 경배하러
올 것입니다( 스카랴 14:16-19)
이스라엘은 과거 1981년 사담 후세인 정권치하에서, 이라크가 핵무기 개발을 위해 핵시설을
운영하고 있을 때 공군기로 출격하여 모두 폭파시켜버렸습니다. 당시에는 이스라엘 공군기들이
이스라엘에서 출발하여 요르단을 경유하지 않고 사우디 아라비아를 거쳐 이라크 영공에
진입하여 폭격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뒤로 시리아가 핵무기를 제조하려 하자 2007년 이스라엘에서 출격하여
지중해로부터 시리아 영공에 잠입하여 시리아의 핵시설을 모두 파괴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란이 그뒤로 2010년 이후부터 핵개발에 열중인 것을 이스라엘이 알고
핵사찰문제가 이란에 대해 불거졌으며, 2015년 7월에 있었던 이란 핵협정은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은 그 핵합의를 5월 8일 탈퇴한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제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 차이를 살펴봅니다.
북한
제가 아는 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한다는 정보의 문제는 1980년경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81년 금창리 핵시설 문제가 불거졌는데 당시에는 남한이 먼저 1970년대 말 박정희시대부터
핵개발을 하겠다는 계획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프로젝트가 북한에 자극이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뒤로 1987년 북한이 핵사찰을 받아야 한다, 고 주장하자, 북한은 남북한 동시 사찰을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당시에는 남한내에 1100기의 전술핵무기를 랜스 미사일에
탑재하여 사용할수 있도록 해놓고 있다는 설이 주장되기도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뒤로
남한내에 있던 미군의 전술핵무기는 철수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1989년-1994년 동안에 남북한 동시사찰 등으로 티격태격하는 동안에 북한은 동독의
기술자나 미사일 댓가로 파키스탄으로부터 어느 정도 기술적 도움을 받았는지 핵개발을
상당히 진척시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후 1994년 3월 서울 불바다 위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북한 핵문제를 협상이 아닌 핵시설 폭격으로, 북한정권의 붕괴등을 가져오는
전쟁감수 등의 강경정책으로 해결하려면, 나중에 2000년 이후에 북폭하는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전쟁을 감수하는 것은 너무나 큰 손실을 한반도 전체에
가져오고, 일본이나 중국이 아주 좋아하는 상황이 되지, 남한이 승리한다 해도 잿더미위에서
승리하는것이므로, 클린튼 행정부는 북폭 강행의지를 보였지만 김영삼 정부는 반대하였고
결국에는 협상의 방법을 택하였고 그것이 제네바 협약이었습니다.
그이후의 제네바 협약으로 북한 핵문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것의 핵심은 1) 북한 핵개발 동결 2)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 건설 KEDO의 70% 한국 부담
3) 경수로 발전소 건설이 완료될 때까지 매년 50만톤의 중유를 미국이 북한에
무상공급 이었습니다.
그것이 2001년 조지 부쉬가 취임한후 1년정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에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북한에 퍼주기를 하여 북한 핵개발을 도왔다고 햇별정책을 비난해왔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논리에는 최후에는 북한과 전쟁도 불사하여 결국 한판붙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판붙는 일을 할려면,
2000년이 아닌 1993-4년 김영삼 정부때의 1차 핵위기시에 북폭을 감행했었어야 하였습니다.
왜요? 1994년보다 2000년에는 이미 훨씬 더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진척시켜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햇볕정책때문에 북한이 핵개발을 했다기 보다는
제네바 협약덕택에 그만큼 시간을 벌었고, KEDO 의 30억달러와
매년 50만톤의 중유가 오히려 북한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지 부쉬는 한국의 상황과 역사에 대해 무지하였으며,
그는 어떻게 미국이 북한에 원유를 공급하고 있다는 말이냐? 하며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하며, 여러가지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핵프로그램을 재가동시키겠다고 하였고 2002년 11월 미국은
중유공급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러자 2002년 12월북한은 IAEA 원자력기구 핵사찰 감시단을 추방시켰습니다.
그것으로 제네바 협약은 완전 파기되었습니다.
문제는 미국 남북한 국제사회는 1994년의 제네바협약이 겨우 잠정 협약에 불과하였으므로,
종전선언, 평화협정, 핵의 완전폐기등까지 완전한 핵폐기와 평화협정으로 진척되었어야
하는데 그동안에 더 이상 진전이 없었습니다.
클린튼은 임기가 끝나가고 있었으며,
조지 부시는 오늘날의 트럼프처럼 어떤 적극적인 협상이나, 근본적인 해결책의 뿌리까지
내려가려는 생각을 가지기 보다는 그저 북한에 대한 중유공급이 너무나 어이없다,
는 것이었고 평화협정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추구한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처럼 김정은과 햄버거 먹으면서 협상하겠다는 의지도 조지 부시나 오바마는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후로 후세인 오바마 정부의 8년동안에도 북한 핵문제는 별 해결없이 지내오다가
트럼프 행정부를 만난 것입니다.
북한은 현재 어떤 종류의 핵사찰도 받겠다고 합니다.
대신 자기들의 체제보장, 평화협정을 주장하며, 평화공존이 되는 한,
핵무기를 가질 필요가 왜 있겠느냐? 하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떼어내버리는 대신에 미국이 확고하게 자기들의 국체를 보장해준다면
평화의 세계에 나오겠다는 것입니다.
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맺으면, 남한이나 미국에 대해 적대감을 가질 이유도 없으며,
한국과 미국에 대해 평화협력을 누리겠다는 것입니다.
일본과는 남한이 대일청구권으로 1966년 3억달러를 받았듯이
( 박정희가 6600만 달러를 뇌물로 받은것은 제외), 필리핀이 3년 일본 지배받은 바에 대해서
1956년 5억5천만 달러를 받았듯이, 일본의 북한 지배에 대하여 , 북한은 일본에게 청구권이
있으며 과거 16년전(2002) 일본의 고이즈미 정권은 100억 달러를 제공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최소 200억 달러 이상의 대일청구권을 예상할수 있습니다.
그런 문제만 정리된다면 북한은 어느 나라와도 적대관계가 없는,
평화로운 정책들을 구현해나갈 것입니다. 즉 북한은 완전한 정상국가 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란
이란은 2015년 7월에 핵협정을 미국, 유럽, 등과 핵협정을 맺었는데,
당시에 핵사찰을 받은 적도 없고, 오늘날 북한처럼, 어디든지, 언제든지 와서 봐도 좋다,
하는 핵시설 공개를 선언한적도 없습니다.
2015년에 이란내에서 핵관련 무슨일이 일어나는지를 아는 미국 유럽국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란은 앞으로 2025년까지는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댓가로,
핵협정을 타결시켜준 것이었습니다.
그 핵협정 체결국가는 미국과 유럽연합, 러시아 등이었는데 러시아는 이란을 비호하는 입장이었고, 유럽국가들은 이란에 자기네 상품 파는 것에 눈이 멀었으며, 그들은 세계에 핵무기가 확산됨으로 인해 오는 세계적 재앙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나라들임이 드러났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무슬림 열성분자인 후세인 오바마와 이란인 사위를 두고
최근에도 이란에 가서 미국을 격파하는 정책을 조언해주고 돌아온
존 케리 국무장관이 주도하였으며,
이란 핵시설의 정보수집 책임자였던 존 브레넌CIA 국장은
CIA 카이로 지국장으로 재직중이던 시절에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열렬한 무슬림이며,
반이스라엘 정책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외에도 당시 백악관에는 6명의 무슬림 형제단이 핵심참모들로서 ISIS 의 창설과 지원,
그들을 사실상 지휘하면서, 겉으로는 마치 ISIS 를 토벌하고 있는 척하는 시늉을하면서
오직 세계 이슬람화에 몰두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후세인 오바마는 아주 물렁 물렁한 핵합의를 이란과 타결해냈습니다.
당시에도 이스라엘의 네단야후는 이란 핵합의가 아주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지만,
세계 열국과 세계 언론은 그를 국수주의자나, 전쟁광, 호전주의자로 몰아버렸습니다.
네탄야후가 워싱턴에 왔을 때 오바마는 만나주지도 않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럴 때에도 이스라엘은 이란을 공습하여 파괴해버릴수 있다고 하자,
미국은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을 통해서 이스라엘 공군기를 격추시키겠다고 하여,
이스라엘은 미국의 적이되고 이란은 미국의 우방이 되는 상황으로 변했습니다.
이란은 핵사찰 없이, 미국 유럽연합은 이란이 핵프로그램을 어디까지 진전시켰는지도
알지 못한채, 유엔 산하 IAEA 국제 원자력기구 는 이란 땅에 한번 들어가보지도 못한채
이란 핵합의에 서명하고 말았습니다.
그 핵합의 무렵에 미국 해군 선박이 이란군에 나포되었고, 오바마 행정부는 미해군들로
하여금 이란군앞에 무릎꿇고 사죄하게 하였으며, 당시에 70억 달러를 이란에 지불하고
그들이 나왔습니다.
또 미국이 30여년간 동결하고 있던 미국내의 이란 자산을 풀어주었는데
아마도 그 금액은 100억 달러 미만 정도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외에 많은 지원을 하였는데 전체적으로 이란이 미국으로부터 얻은 것은 1500억 달러가 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 후보는 공약으로 자기가 당선되면,
이란 핵협정을 완전히 재수정하든지, 그것이 안되면 폐기하겠다고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트럼프는 자기가 당선되면 불법체류자들을 모두 추방하겠으며 더 이상 무슬림 난민이
들어올 때에는 철저한 검증을 거쳐서만 (vetting)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고
그것을 당선후에 그대로 실행했으며, 세금감면 또한 약속한대로 실행했으며,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약속한바를 실행하고 있으며,
오바마케어 의료보험을 폐기하겠다고 공약했다가 실행했으며,
지구온난화이론은 허구이며 그에 따른 파리협약을 탈퇴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실행했으며,
ISIS 를 1년 안에 약속대로 섬멸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스라엘의 정보국 모사드는 이란에 침투하여 이란 핵시설 전체를 담고 있는
수많은 문서 500Kg 을 탈취하여 무사히 이란을 빠져 나와 이스라엘로 갖고 나왔습니다.
이란인들의 멍청함과 허술함을 엿볼수 있게도 합니다만, 그 서류들에는 이란이 현재까지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고 있음을 입증할수 있는 서류들이 엄청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은 이미 핵합의를 파기하였고 위반하였으면서
다른 나라들만 핵협정을 지키라고 한다, 면서 핵합의 파기를 5월8일 선언한 것입니다.
그외에도 이란은 핵합의 이후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행위를 서슴치 않고 있으며
미사일로 이스라엘을 지도상에서 지워버리겠다, 이스라엘에 죽음을, 미국에 죽음을,
하고 외치면서 아라비아반도의 예멘 반군들을 지원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적대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란은 시리아 영토안으로, 수십기의 미사일과 수천발의 로켓포탄을 들여와 있으며
이란군이 골란고원 가까이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상황은 에스겔서 38장 5-8절 상황처럼,
페르시아 군이 이스라엘산위에 이르른 상황과 비슷하게 보입니다만,
실제 그 예언은 좀 나중에 러시아와 함께 침입할 때에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란의 핵문제를 요약하면
이란은 핵사찰을 받은 적이 없고, 핵시설을 파괴한다고 한 적도 없고, 국제원자력기구의 방문도
허용한적이 없고, 최근 적발된 문서가 증명하듯이 계속해서 핵무기 개발을 해오고 있으며,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등에 대한 적대행위를 중단하지도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란과의 핵협정은 유야무야입니다. 이란에 대한 제재가 당연히 필요한 것은
핵무기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며,
이란이 정직하게 핵시설을 공개하고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는한,
미국이든 이스라엘이든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북한의 핵문제 상황은
과거에는 미국이 먼저 제네바 협정을 파기하였음으로 말미암아, 핵협정을 이행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미국의 압박효과이든 어떻든, 어떤 핵사찰도 받겠다고 하며,
기자들이나 유엔이나 어느 나라든 핵시설 파괴과정을 참관해도 좋다하고,
어디든지 핵시설을 둘러보아도 좋다고 말하며 대신 자기네 국가체제와 안보를
보장해달라는 상황이며, 종전선언, 평화협정을 맺으면,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어느 나라와도 적대관계나 호전적 관계를 북한이 가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극과극 동과서
이란은 핵사찰받지도 않았고, 주변국가와 평화관계를 원하지도,
유지하지도 않으면서 호전적인 미사일 협박을 계속하고 시리아와 예멘에
파병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을 계속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핵사찰을 받겠다는 것이며, 평화협정후, 주변국가와 평화관계를
갖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란과 북한은 핵문제에 있어서 극과 극, 동과 서의 차이를 갖고
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핵무기
한국인들중에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아주 많은 혐오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흔히 이스라엘은 왜 핵사찰을 안받느냐? 악의 축 이스라엘,
왜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가져도 되고 이란은 못갖게하느냐? 등의 주장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핵무기는 일단 보유하면, 그것으로 전쟁을 선언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워낙 큰 피해를 복구불능으로 가져오기 때문에 한번 맞으면 보복할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핵확산 금지조약(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은 꼭 필요합니다.
테러단체나 테러국가의 수중에 들어가면 안됩니다.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했다면 이미 여러번
핵전쟁이 났을 것입니다. 아니면 이란은 다른 나라에 대하여 매우 굴욕적인 요구를하여
사실상 그 나라를 자기네의 노예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과거부터 6대 핵보유국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사실 핵무기 자체를 개발해낸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 페르미, 맨하탄 프로젝트의 주요인물들 모두는 유대인들이었으며
소련의 핵무기를 개발해준 앙드레이 사하로프도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도 핵무기를 갖고 싶어서 이스라엘에게서 배웠던 것이며,
프랑스는 1958년 이스라엘과 공동으로 알제리아에서 핵실험을 실시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모든 핵무기의 원조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럼 이스라엘이 모든 핵무기 문제의 근원이라고 비난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독일 나치나 일본군부가 핵무기를
개발하였을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핵무기에도 불구하고 어떤 나라도 테러로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방어하며, 심한 경우에는 보복조치를 취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생존의 최선상태를 위해, 자위권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880년까지 이스라엘 땅은 황무지였으며, 팔레스타인 왕국이나 팔레스타인 역사나
문화나 팔레스타인 도시나 지도자가 없었으며, 그 황무지 땅에도 소수 주민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대다수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1799년의 나폴레옹과 1839년의 영국 영사관,
1867년의 마크 투웨인의 기행문이 증거합니다.
1892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까지 철도를 놓자 아랍인들의 유입이 시작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오스만 터키가 유대인 유입을 금지하고 아랍인 유입을 무제한
허용하기 시작한 1900년부터 1920년 사이에 집중 유입된 이집트인들, 요르단인들,
시리아인들이 대부분입니다.
4차례 중동전쟁은 항상 아랍인들이 먼저 도발하였지만 이스라엘이 승리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테러와 로켓포 발포를 하마스나 PA 가 먼저 자행합니다.
그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확실한 보복 응징을 취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가자지구 난민들이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완전
멸종시킬 터이니, 잠시만 한쪽으로 피해있으라, 하여 피난민 촌으로 몰려있던 것인데
수십개 아랍국가들의 단결과 엄청난 무력 무장에도 불구하고 아랍국가들은
번번히 패퇴하였습니다. 알라는 무엇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하여 아랍 난민들은 원래 살던 곳으로 못 돌아가고 가자와 서안지구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이스라엘에 혐오증을 발휘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지독한 반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라겠습니다.
북한 핵문제의 근본적인 뿌리
- 남북 분단
우리가 북한 핵문제를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까지 갖고 올라가 하나님께 아뢰며
그분의 궁극적 도우심을 추구하고 기도하려면,
그것의 진정한 뿌리까지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북한이 남북한 대치상황에 있고 북한은 자기들의 국방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성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남한과 미국의 막강한 전투력에 맞서는 것은 핵개발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의 뿌리는 바로 남북 분단입니다.
남북 분단의 원흉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1945년 2월 7-11일에 소련의 크림반도 얄타시에서 열린 3국정상회의에서
소련의 스탈린에게 한반도를 분단시켜 소련이 북한을 통치하고
미국은 남한을 통치하는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Franklin Delano Roosevelt 를 FDR 이라고 부르는데
그는 미국 민주당출신 대통령으로서, 937명의 유대인들이 히틀러의 핍박을 피해
미국에 망명을 요청하여 오자 다시 그들을 유럽으로 돌려보내버렸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유럽에서 독일과의 전쟁이 끝나가고 있을 때
독일을 소련과 영국 프랑스 등이 나누어 가져야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아시아에서 일본을 소련과 나누어 갖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전범 국가 일본을
해체하여 분단시키는 대신에, 그 전범국가의 피해자 국가인 조선을 다시 분단시켜
고통을 주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강간범을 처형하기 보다는
강간당한 피해자의 다리를 잘라내자는 식의 해법을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국 분단을 결정하여 북한지역에 소련 공산주의를 심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에 따라 북한에 공산주의를 심어준 것은 바로 미국 민주당이었습니다!
믿어집니까?
원래 대로 하자면 어떻게 했었어야 할까요?
전범국가 일본을 분할 해체하여, 최소한 소련에 혹카이도( 남한면적)를 나누어갖도록
제안하든지,그것이 소련에 부족하면 혼슈섬의 북부지역까지도 소련에 주도록
하든지 했었어야 하나님의 정의에 합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루즈벨트는 괴상한 결정으로 한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얄타회담의 루즈벨트는 두달만에 죽었으며, 이후 부통령이던 민주당의
해리 트루만이 집권하였습니다.
그는 남한에 하지중장을 임명하여 그로 하여금 친일파 들을 중용하고
독립운동가들과 광복군을 박해하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1945년 8월 6,8일에 미국의 핵투하가 있었고, 소련은 독일의 항복으로부터 3개월 이내에
대일 선전포고를 한다는 약속대로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하고 북한에 쳐들어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미국 합참의 본스틸 대령과 딘 러스크 대령은 30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한반도 지도를 본 다음, 38도선을 그어서 소련에게 38도까지만 내려오라고 8월 14일
통지하였습니다. 다음날 일본은 항복하였습니다. 딘 러스크는 민주당 정권에서
국무장관으로 케네디 존슨 행정부에서 일했습니다.
그후 남한에는 노부유끼 총독이 여운형에게 총독의 전권을 이양하였습니다.
한민족이 지혜가 있었다면 정식 선거를 치르기까지는 여운형에게 힘을 모아서 정상적인
선거절차를 진행했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였으면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가 미국 소련등이
분단 통치하려할 때에 분단을 피하여 통일국가가 되었던 것처럼, 오스트리아가 유엔
신탁통치를 거쳐서 통일 국가가 되었던 것처럼, 한국도 통일국가로 되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친일파들은 그를 두려워하였고 게다가 미국은 한달후에 미군을
파견하여, 미군정이 여운형을 완전 무시하였기 때문에 결국 여운형 체제는
얼마가지 못하였고 미군정이 실시되었습니다.
해리 트루만 휘하의 미군정은 하지 중장에 의해 통치되었는데 그들은
광복군 해산령을 내리고, 장택상등 친일파 공무원 중용, 친일파 경찰 중용으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도록 하였습니다.
트루만, 하지 중장 이들은 프리메이슨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깊이있는 인류에 대한 자비가 있는지는 극히 의문입니다.
친일파와 친일 경찰들이 계속하여 집권하고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는 상황을 국민들이 보고 항의 시위가 여러곳에서 일어났으며,
부산 철도기지 파업, 대구폭동, 제주도민의 10%가 죽은 제주도 4.3 사태 등이 일어났고
여순반란도 일어났으며 각종 살육이 일어났고
친일 경찰들은 시위자들을 공산주의자들로 몰아부칠수 있는 좋은 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반면에 대부분의 선량한 양민들은 일제하에서도 당하지 않던 지독한 고문과 살육을
일제의 앞잡이었던 친일파와 친일경찰들에게 당하는 것을 보고 항거하였습니다.
제주 4.3 사태로 인한 3만2천의 양민학살과 보도연맹사건등의 여러 사건들로
인하여 6.25 한국 전쟁이전에 이미 수십만이 살해되었다고 추산됩니다.
이 모든 것이 미국 민주당 정부의 휘하에서 하지 중장의 휘하에서와 이승만
정권하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민족주의자들이던 임시정부의 김구주석을 암살하고 여러 독립지사들을
처치할수 있는 방법은 바로 김창룡, 정일권 같은 일본 헌병, 일본군, 백의사등을
중용하는 것이었으며 그들은 계속하여 민족운동가들을 고문 살육하였습니다.
그뒤로 트루만행정부의 국무장관 애치슨은 1950년 1월 미국의 방위선은 필리핀,
타이완, 일본, 얄류션 열도에 국한한다고 하여 남한이 방위선 밖에 있음을 선언하였습니다.
즉 북한이 남한을 알아서 차지해도 미국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분명 그 전쟁은 북한의 김일성에 의해 도발되었으며 그는 엄청난 비극의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수많은 살육이 남한에서 벌어진데에는
바로 친일파들의 중용과 친일경찰들의 잔인한 살육에 많은 원인 제공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맥아더는 만주폭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지만, 트루만은 너 한사람을 해임하는
것이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것보다 낫다고 하여 맥아더를 해임시켰습니다.
만일 맥아더 말대로 만주폭격을 강행했으면 한국은 자유민주국가로 통일되었습니다.
당시에 중공은 핵무기가 없었으며, 소련도 핵무기를 만들기는 했어도, 그것을 사용할
만큼 많이 발전되지 못하였으며 수소폭탄은 갖고 있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중국 공산당 파멸의 기회를 트루만은 놓친 것입니다.
그것이 민주당 트루만의 정책이었고 그 결과 중공은 오늘날까지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은 북한에는 공산정권을심어주었고, 중국에는 중공 정권이
잘되도록 도와준 것입니다.
이후로도 미국 민주당의 지미 카터 정권은 1980년 광주사태시에 전두환 일당이
전방부대 병력을 빼내서 광주에 병력을 투입하도록 작전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보다 앞서 민주당의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은 통킹만 사건을 일으키고
월남전을 일으켰습니다.
미국 민주당은 1828년 앤드류 잭슨에 의해 창당되었습니다.
그는 300명의 노예를 거느렸던 노예제도 주장자요, 체로키 인디언들과 맺은 조약을 파기하고
인디언들을 서쪽으로 추방시켜 갈데없게 만든 인종차별주의자였으며
미국 최초의 독재자로 불리웁니다.
반면에 미국 공화당은 1854년 존 프레몽과 에이브라함 링컨에 의해 창당되었습니다.
공화당은 전신인 휘그당의 많은 사람들을 흡수하였으며 민주당과 공화당이 있기 전에는
민주공화당이 있었습니다.
링컨은 1860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공화당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고
흑인 노예해방을 1863년 선언하였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링컨이 1865년 암살된 이후에, 민주당은 1866년 KKK 단을 창립하여
공화당에 참여하는 흑인들과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하는 흑인들을 살해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그해 1866년 공화당은 민주당의 전원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도적으로
흑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14차 수정헌법을 통과시켰으며
1870년 역시 공화당 주도로 흑인 참정권을 허용하는 15차 수정헌법을 통과시켰으며,
1919년에는 여성참정권을 허용하는 20차 수정헌법을 공화당 주도로 통과시켰습니다.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은 1912년 선거운동에서 공약하기를 당선되면 연방정부에서 일하는
모든 흑인 공무원들을 파면시키겠다고 하였고 당선된후 이듬해부터 모든 흑인들은
연방정부에서 해고되었습니다.
그런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주장은 벨기에 독립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었고
그의 말을 믿고 3.1 운동을 벌였던 조선인들은
아무런 도움도 미국으로부터 받지 못하였습니다.
1944년까지 미국 민주당은 오직 백인들만 예비선거에 출마할수 있다하여 유색인종의
정계진출을 봉쇄하였습니다만 그해 대법원이 그것을 위헌으로 판결하여 이후로
유색인종들이 민주당에 참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흑백 교육 평등, 버스 등의 공공시설 흑백차별 금지 등에서 역시 공화당
출신의 얼 워렌의 판결이나 아이젠하워 선언등으로 공화당은 민권운동과 인종차별
금지에 앞장섰고 민주당은 반대하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5년부터 일어난 흑인 민권운동이 폭동 방화 살인으로 나아가자
공화당 지지자들은 차츰 흑인보호와 흑인 지지에서 벗어났고 민주당은 흑인은 대학에
등록할수 없다고 하던 정책에서 흑인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정책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민주당의 지지기반은 흑인들과, 동성애자들과
낙태옹호 주장자들, 불법체류자들의 대부분인 히스패닉, 무슬림들, 기타 범죄자들과
이들을 옹호하는 일종의 사회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신세계질서를 지향하는 미국의 거부들과 언론들, 진보성향의 판사들 등입니다.
미국 민주당이 사회주의적 성향을 띠는 것은 힐러리 클린튼의 멘토였다는
사울 앨린스키의 정견에 잘 나와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Saul_Alinsky
반면에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기반은 기독교인들이며, 화이트칼러집단이고 중산층들입니다.
한국의 민주당의 뿌리는 한민당이었으며 민족주의자들, 독립운동가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자유한국당의 뿌리는 이승만의 자유당이었고 그들은 미국 민주당의 트루만 하지 중장
등이 강력한 후원자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즉 그들의 뿌리는 친일매국노들인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거나 이해가 안되는 분들은 역사공부를 더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민주당, 자유한국당 상황은 미국의 민주당 공화당의 상황과는 일부는
같은 부분도 있지만 그 뿌리와 지원면에서 다르거나 정반대인 측면이 오히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은 친일파냐 독립운동가냐가 중요한 기준이었다면
미국은 기독교정신의 공화당이냐, 반기독교 정신의 민주당이냐의 차이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의 부패는 언론들이 비호하는 까닭에 보도되지 않지만 엄청납니다.
트럼프의 성추문은 민주당의 피짜게이트와 미성년자 강간, 각종 섹스 파티 등에
비하면 천분의 일도 못됩니다.
미국언론은 특검 특검하며, 1년 반을 허송해왔지만 미국의 특검은
트럼프에 대하여 제시할수 있는 아무런 결정적 증거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대신 힐러리 클린튼이 카자흐스탄에 있는 우라늄광산의 미국 지분을
러시아에 팔아주는 댓가로 러시아로부터 300만 달러를 받아먹은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증언하기를 FBI 는 결코 트럼프나 트럼프 타워를 도청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확인된 데빈 누네스( Devin Nunes) 메모에 의하면
코미가 증언하던 바로 그 시각에 FBI 는 트럼프를 도청하고 있었음이 드러났으며
FBI, CIA, NSA, NI, DOJ 등 수많은 기관들이 합력하여 트럼프 저지 운동과
트럼프 선거본부를 사찰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휘한 사람이 후세인 오바마, 재닛 쟈렛등이었으며
그 모든 정보를 힐러리 클린튼과 공유하였던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워터게이트보다 훨씬 중대한 범죄를 오바마정부는 자행하였으며 언론인들의 대부분이
힐러리 클린튼의 돈을 먹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언론들은 이런 엄청난 진실을
보도하지 않거나 축소보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미국정치 현실이고,
바로 그 부패한 미국 민주당이 한국민들에게 자행한 중대한 범죄가
바로 일제하의 조선을 분단시켜 북한에 공산주의를 심어놓은 것입니다.
북한인들이 공산주의가 옳구나, 하여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미국 민주당이
< 너희는 공산주의를 받아야 해, 그리고 고통좀 당해야 해, 우리는 너희가 죽는 것을
연속극 MASH 를 보고 즐길 거야> 한 사건이
바로 미국 민주당에 의한 한국 분단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한민족의 고통이 종식되고 남북한에 평화가 먼저오고,
차츰 동등한 수준이 되어 수평적 평화통일이 오기를 주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민족이 자행했던 일제하의 신사참배와
그외 한국인들이 범한 모든 죄악들을 한민족을 대신하여 담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경멸과 조롱을 당하시고 십자가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서
한민족을 대신하여 형벌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피로 한민족의 죄값을 갚으신 것입니다.
그분의 피는 한민족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죄값을 갚기에 충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의 죄를
용서해주셨다면, 북한정권의 죄도 사해졌을 것입니다.
북한정권의 죄를 하나님은 용서해주셨지만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용서할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동의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인들 또한 우리가 저지른 죄악에 대해 용서할수 없다고 할 것이며,
하나님은 용서해주셨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싸우는 것이 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용서해주셨듯이 우리 모두는 서로 용서할 때입니다.
다만, 앞으로도 누구든지 계속해서 전쟁을 하겠다고 한다면 용서가 소용이 없습니다.
그점은 크게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어 주 하나님께
한민족을 죄용서 해주셨음을 믿으며
그 진실이 한민족을 평화통일로 회복시켜 주심으로 증명되고 증거될수 있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시기를 주 하나님께 간구하여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세상만사와 세상의 모든 주권자들, 통치자들을
움직이시고 변화시키사 한민족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실수 있음을 믿고
주 예수께 감사하며 그분을 의지하고 기도합니다.
인류 모두의 죄를 담당하시고, 나무에 달리시사 피흘리시고 죽으시며
인류를 대신하여 형벌받으시고 참혹한 죽음을 죽으셨으나 부활하셨고
다시 오시사 세상을 통치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립니다.
2018. 5. 10 엘리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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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 개인적으로는 엘리야후님께 많은 것을 배우고 있지만,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문제와 관련해서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을 고문하고 괴롭히는 자들에 대한 용서의 마음을 갖기 어렵습니다.
글을 옮긴 이유는 세계정세에 대한 엘리야후 님의 식견에 감탄하여 본 카페의 회원분들께도 좋은 참고가 될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